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해
이애덕(43·서귀포시 동홍동)
어디론가 열심히 달렸다. 어느 정도 달리고 나니 한 그루의 나무에 작고 하얀 꽃들이 향기롭게 피어 있었다. 너무나 향기롭고 예뻐 가장 많은 꽃이 달린 나뭇가지 하나를 꺾었다. 꿈이었다. 실제 본 적이 없는 꽃이었지만 내가 무척이나 행복해할 수 있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내 아들 준옥이를 가졌을 때 꾸었던 꿈이었다.
달을 채워 준옥이는 무사히 내 품으로 안겼다. 생후 8개월에 아이는 악몽 같은 사건을 경험했다. 무더운 여름 큰 아들과 조카가 놀고 있는 얕은 수조에 보행기를 태우고 물놀이를 하던 도중 물에 빠져 숨이 멈춰 있는 것을 발견했다. 주위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악몽 같았던 그날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 소름끼칠 정도로 끔찍하게 남아 있다.
준옥이는 신체적으로 별 무리 없이 잘 자랐다.
그날의 고통이 희미해질 무렵까지.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문제를 보이기 시작했다.
4~5살이 되어도 그 누구하고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자신의 이름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에만 관심을 둘 뿐 결국 병원을 찾아 상담하고 MRI를 촬영해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그 때 그일 때문은 아닐까. 아이를 잘 지키지 못한 무지한 엄마 탓인 것만 같아 괴로웠다. 점점 자라나는 아이를 위해서 뭔가 해야 했지만 설상가상으로 남편의 사업 부도로 광주에 있던 집이 처분 되었고 오갈 때 없는 나는 아이 둘을 데리고 친정집인 제주에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인 여유가 전혀 없었고 도움을 주는 사람도 없었다.
단지 묵을 수 있는 곳만 있을 뿐이었으니까. 그래도 이런 환경이 감사했다.
가끔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일을 하였고 조금의 여유가 생기면 둘째인 준옥이를 교육하는데 필요한 경비로 사용했다.
두 아이 모두에게 도움을 줄 형편이 못되어 둘째에게 우선 필요한 복지관 교육, 홈티를 하였다.
그리고 나름 어깨 너머로 선생님들이 접근하는 교육방법을 체크해 필요한 교구나 자료를 수집하고 나름대로의 교육을 시도했다.
아이를 데리고 어딘가를 가고 있을 때에는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과 사람들과 상황들을 설명해줬다.
딴 짓을 하고 눈을 마주치지 않고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어도 자주 이름을 불렀고 내 느낌을 얘기하고 눈에 보이는 사물과 장면을 하나하나 말하였다.
치료실에서 명사를 학습하면서 명사카드를 가지고 인지학습을 하길래 집에서도 카드를 구입하고 그림과 글자를 보여 주면서 반복학습을 시켰다.
그래서인지 눈에 보이는 사물을 익힐 때는 오랜 시간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존재는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던 사물을 익힐 때는 수없이 반복하여도 어려워했다.
그래서 사물을 익힐 때는 직접 보여주고 경험하게 하였다.
아이에겐 의미를 알고 상상하고 추상적인 것을 이해 한다는 것이 가장 어려워 보였다.
반복적인 일상은 자연스레 터득하였고 또 어떤 것을 반복하여 보여주고 경험하게 하면 어렵게라도 익히기 시작 했다.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빛이 보였고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지 아이랑 함께 갈 수 있는 건강한 육체와 마음이 있어 행복했다.
내가 알고 있는 무엇인가 하나라도 더 전달하고 싶어서 내 입은 늘 무엇인가 아이를 향해 중얼 거렸다.
일반아이들이 흔히 배우고 익히는 모든 것들을 내 아이는 정말 힘들게 익혔다.
언어 구사능력은 자폐아이들의 특징 중 하나인 반향어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지만 그렇게라도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일상생활에서 주로 사용하는 언어는 자연적으로 습득하였고 필요한 상황에서는 상대방의 표현 방법까지 쓰며 나름데로 의사소통을 하기도 했다.
자폐아이들을 성공적으로 키워낸 부모님들은 어떤 방법으로 자녀의 행동을 지원해 주었는지 그분들의 경험담을 담은 수기를 읽고 배우기도 했다.
내가 시도하기엔 여건상 거리가 멀었지만 그래도 배울 점은 있었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야 했고 깨어있는 동안 늘 자녀와 함께 있으면서 자극을 줘야 했고 마지막은 그것에 대한 믿음과 열정이었다.
세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자폐라는 곳에서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낼 수 있다는데 내겐 준옥이를 낫게 해 주고 싶다는 열정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기관을 이용하는 것도 한정적이고 개인치료실을 다니고 싶어도 경제적인 여유가 뒷받침 되어야 했다.
내겐 모두 버거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가장 저렴한 방법은 결국 내가 배워서 아이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언어치료 연수를 등록하여 다녔고 자격을 이수하였다. 좀 더 재미있는 방법으로 접근 하고 싶어서 다시 음악치료를 공부하였고 아이에게 맞는 음악적 접근 방법을 찾아 재미있게 놀아주며 함께 공부하였다.
이 밖에도 종이접기, 만들기, 아이에게 맞는 교구들을 제작하기도 했고 인터넷을 찾아 필요한 자료들을 프린트 하여 적용해 보기도 하였다.
준옥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해도 우리나라 복지 현실은 장애아이를 둔 부모들이 모든 걸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스스로 등․하교를 하지 못하는 아이를 등․하교 시키고 학교에 맡겨진 동안 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일을 해야하는 것도 내 몫 이었다.
준옥이가 4학년이 되던 해에 특수교육보조원으로 지원했다.
학교에 근무하게 되면서 경제적인 면에서도 한시름 놓이게 되었고 무엇보다 3년간 가까이서 아이의 모든 면을 돌볼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 기뻤다.
그러나 3년이라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고 특수학교에 입학 시키면서부터는 모든 것을 선생님들께 넘겨야 했다.
허전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다. 시간이 조금만 더 허락되었다면 더 나아지게 도울 수 있었을 것 같았는데... 잡을 수만 있다면 잡고 싶었고 돌이킬 수만 있다면 돌이키고 싶었다.
지금은 복지제도가 나아져서 필요할 때 돌봐 주는 활동 보조인도 생겼고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재활치료비 지원도 되었지만 준옥이의 모든 상황은 사춘기를 전후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신체적으로 성인이 되어가고 있었고 좋지 않은 행동은 강화되어 걷잡을 수 없이 변하였다.
고집이 세어지고 언어적인 지시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았으며 밤에는 잠도 제대로 자지 않았다.
자신이 감정을 조절하려는 의도도 전혀 없었다, 모든 것을 힘으로 버티고 자해행위를 하고 또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주위 사물을 깨고 부수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고민 끝에 약물치료의 도움을 받기로 결정 하였다. 약물을 복용한 후 무척이나 힘들어 보였다. 숨을 쉬는 것도 힘들어 보이고 자신의 감정을 약에 의해서 의존해야 한다는 것도 가슴이 아팠다. 희망을 가지고 좋아지기 바라면서 힘들게 결정한 일이었지만 꼭 이렇게 해야만 했는지 내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다.
아이의 모든 행동들은 깊은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야 함을 느낀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 하지 말았으면 하는 여러 행동들. 그 모든 것을 보고 있으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화가 치밀어 올 때가 많다.
이상야릇한 행동으로 주위의 시선을 집중시키며 자신의 행동에 어떤 반응을 해주기를 기다린다. 또래 사춘기 아이들 처럼 부모의 말을 듣고 싶지 아니하고 반대로만 하고 싶어 하는 혼란의 시기를 준옥이도 겪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비록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기에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생각을 하지만 나름데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모든 걸 기다려 주기로 했다. 무조건 하지 말아라가 아니라 하고 싶어 하는 행동을 그만하고 싶을 때 까지 하도록 기다려 주니까 오래지 않아 그 행동을 멈추었다.
이 모든 것들, 환경과 처한 상황들이 아무리 힘들다 한들 문제에 대한 해결은 있을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고 찾아내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어려운 문제도 언젠가는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고 상담하고 또 바른 행동으로 변화 될 수 있도록 고민하고 시도해 보며 예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끊임없이 기다려 주는 것이다.
11월 말일인데 여름 장마 비처럼 굵은 비가 쏟아져 내린다. 내 마음 한구석에도 톡 건드리기만 하면 폭포수처럼 쏟아져 흘러나오는 눈물이 있다. 아리고 쓰린 마음도 한쪽 구석에 움크리고 포개어 개어져 있다가 문득 문득 마음의 문을 열고 가슴을 콕콕 찌르기도 한다.
아파하기도 하고 고민도 많이 하고 눈물도 흘리지만 사랑스런 내 아들 준옥이가 곁에 있음에 행복하다. 따뜻하게 잡아줄 손도 있고 서로의 눈을 바주하며 함께 부를 노래도 있고 꼬~옥 껴안아 줄 가슴도 있다 .
아직 함께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남아 있고 그런 시간들이 허락됨에 감사해본다.
따뜻한 물을 받아 준옥이의 발을 정성스레 씻기며 기도해 본다. 걸어가는 곳이 위험한 곳이 아니길.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길 이길.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행복한 삶을 살다가 무사히 하느님께 갈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