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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강력사건 1인자 강희찬 소장이 회고하는 ‘관덕정 여인 살인사건’
범인 검거하고도 처벌 못해…13일 공소시효 만료 결국 미제로 남아

지금으로부터 꼭 15년 전 일이다. 제주시 관덕정 부근 공사장에서 한 여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은 잔혹하게 훼손됐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 범인이 붙잡혔다. 그렇게 사건은 해결되는 듯 했다. 하지만 범인은 유유히 풀려났다.

 

‘제주시 관덕정 여인 살인사건’. 범인을 검거하고도 처벌하지 못한 희대의 사건으로 불린 이 사건은 13일로 공소시효를 넘겼다.  이제 ‘미제사건’이 된 것이다. 제주판 '살인의 추억'인 셈이다.

 

당시 이 사건을 수사했던 형사들은 “우리는 범인을 못 잡은 것이 아니다”며 하소연 한다.
그러나 끝내 유족의 한을 풀어 주지 못하게 됐다.

이 사건은 사건 자체가 엽기적이었던 점, 유력한 용의자의 범행 뒤 행동과 진술 번복 등으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이 사건을 담당한 당시 제주경찰서 형사반장이었던 강희찬 제주서부경찰서 한림파출소장과 함께 15년 전의 타임갭슐로 돌아가 봤다.

△‘피해자는 1명이 아닌 2명 이었다’

1997년 8월 14일 오전 8시께 제주시 관덕정 뒤편 옛 법원 건물 철거공사 현장에서 여성이 끔찍한 모습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피살된 사람은 제주시 삼도동 모 단란주점 여종업원 고모씨(당시 32세).

 

고씨는 얼굴과 머리 뒤쪽 목덜미 부근을 심하게 폭행당했으며 유두가 도려지고, 음부가 찢겨지는 등 그야말로 엽기적 범행이었다.

고씨는 사건 당일 영업을 마치고 단란주점 여주인인 현모씨(당시 49세)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던 중 변을 당했다.

 

현씨 또한 한쪽 눈이 실명되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는 중상을 입었으나 다행히도 행인에게 발견돼 목숨을 건졌다.

현씨의 집은 도로변에서 골목길로 100m 정도를 걸어가야 했다. 그 사이에서 범행이 발생한 것이었다.

 

강희찬 소장은 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입을 열었다.

 

“수사 초기에는 병원에 입원한 현씨에 대한 강력사건이었다. 그런데 오전에 바로 살인사건이 신고됐다. 피해자가 1명이 아닌 2명인 것이었다. 고씨는 현씨가 발견된 지점에서 5m 정도 안쪽으로 들어간 곳에서 발견됐다”

 

△경찰도 놀란 잔인한 범행...동기는 무엇?

 

경찰은 즉각 현재 관덕정 매표소 자리인 옛 중앙파출소에 수사본부를 차리고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했다.
경찰은 두 여성이 잔인하게 범행을 당한 점에 미뤄 원한 관계에 의한 면식범이거나 금품을 노린 강도일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범인은 도대체 누구일까. 가장 큰 의문은 역시 범행동기였다.

 

경찰은 우선 현금을 가지고 다니는 단란주점 여주인이 큰 부상을 당한 것으로 미뤄 금품을 노린 강도로 추정하고 수사를 진행해 나갔다.

그러나 돈이 목적이었다면 굳이 그렇게 잔인할 필요까지는 없어 보였다.

 

경찰을 놀라게 한 것도 그 부분이었다.

둔기(돌멩이)로 무자비하게 폭행한 것은 물론 옷을 다 벗겨 놓고 시신의 일부를 훼손시킨 점에 미뤄 범행 목적이 단순히 돈이 아닐 가능성도 있었다.

 

이에 경찰은 범인이 원한이나 치정, 채무관계로 인해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열어 두고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수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녀들의 통화내역 분석과 주변인물을 상대로 한 탐문수사에도 불구, 범인을 특정 지을 만한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강도 전과자 20여 명을 용의선상에 올려놓았지만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그러자 경찰은 신고보상금 200만원을 내걸어 제보 전단지를 다량 배포했으며, 범인 검거 경찰관에는 1계급 특진을 내걸었다.

 

그러나 범행 추정시간이 새벽(3시 20분)인데다 사건 발생 장소 또한 인적이 드물어 목격자 확보가 어려웠다.

범행 시간 직후 범인을 태워줬다는 택시기사의 진술을 토대로 몽타주를 작성했으나 이마저도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더욱이 사건현장과 50m가량 떨어진 곳에서 옷과 핸드백 등을 범인이 모두 태워버려 증거가 될 만한 것도 없었다.

△수사본부에 전화 건 용감한 용의자 “내가 범인이다”

수사가 지지부진하던 차에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로 뜻밖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사건 발생 23일 뒤인 9월 6일 새벽 수사본부에 1시간 여 동안 무려 다섯 차례에 걸쳐 “너희들이 뛰어다닌다면 나는 날아다닌다. 내가 범인이다”는 내용의 전화가 걸려 온 것.

 

강 소장은 용의자임을 직감했다.

전화국 협조로 발신지를 추적했고, 삼도2동 동사무소 입구 공중전화에서 범인의 지문을 채취해 국과수에 감식을 의뢰했다.
용의자는 수사본부 앞 비디오방을 시작으로 삼도2동 동사무소 입구, 남문로터리, 보성시장 입구, 제주시청 민원실 앞에서 공중전화를 이용했다.

용감하게도 수사본부에서 제주시청까지 걸어가면서 공중전화가 보일 때마다 5~15분 단위로 전화를 걸어 경찰을 농락했던 것이었다.

 

△‘성폭행 미수범 그 놈을 찾아라, 그 놈이 범인이다’

관덕정 살인사건 발생 전후 경찰은 조천읍에서 발생한 성폭행 미수 사건의 용의자를 쫓고 있었다.
강 소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밭에서 혼자 일하는 여성들을 둔기로 폭행한 뒤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관덕정 살인사건과 범행수법이 비슷했다. 둔기를 사용했으며, 증거를 없애기 위해 피해자의 옷 등을 불 태웠다. 그리고 ‘사람을 죽였다’고 겁을 준 뒤 성폭행을 시도했다. 그래서 관덕정 살인사건과 동일인물로 판단했다”

경찰은 그 성폭행 미수범을 쫓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 등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벌인 결과, 인적사항을 파악했으며 10월 21일 마침내 김모씨(당시 28세)를 탑동의 한 술집에서 검거하게 된다.

김씨를 검거한 다음날에는 국과수로부터 공중전화 지문 감식 결과를 통보 받았는데, 김씨의 지문과 일치했다.
김씨를 추궁하자 관덕정 살인사건의 범행을 순순히 인정했다. 보통의 범인들은 혐의를 부인하고 보는데 김씨는 너무도 순순히 인정했다.

살인에는 이유가 있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술을 마시고 관덕정을 지나치던 중 여성 두 명이 다투고 있는 것을 보고 핸드백을 빼앗기 위해 접근했다”며 “그런데 고씨가 반항하자 인근 공사장으로 끌고 가 폭행했다”고 범행을 시인했다.

특히 고씨의 신체를 일부 훼손한 것에 대해서는 “3년 동안 사귄 여자친구에게 배신당해 복수심에서 그랬다”고 말했다.
또한 현씨에게는 현금 40만원 가량과 휴대전화를, 고씨에게서는 무선호출기(삐삐)를 빼앗았다고 진술했다.

대규모 취재진이 몰린 현장 검증에서 김씨는 범행장면을 태연히 그것도 구체적으로 재연했다.
김씨는 누가 봐도 범인이었다.
강 소장은 지금도 김씨가 범인이라고 확신한다.

“수사본부에 전화를 걸어 ‘내가 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은 진짜 범인 밖에 없다. 지문이 일치했다. 강간미수 수법도 비슷했다. 먼저 단란주점 주인인 현씨를 폭행했으며, 이어 고씨의 핸드백을 빼앗자 고씨가 쫓아와서 내놓으라 해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특히 김씨는 고씨가 흰옷을 입었다고 했다. 범인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내용들이다. 김씨를 검거한 뒤에는 비슷한 강력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경찰은 김씨를 강간미수와 강도살인 혐의로 10월 27일 검찰에 송치했다.
사건발생 74일만에 경찰 수사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유족의 한 풀어주지 못한 채 흘러버린 15년

김씨는 검찰 조사과정에서 돌변,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다.

김씨는 관덕정 살인사건은 물론 그 전후에 발생한 강간미수 사건까지 무조건 자신의 범행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피해여성들의 증언으로 강간미수 사건은 기소했지만 살인사건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기소하지 않았다.
직접적인 증거가 되는, 범행에 사용한 혈흔이 묻은 둔기를 경찰이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

 

강 소장이 고개를 떨궜다.

“범인을 잡았으나 범행 도구를 확보하지 못했다. 대대적인 수색에도 직접적인 증거를 찾지 못한 것이다. 최근 제주동부경찰서에서 재수사를 벌였으나 소득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범인이 처벌을 받아 피해자의 영혼을 달래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피해자들과 유족에게 미안하다. 공소시효가 폐지되면 미제사건을 전담하는 부서를 만들었으면 한다. 그놈을 꼭 다시 잡고 싶다”

물론 범인을 잡아도 공소시효가 지나 기소할 수는 없다. 즉 법정에 세워 법의 심판을 받게 할 수 없다.

그러나 기소를 할 수 있고 없고는 그에게 중요한 게 아니다.
대한민국 제주경찰 자존심의 문제다.

강 소장은 강력사건을 해결함에 있어서는 도내 경찰관 중 1인자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에게 관덕정 살인사건은 일종의 치욕인 셈이다.

김씨는 교도소에서 8년을 복역하다 2005년 가석방돼 자유의 몸이 됐다.

 

관덕정 여인 살인사건과 함께 서귀포 호프집 여주인 살인사건 역시 미제로 남게 됐다.

 

호프집 여주인 강모씨(당시 39)의 온몸이 흉기에 잔인하게 찔려 숨졌고 알몸 상태로 발견되는 등 1997년 8월 14일 발생한 또 하나의 엽기적인 살인사건이었다.

그러나 끝내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면서 유족의 한을 풀어주지 못한 채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렸다.

 

△살인죄 공소시효

 

2007년 12월 21일에 공소시효를 연장하는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이 공포됨으로써 2007년 12월 20일까지 공소시효가 15년이었던 살인죄는 2007년 12월 21일부터 공소시효가 25년으로 연장됐다.
다만 2007년 12월 20일 이전에 행한 범죄에 대해서는 개정 전의 법률에 규정된 공소시효가 적용된다.
이에 따라 2007년 12월 20일에 대한민국에서 살인죄를 범했으면 공소시효 15년이 적용돼 2022년 12월 19일에 공소시효가 만료되지만 2007년 12월 21일에 대한민국에서 살인죄를 범했으면 공소시효 25년이 적용돼 2032년 12월 20일에 공소시효가 만료된다.
그러나 살인죄 공소시효는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돼 왔다.
법무부는 이에 따라 사형에 해당하는 살인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지난 6월 입법 예고했다.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를 통과하면 이르면 올해 안에 시행돼 15년 전인 1997년 이후 사건부터 적용될 전망이다.
만약 10월 1일 시행되면 1997년 10월 1일 사건부터 공소시효는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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