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드넓은 한라산 자락 곶자왈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고사리다. 4월 중순에서 5월 중순에 이르는 한 달 남짓한 기간 제주 토박이는 물론 이주민들도 고사리 꺾으러 산과 들판으로 향한다. 많은 사람이 재미 삼아 또는 용돈벌이 등 목적으로 이들 대열에 합류하곤 한다. 하지만 단순히 이러한 이유만으로 고사리 열풍을 설명하고, 이해한다는 건 부족함이 없지 않다. 제주 사람들에게 고사리는 어떤 의미일까. ◇ 제주의 고사리철…욕심은 부리지 않았다 '부슬부슬 비가 오길래/ 홀로 숲으로 나갔어/ 그대와 늘 함께 걷던 길/ 놀랍게 달라 보여/ 그토록 찾아봐도 안 보이더니/ 어느새 소리 없이 솟아 올라온 고사리들/ 당신을 보내고 난 뒤/ 이렇게 훌쩍 자랐네….' 제주에 이주해 사는 뮤지션 장필순의 곡 '고사리 장마'의 첫 소절이다. 어느덧 제주에 고사리철이 돌아왔다. 고사리를 꺾으며 제주의 봄을 만끽하는 한라산 청정 고사리 축제가 한창이다. 노래 제목처럼 고사리 장마라 불리는 짧은 봄장마가 시작될 무렵이면 싹을 틔운 고사리들이 조그만 얼굴을 들고 경쟁하듯 솟아오른다. 4월 중순을 전후해 짧게 반복되는 비 오는 날씨. 적당히 햇빛을 가려주는 한라산 곶자왈의 나무
지금까지 한라산에 오른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1974년부터 한라산 탐방객 수가 조사된 이후 올해로 50년째에 접어들면서 지난 3월까지 2690만명이 넘는 많은 사람이 한라산을 찾았다. 봄·여름·가을·겨울 할 것 없이 한라산은 독특한 아름다움을 뽐내며 계절마다 축제의 무대로 변신한다. 급증하는 등반객으로 인해 한라산 훼손이 심각해지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 사시사철 축제의 무대 한라산 한라산의 봄은 천천히 느리게 온다. 해발 1950m 남한 최고봉 한라산 정상엔 간혹 봄이 되도록 흰 눈이 덮인 풍경을 볼 수 있다. 옛날엔 초여름인 음력 5월까지도 한라산에 잔설이 남았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다. 노란 유채꽃과 분홍빛 벚꽃, 초록초록 푸르게 돋아나는 청보리 너머로 한라산 백록담에 하얀 눈이 쌓인 모습은 이질적이면서도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준다. 그래서 '녹담만설'(鹿潭晩雪)을 제주의 뛰어난 경관 10가지를 일컫는 '영주십경'(瀛州十景)으로 꼽는다. 여기서 '만설'은 눈이 가득 쌓인 모습을 뜻하는 만설(滿雪)이 아닌 때늦은 눈을 뜻하는 만설(晩雪)이다. 한라산 고지대에 비로소 봄을 알리는 건 무얼까. 털진달래다. 4월 중하순이면 해발 1400m 이상 고지대에서
제주4·3이 어느덧 75년을 맞았다. 따스한 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4월이지만 제주는 여전히 4·3의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다. 4·3의 아픔을 온몸으로 간직한 제주. 그중에서도 한라산은 4·3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70여년 전 이념의 충돌 속에 전쟁터로 변한 한라산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본다. ◇ 전쟁터로 변한 한라산 「오늘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 그 아름다운 제주도의 신혼여행지들은 모두 우리가 묵념해야 할 학살의 장소이다. 그곳에 뜬 별들은 여전히 눈부시고 그곳에 핀 유채꽃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나 그 별들과 꽃들은 모두 칼날을 물고 잠들어 있다.」 (이산하 시집 '한라산' 서시 중에서)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한라산 기슭 오름마다 봉화가 붉게 타올랐다.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서북청년단 추방'을 외치며 남로당 제주도위원회가 주도한 무장봉기가 시작된 것이다. 350명의 무장대는 12개 경찰지서와 서북청년회(서청) 등 우익단체 단원의 집을 지목해 습격했다. 1년 전 3·1절 기념식에 참석했던 시위군중을 향해 경찰이 총을 쏜 '3·1절 발포사건', 발포한 경관의 처벌을 요구하며 벌인 '민·관 총파업', 파업주동자 색출 과정에서
평화롭던 제주 섬에 불어닥친 4.3의 광풍이 제주 전역을 휩쓴 지 7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간 4.3의 정의로운 해결을 다양한 움직임이 있었다. 진상 규명에 이어 국가 보상금 지급, 재심 재판을 통해 현재까지 1191여명이 무죄를 선고받고 명예를 회복했다. 이제 제주4.3은 화해와 상생으로 국가폭력을 극복, 전 세계 과거사 사건 중 모범적인 해결 사례로 꼽히고 있다. 그럼에도 '완전한 해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아직도 의도를 알 수 없는 명예훼손과 역사왜곡 발언이 무분별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에 75년 통한의 세월을 관통하는 4.3기록물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국가폭력의 직접적인 기록과 함께 진상규명과 화해, 국가의 보상으로 이어진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미디어제주·제이누리·제주의소리·제주투데이·헤드라인제주)는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공동으로 75년 간의 기록과 역사에서 제주4.3이 세계에 전하는 진정한 평화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제주4.3의 기록들을 우리나라의 기억을 넘어 '세계의 기억(Memory of the World)'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남기기 위한 여정이 시작됐다. 제주4.3기록물은 단순히 4.3
평화롭던 제주 섬에 불어닥친 4.3의 광풍이 제주 전역을 휩쓴 지 7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간 4.3의 정의로운 해결을 다양한 움직임이 있었다. 진상 규명에 이어 국가 보상금 지급, 재심 재판을 통해 현재까지 1191여명이 무죄를 선고받고 명예를 회복했다. 이제 제주4.3은 화해와 상생으로 국가폭력을 극복, 전 세계 과거사 사건 중 모범적인 해결 사례로 꼽히고 있다. 그럼에도 '완전한 해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아직도 의도를 알 수 없는 명예훼손과 역사왜곡 발언이 무분별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에 75년 통한의 세월을 관통하는 4.3기록물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국가폭력의 직접적인 기록과 함께 진상규명과 화해, 국가의 보상으로 이어진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미디어제주·제이누리·제주의소리·제주투데이·헤드라인제주)는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공동으로 75년 간의 기록과 역사에서 제주4.3이 세계에 전하는 진정한 평화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제주사회가 4·3을 세계인의 역사로 기록하기 위한 목표 아래 하나로 뭉쳤다. 지난달 20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4·3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추진위원회(이하 등재추진위) 출범식
평화롭던 제주 섬에 불어닥친 4.3의 광풍이 제주 전역을 휩쓴 지 7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간 4.3의 정의로운 해결을 다양한 움직임이 있었다. 진상 규명에 이어 국가 보상금 지급, 재심 재판을 통해 현재까지 1191여명이 무죄를 선고받고 명예를 회복했다. 이제 제주4.3은 화해와 상생으로 국가폭력을 극복, 전 세계 과거사 사건 중 모범적인 해결 사례로 꼽히고 있다. 그럼에도 '완전한 해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아직도 의도를 알 수 없는 명예훼손과 역사왜곡 발언이 무분별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에 75년 통한의 세월을 관통하는 4.3기록물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국가폭력의 직접적인 기록과 함께 진상규명과 화해, 국가의 보상으로 이어진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미디어제주·제이누리·제주의소리·제주투데이·헤드라인제주)는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공동으로 75년 간의 기록과 역사에서 제주4.3이 세계에 전하는 진정한 평화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통틀어 한국전쟁 다음으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참혹한 역사가 제주4.3이다. 일제강점기를 벗어난 해방 시점과 냉전체제의 미군정, 우리나라 단독정부 수립과 한국전쟁을
평화롭던 제주 섬에 불어닥친 4.3의 광풍이 제주 전역을 휩쓴 지 7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간 4.3의 정의로운 해결을 다양한 움직임이 있었다. 진상 규명에 이어 국가 보상금 지급, 재심 재판을 통해 현재까지 1191여명이 무죄를 선고받고 명예를 회복했다. 이제 제주4.3은 화해와 상생으로 국가폭력을 극복, 전 세계 과거사 사건 중 모범적인 해결 사례로 꼽히고 있다. 그럼에도 '완전한 해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아직도 의도를 알 수 없는 명예훼손과 역사왜곡 발언이 무분별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에 75년 통한의 세월을 관통하는 4.3기록물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국가폭력의 직접적인 기록과 함께 진상규명과 화해, 국가의 보상으로 이어진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미디어제주·제이누리·제주의소리·제주투데이·헤드라인제주)는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공동으로 75년 간의 기록과 역사에서 제주4.3이 세계에 전하는 진정한 평화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우리나라의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처음 등재된 것은 1997년이다. 그 해 ‘훈민정음 해례본’과 ‘조선왕조실록’이 그 중요성과 영향력을 인정받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
평화롭던 제주 섬에 불어닥친 4.3의 광풍이 제주 전역을 휩쓴 지 7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간 4.3의 정의로운 해결을 다양한 움직임이 있었다. 진상 규명에 이어 국가 보상금 지급, 재심 재판을 통해 현재까지 1191여명이 무죄를 선고받고 명예를 회복했다. 이제 제주4.3은 화해와 상생으로 국가폭력을 극복, 전 세계 과거사 사건 중 모범적인 해결 사례로 꼽히고 있다. 그럼에도 '완전한 해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아직도 의도를 알 수 없는 명예훼손과 역사왜곡 발언이 무분별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에 75년 통한의 세월을 관통하는 4.3기록물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국가폭력의 직접적인 기록과 함께 진상규명과 화해, 국가의 보상으로 이어진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미디어제주·제이누리·제주의소리·제주투데이·헤드라인제주)는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공동으로 75년 간의 기록과 역사에서 제주4.3이 세계에 전하는 진정한 평화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제주4.3의 역사를 인류 공동유산으로 보존하는 여정이 시작됐다. 제주4·3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작업이 본격화되면서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1992년 시
세계는 이미 기후위기의 시대다. 제주만해도 이상기후 현상이 두루 보인다. 봄과 여름은 갈수록 더워지고, 지난 겨울에는 열흘 만에 기온이 18.6도나 뚝 떨어졌다. 이상 고⸱저온이 번갈아 나타나고 있다. 기후위기 주범으로 꼽히는 것은 온실가스.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7억톤. 특히 에너지 분야 배출량이 총배출량의 87%다. 이 중 석탄 등 고체연료에 의한 배출이 전체의 40% 이상이다. 제주의 경우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60년 뒤 1년 중 4개월을 폭염에 시달려야 한다. 전 세계는 극심한 지구 온난화를 늦추기 위해 앞다퉈 방책을 내놓고 있다. 그 핵심과제가 에너지 전환이다. 탄소배출이 심한 기존 화석연료를 탄소배출이 적은 재생가능한 에너지로 바꿔가고 있다. 이 흐름을 타고 세계 풍력산업 시장이 빠르게 성장중이다. 세계풍력에너지협회(GWEC)에 따르면 세계 풍력발전 시장은 지난해 837GW에서 2026년 1395GW로 커질 전망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해상을 중심으로 풍력발전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중이다. 제주도도 탄소없는 섬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 여기서 주목받고 있는 사업가가 있다. 양승운(57) 휴먼컴퍼
"한라산이 곧 제주도요. 제주도가 곧 한라산이다." 제주에서 한라산이 차지하는 비중, 그 중요성을 그대로 표현하는 말이다. 화산 폭발로 형성된 섬이 제주인 만큼 한라산은 제주를 낳은 어머니와 같다. 동서로 길게 해안까지 뻗은 한라산은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품듯 360여 개의 오름을 비롯해 동굴, 폭포, 초원, 마을, 사람들을 감싸고 있다. 제주 어디서든 한라산을 바라보고 수많은 사람이 한라산을 오르지만, 우리는 한라산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 숭배의 대상 한라산의 유래 제주 섬 한가운데 약 1950m 높이로 우뚝 솟은 남한(南韓) 최고봉 한라산(漢拏山). 한라산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온 것일까. 조선 시대 관에서 편찬한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 여러 옛 문헌을 보면 한라(漢拏)라고 말하는 것은 '능히 손을 뻗어 은하수를 잡아당길 만하기 때문'(雲漢可拏引也)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라산 꼭대기에서 손을 뻗으면 은하수(雲漢)에 닿을 만큼 산이 높고 웅장하다는 시적 표현이다. 은하수란 뜻을 가진 '한'(漢)과 붙잡는다는 뜻을 가진 '라'(拏)를 합쳐 '한라산'이라 이름 붙였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후대 사람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한자가
100년 전 '깃발'로 기상예보를 알리던 시대에서 이제는 휴대전화 몇번만 두드리면 세분화된 동네예보를 찾아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1차산업이 주를 이뤘던 과거에는 날씨가 곧 생업과 연결된 중요한 정보였다. 지역마다 전승된 삶의 지혜를 통해 날씨를 점치던 시대를 지나서 1900년대 들어 전국 곳곳에서 근대 기상관측이 시작되고 기상예보도 가능해졌다. 현재도 기상정보는 농업, 수산업, 관광업 등 제주 산업 전반에 매우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1923년 제주측후소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제주 기상관측·예보 업무를 수행해 온 제주지방기상청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본다. ◇ 1923년 제주측후소로 출발, 1998년 제주지방기상청으로 승격 제주지방기상청 전신인 제주측후소는 1923년 5월 1일 세워졌다. 당시 일기예보는 '깃발'로 알렸다. 이 때문에 성곽에서 2번째로 높은 지역에 위치한 북동쪽 치성에 측후소를 설치해 사람들이 깃발을 잘 볼 수 있도록 했다. 어선들이 산지천을 따라 제주항으로 들어가는 통로에 있기 때문에 어선에서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장소로도 최적지였다. 예보 내용은 풍향, 천기, 기온 순서로 깃발 모양과 색깔을 통해 알렸다. 정삼각형 모양의 풍향기는 바람 방
"바람 부는 제주에는 돌도 많지만 인정 많고 마음씨 고운 아가씨도 많지요." 제주 하면 떠오르는 대표곡 중 하나인 혜은이의 '감수광' 도입부에는 바람, 돌, 여자가 많다는 '삼다도'(三多島) 이야기가 담겨있다. 돌의 경우 과거 한라산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현무암을 말한다. 제주 어디서나 만나볼 수 있으며, 돌문화는 곧 제주의 역사이자 문화다. 또한 과거에는 제주에 여성이 남성보다 많았으나 2008년 이후로는 쭉 남성이 더 많아 여다(女多)는 옛말이 됐다. 그렇다면 바람은 어떨까. 정말 제주에는 다른 지역보다 바람이 많이 부는 것일까. 그리고 바람은 제주인에게 어떤 영향을 줬을까. ◇ 연평균풍속 2.5∼6.8㎧…전국 219개 지점 중 고산이 최고 1991∼2020년 30년간 평년값 기준으로 제주도의 연평균풍속은 2.5∼6.8㎧로, 다른 지역보다 바람이 강하게 분다. 지역별로는 제주 3.3㎧, 고산 6.8㎧, 성산 3.1㎧, 서귀포 2.5㎧로 제주도 서쪽 끝 고산에서 가장 강하게 불고, 남부 서귀포에서 가장 약하게 분다. 기후 평년값이 제공되는 전국 219개 지점 중 연평균풍속이 가장 빠른 곳은 고산이다. 제주(제주기상청) 지점보다 빠른 곳도 고산을 비롯해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