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근민 제주도지사의 고향마을인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주민들이 행정에 화가 나도 단단히 화가 났다. 민원사항을 중재해주겠다고 하더니 중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가 하면 지난 도정이 제시한 약속도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양계장(육계장) 문제는 2007년 불거졌다. 당시 마을 이장이었던 김모씨가 모 업체의 육계 계열화 사업에 대한 동의서를 이장 단독명의로 제출했고, 이러한 사실을 안 주민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사업은 철회됐다. 주민들은 또 제주도로부터 ‘종달리에 다시는 종계장 시설사업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도 받아냈다.
그러나 이 업체는 2010년 업체 이름을 J영농조합법인으로 바꾸고 다시 사업을 위한 건축허가를 제주시에 신청했다. 또 다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제주시는 용눈이오름과 은월봉 인근에 접한 지역(종달리 4414번지 일대)에 건축할 경우 축산분뇨냄새와 해당지역을 비롯한 주변지역에 냄새로 인한 대기오염, 집단민원 등을 우려해 불허했다.
하지만 J영농조합법인은 제주시를 상대로 ‘개발행위허가 불가에 따른 건축허가불가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2년여 간의 법적분쟁 끝에 지난해 9월 제주시가 패소했다.
이에 따라 J영농조합법인은 이 지역에 9547㎡ 부지에 지상2층 규모의 계사(육계사육장)를 신축하고 있다.
행정이 더 이상 허가를 거부할 명분이 없자 주민들이 들고 일어섰다. 사업부지가 마을에서 3.2km나 떨어져 있는 곳이지만 주민들이 반대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악취 등 환경문제는 물론 대규모 단지화를 우려해서다.
주민들은 “J영농조합법인이 대규모 양계(육계)시설을 하려고 기반조성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라며 “그 이전에 모 대기업에서 양계시설을 추진하려고 한 부지가 여러 곳에 조성돼 있다. 몇몇 사람도 이러한 사업을 하려고 눈치만 보고 있다”고 밝혔다. 또 “시설이 완공되면 제2, 제3의 시설이 들어선다. 그렇게 되면 대규모 양계단지가 조성 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주민들은 ‘종달리 양계(육계) 유치사업 반대추진위원회’를 구성했고 구좌읍사무소와 제주시청 앞에서 잇따라 반대집회를 가졌다. 주민들은 급기야 지난해 11월 14일 제주도청을 찾아가 거칠게 항의했다.
보다 못한 우근민 지사가 직접 나서 고향마을 사람들과 면담을 가졌다. 우 지사는 “양계장 허가는 이미 대법원에서 승소판결이 나온 만큼 행정에서 강제할 수는 없다”면서도 “그래도 주민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중재할 테니 주민들도 양계장 관계자들과 지속적인 논의를 벌여달라”고 당부했다.
이후 반대추진위는 사업자 측에 사업 부지를 이전해 달라고 요청했다. 우 지사도 전화를 걸어 ‘사업부지 이전을 검토해보라’고 권유했다. 또 양측이 한 발씩 양보해 문제를 해결해 보자고 했다. 하지만 행정의 노력은 이것이 전부였다.
주민들과 우 지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업자 측은 “부지이전을 검토하다가 검토를 이전할 부지가 지리적 조건과 주변 환경이 맞지 않다. 또 부지 이전 시 기존시설에 대한 투자금도 있기 때문에 시설이전이 어렵다”며 종전대로 추진할 뜻을 주민들에 전달했다. 이후 양측은 협상이 결렬됐다.
반대추진위는 “국민권익위원회에서 합의내용 외에 주민설명회 및 세부적인 사항을 협의를 거쳐 진행하라고 했다”며 “그럼에도 이를 어기고 대법원에서 승소했다는 이유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주민을 무시한 개인주의적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게다가 “행정이 사업을 막을 의지가 있었다면 6년 이상 진행된 시위와 소송기간 동안 도시관리계획을 변경하거나 도시계획조례 제도개선을 재검토해 충분히 할 수 있었다”며 행정의 소극적 태도를 꼬집었다.
더욱이 “지난 도정에서 ‘더 이상 종달리에 종계장 시설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도정이 바뀌었다고 다시 추진하는 것은 신뢰를 저버린 행정행위”라고 강하게 쏘아붙였다.
최근 주민들은 마을 행정업무중단 및 리사무소 업무를 잠정적으로 중단하도록 마을총회 심의를 거쳐 결정했다. 이에 따라 마을 이장 직위도 정지된 상태다.
협상 결렬에 행정의 미온적인 태도 등으로 인해 문제의 실마리가 잡히지 않자 반대추진위와 구좌읍리장단협회는 14일 오후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무조건적인 사업철회’가 관철될 때까지 연중무휴 투쟁할 것을 선포했다.
또한 이들은 오는 25일 구좌읍 세화리 해녀박물관에서부터 구좌읍사무소까지 대규모 거리시위도 계획하고 있다.
한편 사업자인 J영농조합법인 대표는 전직 도의회 교육의원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이유로 반대추진위는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고 윤리와 도덕적인 면에서 타의 모범이 돼야 할 사람이 어떻게 교직생활과 교육의원까지 지냈느냐”며 “한 사람으로 인해 다른 교사들과 도의원(교육의원)들에게 먹칠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반대추진위는 또 “도의원들이 다른 현안에 대해 현장을 방문하고 중재에 나서고 있지만 정작 우리 문제에 대해서는 두 손을 놓고 있다”며 도의원들을 질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