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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창 장인, 제주도무형문화재 인정받고 2년 여 뒤 작고
"이젠 힘들다 … 아마도 유일한 구덕 만드는 사람이 아닐지"

 

옛 제주 사람들의 생활필수품 구덕과 차롱.

 

구덕과 차롱은 대나무를 주재료로 만든 '대그릇'(竹器)으로, 오늘날 바구니 또는 그릇 용도로 쓰였다.

 

일상생활에서의 다양한 쓰임새로 인해 구덕과 차롱에는 제주인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하지만 옛 전통을 잇는 사람들은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사라지고 있다.

 

◇ 구덕 장인의 삶과 죽음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13살부터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제주의 대표 생활도구인 구덕과 차롱을 만드는 장인(匠人)인 고(故) 김희창(1941∼2021) 선생은 지난 2018년 제주도무형문화재보유자 신청 제출 자료에서 자신의 삶을 이같이 덤덤하게 풀어냈다.

 

한국전쟁이 거의 끝나갈 무렵인 1953년, 집안 사정이 여의찮았던 그는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본격적으로 생활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대나무를 베고 다듬어 구덕과 차롱을 만드는 일이었다.

 

당시 죽세공 장인은 서귀포 토평에 30여 가구, 호근에는 10여 가구가 있었다.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을 바탕으로 물건을 만들어 팔았다.

 

 

그는 "(당시 사람들이 구덕과 차롱을 살) 돈이 없으면 쌀, 고구마(감자), 보리와 바꾸는 물물교환으로라도 우리 가족의 생계를 이었다"며 "제물차롱(제사나 명절 등 제상에 바칠 제물을 넣어 다니는 차롱) 하나면 감자 한 가득이었다"고 설명했다.

 

돈도 없고 바꿀만한 물건도 없으면 사람들은 구덕·차롱 값을 몸으로라도 때웠다.

 

김 장인은 "밭에 김을 매주면 제물차롱 하나면 됐다. 지금 여자 일당이 5만∼6만원 하니까 상당히 비싼 것"이라며 "옛날 제주도에서 그릇(대나무로 만든 그릇)은 귀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물을 긷는 물허벅을 넣고 다닐 때든 빨래하러 갈 때, 낚시하러 갈 때, 해녀들이 물질하러 갈 때, 테우리('목동'을 뜻하는 제주어)들이 산과 들로 일하러 갈 때 등 제주 사람들은 언제나 구덕 또는 차롱을 다양한 용도로 가지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는 "보통 하루에 제물차롱 2개를 만든다. 아침 5시에 시작해 밤 11시까지 작업을 해야만 물량을 맞출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 장인은 "1950년대 말부터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에 있는 구덕공장에서 일을 했는데, 기술이 좋아 일당으로 1천500원 받았다"며 "제주 사람은 구덕만 사용했으니 잘 만들든 못 만들든 만드는 대로 잘 팔려나갔다"고 회고했다.

 

김 장인은 농사를 짓다가 농기계를 잘못 다뤄 왼쪽 손 중지를 잃었지만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이처럼 구덕과 차롱을 만드는 기술로 돈을 벌어 자녀들을 키우고 결혼도 시켰다.

 

물론, 오랜 세월 고된 작업을 하며 홀로 전통을 잇는 어려움도 있었다.

 

"구덕 만드는 걸 배우려면 3년은 족히 걸린다. 솜씨가 되려면 5년 이상은 배워야 한다. 이젠 힘들다. 여름에는 괜찮은데 겨울에는 손발이 시리다. 나이가 들면서 그런 것 같다. 감귤 밭을 일구고 있지만 여름이나 겨울에는 구덕을 끼고 산다. 아마도 현재, 유일한 구덕을 만드는 사람이 아닐지…."

 

김 장인은 2019년 4월 15일 66년간 구덕·차롱 제작에 종사한 전승 기량을 인정받아 제주도 무형문화재 구덕장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2년여 뒤 2021년 12월 작고했다.

 

 

◇ 무형문화재 지정 뒤엔 공무원의 숨은 노력이

 

김 장인은 처음이자 유일한 제주도 무형문화재 구덕장 보유자였다.

 

그 과정에는 서귀포시 산림휴양관리소 '치유의 숲' 공무원들의 노력이 있었다.

 

2016년 6월 제주 서귀포시 호근동 산1번지 시오름 일대 조성된 치유의 숲은 수령 60년이 넘는 편백나무와 삼나무 군락이 우거져 있어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다.

 

당시 산림휴양관리소 공무원들은 치유의 숲 차원에서 탐방객들에게 제공할 친환경 도시락 사업을 시작했다.

 

종이로 된 친환경 도시락에 음식을 담아 판매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재활용도 어렵고 지역 마을과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는 등 문제점이 노출됐다.

 

그러다 '차롱 도시락'을 고안해냈다.

 

대나무로 짠 바구니인 '차롱'에 지역 마을 주민들이 정성껏 마련한 제주 향토음식을 넣어 만드는 치유의 숲 만의 도시락이었다.

 

과거 제주에서 들과 산으로 일하러 갈 때 차롱에 음식을 담아 도시락 용도로 사용했었던 데서 생각해낸 아이디어다.

 

 

마침 호근동에 살며 구덕과 차롱을 만들던 김 장인을 만날 수 있었다.

 

김 장인이 차롱을 만들고, 마을 주민들이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향토음식을 만들어 치유의 숲을 찾은 탐방객들에게 제공한 뒤 도시락통으로 쓰인 차롱을 다시 재활용하는 선순환이 이뤄졌다.

 

2017년 한해 판매 수익은 1억원, 2018년에는 2억원을 넘는 등 반응이 매우 좋았다.

 

하지만 무언가가 빠진듯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삼림휴양관리소 양은영 주무관은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르신이 연세도 있으신데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구덕과 차롱도 사리질 것이고 결국 미래 세대는 그것조차 박물관에서 박제화된 물건만 보게되겠구나 싶어 하루 빨리 무형문화재 지정을 추진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김 장인의 작업 사진과 영상·녹취 자료를 모으고, 차롱·구덕 관련 자료, 이외에도 차롱도시락을 만들어 마을 발전에 기여하는 등의 내용을 정리해 제주도 세계자연유산본부를 찾아가 제주도무형문화재 신청을 했다.

 

그리고 1년만에 이뤄진 현장심사에서 '대단하다'는 심사위원단의 극찬이 쏟아졌다.

 

양 주무관은 "당시 심사위원단은 '대바구니(대로만든 바구니)는 전남 담양도 유명하다. 담양의 대바구니는 왕대(대나무 중 가장 굵은 대나무)로 만들지만 제주의 것은 재료 자체가 다르다'고 말하며 '대를 다루는 섬세한 작업이 매우 놀랍다'고 평가했다"고 말했다.

 

 

왕대를 쉽게 구할 수 없는 제주에서는 '족대'와 '수리대'라 일컬어지는 대나무의 일종인 '이대'를 사용해서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구덕'과 '차롱'을 만드는 이대는 3∼4년생 정도가 가장 좋다고 하는데 장인들은 대를 베어다가 잘 말린 후 쪼개고, 깎고, 두드리는 과정을 거쳐 '대오리'(가늘게 쪼갠 댓개비)를 만든 뒤 이를 서로 엮고 끼고 감아 구덕과 차롱을 완성한다.

 

왕대와 비교해 가느다란 이대를 20여가닥으로 가늘게 쪼개 대오리로 만드는 기술, 그리고 수십년을 쓰고도 살이 끊어지거나 매듭이 풀리지 않게 만드는 장인의 실력은 무형문화재 구덕장으로 인정받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양 주무관은 "어르신은 무형문화재 인정을 받은 뒤에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제나 한결같이 작업을 하셨다"며 "장인으로서 성품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무형문화재 인정) 2년 뒤 쓰러지시고 그 뒤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사람들은 늘 잃고 난 다음에 안타까워한다. 제주도에 다른 어는 곳도 아닌 우리 마을에 어르신이 살아계셨다는 것은…."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현재 치유의 숲 '차롱쉼터'에는 김희창 장인이 만든 구덕·차롱, 제작과정 등을 방문자들이 볼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있다.

 

오랜 세월 고집스레 전통을 이어왔던 마지막 구덕 장인, 그리고 이를 관광과 결합해 마을주민의 소득 창출과 상생으로 이어간 치유의 숲의 사례에서 전통문화 계승의 또 다른 한 측면을 엿볼 수 있다. [연합뉴스=변지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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