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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오백 절오백 파괴'…"이형상 앞세운 조선의 일방적 승리"
"긍정과 부정, 지배층·심방·백성 사이 인식 차이 드러나"

 

숙종 28년(1702년) 제주에 부임한 이형상 목사(牧使)는 제주에서 '당(堂) 오백 곳과 절(卍) 오백 곳'을 파괴한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그는 실제로 변방인 제주에 조선의 성리학적 유교 질서를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 극단적인 방식으로 '음사(淫祀·귀신에게 지내는 제사) 철폐'를 단행했다.

 

이 탓에 제주에선 이형상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나온다.

 

오늘날 우리는 '문제적(?)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이형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제주목사 이형상이 제주에 미친 영향과 후대의 기억' 학술 세미나를 진행한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과 함께 2차례에 걸쳐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본다.

 

◇ 새로운 질서와 구체제의 충돌

 

이형상 목사가 화공(畵工) 김남길에게 그리도록 한 채색 화첩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화첩에 담긴 41개의 그림 중 유독 눈길을 사로잡는 그림이 있다.

 

39번째 그림인 '건포배은'(巾浦拜恩)이다.

 

1702년 12월 20일 수많은 사람이 관덕정과 건포, 즉 건입포구에서 임금의 은혜에 감사의 절을 올리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눈길을 끄는 건 한라산 중턱과 제주읍성 밖 마을에서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신당이 불타는 장면이다.

 

이형상에 의해 벌어진 신당 파괴 사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그림이다.

 

이형상은 저서 '남환박물'과 '탐라장계초' 등에 이 사건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남자무당들과 무녀들은 양양한 기상으로 무뢰배에게 당한(堂漢·당을 관리하는 사람)이라 부르게 하여 서로 계(契·모임)를 맺어 그 수가 1천명이 넘었습니다. … (중략) … 만약 내놓지 않으면 신차(神差·귀신의 차사)라 칭하여 당한을 보내 두 손을 묶어서 빼앗고, 심지어 소와 말을 빼앗는데, 그 수가 거의 백필이고 심지어 밭까지 빼앗고는 각각 나눠 먹으면서 위전(位田·제사 비용을 마련하는 밭)이라 하기도 하고 사시전(捨施田·기부하여 베푼 밭)이라 합니다.'(남환박물 및 탐라장계초,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그는 당시 음사를 숭상했던 제주의 풍속과 신당의 폐단을 이처럼 상세하게 기록했다.

 

이어 제주를 둘러보며 그동안 백성들을 괴롭히던 각종 민폐를 시정하기 위한 내용을 장계에 담아 조정에 올려 이를 바로잡았다고 설명한다.

 

이에 제주의 지방관리와 유생 등 800여명이 12월 20일 건입포구로 찾아가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북쪽을 향해 절(拜恩·배은)을 하고, 고마움을 드러내기 위해 섬의 어리석은 몇 가지 풍속을 스스로 금하겠다고 다짐한다.

 

그중 하나가 '음사 철폐'였다.

 

신당 등에서 귀신에게 제사 지내는 행위를 모두 없애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마을로 돌아가 제주 3읍(제주목·대정현·정의현)에 있는 신당 129곳은 물론 바위와 나무 등 자연물로 이뤄진 신당과 관련 물품을 모두 불태웠다.

 

이형상은 "당시 재직하던 세 읍 수령이 잇달아 이를 알려왔다"며 "이번에 이윽고 혁파했으니 이 폐단은 영원히 끊길 것"이라고 기록했다.

 

 

탐라순력도 속 '건포배은'은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하나의 그림에 담아 이형상 목사의 신당 혁파 자체를 커다란 업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치적을 높이 평가받아 이형상은 1819년(순조 19년) 유생들의 청에 따라 영혜사(永惠祠)에 배향됐다.

 

제주의 역사서 '탐라기년'(耽羅紀年)을 남긴 심재(心齋) 김석익(金錫翼·1885∼1956)은 신당 철폐를 단행한 이형상에 대해 '백성을 어리석은 습속에서 벗어나게 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진영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 특별연구원은 '제주목사 이형상 인식 연구'에서 "새로운 질서(조선의 성리학적 이념)와 구체제(제주 전래신앙)의 충돌이었고 이형상 목사를 앞세운 조선과 숙종의 일방적인 승리였다"며 "왕(숙종)을 대신해 제주를 명실상부 완전한 조선의 강역 혹은 신민으로 편입시키고 복속시켜야 한다는 제주목사 이형상의 확고했던 신념의 결과"라고 말했다.

 

 

◇ "긍정과 부정 사이" 설화 속 묘사된 이형상

 

이형상의 음사·신당 철폐 사건은 제주의 신화와 전설, 민담 등 설화의 형태로도 전해 내려온다.

 

'당오백 절오백 전설', '고대장본풀이', '영천이목사본', '김녕사굴 이야기', '두리빌렛당신본풀이', '광정당 말무덤 설화' 등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이들 이야기는 큰 틀에서 비슷한 줄거리를 띠고 있지만 이야기를 구성하는 각 에피소드는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내용을 보면,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형상이 도내 여러 마을을 둘러보던 중 커다란 뱀굴에 사는 뱀을 퇴치한다. 뱀은 매년 처녀를 제물로 바치고 굿을 하지 않으면 마을에 재앙을 불러들이는 두려운 존재였다. 이형상은 뱀을 물리친 데 이어 도내 당오백과 절오백을 부숴 없앴다. 이 탓에 분노한 신들의 복수를 받게 되자 이형상은 황급히 제주도를 떠나 목숨을 구했지만, 그의 아들들이 대신 죽임을 당했다는 등의 이야기다.

 

 

이야기에 따라 이형상을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묘사하기도 하고, 마지막에 '그러한 목사도 신을 못 이겼습니다'란 구절로 끝을 맺기도 한다.

 

결국 비극적 결말로 끝을 보는 이야기를 통해 연구자들은 신당 철폐에 대한 옛 제주 백성들의 부정적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제주 출신 원로 소설가인 고(故) 현길언 전 한양대 교수는 1983년 '탐라문화'에 실린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인식 : 이형상 목사의 신당 철폐에 대한 설화적 인식'이란 연구논문을 통해 이형상의 신당 철폐에 대한 유학자들의 긍정적인 인식과 달리 "제주 사람들의 생활을 지배해 온 신당이 한 목민관의 행정력에 의해 철폐되는 사실에 대해 긍정적으로만 수용했던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들 전설에는 이 목사의 치적에 대한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백성들의 반응과 행정적 조치에 대한 치열한 저항 의식이 나타나 있다"며 "허구적 설화가 지니고 있는 이러한 역사적 인식은 이 목사의 신당 철폐에 대한 민중들의 내면적인 의식을 허구적 상상력을 통해 형상화한 것이므로 이러한 허구적 설화가 보다 더 역사적 사실을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는 가설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성리학적 질서를 근본이념으로 삼은 조선의 지배계층과 전통 신앙을 간직한 일반 백성 사이의 갈등 양상이 이들 설화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최근에는 이형상에 대한 긍정·부정적 인식이 백성들 사이에도 다양하게 존재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끈다.

 

지난달 23일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열린 이형상의 주요 행적과 자취를 조명하는 학술 세미나에서 이현정 제주대 강사는 '제주 설화로 형상화된 병와 이형상의 자취: 이형상을 기억하는 두 시선, 심방 그리고 민간'이란 주제 발표를 통해 심방(무당을 뜻하는 제주어)과 민간(일반 백성)으로 나눠 그들 사이에 이형상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있음을 설명했다.

 

설화(신화·전설·민담)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본풀이(신화)를 전승해온 심방과 전설·민담을 구전해 온 일반 백성들 사이에 이형상을 기억하고 평가하는 방식이 다소 다르다고 봤다.

 

심방 집단은 '음사 철폐'로 인해 가장 많은 탄압을 받은 집단인 만큼 본풀이(신화)를 통해 이형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공유했다.

 

반면, 심방을 제외한 일반 백성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등에는 신들의 복수를 피해 육지로 몸을 옮긴 이형상으로부터 구휼미를 전달받는 삽화(揷話)가 들어가기도 하고, 민생의 고통을 좌시하지 않았던 이형상의 개혁적 모습 등이 담기기도 하는 등 민간에는 긍정과 부정의 양면적 평가가 공존했다는 것이다.

 

이현정 강사는 "이형상에 대한 설화 전승 자료를 볼 때 단순하게 기록역사는 지배계층의 것, 나머지 설화는 민중의 것으로 뭉뚱그려 보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형상에 대한 민간의 시선은 신당 철폐라는 사건을 주시하면서도 전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제주목사에 대한 다면적인 기억과 기대를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변지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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