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의 발굴, 하지만 제주국제공항 안에서 한 구의 유해도 나오지 않았다. 유해가 나온 곳은 발굴을 시작한 공항이 아닌 도두동의 수풀속.
가족들이 다시 돌아올까, 70년을 기다린 유족들은 "수백구의 유해가 공항에 묻혀 있는데도 이를 발굴하지 못한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러면서도 "아직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낮췄다.
제주4.3평화재단은 30일 오전 4.3유족들과 4.3관련 단체 및 기자 등을 상대로 8년 만에 다시 시작된 제주공항 내 4.3행방불명 희생자 유해발굴에 관한 현장설명회를 가졌다.
이번 제주공항 내 유해발굴은 제주4.3연구소에서 4.3행방불명인 유해발굴 예정지 긴급조사 용역보고서를 제주도에 제출하면서 본격 논의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공항 내 5개 지점이 4.3 당시 암매장지로 추정됐다.
첫 번째 암매장지 추정지는 이른바 뫼동산 인근으로 남북활주로 동쪽 부근이다. 두 번째 추정지는 남북활주로 서쪽 구역, 세 번째는 남북활주로에서 도두봉 방면으로 뻗은 궤동산이다. 네 번째 추정지는 교차활주로 인근, 다섯 번째 추정지는 화물청사 동쪽 부근이다.
평화재단은 이번 유해발굴 예산이 확정되자 4.3연구소에서 조사한 5개 지점에 대해 발굴 가능 여부를 제주지방항공청 및 한국공항공사 등과 검토했다. 그 결과 1번과 2번 추정지는 남북활주로를 폐쇄할 경우 발굴이 가능하고 나머지 지점은 동서활주로를 폐쇄해야 발굴이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평화재단 측은 시간당 34편의 항공기가 이・착륙하는 동서활주로를 폐쇄하고 발굴작업을 추진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반면 활주로 사용량이 동서활주로 대비 2~3% 정도인 남북활주로 주변 지역에 대해서는 발굴 계획을 수립했다.
평화재단 측은 이후 지표투과레이더(GPR) 탐사를 진행했다. 동서활주로 주변의 경우에도 이후 발굴 근거를 마련할 수 있도록 이를 포함, 지난 4월 5개 지점에 대해 탐사를 했다.
탐사를 마친 평화재단은 남북활주로의 북쪽 지점인 2-1번 지점에서도 강한 반사 신호를 확인, 이후 3곳에 대한 유해발굴을 진행했다. 하지만 공항 내 발굴지점에서는 한 구의 시신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1번 발굴지점에서 찌그러진 흔적이 없는 탄두 1점이 발견됐다.
결국 제주공항에서의 3개월간의 발굴은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한 셈이었다.
평화재단 측은 이번 발굴과 관련, “2-1번 지점은 큰 암반이 있어서 이상신호가 감지됐던 것”이라며 “또 도두동에서 공항 방면 궤동산이라는 곳에 49년 2월에 학살이 있었다는 증언이 있었다. 미군정 보고서도 있다. 이 곳과 화물청사 인근 등에서 GPR 탐사를 했지만 암반층과 배수로 추정 신호가 감지 됐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평화재단 측은 그러면서도 “공항이 여러번 매립됐기 때문에 암반층이 방해를 하면 그 밑은 확인이 안된다”며 GPR탐사로는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문제는 이상신호가 나와도 당장 발굴을 할 수 없다는 점”이라며 “발굴 지점은 주활주로인 동서활주로에서 150m가 떨어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궤동산 이격거리는 60m고 교차활주로는 거의 붙어 있다. 공항이 폐쇄되지 않는 한 발굴은 힘들다”고 말했다.
4.3 유족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도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4.3유족인 고정훈(72)씨는 “많은 기대를 했지만 이렇게 결과가 나와 안타깝다. 눈물이 난다"며 "하지만 아직 시신이 나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유족들은 제주도 어디든 간에 시신이 발굴되기만 하면 고맙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 모두 한 마음으로 희망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북부예비검속 희생자 유족인 강창옥(82)씨는 “당초 공항에서 유해가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를 했다”며 “하지만 유해가 안 나왔다. 공항은 모두 84만평이다. 이 곳에 매장된 시신이 수백구가 있다. 지금 거기를 발굴하지 못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어 “기대를 하고 왔는데 시신이 안나왔다니 매장지를 잘못 선정한 것”이라며 “공항 때문에 변두리만 파고 있다. 변두리에서 뭐가 나오겠는가, 확실히 매장지를 알아서 파야 한다. 활주로가 되도 파야 한다. 이번 발굴은 형식적”이라고 쓴소리를 내놨다.
강씨는 또 평화재단 측을 향해 “예전에 화물청사 동쪽 인근에 살 던 분이 ‘당신네 부모는 여기 묻혀 있다’고 말했다”며 “저희가 보기에는 그 지역에 유해들이 있지 않을까 싶다”고 조언을 하기도 했다.
공항에서의 설명회가 마무리 된 이후에는 이번에 유해가 발견된 도두동 유해발굴 현장에서 설명회가 이어졌다.
도두동 유해발굴은 1973년 공항 확장 공사 중에 노출된 유해를 종이에 싸서 오일장 인근 밭에 매장했다는 증언을 토대로 진행됐다.
도두동 발굴지 주변 토지주인 강모(71)씨는 “73년도 공항을 확장할 때 공항쪽에서 온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창호지에 곱게 싼 무언가를 10여개 묻었다”며 “딱 봐도 유골을 묻고 있다는 느낌이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평화재단 측은 이곳을 조사, 증언과 일치하는 지형을 확인했다. 이후 성인 유해 2구와 10대 초반 아이의 유해 1구, 그리고 2~3세로 추정되는 영유아의 유해가 확인됐다.
평화재단에 따르면 도두동에서 확인된 유해들은 보존 상태가 모두 달랐다. 성인으로 추정되는 한 구만 두개골과 팔, 다리 양쪽이 모두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성인 한 구는 두개골과 다리뼈 한쪽, 10살과 3살로 추정되는 유해는 두개골만 확인할 수 있었다.
제주고고학연구소 박근태 조사연구실장은 이들이 모두 2차 매장된 것으로 판단했다. 박 실장은 “다리뼈 상부 위쪽에 두개골이 있다”며 “뼈들을 한데 모아서 매장한 흔적이 있다. 성인 2 구 중 한 구는 여성, 한 구는 남성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골들의 형태를 볼 때 목격자의 증언과 일치한다”며 “네 구의 유해를 수습해서 정밀감식을 해봐야 당시의 상황을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오임종 4.3유족회 회장대행은 “공항에 묻힌 분이 700여명이라는 증언이 나오는데 수습을 못하고 있다”며 “특히 도두동 발굴지에 묻힌 네 분의 희생자는 두 번 죽은 것이다. 공항 공사를 하다가 나온 시신을 암매장한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오 회장대행은 “공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신이 훼손됐을 것이고 암매장됐을 것”이라며 “아쉽다. 70년 전 사건들이 재발되지 않는 대한민국이 되길 바란다. 이번에 발굴된 시신은 잘 수습해서 평화공원에 모시겠다”고 말했다.
이번에 발굴된 시신의 DNA 분석은 내년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제이누리=고원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