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애월읍 한담해변에 복원된 장한철 생가 초가가 여전히 사실상 폐쇄된 채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17일 촬영한 장한철 생가 입구다. [출처=제주자치도에 바란다 37769글]](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729/art_17527332295575_709bbf.jpg?iqs=0.8726207507166714)
제주시 애월읍 한담해변에 복원된 장한철 생가 초가가 사실상 방치돼 있다는 보도<본지 7월 15일자 '독자의 소리'> 이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도민과 관광객들이 여전히 출입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며 "행정의 약속이 말뿐"이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17일 제주도청 누리집 '제주자치도에 바란다' 민원 게시판에는 "정낭을 열었다더니 다시 잠가뒀다"는 내용의 제보가 올라왔다. 실질적인 개방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민원을 제기한 서모씨는 "15일 언론 보도와 신문고 답변에서 개방했다는 말을 믿고 현장을 찾았지만 정낭 세 개는 여전히 꽂혀 있었고, 마당에는 폴리스라인 같은 금줄까지 설치돼 있었다"며 "답변과 현실이 왜 이렇게 다른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서씨가 현장에서 촬영해 게시한 사진에는 생가 주변에 공사장용 안전고깔과 통행금지용 금줄이 그대로 설치돼 있었다. 해당 민원은 하루 만에 수십 명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방문객 사이에서 빠르게 공유되고 있다.
앞서 지난 12일 이상현 문화관광해설사는 같은 게시판을 통해 장한철 생가의 관리 실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제주도가 이 공간을 보존한 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을 텐데, 그 목적이 무엇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관리가 엉망"이라며 출입을 가로막는 정낭, 폐쇄된 주차장, 초가와 어울리지 않는 철제 구조물 등을 문제 삼았다.
이어 "장한철 생가는 단순한 초가가 아니라 표류와 귀환의 기록인 '표해록'을 남긴 조선 유학자의 정신을 담은 공간"이라며 "세금으로 복원한 공공문화자산이 이처럼 방치돼야 하는 이유를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애월읍사무소는 15일 본지 취재에 "문제된 철제 구조물은 이미 철거했고, 쓰레기 정비도 곧 마무리할 예정"이라며 "정낭도 개방해 관람이 가능하도록 개선하겠다"고 해명한 바 있다.
![17일 찾은 장한철 생가 현장에는 공사장용 안전꼬깔과 통행금지용 금줄이 설치돼 있었다. [출처=제주자치도에 바란다 37769글]](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729/art_175273323299_fcd3d3.jpg?iqs=0.5655878942673713)
그러나 이후에도 현장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후속 민원이 이어졌다. 이날 다시 게시된 '장한철 옛집 좀 봅시다'라는 제목의 민원에서 서씨는 "신문고(7월 12일자)에서 정낭을 개방하겠다는 답변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다시 찾았지만 여전히 '망한 집' 같은 모습이었다"고 꼬집었다.
장한철 생가는 조선 후기 문신 장한철이 태어난 곳이다. 그는 1770년 대과 시험을 보러 가던 길에 풍랑을 만나 류큐제도(현 일본 오키나와)에 표착했고, 이후 귀환 여정을 기록한 '표해록'을 남겼다. 이 기록은 현재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돼 있다.
제주시는 2021년 3월 모두 6억80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해 안거리(57㎡)와 밖거리(39㎡)로 구성된 초가를 복원하고 "문화자원과 산책로를 연계한 대표 명소로 육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개관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장은 사실상 '유령 문화공간'으로 방치돼 있다는 지적이 반복되고 있다.
인근 주민들은 "이제는 단순한 방치 수준을 넘어 행정이 스스로 밝힌 개방 약속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며 "제주의 역사와 정신이 깃든 공간을 이렇게 무성의하게 다뤄도 되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