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가히 ‘부채공화국’으로 불릴 만하다. 가계빚과 기업부채 규모가 각각 국내총생산(GDP)을 웃돌며 세계 1~3위권이다. 부채 증가 속도도 다른 나라보다 훨씬 빠르다. 가계, 기업 가릴 것 없이 부채 총량과 증가 속도 모두 위험하다.
내수와 수출이 동반 부진하며 경제성장률은 1%대를 맴도는데 물가가 잡히지도 않고 고금리가 지속되니 가계도, 개인사업자인 자영업도, 기업들도 불어나는 부채와 이자 부담에 짓눌려 신음한다.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여러 금융통계로 입증된다.
대출을 3건 이상 끌어 쓴 자영업 다중채무자가 177만8000명으로 역대 최대다. 이들의 대출 잔액 743조9000억원도 최대인 데다 연체가 급증하고 있다. 2분기 연체액은 13조2000억원, 1년 전의 2.5배다. 연체율도 1년 새 0.75%에서 1.78%로 2.4배 뛰었다.
가계도 빚과 연체의 늪에 빠졌다. 꺾이지 않는 대출 수요로 빚은 계속 불어난다. 3분기 주택담보대출이 17조3000억원 증가했다. 정부의 대출 규제 관련 엇박자 정책과 집값 떠받치기가 빚내 집을 사자는 ‘영끌’ 심리를 자극했다. 가계대출에 카드사용액을 합친 9월말 가계신용 1875조6000억원도 사상 최대다.
게다가 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이 0.35%로 1년 전 대비 0.16%포인트 뛰었다. 주택담보대출 연체율도 0.12%포인트 올랐다. 카드빚 돌려막기도 급증했다. 10월 카드론 대환대출 잔액은 1조4903억원, 1년 전보다 47.5% 불어났다. 카드사 연체율도 2%를 넘어섰다.
경제규모에 비해 과도한 부채를 짊어지고 있음은 국제 비교에서 드러난다. 국제금융협회(IIF) 세계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3분기말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0.2%. 한국은 선진국클럽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계부채 비율이 100%를 넘는 유일한 나라다.
한국 기업의 GDP 대비 부채비율도 126.1 %로 조사대상 34개국 중 세번째로 높다. 2분기 대비 5.2%포인트 높아졌다. 증가 속도는 두번째로 빠르다. 기업부도 증가율도 1년 전 대비 약 40%로 주요 17개국 중 2위다. 대다수 국가가 고금리 상황에서 부채감축에 나선 반면 한국은 역주행했다.
적잖은 기업들이 빚 수렁에 빠져 벼랑 끝에 몰렸다. 4대 은행에서 원금은커녕 이자도 못 받는 ‘깡통대출’이 올 들어 29% 급증하며 3조원에 육박했다. 10월까지 법인의 파산 신청이 1363건으로 관련 통계를 낸 2013년 이후 최대다. 기업들이 빚더미 속 고금리와 원자재 가격 급등, 소비 위축을 견디지 못한 채 무너졌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기업의 42.3%가 1년간 번 돈으로 이자도 감당할 수 없는 ‘좀비기업’이었다. 2009년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많다. 가계부채에 이어 기업부채 폭탄이 경제의 뇌관으로 등장한 것이다.
과도한 부채는 금융 안정을 위협하고, 가계의 소비 여력을 고갈시켜 불황과 저성장을 초래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한 부채의 상당 부분이 주택시장으로 흘러들어 집값 상승을 부채질한다. 집값 상승 기대는 2030세대를 ‘영끌’로 이끌며 ‘가계부채 증가, 집값 상승’의 악순환을 초래한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상반기 우리나라 가계소득 대비 주택가격 배율은 26배로 OECD 평균(11.9배)의 두배를 넘어섰다.
한계기업과 자영업자·소상공인과 저소득·저신용 계층 등 빚내 빚을 막는 취약한 고리 중 하나라도 무너지면 부실은 연쇄적으로 확산돼 경제와 금융 제도 전반을 뒤흔들 수 있다. 외환위기 때 긴급 구제금융을 제공한 국제통화기금(IMF)이 부채 문제를 한국 경제의 불안 요인으로 지목한 배경이다.
쌓이는 빚더미를 이겨낼 장사는 없다. 각 경제주체와 정부, 금융권은 지혜롭게 ‘부채 깔딱고개’를 넘어야 한다. 가계는 무리한 대출을 삼가야 한다. 특히 본인의 능력 범위를 벗어나 빚내 집 사는 일에 신중해야 한다. 기업들로선 지속 가능성이 떨어지는 사업을 접고, 잘할 수 있는 데 집중하며 부채를 줄여나가야 한다.
정부는 민간부채 부실 뇌관이 터지지 않도록 촘촘히 점검하고 선제적인 위험 관리에 나서야 한다. 은행들도 손쉬운 이자장사 이전에 취약층의 이자 감면 등 어려운 금융소비자를 실질적으로 도우면서 건전성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가계대출을 억제하기 위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강화 등 정부와 금융당국의 정교한 대응도 긴요하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자영업자의 직종 전환, 재취업 등의 대책 설계도 절실하다.
한계기업 중 일시적 자금난을 겪는 우량기업과 회생 가능성이 없는 부실기업을 가려내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의 근거인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 지난 10월 일몰로 수명을 다한 지 한달이 넘었다. 여야 정당은 입으로만 민생을 외치지 말고 국회 재입법을 통해 이를 부활시켜야 할 것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