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전 1시41분께 서귀포시 남원중학교 인근 도로에서 한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한눈에도 교통사고였다. 하지만 가해차량도, 가해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의 수사가 시작됐다.
그리고 이틀여 뒤인 13일. 예상치 못한 의심의 흔적들이 하나 하나 경찰 수사망으로 들어왔다.
당초 단순 '뺑소니 사고'로 알고 가해차량을 추적하던 경찰은 신고자와 목격자의 '기묘한' 행적을 알아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복잡한 듯 하지만 치밀(?)했다.
경찰 조사를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13일 새벽무렵 양모(25.여)씨는 서귀포시에서 표선 방향으로 차량을 운행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남원중 앞 도로를 지나던 양씨는 그만 서모(47)씨를 치고 말았다. 그는 그대로 달아났다. 하지만 인명사고임을 감지한 양씨는 차를 돌려 반대편 차선에서 사고 현장을 지나쳐 갔다. 그리고 또 다시 유턴해 피해자 서씨를 친 사고지점으로 차를 몰았다.
양씨가 두차례 유턴을 하며 사고 현장으로 오는 동안이었다. 사고 지점으로 차량을 몰던 또다른 인물인 한모(29)씨가 이미 차에 치여 길가에 쓰러져 있는 서씨를 미처 발견하지 못해 다시 치는 2차 사고를 냈다.
한씨가 곧바로 차를 세우고 서씨가 어떻게 됐는지 보는 순간에 먼저 사고를 냈던 양씨가 뒤따라 사고 현장을 찾았다.
한씨는 양씨가 최초 가해자인 사실을 전혀 몰랐다. 물론 양씨도 한씨가 두번째 교통사고를 낸 사실을 몰랐다. 한씨는 본인이 사고를 낸 사실을 숨긴채 119에 신고했다.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양씨는 자신이 가해자인 사실을 역시 숨긴채 목격자 행세를 하며 자신의 휴대전화를 빌려줬다. 대범한 행동이었다.
경찰조사에서 그들은 신고자와 목격자였다. 서씨를 차량으로 친 양씨는 '목격자'가 됐고, 이 사실을 모르고 두번째로 피해자를 친 한씨는 '최초 신고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서씨는 긴급히 서귀포시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미 숨진 뒤였다.
경찰은 서씨가 뺑소니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고 가해차량을 추적하던 중 최고 신고자인 한씨의 행동을 수상히 여겨 용의자로 압축해 수사를 진행했다. 사고후 그의 행동이 실수(?)였다. 한씨는 사고직후 집으로 가지않았다. 피해자가 후송된 병원을 몰래 찾아 피해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모습이 경찰에 목격된 것이다.
경찰은 한씨 차량을 공업사로 끌고가 차 밑바닥 검사를 진행했다. 차량외부에선 피해자의 머리카락과 표피 등이 발견됐다. 사고 현장에서 수거한 차량 파편들도 증거로 확보했다.
최초 가해자이면서 목격자 행세를 한 양씨도 의심의 눈을 피해갈 수 없었다. 양씨는 최초 경찰 진술에서 표선에서 서귀포방향으로 가다 쓰러진 피해자를 봤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이 확보한 CCTV 영상을 확인한 결과 양씨의 차량은 그 반대인 서귀포시에서 표선방향으로 향했다.
결정적으로 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또 다른 차량의 파편이 양씨의 차량 파손 부분과 일치했다. 경찰은 이를 증거로 내세워 양씨를 추궁하고 결국 범행일체를 자백 받았다.
결국 교통사고 사망자는 두 차례에 걸쳐 차에 치여 숨졌고 범행을 숨겼던 신고자와 목격자는 경찰의 집요한 수사로 뺑소니 사실이 드러났다.
서귀포경찰서는 13일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상 차량 도주 혐의로 양모(25.여)씨와 한모(29.서귀포시)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두 가해자를 상대로 조만간 현장검증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