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인권위원회에 따르면 강동균 강정마을회장과 홍기룡 제주군사기지저지 범도민 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등 7명은 18일 ‘집행유예자에 대해 선거권을 박탈하는 현행 공직선거법이 잘못됐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18조 제1항 제2호는 ‘(선거일 현재)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를 받고 그 집행이 종료되지 아니하거나 그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되지 아니한 자’의 선거권을 박탈하고 있다. 따라서 형이 확정돼 교도소에 수용된 수형자, 집행유예자, 가석방자 등은 선거에 참여할 수 없다.
강동균 회장은 2010년 1월 18일 마을주민 60여 명과 해군기지 반대 농성을 벌여 해군기지 기공식 부지정리 업무를 방해한 혐의와 2008년 6월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신고를 하지 않고 옥외집회를 주최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2011년 1월 12일 광주고등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홍기룡 위원장은 2011년 제주해군기지 공사 반대 운동 과정에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5월 10일 제주지방법원으로부터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고 항소했지만 같은 해 7월 18일 광주고등법원으로부터 항소가 기각돼 형이 확정됐다.
강 회장과 홍 위원장은 청구서에서 “심판 대상 조문은 집행유예를 선고 받아 집행유예 기간이 경과하지 않은 자들이 향유해야 하는 헌법상 기본권인 선거권을 과도하게 제한해 위헌”이라며 “게다가 평등권,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조항으로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선거권의 본질적 내용을 제한하는 것으로 그 수단의 적정성도 인정할 수 없는 것으로 비례의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며 “집행유예자를 일반 시민들과 달리 취급하는 것은 평등의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해 국민주권주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는 헌법에 반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천주교인권위는 이번 청구와 관련 “공직선거법은 선거의 부정을 방지하고 이를 통해 민주정치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이러한 공직선거법의 입법 목적과 집행유예 기간 중에 있는 자의 선거권 제한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또 “공직선거법은 양심범, 경죄를 저지른 자, 과실범, 단기형 선고를 받은 사람들 등을 가리지 않고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일률적으로 선거권을 제한함으로써 기본권 침해의 최소성의 원칙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권위는 이어 “이번 헌법소원의 청구인들과 같은 집행유예자는 물론이고 수형자도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며 “단지 징역형 또는 그 집행의 유예를 선고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이라면 누구나 향유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선거권의 행사를 부정당해야 할 합리적 이유는 없다”고 지적했다.
위원회는 특히 “지난해 4월 10개 인권사회단체들이 헌법소원을 청구한 바 있지만 법무부는 현재까지도 의견서조차 제출하지 않았다”며 “집행유예자 뿐만 아니라 수형자 및 가석방자 등 부당하게 선거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선거권을 되찾을 수 있도록 헌법재판소가 공직선거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라”고 촉구했다.
이번 헌법소원 청구인에는 강 회장, 홍 위원장과 함께 ▶박래군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집행위원장 ▶이종회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박평수 고양환경연합 집행위원장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등도 포함됐다.
이번 헌법소원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유현석 공익소송기금의 지원으로 진행되고 있다.
한편 천주교인권위원회에 따르면 2005년 유럽인권재판소는 수형자의 선거권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영국의 국민대표법에 대해 '유럽인권협약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캐나다 최고재판소도 1992년 모든 수감자에 대해 선거권을 박탈하는 법규정을 만장일치로 위헌이라고 선언했다. 또 징역 2년 이상의 수감자에 대해서만 선거권을 제한한 개정 법률에 대해서도 2002년 거듭 위헌 결정을 내놨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2004년 기각 7인·위헌 1인으로, 2009년 위헌 5인·기각 3인·각하 1인으로 거듭 합헌결정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