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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용진의 味談(9)] "죽는 것과 맞바꿀만 한 맛" ... 한국전통 복어탕 요리

 

역사에 나타난 복어의 평가

 

전통적인 대부분의 먹을거리에 대한 선인들의 역사적인 평가는 대체로 이롭거나 좋다는 표현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복어는 특유의 독(毒)으로 인하여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표현들이 많다.

 

중국에서는 약 2300년 전의 춘추전국시대에 쓰여진 '산해경(山海經)'에 복어를 '적해' 또는 '패패어'라고 기록하고 이 생선을 먹으면 사람이 죽는다고 쓰여져 있다. 이로보아 그 당시 이미 식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같은 시기에 소동파의 유명한 시에 '도화의 봉우리가 터지고 갈대가 싹이 틀 때 하돈이 하류에서 거슬러 올라 온다'는 구절이 있고 더불어 “한번 죽는 것과 맞 바꿀만 한 맛‘이라는 극한 표현을 남길 만큼 소동파는 황복의 매니아로 전해져 오며 이 표현은 지금까지도 복어 요리의 맛에 대한 최상의 표현으로 인용되고 있다.

 

중국 명나라때 지어진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복어 껍질과 점막사이의 살이 월나라의 절세미인인 서시의 젖가슴처럼 부드럽고 희다’라고 표현 하고 있는데 여기서 유래해서 호사가들은 복어를 ‘서시유(西施乳)’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1대 천황인 진무천황의 무덤이 있는 나라현[奈良県]의 가시하라진구(橿原神宮)에서 운동장 조성공사 과정에서 사람이 먹고남은 생선의 뼈조각이 출토 되었는데 도미와 농어와 함께 복어의 뼈도 출토되었다고 한다. 니혼쇼키(日本書紀)와 고지키(古事記)에 따르면 진무천황의 재임시기가 기원전 711년에서 585년 까지 124년을 살았다고 기술하고 있어서 이를 감안하면 2500년 전부터 복어를 먹어왔다는 증거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복어가 기록에서 나타나는 시기는 헤이안시대(平安時代) 중기인 800~900년 경으로 일본의 문자인 가나[假名]가 크게 보급되어 와카[和歌]가 유행 했던 시기였고 이시기에는 문물의 교류가 활발했던 것으로 전한다.

 

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일본을 다스리던 500여년 전에는 복어의 독으로 인해서 죽는 사람들이 속출한다는 이유로 복어의 취식을 금지하게 된다. 이후 1888년 까지 공식적으로 복어는 먹어선 안되는 생선이었다. 그러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 의해서 금지령이 풀리게 되고 이후 카이세키요리(會席料理)의 재료로 부각되면서 순식간에 고급 요리로 자리잡아 1920년대에 이미 일본 전체에 복어 요리집이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났다고 전한다.

 

현재 일본은 복어 요리의 정점에 서 있으며 이러한 일본식 복어요리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곳이 바로 한국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국에 전통적인 복어 조리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고서를 살펴보면 오히려 일본보다 다양한 복의 기록들이 나타난다.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복어의 요리법을 기록해 놓고 있는데 ’솥에 백반조각과 넉넉한 기름을 붓고 된장과 미나리를 많이 넣고 끓인다. 이리는 독이 없으므로 배에 넣고 실로 꿰맨 후 약한 불로 두어시간 끓여서 먹는다. 복국은 식어도 비리지 않으니 이상한 노릇이다.‘ 라고 표현 하고 있는데 비교적 상세한 표현으로 보아 순조임금 당시에 복어가 식용으로 많이 활용되었음을 추정하게 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복사꽃 떨어지기 전 복어에 미나리, 간장, 기름 등을 넣고 국을 끓이면 진미’ 라고 표현 하고 있어서 복어를 취식하는 시기를 알려주고 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식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복어의 종류를 검복, 까치복, 밀복, 가시복, 흰복 등으로 세분해서 수록하고 있는데 특히 검복에 대한 기록 에서는 본초강목의 황복에 대한 자료를 인용하며 검복의 특딩으로 표현 하고 있어 검복과 황복을 동일한 복으로 보았음을 나타내고 있다.

 

허준의 ‘동의보감(東醫寶鑑)’에도 복어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맛은 달지만 독이 있다. 허약한 것을 보충해 주고 체내의 습한 것을 제거하며 허리와 다리를 조절한다. 치질을 낫게 하고 몸 안의 충을 죽인다.

 

이 물고기에는 큰 독이 있어 맛은 비록 좋지만 조리를 잘못하면 사람이 죽게 되므로 필히 조심해야 한다. 살에는 독이 없으나 간이나 알에는 독이 있다. 조리할 때는 반드시 피를 깨끗이 씻어 버려야 한다. 미나리와 함께 끓여 먹으면 독을 없앨 수 있다.” 고 기술하여 복어의 약성과 함께 독에 대한 경고를 잊지 않고 있다.

 

영조임금때 지어진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는 ‘피와 알에 무서운 독이 있어 잘못 먹으면 죽는다. 이 점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한때의 맛을 탐하여 자주 종독이 되니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라고 식탐을 위해 복어를 욕심내는 세태를 비꼬며 먹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였던 이덕무는 ‘하돈탄(河豚歎)’이라는 시를 지으며 그 서문에 ‘음력 2, 3월에 고깃배가 강에서 하돈을 잡아 마을사람들이 이를 먹고 죽는일이 종종 일어난다. 죽을걸 알면서도 이를 먹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어리석기 그지없다. 이에 이시를 지어 한편으로 스스로 경계하고 다른 한편으로 복어를 먹는자들에게 본을 보이고자 한다’ 라고 기록하고 있어 복어 독으로 인한 사소사가 심심치 않게 일어났음을 짐작케 한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요리책이라 일컫는 조선후기의 ‘조선무쌍식요리제법’에는 ‘하고많은 생선 중에 복어를 왜 먹느냐’라고 표현하여 복어조리의 위험성을 강조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고서들을 검토해 보면 조리법과 함께 주의를 당부하거나 취식 자체를 금하게 하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특히 전통적인 조리법은 대부분 ‘탕(湯)’을 지목하고 있어 조리법이 다양하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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