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 전쯤이다. 결혼하고 처음 시댁에 간 어머니는 마루 위 대들보나 기둥, 처마 밑에 슬며시 나타나는 커다란 뱀을 보고, 너무 놀라 숨이 멎을 뻔했다고 했다. 그렇지만 누구도 뱀을 쫓아내려 하지 않았다. 뱀을 위협하거나 죽이려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경외시하며 집안의 소중한 신으로 모시는 듯했다. 그에 더해 시댁 어른들은 ‘분시’(분위기) 모르는 새댁, 어머니에게 뱀에 관한 금기와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을 하나하나 일러주기까지 했다. 어머니가 시집가서 겪은 맨 처음 문화충격이었다. 새마을운동이 본격화되기 이전만 해도 우리 할머니나 증조할머니뿐만 아니라, 많은 제주 사람들은 뱀을 ‘칠성신(七星神)’으로 섬겨왔다. 장독대에 짚가리를 두어 ‘터줏가리’라 하여 신앙했다. 현재는 흔적조차 없지만, 65년 전 할머니네 장독대나 증조할머니네 집 뒤꼍 대나무 숲에는 ‘밧칠성’을 상징하는 ‘칠성눌’이 있었다. 곡식을 저장하는 집안 ‘고팡’에는 ‘안칠성’을 모셨다. ‘밧칠성’은 ‘뒷할망’, ‘뒷할마님’, ‘뒷칠성’이라고도 한다. 집 뒤에 모셔지는 칠성신들 이름이다. ‘칠성눌’ 또는 ‘주젱이’는 집안의 부귀와 재물을 가져다주는 ‘주저리’(일정한 양의 볏짚의 끝을 모아 엮어서
수많은 전사(戰史)가 있지만, 여성해병대 이야기는 40년 가까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94년 8월 10일자 동아일보와 1994년 8월 15일에 발간된 ‘해병 전우 신문’에 보도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1996년에 강기천 장군의 회고록 '나의 인생 여로'에 해병대 여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방송을 탔다. 제7대 해병대 사령관을 역임한 강기천 장군은 여군을 훈련한 당시의 해군 신병훈련소 소장이었다. 공정식 전 해병대 사령관은 자서전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에서 "우리나라 여자 군인 역사는 1948년 간호장교 후보생 교육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일반 여자 군인으로 범위를 좁혀 보면 6.25 전쟁 발발 후 해군·해병대에 입대한 해병대 4기 해병 126명이 그 출발"이라며 "육군의 여자 군인이 같은 해 9월 5일 탄생했으니 해군·해병대가 6일가량 빠른 셈"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불행하고 불운한 세대였어요. 나라에 충성하려면 부모 가슴 아프게 하며 총을 들 수밖에 없었고, 부모에게 효도하려면 나라를 저버리고 병역을 피해 도망 다닐 수밖에 없는 처지였으니까요. 그런데도 저 쓰라린 한국전쟁 당시 우리 소년 소녀 병사들은 위기에 놓인 내
10㎝가 넘는 단차가 있었고, 세면대는 앉은 키로 닿기 어려운 높이에 있었다. 침대는 낮고 불안정했다. 혼자서 씻고, 눕고, 움직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휠체어를 탄 박창수(48)씨는 결국 가족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보낼 수 없는 상태로 여행의 시작부터 막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여행이 아니라 불편을 견디는 훈련 같습니다. 시설은 있지만 쓸 수는 없습니다." 이 호텔에 장애인 객실이 있다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은 '법적으로 있는’ 수준이었다. 장애인 관광 전문 여행사 ‘휠체어투어’를 운영하는 전성환 대표는 기자에게 "지금 보신 게 바로 이 섬의 무장애 관광의 실상"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문서로는 장애인 객실이 존재하지만 실제로 휠체어가 돌아가지도 못하는 좁은 구조에, 욕실과 세면대는 여전히 비장애인 기준으로만 설계돼 있어요. 행정 보고서에는 다 갖췄다고 하지만 정작 장애인 입장에서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는 "실제 여행에서는 장애인이 덜 불편한 일반 객실을 눈치 보며 골라 쓰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제주장애인인권포럼과 국가인권위 제주출장소가 도내 4성급 이상 호텔 37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애인 객실 '설
제주도가 도시계획조례 개정을 통해 도내 고도지구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주거지역의 층수 제한을 높이는 선제 조치에 나섰다. 도심 고밀도 개발과 ‘제주형 압축도시’ 구상을 가속화하기 위한 행보지만, 실수요 기반과 시장 수용성, 공공성 훼손 가능성을 놓고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 고도관리 해제 앞두고 층수 완화? 이도·화북 재건축 단지 직격 수혜 = 도는 지난 17일 '제주특별자치도 도시계획조례'를 개정해 제1종 일반주거지역의 층수 제한을 5층에서 7층으로, 임대주택은 7층에서 10층으로 상향한다고 밝혔다. 제2종 일반주거지역은 기존 15층에서 25층까지 허용된다. 이는 도가 추진 중인 고도지구 고도제한 해제와 연계된 사전 조치다. 현재 도내 267개 지구에 설정된 고도지구는 1996년부터 주거지역 45m, 상업지역 55m로 높이를 제한해왔다. 도는 오는 2027년을 목표로 248개 지구의 고도제한을 해제하는 도시관리계획 변경에 착수한 상태다. 고도제한이 사라지더라도 도시계획조례에 따른 층수 제한이 남아 있다면 고층 개발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번 개정은 이 같은 제도 간 충돌을 해소하고자 마련된 정비 성격이 짙다. 직접적 수혜 지역은 재건축이 진행
1950년 9월 1일, 대한민국 해병 3·4기 3000여 명을 태운 해군 상륙함(LST)이 제주항을 출발했다. 목적지는 진해였다. 이 LST에 탄 해병 4기 가운데 126명은 여성이었다. 6·25 전쟁 발발 당시, 대한민국 해병대 병력은 300여 명에 불과했다. 개전 초기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온 인민군의 공세로 인해 병력 증강이 시급했던 국군은 제주 지역을 중심으로 해병대를 모집했다. 그렇게 모인 해병 3·4기 3000여 명 중, 126명의 여성이 국군 최초 여성해병대다. 6‧25 전쟁 발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7월, 제주도에 주둔하고 있던 해병대는 모슬포 1대대를 ‘고길훈 부대’로 명명하고 군산 지역으로 이동했다. 8월 중 제주 도내에서 3000여 명의 지원자가 해병 제3‧4기로 입대했다. 이 해병 제4기에 제주 도내 여중생, 미혼 여교사, 육지에서 제주도로 피난 온 여성 합해 모두 126명이 자원 입대했다. 이에는 중학교 교사 1명과 초등학교 교사 약 20명이 포함되어 있었고, 대학생 2~3명과 교사양성소 학생, 나머지는 여중 2, 3학년생이었다. 당시 제주여중, 신성여중, 한림중, 대정중 등에 다니던 2, 3학년 여학생들이었다. 당시 20대 미만 초등
지난달 24일 오후 2시. 제주시에서 서귀포 방향으로 평화로를 따라가던 중 도로 오른편으로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 하나가 시야를 가로막는다. 애월읍 고성리, 드넓은 들판 사이에 자리한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 시간이 멈춘 듯 세월에 깎이고 바람에 부서진 이 건물은 '호텔'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완전히 폐허가 돼 있었다. 이곳은 1990년대 초 호텔 300실과 콘도 138실, 워터풀과 메디컬 클리닉까지 갖춘 복합 관광리조트로 조성될 예정이었던 옛 '제주아일랜드호텔 리조트'다. 이후 2000년대 중반 '르네상스제주호텔'이라는 이름으로 간판을 바꿨지만 1997년 외환위기 여파로 공사가 중단되면서 지금껏 '유령 건물'로 방치돼왔다. 전체 연면적은 4만7000㎡에 달한다. 당시 공정률은 약 70%에 이르렀다. 건물 가까이 다가서자 첫인상은 '위험'이었다. 외벽은 곳곳이 갈라지고 페인트는 오래전에 벗겨져 그 아래 녹슨 철골이 삐죽삐죽 모습을 드러냈다. 유리창은 대부분 깨졌고, 바람이 불 때마다 어디선가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와 기분 나쁜 휘파람 같은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주민들의 불안은 당연한 일이다. 인근에 거주하는 고모씨(53)는 "강풍이 불 때마다 외
정낭과 함께 등장하는 단어가 ‘올레’다. 올레는 몇 집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진입로다. 제주도 올레는 먼 올레를 가운데 두고 마을 큰길, 즉 ‘가름 질(마을 길)’과 이어진다. 먼 올레에 맞닿은 집이 모여 ‘올레 집’이라 한다. 올레 집은 지역공동체 의식이 강하다. 제주도 공동체는 집-골-가름-마을로 전개된다. ‘골’은 뿌리에 달린 감자처럼 골목길로 연결되는 길을 말한다. 감자 뿌리 큰 줄기에 해당하는 ‘가름 질’, 가름에서 골로 이어지는 길인 ‘먼 올레’, 골에서 각각 집 마당으로 이어지는 진입로를 ‘올레’라 했다. 제주 기후는 취사와 난방 문화에도 영향을 줬다. 거센 비바람 때문에 부엌은 집 밖을 벗어나지 못했다. 또 집을 크게 짓지 않았다. ‘굴묵’과 ‘솟덕’은 이런 지리적 특성화 문화를 잘 볼 수 있는 시설이다. 보통 육지에서는 부엌 아궁이가 취사와 난방 겸용이다. 그러나 제주도에서는 취사와 난방시설이 분리된다. 각각 ‘솟덕’과 ‘굴묵’이라고 불렀다. 성읍민속마을보존회 강희팔 이사장은 “집을 크게 짓지 못하게 되자 부엌 구조도 육지와 다르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무더운 기후도 전통가옥 형태에 영향을 줬다고 했다.
국제자유도시를 표방한 제주도가 국제 마약범죄의 중간 기착지로 전락하고 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도입된 무사증(무비자) 제도가 국제 마약 조직의 새로운 밀수 경로로 악용되면서 필로폰·대마 등 각종 마약이 제주를 통해 국내로 유입되고 있다. 한때 '마약 청정지'로 불렸던 제주는 이제 대규모 마약이 드나드는 국제 마약 유통의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 코로나19로 멈췄던 밀수, 무사증 재개 이후 급증 =지난 2002년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도입된 무사증 제도가 최근에는 국제 마약 조직에 악용되면서 제주가 위험에 빠지고 있다. 비자 없이 30일간 제주에 머무를 수 있는 무사증 제도의 허점을 노린 마약 조직들이 외국인 운반책을 '관광객'으로 위장해 대규모 마약을 들여오고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19로 무사증(무비자) 제도가 중단됐던 2020년부터 2022년까지는 마약 밀수가 단 한 건도 없었다. 하지만 2023년 무사증 재개 이후 밀수 사건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올들어 지난달까지 적발된 필로폰 밀수 총량만 약 7.136㎏에 달한다. 이는 1회 투약량(0.03g) 기준으로 약 23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규모다. 이들 마약 운반책은 침대보, 신발 밑창,
1980년대 중반 서울에서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일이다. ‘한국 경제사’ 수업 시간에 난데없이 ‘제주도에는 왜 대문이 없는가?’를 두고서 학생들 간에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제주 출신인 나로서야 당연히 “애초부터 거지와 도둑이 없는 믿고 살던 사회여서 굳이 대문을 설치할 필요가 없었다”라고 확신하며 말했다. 그러자 즉각 반론이 제기됐다. 학과 선배 중 한 명이 “그보다 훔치고 갈 물건이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도둑질만 해서는 굶어 죽기 딱 알맞다. 그래서 대문이 필요 없었다. 심지어 대문을 마련할 형편도 못 됐다”라고 서울 출신 박사과정 선배 형이 매정하게 말했다. 그때 난 '다른 사람도 아니고 평소 친한 저 형이 어찌 저런 말을 할까?'하며 다소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유광호 교수님이 그 상황을 정리해 주지 않으셨다면, 난 제주 섬 놈의 명예와 자존심을 걸고 ‘삼무 정신’ 홍보대사 겸 수호천사 역을 다하기 위해 끝까지 논쟁을 끌고 가려 했을 거다. 다들 알다시피 ‘삼무(三無)’란 도둑·거지·대문 등 제주에 없는 세 가지를 말한다. 삼다(三多, 돌·바람·여자가 많다는 의미)와 함께 삼무는 제주의 또 다른 상징이다. ‘삼무’를 제주 정신으
2월까지 기승을 부리던 늦추위가 점차 가시고 봄기운이 찾아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봄소식이 가장 먼저 들리는 제주에서는 이미 지난달 17일 '봄의 전령' 매화가 개화해 같은 달 28일 만발했다. 성산일출봉과 산방산 주변 등 곳곳은 유채꽃 물결로 노랗게 물들고 있고, 목련도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꽃소식이 차차 들리기 시작하면서 완연한 봄 날씨 속 피는 대표 봄꽃인 벚꽃 물결은 언제쯤 볼 수 있을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 평년 개화일 제주 3월 25일, 서귀포 3월 24일…통상 3월말 전후로 만개 제주도의 벚나무 개화일 평년값(1991∼2020년 평균)은 제주 3월 25일, 서귀포 3월 24일로 전국에서 가장 이른 시기다. 평년 개화일이 비교적 이른 다른 지역을 보면 부산 3월 28일, 창원·포항·울산·대구 3월 29일, 통영·합천·남해·거제 3월 30일, 광주·여수 3월 31일 등이며 서울은 4월 8일이다. 제주의 벚꽃 개화는 제주지방기상청 계절관측용 벚나무를 기준으로 한다. 1973년 이후 제주의 벚꽃 개화 관측 기록을 보면 역대 벚꽃이 가장 이르게 개화한 해는 1992년으로, 평년보다 보름 이른 3월 9일에 개화한 것으로 기록돼있다. 당시 벚꽃
제주가 중국인 범죄의 온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강도와 폭행 같은 강력범죄는 물론 최근에는 살인사건까지 빈번해지면서 치안당국의 강경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제주는 2022년 코로나 엔데믹 이후 무사증(무비자) 제도를 재개하며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했다. 그러나 이를 악용한 범죄도 함께 늘어나 도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제주경찰청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제주에서 검거된 외국인 범죄자는 2917명에 달한다. 이 중 약 66%가 중국인이었다. 이는 전국 평균인 45%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에는 국제 이동이 줄어 범죄 발생도 감소했다. 하지만 엔데믹 이후 강력범죄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 잇따르는 중국인 범죄, 가상화폐 새로운 소재 =지난달 24일 제주시 한 특급호텔에서 중국인 일당이 환전 과정에서 8500만원을 갈취한 후 피해자를 살해하는 강도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범행 직후 공항으로 이동해 출국을 시도했으나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비슷한 사건은 지난 달에도 있었다. 호텔 객실에서 가상화폐 환전을 미끼로 중국인 일당이 현금 9억원가량을 빼앗아 도주하는 범행이 발생했다. 두 사건 모두 가상화폐 환전
이거 가저 강, 테워 불라 “성근 어멍아, 이것들 가저 강 테워 불라.” 아니! 이 멀쩡한 음식들을 태워버리라니.... 이해가 안 됐다. 그렇다 해도 지엄하신 시어머니 말씀인지라 주섬주섬 챙겨 나와 마당에서 태워버리려고 하는데, “메누리야, 뭐 허젠 햄시니? 그걸 무사 ᄉᆞ라불젠 햄디야?” 아니! ‘태우라’해서 태우려고 하는데, 왜 갑자기 ‘소라’가 나오지? 그날 시어머니가 ‘테우라’라고 했던 말은 ‘나눠주라’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며느리가 그걸 들고 나가 태워버리려고 하다니, ‘무사 그걸 ᄉᆞ라불젠 햄시니?’라며 시어머니가 놀랄 건 당연했다. 아무리 일 시켰기로서니, 시댁 어른들 앞에서 귀한 음식들을 ‘ᄉᆞ라불젠 허는’(태워버리려고 하는) 큰며느리가 두렵기까지 했을 거다. “성근 어멍아, 그거 캄저 확 뒈쓰라!” ‘뒈쓰라’, 이건 또 뭘 하라는 말이지? 영문몰라 하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주방으로 뛰어 들어와 프라이팬을 뒤집으며 기겁을 한다. “아까부터 이거 뒈쓰랜 안 해냐! 이거 다 카부런 하나도 못 먹게 되부러신예!" 이미 숯이 되어 버린 녹두전 앞에서, '도대체 내가, 어느 부분에서 무슨 잘못을 저질렀지?'를 꼼꼼하게 복기해 봐도 당시로선 도저히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