"그 많던 야자수는 다 어디 갔나요?" "다 뽑았대요. 그런데 또 심는대요." 제주시 탑동로를 걷던 관광객과 상인의 대화다. 제주시는 지난 3월부터 이 곳 가로수도 심어졌던 워싱턴야자수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방향을 틀었다. 지금 탑동로에서는 야자수를 다시 심는 '재식재' 작업이 한창이다. 그 사이 도민 혈세 3억원 가까이가 공중으로 흩어졌다. 사실 워싱턴 야자수가 제주와 인연을 맺은 건 오래다. 1982년부터 제주도내 주요 도로와 관광지에 심어져 그동안 남국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이색 풍경으로 자리를 잡아왔다. 한때 3500여 그루가 도내 곳곳에서 자라 제주의 또 다른 상징이 되기도 했다. 아열대 식물인 워싱턴 야자는 멕시코, 북아메리카의 애리조나주, 뉴멕시코주, 콜로라도주 등지에 주로 분포한다. 줄기는 하나로 곧고 원기둥 모양이며 회갈색이 난다. 잎은 꼭대기에 빽빽이 나며 부챗살처럼 돼 있다. 수명은 80~250년 이상이고 추위에 비교적 강해 제주지역 등에서 노지월동이 가능하다. 최대 25m 이상까지도 자라 제주 곳곳에 심어진 워싱턴 야자들도 20m를 훌쩍 넘는 크기로 자랐다. 바람에 대한 저항성이 아주 강한 편인 수종으로
하룻밤과 낮, 거의 스무 시간을 지그시 눈을 감고서 주무시는 어머니. 그 앞에 엎드러져서 “어머니, 미안허우다. 나가 그자 ‘침 바끄지(뱉지) 맙서, 밥 흘리지 맙서’ 허멍 존다니(잔소리)만 해연..., 어머니한티 입에 맞는 음식 하나 못 해드리멍 그냥 ‘밥 먹읍서! 살려도랜만 허지 말앙 입을 벌립서. 밥 먹는디 죽는 사름 보십디강!’ 허멍 큰 소리만 지르곡, 반찬이 어신 건 생각을 못 핸 예.... 죄송허우다, 어머니! 제발 눈 뜹서게. 나가 영 빌엄수게....”라면서 답답한 마음에 어머니의 눈꺼풀을 뒤집으려고 하자, “야이, 무사(얘가 왜 이래)?”라면서 내 손을 강하게 밀치신다. 아, 우리 어머니가 괜찮으시구나. 힘이 여전하시구나. 살아나셨구나! “어머니, 이제랑 일어납서. 어머니 그추룩 아끼는 상추를 어떤 머리 검은 쥐(사람)가 막 뜯어감수게!”. 그러자 참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눈을 살며시 뜨시더니, 내 얼굴을 두 세 번 쓰다듬으신다. 그러고선 ‘너는 왜 이리 예쁘냐’는 듯한 표정으로 다정하게 웃으시곤 다시 눈을 감으신다. ‘아, 이렇게 세상을 떠날 수도 있겠구나’하는 마음에 애간장이 다 녹아든다. 내가 지금까지 해 온 것은 불효뿐이구나. 언제나
11일 코스피지수가 3년 5개월 만에 2900선을 회복했다. 4월 초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부과 발표 여파로 2300선까지 떨어졌던 지수가 두달 만에 25% 넘게 올랐다. ‘코스피 5000’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약 8% 상승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증시 부양 의지와 글로벌 자금 유입이 맞물린 결과다. [※참고: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13일 코스피지수가 2900포인트 아래로 내려앉았지만, 중동 정세 불안에 기인한 하락으로 분석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11일 한국거래소를 찾았다. 취임 8일차에 거래소를 찾은 것부터가 강한 부양 메시지다. 이 대통령은 “주식시장에서 장난치다가는 패가망신한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경고했다. 주가조작 등 불공정 거래에 강력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배당을 촉진하기 위한 세제 개편도 추진하기로 했다. 배당 성향이 35% 이상이면 배당소득을 종합소득에서 분리해서 과세하는 방안이다. 한국 상장기업의 배당 성향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보다 낮다. 2014~2023년 중국 기업들의 평균 배당 성향이 31%인데 한국은 26%에 머물렀다. 이 대통령은 국민이 중간배당으로 생활비를 보조받을 수 있게 하
영화 ‘다운폴’이 2004년 유럽에서 개봉했을 때 일부 관객의 거센 비난과 항의에 직면한다. 전체적으로 히틀러를 광기에 휩싸인 ‘악마’로 묘사하기는 했지만, 몇몇 장면에서 보여준 히틀러의 ‘인간적’인 면모에 관객들이 분노했다. 영화 속에서 히틀러는 자살하기 전날 에바 브라운과 순애보 같은 결혼식을 올린다. 여비서 드라우틀 융에에게 유언장 구술을 마치고, 부관들에게 자신의 시신처리에 관한 마지막 지시를 하고, 최측근들과 질식할 듯한 침묵 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최후의 만찬’을 마치고 ‘주방 아줌마’들을 찾아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일일이 손잡아 주고 감사인사를 전하고, 끝까지 자신을 ‘모셨던’ 이름 없는 사람들에게도 감사와 작별의 인사를 전한다. 이 장면들만 떼어놓고 보면 범인(凡人)이 흉내 내기 어려울 만큼 대단히 품위 있고 인간적인 장면들이다. 히틀러의 손을 잡은 사람들 모두 눈시울을 적신다. 히틀러는 순도 100%의 악마로 ‘낙인’찍어 역사 속에 ‘봉인’해 놓아야 한다고 믿는 많은 관객이 이 장면들에 거부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세계 역사에는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악마적 권력자나 전쟁광이 명멸했지만 그들에게도 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창문을 열어 보니 새들이 전봇줄에 앉아서 우리 집을 쳐다보고 있다. 세상에! ‘이때다’하고, 파도 소리가 대문을 넘어온다. 새삼 우리가 참 좋은 집에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 아들의 요청에 따라 손자들을 돌보아주러 미국으로 들어가신 지 17년. 아버지를 그 땅의 공원묘지에 장례하던 날 내 손을 부여잡고서 한국으로 돌아오신 어머니는 그새 23년을 이곳 보목마을 바닷가 섶섬이 보이는 곳에서 살아오셨다. 이중섭 화백이 1951년 1월부터 1년간 가족이 단란하게 살았던 초가집, 지금의 이중섭 거리 중간쯤의 고갯마루에서 그렸을 것으로 보이는 바로 그 ‘섶섬이 보이는 풍경’ 앞에서 말이다. 어머니가 처음 머무셨던 우리 집은 서귀포에서 가장 처음 지어진 아파트 그 이름도 따스한 남양맨션이었다.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마련한 집은 그만큼 기쁘고 행복한 곳이었다. 더욱이 싱글이었던 주인이 아주 저렴하게 팔아준 곳이어서 마치 선물을 받은 것처럼 운수 좋은 집이기도 하였다. 게다가 맹자의 어머니께서 아들을 위해 세 번을 이사했다는 ‘맹모삼천지교’의 종착지처럼 바로 초등학교가 이웃해 있는 곳이었다. 아이들은 학교 운동장을 놀이터 삼아 마음껏 뛰놀
6월 4일 오전 6시21분 임기를 시작한 이재명 대통령의 ‘1호 행정명령’은 비상경제대응 태스크포스(TF) 신설이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저녁 7시30분부터 2시간20분 간 TF 첫 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앞서 이날 오전 이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그 방향으로 ‘실용적 시장주의’를 내세웠다. “박정희 정책도, 김대중 정책도 필요하고 유용하면 구별 없이 쓰겠다”고 덧붙였다. 증시에 안도감이 퍼지면서 코스피지수는 허니문 랠리로 4~5일 이틀간 6.6% 넘게 올랐다. 외국인이 2조원 가까이 순매수하며 주가를 끌어올렸다. 원·달러 환율도 1358원선으로 내려가며 비상계엄 선포 이전인 지난해 10월 수준으로 돌아갔다. 이로써 대통령 취임 첫날 주가가 하락하는 징크스가 17년 만에 깨졌다. 대통령 취임 당일 코스피지수가 상승 마감한 것은 17대 이명박 대통령(2008년 1.34%) 이후 처음이다. 기획재정부는 5일 비상경제대응TF 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2차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논의에 들어갔다. 최근 경제상황은 이 대통령이 “모든 영역에서 복합위기”라고 진단할 정도로 심각하다. 내수침체의 골이 깊은 데다 경제의 버팀목
히틀러는 분명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전 유럽과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고 또 누군가를열광하게 만든 인물이다. 가치중립적으로 말하자면 ‘인물은 인물’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영화 ‘다운폴’이 생생하게 재현해주는 히틀러의 마지막 14일간의 영상기록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54세라는 나이보다 최소한 10년쯤 조로(早老)한 모습에, 파킨슨병에 걸려 한 손을 떨어대며 ‘노염’을 잘 타는 그는 권총으로 생을 마감한다. 장례식도 없이 대충 파놓은 구덩이 속에 던져져 휘발유 불에 타는 둥 마는 둥 세상과 하직한다. 1927년 오스트리아의 베스트셀러 작가 스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가 「인류의 별의 순간들(Sternstunde der Mensch heit)」이라는 책에서 ‘미래세계의 운명을 바꿀 만한 위대한 결정이나 사건이 이뤄지는 특별하고 짧은 순간’을 은유적으로 ‘별의 순간(슈테른슈툰데·Sternstunde)’이라고 칭해 많은 독어권 국가들 독자들에게 환영받았다. 히틀러도 그가 승승장구하던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당시의 정치평론가들로부터 별의 순간을 잡은 사내로 일컬어졌던 인물이다. 츠바이크의 「인류의 별의 순간」이라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지난 3일 오전 5시. 초여름의 선선한 공기 아래 제주시 삼도2동 제2투표소, 제주남초등학교에는 서서히 불이 들어왔다. 투표 사무원과 정당 참관인, 선거 관계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5시 30분이 되자 본격적인 투표 개시 준비가 시작됐다. 참관인을 대상으로 한 안내와 주의사항 전달, 투표지·도장·투표함 점검까지 모든 절차가 빈틈없이 이어졌고, 투표함 봉인 작업도 그 일부였다. "이건 봉인함을 잠글 열쇠입니다.", "이건 투표함에 부착할 개폐 방지 스티커입니다." 투표 사무원은 준비물 하나하나를 직접 들어 보이며 설명했다. 현장은 긴장 속에서도 질서와 투명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오전 5시 59분. 투표관리인의 개시 선서가 낭독되면서 제21대 대통령 선거의 본 투표가 시작됐다. 그러나 평온했던 분위기는 채 한 시간도 유지되지 않았다. 오전 6시 48분 한 남성 A씨가 삼도2동 제2투표소에 도착해 신분증을 제시하며 투표를 시도했다.그러나 선거인명부에는 이미 지난달 30일 사전투표를 마친 이력이 명확히 기재돼 있었다. 투표 사무원이 이를 설명하자 A씨는 "내가 한 게 아니다"라며 강하게 부인했고, 아무 말 없이 투표소를 빠져나갔다
경제성장률 통계 산출기관인 한국은행마저 끝내 5월 29일 올해 0%대 전망 대열에 합류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지난 2월 1.5%로 내다봤던 것을 불과 석달 만에 0.8%로 거의 반 토막 낸 것은 충격적이다. 앞서 14일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6%에서 0.8%로 반토막 낸 바 있다. 한은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 수정 과정도 놀랍다. 지난해 8월까지 2.1%로 전망했던 것이 석 달 만인 11월 1.9%로 내려갔다. 다시 석달 뒤인 올해 2월 1.5%를 거쳐 이번에 0.8%로 추락했다. 3개월 새 0.7%포인트, 6개월 새 1.1%포인트, 9개월 새 1.3%포인트가 깎였다. 경제가 1.0% 미만 성장에 머문 것은 1998년 외환위기(-4.9%),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0.8%), 2020년 코로나 팬데믹(-0.7%) 등 세차례뿐이었다. 정책 대응이 미흡한 측면도 있었지만, 핵심 요인은 대외환경 악화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미국발 관세전쟁 충격 등 대외 요인 때문만이 아닌 오랜 내수 침체에다 비상계엄 선포·탄핵 정국으로 인한 정치불안이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지난해 2분기 마이너스 성장(-0.2%) 이후 3분기
화창한 5월 초여름 날씨. 운동장에서는 아이들의 환한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어 들린다. 교실 창문 너머로 비치는 밝은 햇살, 바람에 실려오는 노랫소리와 체육시간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 스승의 은혜를 다시금 되새기는 5월, 그러나 교실 안에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제주도내 한 초등학교 교사 고모씨(35)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람을 느낄 줄 알았다"면서도 "이제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보다 언제 나를 향할지 모를 민원의 공포와 싸워야 하는 게 더 무섭다. 교사라는 이유로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다"고 말하고는 고개를 떨궜다. 제주의 교실 안에서 교사들이 맞서고 있는 것은 단순한 업무가 아니라 '폭력과 민원'이라는 보이지 않는 적이었다. 결혼을 앞둔 또 다른 초등학교 교사는 "죽이겠다', "결혼식장에 찾아가 깽판을 치겠다"는 협박을 매일같이 들어야 했다. 또 다른 교사는 "창문만 봐도 혹시나 찾아오지 않을까, 집에 가도 그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며 "법적으로 대응하면 더 큰 해코지가 돌아올까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 했다"고 토로했다. 이 학부모는 10명의 교사를 정서학대 혐의로 고소했고, 교육청과 학교에는 100
히틀러가 마지막 14일간 지냈던 소위 ‘퓌러붕커’ 지하방공호는 최후의 저항이나 반격을 위한 요새라기보다는 히틀러의 무덤에 가깝다. 히틀러나 그의 참모, 장군들 모두 말은 안 하지만 자신들이 이미 무덤에 들어온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퓌러붕커’ 지하방공호에서 히틀러는 쉼 없이 대책없는 대책회의를 소집한다. 참모들과 장군들은 회의탁자에 펼쳐놓은 대형 유럽지도에서 막다른 골목과 같은 베를린이라는 작은 점에 시선을 고정한다. 베를린과 지하벙커만이라도 지켜낼 수 있는지가 절박한 관심사다. 그런데 정작 회의의 좌장 히틀러는 ‘베를린 사수’ 이슈에 집중하지 못한다. 히틀러의 시선은 독일 동부 국경 너머 동유럽과 광활한 소련 영토를 몽유병자처럼 헤맨다. 그 광활한 땅이 바로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킨 목표이자 독일인들을 열광시켰던 소위 ‘레벤스라움(Lebensraum)’이다. 레벤스라움이라는 개념은 ‘Leben+raum’이고 영어로 직역하면 ‘리빙룸(living room)’이고 우리말로 하면 ‘안방’쯤 되겠다. 말 그대로 동유럽과 사람이 살 만한 소련 서부지역 땅을 모두 빼앗아 독일의 안방으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이다. 제1차 세계대전 패전국으로 영국·프랑스에
요즘 들어 어머니의 잠꼬대가 부쩍 늘었다. ‘허태행씨, 허태행씨....’라면서 아버지를 찾는 소리도 훨씬 잦아졌다. 잠꼬대를 그냥 놔둘 수가 없어서 일기장에 기록해 놓는다. 지난 8일에는 “아고, 우리 어머니 어디 가시니게?”라고 당신의 어머니를 찾으신다. 달력을 보니 어버이날이었다. 어머니의 잠꼬대는 그냥 헛소리가 아닌 게다. 오늘 새벽에는 “논에 물 대라, 제게 제게(빨리 빨리)! 우리 논 차례여, 이!” 하시며 허공에다 두 팔을 휘저으신다. 여간 급하고 간절하신 게 아니다. 혹시나 싶어서 인터넷을 뒤져보니, 아하, 요즘이 모내기 철이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의 잠꼬대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신 거다. 102년을 살아오시면서 오랫동안 몸에 축적된 습관과 예감의 발로다. 우리 논이란 게 남의 논을 병작하는 것이다 보니, 농사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곳이 아니었다. 대포마을 약천사 근처의 선궷내 물을 따라 형성된 논들은 층층이 계단식에다 면적이랄 것도 없는 조각난 땅들이었다. 지금 와서 그곳을 바라보면, 어떻게 저기를 논으로 삼고서 농사지을 생각을 다 했을까 싶다. 특히 우리 식구들이 모두 달려들어서 낑낑 거리면서 논일을 했던 곳은 낭떠러지에 물이 떨어지다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