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제이콥의 농장 분투기는 실로 눈물겹다. 낯선 이국땅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10년간 모은 돈을 쏟아붓고 대출까지 해서 척박한 땅을 장만한다. 가진 돈을 모두 부었으니 당장 네 식구 생활비를 벌기 위해 그 지겨운 병아리 감별을 계속해야 한다. 이른바 ‘투잡’이다. ▲ 모든 근로자가 자신을 일터의 주인으로 느끼는 되는 건 환상에 불과하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농장을 마련한 제이콥은 병아리 감별을 하고 헐레벌떡 돌아와 맨손으로 땅을 일군다.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농업용수 확보다. 가진 돈이 넉넉하다면 업자를 불러 우물을 팔 수 있겠지만 제이콥은 그럴 형편이 아니다. 포클레인도 아니고 달랑 삽 한자루 들고 우물을 파기 시작한다. 솜털 뭉치같은 병아리만 만지던 제이콥이 할 만한 일이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팔을 쓸 수 없어 혼자 옷도 못 입는다. 사투에 가깝다. 그런 아빠를 딱한 눈으로 보는 데이비드에게 제이콥이 비장하게 말한다. “공짜로 할 수 있는데 왜 돈 주고 우물을 파?” 정말 제이콥은 공짜로 우물을 판 것일까. 만약 우물을 파는 데 투입한 노동력과 시간을 다른 곳에
▲ SIEMENS Energy. 바람에 대한 공유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른바 ‘공풍화’ 논리다. 이에 대한 직접적 반론을 펴고자 한다. 물론 반론만이 목표가 아니다. 이 참에 해상풍력발전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먼저 제주도 삼다수와 풍력자원은 같이 비교해서는 안될 사안이다. 2006년 신구범 전 지사를 도와 삼무해상풍력(현재탐라해상풍력) 개발에 참여한 적이 있다. 아시아 첫 해상풍력발전단지 조성이 목표였고, 사업승인도 받았다. 2009년엔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풍력발전 소장을 지낸 적도 있다. 2018년부터 울산 6.5GW 부유식해상풍력발전을 주도했으며, 현재는 전북지역에 2GW 해상풍력을 개발하고 있는 게 필자의 이력이다. 풍력에 대해 다소나마 상식적인 얘기로 풀어본다. 2GW 정도면 약 10조원의 자본이 투여된다. 이미 최근 bp London과 해상풍력개발 컨설팅 계약을 체결,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사안이다. bp London이라면 생소하겠지만 포천(Fortune)지 선정 매출기준으로 보면 월마트(Walmart)가 세계 1위 회사이고, bp가 연매출 340조원의 8위 회사다. 삼성전자
‘미나리’의 주인공인 병아리 감별사 제이콥의 꿈은 다소 불안해 보인다. 아칸소의 황무지에 자기의 농장을 일구고 싶어 한다. 10년간 병아리 감별사로 모은 돈을 모두 털어넣고도 모자라 은행대출까지 받는 무리를 감행해서 아칸소에 농지를 매입하고 농장주의 꿈에 부푼다. 요즘 말로 ‘영끌’ 농장이다. ▲ 제이콥의 욕구는 1단계에서 갑자기 5단계로 직행해버린 느낌이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미나리’의 주인공인 병아리 감별사 제이콥은 ‘농장 주인’을 꿈꾼다. 하지만 현실과 꿈 사이의 간극이 당황스러울 만큼 크게 느껴진다. 1950년대 미국 심리학자 매슬로(Maslow)가 발표한 ‘욕구 5단계설’은 오랫동안 설득력을 가져왔던 심리학의 고전이다. 매슬로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욕망은 5단계로 이뤄지는데, 1단계는 ‘생리적 욕구’가 지배한다. 간단히 말하면 일단 먹고살아야 하고, 비바람을 피할 집이 있어야 한다. 그 욕구가 충족되면 인간은 ‘안전 욕구’를 느낀다. 1단
▲ 8MW 부유식 해상풍력시스템. 기사 본문과 직접적인 연관없음. [연합뉴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전기위원회가 7월 23일 개최됐다. 이날 회의에서 울산의 부유식 해상풍력 발전사업 투자사(총 5개 컨소시엄) 중 하나인 GIG-Total이 신청한 부유식 해상풍력 504MW의 발전사업을 허가했다. 50MW 이상으로도 사례는 없지만, 500MW 이상의 대규모로는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최초의 발전사업 허가다. 울산시는 민선 7기 송철호 시장 취임 이래 ‘대규모의 부유식 해상풍력 발전단지 건설을 통한 고용안정과 경제 활성화, 에너지신산업 생태계 조성’을 핵심 정책으로 추진했다. 울산의 독보적인 조선·해양플랜트 기술과 인력은 핵심적인 자산이고, 한반도 주변에서 가장 우수한 울산 근해의 바람(평균 8m/s 이상)은 경제적인 자원이며, 울산 주변의 대규모 송·배전망과 수심 150m에 설치된 석유공사의 가스플랫폼 해상구조물은 활용 가능한 인프라임을 종합적으로 파악해, 지난 3년여 동안 부유식 해상풍력 발전단지 건설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이미 전 세계의 고정식 해상풍력에서는 선두의 위상을
▲ 시장에선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믿고 따랐다가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을 볼 것이란 불안감이 팽배하다.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자찬할 때가 아니다.[사진=연합뉴스]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국민께 드리는 말씀’. 정부가 7월 28일 부동산 관계장관회의를 한 뒤 내놓은 대국민 담화문 제목이다. 제목은 거창했지만, 내용은 무책임했다. 경제부총리와 국토교통부 장관, 금융위원장, 경찰청장의 발표를 요약하면 ‘주택공급은 충분한데 집값이 더 오르리란 기대심리와 투기 수요, 불법거래가 가격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집값과 전셋값 급등의 원인을 주택공급 부족이 아닌, 국민의 과도한 수익 기대심리 탓으로 돌렸다. 투기수요와 실거래 띄우기 같은 불법행위가 주범이란 인식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집값 띄우기 등 부동산 교란행위를 엄단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례적으로 부동산 관련 브리핑 자리에 경찰청장을 참석시킨 배경이다. 문재인 정부 4년 3개월, 유례가 없는 26차례 부동산 대책에도 시장이 안정되지 않은 것은 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방증이다.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가격은 수요와
▲ 8MW 부유식 해상풍력시스템. 기사 본문과 직접적인 연관없음. [연합뉴스] 지난 7월 25일 자 조선일보의 ‘동서남해 해상풍력의 큰손, 맥쿼리가 한국 바다 노리는 까닭’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잘못된 기사의 내용은 바로잡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필자가 소장이었던 삼달풍력발전소가 운전되기 전까지 제주도는 1998년부터 약 10년간 겨우 약 50MW가 운전 중이었고, 모두 적자투성이였다. 2009년 삼달풍력발전소 준공 전까지는 적자가 나서 망한다는 우려가 깊었다. 풍력발전사업은 당연히 적자일 수밖에 없고 그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무모한 것이라는 우려였다.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이루는 과정에서도 프로젝트 자체의 보증뿐만 아니라 추가 100%의 별도 담보물을 제공하는 등 투자에 대한 금융권의 부정적인 인식이 커 사업 추진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2009년 9월 준공하고, 1년이 지난 2010년 10월 1년 후의 경영실적은 모두가 놀라워할 만큼 성과를 냈고 드디어 풍력발전의 상용화를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 후 10년이 지난 지금 제주는 약 300
영화 ‘미나리’에서 5살짜리 꼬마 데이비드의 존재감은 대단하다. 데이비드가 등장하는 분량이나 영화를 이끌어가는 역할 모두 할머니 순자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을 능가하는 듯하다. 나이 어리다고 조연상 자격이 안 된다면 조금은 억울한 일이다. ▲ 바람은 하늘의 뜻일 뿐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데이비드의 존재감은 영화 포스터에서도 나타난다. 남녀 주연배우들을 모두 제치고 포스터에 단독으로 등장한다. 포스터에서 데이비드는 대형 성조기가 벽면을 덮은 농장 건물 배경의 풀밭 위를 나뭇가지를 들고 걸어오는 모습을 담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나뭇가지다. 데이비드가 소중하게 들고 있는 구부러진 나뭇가지 하나에 영화의 핵심 주제가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제이콥은 10년간 병아리 감별사로 근근이 모은 돈과 은행에서 받은 대출금을 합쳐 아칸소 외진 곳에 척박한 땅을 산다. 그렇게 농장주가 되겠다는 원대한 꿈을 향한 첫발을 내딛는다. 농장을 건설하려면 우선 물이 문제다. 우물을 파주겠다는 전문가가 두개의 나뭇가지를 들고
정치인을 가리키는 politician은 셰익스피어 시대에 처음 쓰였다. ‘신중한’이란 의미의 형용사 politic에서 유래됐다. 그러나 그 단어는 점차 부정적 의미로 변모했다. ‘교활하다’거나 ‘철저히 자기 잇속만을 차린다’는 뜻으로 굳어져갔다. 그래서 politician은 모사꾼의 의미로 뒤바뀌었다. 정치인(statesman)이 아니라 정상배(政商輩)라는 의미다. 셰익스피어는 어떤 사람을 모욕적으로 묘사할 때 politician이라고 했다. 리어왕은 politician을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지칭했다. 햄릿은 무덤 파는 광대가 해골을 던지며 장난치는 것을 보면서 "그 해골이 politician의 것이면 얼마나 좋겠냐"고 말했다. 그런 정치꾼은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눈다. 도구가 아니면 적이다(A politician divides mankind into two classes: tools and enemies).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말이다.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나이가 들어가며 침침해지는 눈 탓을 할 생각도 했다. 그런데 떡하니 인터뷰 기사까지
▲ 전력 공급이 부족해질 위기에 처하지 정부는 석탄화력발전소 재가동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정비 중이던 원전을 전력 생산에 투입하기도 했다. 아이러니다.[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정부청사와 공공기관에 낮 시간 중 30분씩 돌아가면서 에어컨 가동을 멈추도록 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기업들에는 전기 사용을 줄이면 보상금을 주는 ‘수요반응(Demand Response)’ 제도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여름 더울 때 에어컨을 끄고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는데도 생산라인 가동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은 전력 공급이 부족해질 위기에 몰렸다는 것이다. 에어컨 가동중단이나 전력사용 감축 요청은 2013년 이후 8년 만의 이례적 조치다. 여유 전력을 나타내는 전력예비율은 10%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일부 발전소가 고장 등으로 멈춰 서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하고 정전 사태에 대비할 수 있다. 평소 20~30%를 유지하던 전력예비율이 7월 둘째주 10% 수준으로 떨어졌다. 위험주의보다. 올여름 전력수급 불안은 2017년 대선 공약인 탈(脫)원전의 아집에 갇힌 문재인 정부가 자초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 일제강점기 시절이던 지난 1910년 8월 29일, 경복궁에 일장기가 걸려있다. [연합뉴스] 어리석고 바보같은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뜻을 품은 치매, 해당 병명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정착된 용어이기도 하지만, 기억력이 약한 사람을 놀릴 때 "너 치매 걸렸니?"라고 하는 등 실제 치매환자와 가족들에게 거부감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개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치매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전엔 치광으로 불렸다. '미친 사람'이란 뜻이다. 모두 일본에서 처음 사용됐다. 영어와 독일어에서 유래된 Dementia(디멘시아)라는 명칭을 일본의 정신의학자인 '쿠레 슈우조'가 지난 1908년, 한자로 바꾸면서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치매'로 불려지고 있는 것이다. 치매도 그나마 치광에서 순화된 용어다. 이후 지난 1919년, 일본의 소설책에서 '치매'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됐고, 1927년엔 일본어 사전에 첫 적용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서 만든 병명인 치매를 그들은 이미 '인지증'으로 개선했
영화 ‘미나리’는 미국에 이민 온 한 한국인 가정을 보여주지만 이름만 ‘한국인 가정’일 뿐, 그들이 보여주는 가족관계는 전형적인 한국인 가정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 가족이 보여주는 모습은 한국적이라기보다는 ‘미국적’이고 ‘세계적’이다. ▲ 과거 욕망과 니즈의 ‘서열화’는 공동체 유지를 위한 필수적인 장치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미나리’가 미국과 세계 각국의 평론가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아카데미상 6개 부문에 후보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그 가정의 모습이 ‘미국적’이거나 ‘세계적’이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반면 아카데미상 수상작이라는 ‘국뽕’에 불을 지피는 엄청난 ‘버프’에도 국내 흥행이 기대에 못 미쳤던 건 한국 관객들이 보기에 ‘미나리’ 가족의 모습이 왠지 ‘한국적’이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끔 듣게 되는 ‘가장 한국적인
▲ 때마다 노사간 대립으로 치닫는 최저임금 결정 제도를 방치하는 건 정부와 정치권의 직무유기다. 사진은 12일 공익위원의 안에 반발하며 전원 퇴장하고 있는 사용자위원들.[사진=연합뉴스] 내년에 적용될 최저임금이 13일 새벽에야 가까스로 결정됐다. 올해(8720원)보다 5.1% 많은 시간당 9160원이다. 이번에는 조금 달라지나 기대했는데, 노사 양측은 변함없이 벼랑 끝 전술로 버티다가 결정된 뒤에도 반발하는 구태를 답습했다. 1988년 최저임금제 시행 이후 35차례 결정과정에서 노사가 합의한 경우는 5분의 1인 단 7회에 불과했다. 최저임금은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 공익위원 각 9명씩 총 27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한다. 하지만 위원회 앞에 붙는 ‘사회적 대화기구’다운 합리적 근거에 입각한 제안과 협상은 찾아보기 어렵다. 서로 상대방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노사가 요구하는 인상안의 격차가 큰 데다 주장을 굽히지 않아 법정시한을 넘겨 허겁지겁 투표를 통해 공익위원 중재안대로 결정해왔다. 이번에 노사 양측이 제시한 최저임금 최초 요구안 인상률은 23.9%(1만800원) 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