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뜩 아침에 달력을 보니 오늘이 동짓날임을 알았다.
1년 중 밤이 가장 긴 날.
과학적으로야 태양이 적도 이남의 남회귀선 23.5도까지 내려가 북반구에서 태양이 비추는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시간이다.
그런 시간이 동양의 세시풍속에는 동지라는 22번째 절기로 남았다.
다들 아다시피 이날 팥죽을 쑤어 먹는다. 팥의 붉은 색이 악귀를 쫒는다하여 팥죽을 먹는다. 동짓날 죽어 역질 귀신이 된 누군가가 팥을 무서워한다 하여 팥죽을 쑤어 사람이 드나드는 대문이나 문 근처의 벽에 묻혀 두고 역신을 쫒으려는 의미도 있다.
붉은 팥은 사악한 것을 막아주는 ‘벽사(辟邪)’의 힘이 있다고 하여 다양하게 사용됐다. 아직도 개업식이나 공사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고사에 팥떡을 놓고 사업 번성과 안전을 기원하는 것을 보며 그 영향력의 깊이를 되새긴다.
밤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것은 어둡고 무서운 시간일테지만 반대로 낮이 점점 길어진다는 의미로 희망의 시간이기도 하다.
몇일이 지나면 기독교에서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날이다. 어릴 적부터 동방박사와 아기 예수의 탄생 이야기는 너무 자주 듣고 보는 TV프로그램의 단골 메뉴였다.
기독교의 기록에는 예수 탄생의 상황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기록돼 있지만 그 날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정해진 바가 없다.
예수 탄생일이 된 12월 25일은 옛 페르시아의 태양신인 미트라을 숭배하고 로마의 농경신인 새턴의 기념일인 ‘세투르날리아’를 축하하는 날이었다.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을 지나 낮이 길어지고 곧 봄이 오는 시간을 기념하기 위한 축제일 가운데 하나였다.
이 날들은 로마에서 아주 성대하게 치러지는 축제의 날들이었다. 동로마와 서로마로 나누어진 4세기경 가장 성대한 축제의 날을 예수의 탄생일로 정하면서 12월 25일이 오늘날의 의미를 갖게 됐다. 민속적인 요소를 흡수하게 된 것이다.
봄의 광명에 대한 기대에서 유래된 날이 기독교의 세계관에 병합된 셈이다.
고대나 현대, 동양이든 서양이든 똑같은 현상에 대해 용어는 달라도 그것이 갖는 의미와 소망하는 바는 큰 차이가 없다. 어느 상황이 되든 한쪽이 모든 것을 완벽히 압도하는 시기는 없음을 자연을 통해 배워왔다.
달도 차면 기운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런 점에서 오늘날 횡행하는 극단적 이분법 역시 일방적인 승리가 불가능함을 인정하길 바란다.
연일 들려오는 중동의 이슬람 국가(Islamic State) 역시 살육과 테러를 자행하면서 그 기준으로 이슬람 수니파와 그 외의 것으로 나누는 극단적인 이데올로기를 표방한다. 이슬람 수니파가 아닌 모든 것이 악이고 이를 말살하겠다는 의지다.
멀리서 찾을 일도 아니다. 우리 사회 역시 이분화된 이념으로 현 체제를 지지하지 않으면 모두 종북이 되는 프레임에 갇혀있지 않은가. 하물며 정치판에서조차 친박 아니면 비박, 친노 아니면 비노라는 제로섬(Zero-Sum) 게임이 전부가 되어버렸다.
제주에도 수많은 이슈가 산적해 있다. 제2공항이 그렇고 환경과 개발이 제주도를 휩쓸고 있다. 머지않아 선거도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가르고 자르는 시대가 아니다. 붙이고 연결하는 시대다. 한 밤중이 지났다고 바로 정오가 오지 않는다. 어스름 새벽이 있고 황혼이 있다.
내일이면 낮의 길이가 다시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한다. 로마인 들이 밤이 가장 긴 시간이 지나감을 축제로 기뻐했듯이 밤의 길이가 길다고 걱정할 일은 아닌 듯 싶다. 제로섬 게임은 없다는 것이다.
힘의 논리가 가장 극성일 때가 오히려 약해진 힘을 기뻐하며 흥겹게 춤 출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동지의 긴 밤 시간이 무섭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재근=제이누리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