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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여행 (4)] 이순신 '불침항모' ... 왜적이 헤엄쳐 도망 나갈 곳이 없는 섬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할 적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 「청구영언」 영조 때 김천택이 유명한 글을 모은 문집

 

…그래서 뒤쫓아 들어가니, 대선 서른여섯척과 중선 스물네척, 소선 열세척 모두 일흔세척이 대열을 벌려서 정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견내량의 지형이 매우 좁고, 암초가 많아 판옥전선은 서로 부딪히게 될 것 같아 싸움하기 곤란했습니다. 왜적은 만약 형세가 불리해지면 기슭을 타고 뭍으로 올라갈 것이므로, 한산도 바다 가운데로 유인해 모조리 잡아버릴 계획을 세웠습니다.

 

한산도는 사방으로 헤엄쳐 나갈 길이 없고 적이 비록 뭍으로 오르더라도 틀림없이 굶어죽을 것이므로, 판옥선 대여섯 척으로 먼저 나온 적을 뒤쫓아 엄습할 기세를 보이니, 적선들이 일시에 돛을 올려 쫓아 나오므로 우리 배는 거짓으로 물러나면서 돌아나왔습니다. 그러자 왜적도 따라 나왔습니다. 그때 장수들에게 명령해 학익진(鶴翼陣)을 펼쳐 일시에 진격해 각각 지자ㆍ현자ㆍ승자 등의 총통을 쏘아 먼저 두세척을 깨뜨리자… - 임진년 7월 8일, 조정에 올린 보고서 중

 

한산도는 이순신과 우리 민족에게 아주 뜻깊은 장소입니다. 그 이름도 유명한 ‘한산도 대첩’이 있었으니까요. 한산도는 왜적이 도망가도 사방으로 헤엄쳐 나갈 곳이 없는 섬이었습니다. 오죽하면 한산도를 이순신의 ‘불침항모不沈航母’라 일컬을 정도입니다.

 

이순신은 한산도의 지리적.전략적 가치에 주목했습니다. 남해안 곳곳에 숨은 왜적을 섬멸하면서 자연스럽게 한산도의 가치를 알게 됐겠지요. 지도에서 한산도를 찾으면서 새삼스레 느낀 것이 있습니다. 한산도와 부산이 훨씬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여수와의 거리도 비슷하더군요. 한산도가 이순신의 든든한 근거지였던 전라좌수영(여수)과 수십만 왜군들의 본진(부산)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셈입니다.

 

한산도는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넘어가는 뱃길의 길목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섬 모양과 지형도 천혜의 요새답습니다. 통영에서 배를 타고 한산도에 직접 들어가보면, 한산도 통제영의 위치가 얼마나 절묘한지 새삼스레 감탄하게 됩니다. 이순신은 한산도에 자리를 잡고 왜군이 호남으로 진출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한산도에 통제영을 설치할 때부터 의도한 것이었습니다.

 

호남은 국가의 보호막입니다.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제 진을 한산도로 옮겨 이로써 바닷길을 막을 계획입니다(湖南國家之保障 若無湖南是無國家 是以昨日進陣干閑山島 以爲遮按海路之計耳).

 

조선시대 사정과 감찰기관이던 사헌부 지평 현덕승에게 보낸 위의 글에서 알 수 있듯, 이순신은 삼도수군 통제영을 한산도로 옮기는 이유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본사 제휴 The Scoop=장정호 교육다움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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