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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 건국시기 문자로 기록한 최초의 기록 '탐라빈흥록' 발견
"제주신화·서사무가, 역사와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 엿봐"

제주의 옛 명칭 '탐라'(耽羅).

 

 

'섬나라'란 의미를 지닌 탐라는 서기 3세기부터 12세기 초까지 약 천 년 동안 제주도에 존재했던 고대 독립 국가로 추정된다.

 

하지만 최근 탐라 건국시기를 명확히 알 수 있는 문헌 기록이 발견돼 눈길을 끈다.

 

'섬나라 탐라, 잃어버린 천년을 깨우다'란 주제로 특별전시를 하는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과 함께 탐라의 역사와 문화를 들여다 본다.

 

◇ 탐라 건국을 노래한 서사무가(敍事巫歌)와 역사기록

 

"영평(永平) 팔년 을축 삼월 십삼일 자시에는 고을나, 축시에는 양을나, 인시에는 부을나 고양부 삼성(三姓)이 모흥혈(毛興穴, 지금의 삼성혈)로 솟아나서 도읍한 국가입니다. … (후략) …."

 

'신들의 고향' 또는 '신들의 나라'라 불리는 제주.

 

그곳에서 펼쳐지는 '굿'을 보면, 첫머리에 1만 8000여 신을 청해 들이는 '초감제'(初監祭)라는 절차를 행한다.

 

초감제는 첫 순서로 심방('무당'을 뜻하는 제주어)이 천지자연의 탄생 과정과 국가의 발생 등을 신에게 설명하는 '배포도업침'을 행하고, 굿을 벌이는 '날'(시간)과 '국'(공간)을 신에게 고(告)하는 '날과국섬김'의 순서로 이어진다.

 

이때 심방이 말과 노래로 영평 8년인 서기 65년에 탐라국(耽羅國)이 탄생했음을 밝힌다.

 

 

고구려·백제·신라의 설립과 비슷한 시기에 고·양·부 삼신인(三神人)이 땅속에서 솟아나 나라를 세웠다는 이야기다.

 

사람이 땅속에서 솟아났다는 등의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지만, 알에서 태어난 고구려 시조 주몽과 신라 시조 박혁거세 이야기 등 고대 건국신화 대부분이 이처럼 신비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건국의 정당성, 왕권의 신성함을 드러내기 위한 신화적 요소다.

 

심방들의 입을 통해 탐라의 건국을 이야기하는 본풀이('신의 근본(本)을 풀어낸다'는 의미) 전체를 역사적 사실로 인정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로선 그렇지 않다.

 

국문학계에서는 본풀이의 역사적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역사학계에서는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사료'(史料)로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본풀이를 통한 탐라 건국 이야기는 고려사와 같은 문헌기록 등을 중심으로 일치하는 부분만 부분적으로 인정됐으며 이를 바탕으로 '삼성신화', '탐라건국신화'로 이름 붙여졌다.

 

고구려·백제·신라 등 우리나라 고대 건국신화는 삼국사기(1145년 김부식)와 삼국유사(1281년 일연) 등에 건국시기와 함께 엄연히 기록돼 전해 내려온다. '탐라국'이란 명칭이 처음 역사서에 등장한 것도 삼국사기다.

 

심방들에 의해 구전(口傳)되던 탐라건국신화는 15세기 고려사에 처음 문자로 기록됐다.

 

 

고려사는 삼신인의 출현, 일본에서 온 삼공주와의 결혼, 활을 쏘아 거쳐를 정하는 등의 내용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다만, 본풀이를 통해 전해오는 탐라 건국시기는 기록돼 있지 않다.

 

'탐라국'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역사서에 명확히 기록되지 않은 탓에 지금껏 탐라 건국 시기는 미궁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최근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이 본풀이에서 전해오는 탐라 건국시기를 뒷받침하는 기록을 발견해 전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탐라빈흥록'(耽羅賓興錄)이다.

 

정조 18년인 1794년 제주도에서 시행한 문무(文武) 시재(試才) 시험의 시행 경위와 급제자 명단, 과문(科文)을 한데 모아 규장각에서 간행한 책이다.

 

이 책에는 당시 책(策, 정치에 관한 계책을 물어서 답하게 하던 과거시험 과목)에서 수석을 차지한 정의현 유학 부종인(夫宗仁)의 답안지가 실려 있다.

 

임금인 정조가 직접 부종인에게 삼성혈 등의 자취가 전하는 이유 등에 대해 묻자 '삼신인이 모흥혈에서 용출한 때는 한나라 명제 영평 8년(서기 65년)의 일'이라 답하고 있다.

 

 

제주의 한학자 심재 김석익이 1918년에 펴낸 역사서인 '탐라기년'(耽羅紀年)에도 탐라건국을 '한나라 명제 영평 8년'이라 기록한 바 있지만 인용한 글의 출처가 명확하지 않아 기록의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돼왔다.

 

이런 상황에서 탐라국 특별전시 일주일 전에 발견된 '탐라빈흥록'의 탐라 시기에 관한 기록은 의미가 크다.

 

현재 학계에서는 제주시 용담동에서 출토된 탐라 지배층의 무덤 유물(무기류, 장신구)을 통해 3세기경 탐라국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 이전에도 정치체제를 갖춘 탐라가 존재했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탐라빈흥록으로 인해 탐라의 건국시기가 1세기 경으로 명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나영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사는 "탐라 건국시기를 문자로 기록한 최초의 문헌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제주신화'(본풀이)는 실제 역사에서 다소 간과된 바 없지 않다. 하지만 이번에 정조 당시 규장각에서 편찬한 역사적 기록(관찬 사료)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제주 서사무가 및 신화 등의 기록이 역사와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존하는 문헌상의 기록과 발굴 출토 유물이 부족한 상황에서 제주의 사람들이 '탐라'를 기억할 수 있었던 데는 무속신앙 속에 본풀이 형태로 불리는 서사무가(敍事巫歌)의 힘이 크다고 관련 연구자들은 말한다.

 

제주에는 일반신본풀이, 당신본풀이, 조상신본풀이 등 다양한 본풀이가 전해 내려오는데 이 중에서도 송당리 본향당 본풀이와 광정당 본풀이 등은 '탐라건국신화'와 매우 비슷한 신화적 성격을 띠고 있다.

 

특히 송당리 본향당 본풀이는 중국 강남천자국의 백모래밭에서 솟아난 '백주또'(금백주할망)가 제주로 내려와 한라산에서 사냥을 업으로 삼던 수렵·목축신이자 남신(男神)인 '소로소천국'과 혼인해 가정을 이루고 그 자손들이 뻗어나가 제주 전 지역 마을의 당신(堂神)이 됐다는 내용이다.

 

연구자들은 탐라건국신화의 기원을 바로 송당본풀이에서 찾기도 한다.

 

제주 땅에서 솟아난 토착세력인 남신과 섬 밖 도래한 외부세력 여신이 혼인을 통해 결합한다는 점, 토착 수렵신인 남신이 농경문화를 가지고 들어온 여신과 부부의 연을 맺은 후 수렵생활(유목)에서 농경생활(정착)로 전환한다는 점, 이후 남신이 고대국가인 탐라를 건국해 지배한다는 점 등이 신화적 은유와 상징을 통해 표현됐다.

 

 

'신들의 나라' 제주.

 

제주의 고대국가 탐라국에서 무속신앙이 갖는 의미, 그리고 오늘날까지 마을 주민 사이에 전승돼 살아 숨 쉬는 무속신앙의 가치를 역사학계와 국문학계 모두가 함께 다시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1712∼1715년 제주 판관으로 부임했던 우암 남구명이 남긴 시 '모흥혈고사'(毛興穴古事, 모흥혈(삼성혈)에서 있었던 일)는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상에 전해진 毛興穴(모흥혈)은 / 태초에 三神(삼신)이 태어난 곳이라네 / 이 말 참으로 荒唐(황당)하나 / 참과 거짓 누가 밝혀주리 / 옛적 글로 쓰기 이전 일이요 / 역사에도 쓰여 전해지지 않는 것을 / … (중략) … / 커다란 행적이 무당굿에 드러났나니.'

 

탐라국 역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앞으로 학계가 밝혀내고 정립해야 할 탐라국 역사가 많이 남아 있다. [연합뉴스=변지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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