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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진...영주십경에 제 이름 갖게 해

영주십경을 처음 품제한 매계(梅溪) 이한진(李漢震, 1818~1881)

 

영주십경(瀛洲十景)은 제주의 토박이를 비롯하여 외래의 방문객들에게 제주는 곧 ‘영주십경’이라는 등식으로 제주를 설명하며 덧붙이는 제주의 대명사다. 그리고 이 말이 제주의 비경 10곳을 선정한 것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언제 누가 이러한 열 곳을 선정하여 영주십경이라 이름 붙였는지 그 유래와 취지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제주시 동쪽, 조천읍 신촌리 신촌초등학교 정문 옆 화단 위에 ‘매계 이한진 기념비’라는 비가 세워져 있다. 한글세대인 요즘 사람들 눈에는 띄지 않는 그 비가 바로 영주십경을 처음으로 품제(品題:논하고 평한 글)한 매계 이한우를 기념하는 비이다.

 

매계는 1818년(순조18) 조천읍 신촌리에서 태어나 1881년(고종18) 돌아갈 때까지 줄곧 고향에서만 살았다. 매계는 생전에 효행이 도타웠고, 시에 능하여 그 명성이 서울에까지도 잘 알졌다고 하는데 심재 김석익의 『심재집』파한록 320쪽을 보면 매계가 젊었을 때 당시 제주에 귀양살이 왔던 추사에게 시를 배웠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매계의 문하에서는 안달삼, 김희정, 이계징, 고영흔 등 제주의 석학들이 배출되었다.

 

영주십경 품제의 배경

 

매계 이전 제주의 경치를 품제한 이로는, 이익태 목사(1694년 도임)와 이형상 목사(1702년 도임), 그리고 이 지방 영평리 출신의 오태직(1807~1851)이 있다.

 

이익태 목사는 조천관(朝天館) 별방소(別防所) 성산(城山) 서귀소(西歸所) 백록담(白鹿潭) 영곡(靈谷) 천지연(天池淵) 산방(山房) 명월소(明月所) 취병담(翠屛潭)을 제주십경으로 꼽았다(『지영록』). 이형상 목사는 한라채운(漢拏彩雲) 화북제경(禾北霽景) 김녕촌수(金寧村樹) 평대저연(坪垈渚烟) 어등만범(魚等晩帆) 우도서애(牛島曙靄) 조천춘랑(朝天春浪) 세화상월(細花霜月)을 팔경으로 꼽았다(『甁窩文集』). 오태직(1807~1851)은 한라관해(拏山觀海) 영구만춘(瀛邱晩春) 영실청효(靈室晴曉) 사봉낙조(紗峰落照) 용연야범(龍淵夜泛) 산포어범(山浦漁帆) 성산출일(城山出日) 정방사폭(正房瀉瀑)의 팔경을 읊은 절구 두수씩을 짓기도 하였다(『三吳詩集』).

 

매계는 이러한 선인들의 자취를 이어 영주십경이라는 제목 하에 제주에서 가장 풍광이 뛰어난 열 곳을 품제하게 되는데, 이후 김양수, 김정희, 고영흔, 김형식 등 제주의 석학들이 매계의 원운(原韻)에 화답하는 시를 지어 그 풍광을 입증하면서 현재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한편 한학자 오문복 선생은 매계가 영주십경을 품제하면서 십경의 차례를 매김에 있어서도 치밀함을 보였다고 한다. 곧 “해가 뜨고 짐(세월의 흐름)에 따라 봄 여름 가을 겨울 경치가 바뀌어지는 경관을 드러내었다. 다음에 제주의 특색인 네 곳 경치 즉 신령스러운 골짜기(靈室), 산허리의 동굴(洞窟), 방목하는 말(牧馬), 포구의 고기낚기(釣魚)를 차례로 나열하여 제주 풍광의 특이성을 강조하였다.”(오문복 편,『영주십경』, 5쪽, 제주문화, 2004)고 역설한다. 또한 열 곳 이름 역시 성산출일(城山出日), 사봉낙조(紗峰落照)와 같은 시어(詩語)로 이름을 지어 붙이면서 대구(對句)까지 맞추었기에 지금 영주십경의 제 1경인 성산출일이 성산일출로 불려지는 것은 후대의 잘못된 오류라 지적한다. “성산출일이 왜정 때에 발간된 󰡔제주도실기(濟州島實記)󰡕에 일출(日出)로 오식(誤植)된 것을 󰡔증보탐라지󰡕에 그대로 답습하여 성산일출로 받아 쓴 것이 고질(痼疾)이 되어 본래의 이름으로 바꿀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출일은 일출로 잘못 쓰면 낙조(落照)와 대구(對句)가 되지 않아 시적인 흥취는 사라진다. 따라서 눈으로 출일을 못보고 글로 읽는 이들은 감흥이나 애착이 반감된다”고 하면서 선인의 과오를 그대로 답습하는 오류를 지적한다.

 

한편 매계는 ‘영주십경을 짓고(題瀛洲十景後)’에 ‘품제한 십경에 의문 많음은/호리병처럼 쉽게 그렸기 때문/기이함, 눈에 띄기 어려운데도/사람들 별경을 그렸다 하네(詩成十景景多疑/只畵葫蘆未畵奇/奇在世人難見處/人稱別景畵於詩)’ 라 하여 풍광의 실질에 해당하는 별경의 기이함을 제대로 읊어내지는 못하는 글의 한계를 고백하였다. 그림과 글로는 표현해 낼 수 없는 제주의 비경, 그것이 매계가 바라본 제주의 십경이었던 것이다. 아래에 매계 이한진의 영주십경 원문과 해석문을 함께 싣는다.

 

매계의 영주십경

 

城山出日

 

山立東頭不夜城 扶桑曉色乍陰晴
雲紅海上三竿動 煙翠人間九點生
龍忽天門開燭眼 鷄先桃峀送金聲
一輪宛轉升黃道 萬國乾坤仰大明

 

성산의 해돋이

 

봉우리 동쪽 끝 대낮과 같이/한순간 새벽어둠 맑게 개이니
해상엔 높이 뜬 불거진 구름/마을엔 점점이 밥 짓는 연기
용이 홀연 불타는 눈을 뜰 때에/복숭아꽃 골짜기엔 닭울음 울고
해수레 천천히 굴러 오를 제/온세상 큰 밝음을 우러르누나

 

 

 

紗峰落照

 

誰把紅紗繞碧峰 斜陽頃刻幻形容
蜃樓變態飜黃鶴 鯨窟浮光戱赤龍
歷歷孤村煙外樹 依依遠寺月邊鐘
暫停日馭同寅錢 期我扶桑曉路逢

 

사라봉의 저녁노을

 

붉은 비단 푸르른 봉에 둘려진/저녁놀 잠깐 사이 황홀한 모습
신기루, 누런 학이 나는 듯하고/고래굴, 붉은 용이 장난치는 듯
밥 짓는 연기가 숲을 달리고/절간의 종소리 울려 퍼지매
멈췄던 해수레 떠나보내며/새벽에 다시 만날 약속한다네

 

 

 

瀛邱春花

 

兩岸春風挾百花 花間一徑線如斜
天晴四月飛紅雪 地近三淸暎紫霞
影入溪聲通活畵 香生仙語隔煙紗
請君須向上頭去 應有碧桃王母家

 

영구의 봄꽃

 

양 언덕 봄바람, 온갖 꽃들이/꽃 사이 기울은 한 올 오솔길
붉은 눈 사월의 하늘을 날고/자줏빛 안개 낀 신선의 세상
이 풍광, 물소리 그림 같은데/안개 너머 신선의 소리가 들려
이곳에서 더 위로 올라 가보면/벽도 연 서왕모의 집 있으려니

 


正房夏瀑

 

急瀑雷聲破正房 炎雲倒瀉紫煙光
雪飛三伏靑山冷 虹掛半空白日長
直倒連天歸大海 橫流落地作方塘
乃知普澤終成雨 盡入神龍造化藏

 

정방의 여름폭포

 

정모시에 울리는 천둥소리/구름에서 쏟아지는 자주빛 안개
한여름 흰 눈에 청산은 싸늘/허공엔 긴긴 날 걸린 무지개
바다로 곧바로 거꾸러지고/땅으로 떨어져 못을 만들어
끝내는 비 만들어 은혜 베풂이/모두가 이에 숨은 용의 조활세

 

橘林秋色

 

黃橘家家自作林 楊州秋色洞庭深
千頭掛月層層玉 萬顆含霜箇箇金
畵裏仙人乘鶴意 酒中遊客聽鶯心
世間欲致封侯富 底事朱門桃李尋

 

귤림의 가을빛

 

누런 귤 집집마다 절로 숲 이룬/양주 땅에 가을빛 깊어지는데
달빛 걸린 가지마다 층층 옥덩이/서리 내린 알알이는 낱낱 황금알
학을 탄 그림 속의 신선이 되고/꾀꼬리 소리 만난 나그네 되니
세상사람 제후의 부귀 이루려/어찌하여 권세가만 찾아 헤매나

 


鹿潭晩雪

 

天藏晩雪護澄潭 白玉崢嶸碧玉涵
出洞朝雲無影吐 穿林曉月有情含
寒呵鏡面微糊粉 春透屛間半畵藍
何處吹簫仙指冷 騎來雙鹿飮淸甘

 

백록담의 여름 눈

 

하늘이 만설 남겨 맑은 못 보호하니/백옥은 우뚝 솟고 벽옥은 물에 잠겨
골짜기는 아침구름 토해내고/숲 사이엔 새벽달 떠 있는데
수면 위론 가루 같은 싸늘한 기운 일고/봄이 스민 벼랑 절반 쪽빛의 그림인데
그 어딘가, 신선이 피리를 불며/쌍 사슴 타고 와 물 마셨던 곳

 


靈室奇巖

 

一室煙霞五百巖 奇形怪態總非凡
僧依寶塔看雲杖 仙揖瑤臺舞月衫
漢客窮河徒犯斗 秦童望海莫停帆
將軍或恐神機漏 黙守靈區口自緘

 

신령골의 기이한 바위들

 

안개에 휩싸인 오백 장군암/예사롭지 아니한 기묘한 모습
스님은 탑에 기대 지팡이 보고/신선은 요대 향해 춤을 추나니
황하 근원 찾다가 북두 범하고/동해를 향하여도 내버려 둔건
장군들이 하늘의 비밀이 샐까/신령한 곳 지키려 입 다문 때문

 


山房窟寺

 

化工多巧斲靑山 洞設僧門雲掩關
鍊石乾坤包上下 孔針世界穿中間
倒懸樹色千年戱 點滴泉聲萬古閑
寒榻香消雙佛坐 幾時甁鉢鶴飛還

 

산방산의 굴 절

 

조물주 조화로 푸른 산 깎아/골짝에 구름문 절을 만드니
천정과 바닥을 돌로 다듬고/가운데 침으로 뚫어놓았네
천 년을 희롱하는 매달린 나무/샘물소린 만고에 한가로운데
쌍불만이 앉혀진 싸늘한 탁자/언제나 큰스님은 오시려는지

 


山浦釣魚

 

兩兩輕槎出釣魚 海天一色鏡中虛
落花飛絮春和後 綠水靑山雨歇初
何意煙雲隨往返 多情鷗鷺忘親疎
如今此景輸高手 應作人間未見書

 

산지포구의 고기 낚기

 

짝지어 고기잡이 나가는 떼배/하늘과 한 빛깔, 거울 같은 물
꽃 지고 버들꽃 날리는 시절/청산에 비 내리다 막 개일 때에
어째서 안개, 구름 서로 따르고/백로와 갈매기는 다정도 한지
이 경치 솜씨 좋은 손 빌린다면/세상에서 보지 못한 글 지으련만

 


古藪牧馬

 

雲錦裁來各色駒 靑虯紫燕又晨鳧
桃花細雨行行蝶 芳草斜陽渴渴烏
霧濕斑毛皆變虎 風飛黃鬣各疑狐
投鞭欲掃東西穢 誰有經綸滿腹蛛

 

곶자왈에 기르는 말

 

비단구름 잘라낸 각색의 말들/청규마 자연마 또 신부마인데
복숭아 꽃나무에 나비 모이듯/저녁놀에 서두르는 까마귀같이
안개 젖은 무늬는 호랑이 같고/날리는 갈기는 여우 같은데
채찍으로 더러움 쓸어낼 때에/그 누가 이 경륜을 갖고 있을까

 

글=백종진/ 제주문화원 문화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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