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26년간 제주시 한림읍 앞바다를 안방처럼 다녔다. 한림읍 앞 천년의 섬 비양도 주민들의 희노애락(喜怒哀樂)도 기억한다. 비양도 주민들의 유일한 뭍 나들이 땐 어김 없이 그를 만난다. 비양도를 오가는 배의 키는 그가 쥐고 있다.
그 배의 이름은 ‘비양호’. 그의 이름은 임태종(58). 비양호의 기관장이자 제주시로부터 운영을 위탁받은 비양호 대표다.
지금 한림항과 비양도를 오가는 비양호는 ‘비양호 2세’다. 지난해 11월7일 첫 뱃고동을 울렸다. 24톤급으로 승객 50명을 태울 수 있다. 평균 운항속력은 12노트(22km/h). 도선의 길이는 17.33m, 너비는 4.6m로 강철로 제작됐다. 또 위치측정레이더·위성컴파스·DGPS·CCTV 등 최첨단 장비를 탑재하고 있다. 비양호 1세에 비해 기동성과 복원성·안정성·내파(耐波)성이 뛰어나다.
19톤급 승선인원 44명인 비양호 1세는 선체가 15년이 돼 낡았다. 안전운항에도 위험이 도사릴 터. 제주시는 2008년 제3차 도서종합 10개년 개발계획에 도선대체 건조계획을 수립·반영해 2011년부터 10억100만원을 투입해 비양호 2세를 만들었다.
하지만 비양호 운영자인 임태종씨에게 비양호 2세는 세 번째 도항선이다. 사실 임씨는 관공선인 비양호 1세를 맡아 운영하기 전 자신의 배를 갖고 첫 도항선 사업을 했다.
지금으로부터 26년 전인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땐 ‘한양호(제2한양호)’라는 배가 비양도 주민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한림(翰林) ‘한’자(字)와 비양(飛揚) ‘양’자를 따 붙여진 이름이다.
한양호는 9.56톤 규모의 목선이다. 12명이 승선 정원. 당초 '한양호'라는 이름을 처음 쓴 배는 1970년대 말 첫 도항선이 그 이름을 사용했다. 당시 규모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두 번째 한양호(제2한양호)보다는 적은 규모다. 당시 첫 사업자인 한림읍 출신의 이무룡씨가 제1한양호를 이용해 도항선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이씨는 지금은 고인이 된 유동수씨에게 제1한양호를 인수했고, 유씨는 사업을 하던 도중 제1한양호를 폐선 처리하고 제2한양호를 건조해 운영했다.
한림읍 협재리가 고향인 임씨는 당시 건축 일을 하던 목수였다. 그러던 그에게 자신에게 빚을 지고 있던 제2한양호 소유주 유씨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그 빚 대신 한양호를 떠안겼다.
“그 때는 왜 그걸(한양호) 했는지 모르겠다." 그는 빚을 탕감하고 배 값의 모자란 부분은 협제리 집을 팔고 벌면서 갚았다. 승선 경험이 없어 월급 선장을 데리고 운영했다."
"한 1년간 승선경력을 쌓고 자격증도 따 직접 운항했다. 집사람을 승무원으로 데리고 일했다. 그때 건축 일을 하면서 연립주택이라도 지었으면…. 운명이었던 것 같다.”
행정에서 준 보조금과 관광객도 증가, 아내가 식당 일을 하면서 돈도 어느 정도 모이게 됐다. 그러던 그에게 가산을 탕진하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지인들과 함께 버섯 재배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하지만 영농조합은 제대로 기지개도 펴지 못한 채 무참히 무너졌다. 그는 그 사업으로 1억6000만원이라는 거금을 날렸다. 보조금까지 가압류됐다.
어려운 상황에서 1997년 새로운 배가 들어왔다. 그게 비양호 1세였다. 그 배가 행운을 가져다 줬는지 모르지만 힘든 일이 점차 풀리게 됐다. 아내의 식당 일도 잘 돼 빚을 점차 갚게 됐다.
“한양호를 하면서 돈을 벌었는데 번 돈 다 날리고 이혼까지 할 판이었다. 이혼만 안했지 별거까지 했다. 하지만 아내가 큰 도움이 돼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아이들도 사실 아내가 다 키운 것이나 마찬가지다. 난 짐만 됐지….”
그는 한양호와 비양호를 운영하면서 비양도 주민들의 삶도 알고 지낸다. 그는 비양도 주민들이 갑작스럽게 아플 때면 급히 배를 띄워 아픈 주민들을 뭍으로 수송하기도 했다. 선거 때만 되면 그의 퇴근 시간은 오후 6시 이후다. 주민들이 투표한 투표함을 수송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주민들의 짐을 나르거나 관광객을 수송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각종 주의보가 내려져 비양도에 꼼짝달싹 하지 못하는 관광객들을 수송하기 위해 파도가 잔잔한 틈을 이용해 수송하는 일도 일쑤. 당시 비양호(1세)가 비교적 규모가 큰 배여서 가능했다”
하지만 그에게 당장에 고민거리가 하나 있다. 새로운 비양호가 취항하면서 관리비가 많이 들고 있다. 겨울철은 비수기여서 적자에 허덕인다. 행정에서 지원해주는 지원금은 선장 월급을 주면 끝난다. 게다가 치솟는 유가에 커진 배를 관리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더구나 늘어난 운항 횟수도 버겁다.
“새로운 배는 지난해 11월 들여왔지만 겨울철은 비수기여서 관광객들이 많지 않다. 하루 많으면 10명 정도 오갈 뿐이다. 하지만 행정에서 운항 횟수를 1회 더 늘리라고 해서 하루 3회 운항한다. 또 배가 성능이 좋아지고 커진 만큼 유류비도 감당하기 힘들다. 하루 관광객 30명은 타줘야 적자를 면할 것인데 요즘 그렇지 못하다. 대합실에서 일하는 딸 아이 월급 100만원도 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다행히 여름철은 수입이 어느정도 돼 겨울철 적자를 겨우 매꾼다.”
11월부터 비양도 주민들은 조례에 의해 무임승선하게 됐다. 또 운항횟수도 기존 오전 9시와 오후 3시에서 낮 12시가 추가돼 하루 2회에서 3회 운항하게 됐다. 게다가 수년째 운임은 편도 2000원이다. 임씨는 조만간 행정에 이러한 운영결과를 알리고 운임 조정에 나설 계획이다.
그에게는 또 하나 말 못할 걱정거리가 생겼다. 다름 아닌 비양도 케이블카 문제다. 그로서는 고향 주민들이 문제여서 찬반을 말할 처지가 못돼는 입장이다.
“비양도에 그거(케이블카) 생기면 배로 비양도 찾는 사람들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마을에서 전적으로 원한다면 할 수 없는 것 아니냐. 사실 비양도가 개발에서 소외된 것은 사실이다. 비양호 이용자가 덜 하겠지만 마을의 생계가 달린 문제다. 관광객 1명이라도 더 와서 밥이라도 한 그릇 팔아주면 마을 주민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 아니겠나. 내가 하지 말라고 해서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만약 케이블카가 생기게 되면 어쩌겠냐’는 질문에 임씨는 “그때는 유람선이라도 만들어 달라고 하던지 해야죠(웃음). 섬 한 바퀴 도는…. 그래도 도항선은 없어지지 않을 거다. 주민들의 짐까지 케이블카로 운송하지는 못할 것 아니냐. (비양호가)평생직장인데….” 그의 전망이다.
☞비양도=면적 0.5㎢로 동서길이 1.02㎞, 남북길이 1.13㎞이다. 비양도는 섬이자 기생화산이다. 높이는 해발 114.7m이고 비고는 104m이다. 한림항에서 북서쪽으로 5㎞, 협재리에서 북쪽으로 3㎞ 해상에 자리 잡고 있다. 형태는 전체적으로 타원형이다. 고려시대인 1002년(목종 5년) 6월 제주 해역 한가운데에서 산이 솟아 나왔는데, 산꼭대기에서 4개의 구멍이 뚫리고 닷새 동안 붉은 물이 흘러나온 뒤 그 물이 엉키어 기와가 되었다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기록으로 보아 이 시기에 비양봉에서 어떤 화산활동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오름 주변 해안에는 ‘애기 업은 돌’이라고도 하는 부아석(負兒石)과 베개용암 등의 기암괴석들이 형성됐다. 오름 동남쪽 기슭에는 ‘펄낭’이라 불리는 염습지가 있다. 북쪽의 분화구 주변에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비양나무(쐐기풀과의 낙엽관목) 군락이 형성돼 1995년 8월 26일 제주기념물 제48호인 비양도의 비양나무자생지로 지정됐다. 우리나라 유일의 비양나무 자생지로 보호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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