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 영 늙엄시니? 오몽허지(움직이지) 못허키여” 욕조 안에서 목욕을 마치고 일으키려고 하자, 끙끙대며 내뱉으시는 어머니의 푸념이다. 등이 더욱 굽어지고, 어깨가 한층 좁아지셨다. 아직 갈비뼈가 드러나 보이지는 않지만, 지난 주보다 부쩍 말라 보인다. 어린 아이처럼 작아지셨다. 입맛이 없다고 몇 숟갈씩 덜 뜬 게, 이렇게 에누리 없이 드러나고 만다. 아기는 먹는 만큼 토실토실 성장하지만, 노인은 먹지 않는 만큼 앙상하게 말라간다. 백세 노인의 건강은 절대적으로 먹는 만큼 유지된다. 아침마다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려고 들이대는 말이, “먹엉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댄 헙니께! 경 헌디, 어머니가 이추룩 안 먹엉 남기민, 나도 어떵 헐 수가 어수다, 예! 게무로사 이거 혼 숟가락을 남길 일이우꽈? 나한티 살려도라 살려도라 허지 말앙, 아침 점심 저녁 삼시 세끼만 냉기지 말앙 드십서! 경 허민, 올 가을에도 너끈히 미깡밭에 갈 수 이실 거우다! 나가 이추룩 손가락을 걸엉 약속을 허쿠다 양!” 이렇게 식사 때마다 벌어지는 ‘달램 반 협박 반’의 시나리오를 접을 수 없는 건, 그래도 어느 정도 이 방식이 먹혀들기 때문이다. 아직은 더 살고 싶은 의욕이 있으신 어머니는
제주특별자치도가 수행하는 ‘제주해녀 생애사 조사’를 맡은 연구원이 보목마을을 찾아왔다. 어머니를 선정한 이유는 제주해녀로서 외국에 가서 살다가 돌아온 점이 돋보인다는 거였다. 어머니의 물질 생애는 ‘ᄌᆞ냥허곡 부지런허민 하늘이 도와’라는 제목으로 연구보고서에 실렸다. ‘숨비질 베왕 ᄂᆞᆷ주지 아녀’라는 제목의 책에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가장 길게 게재됐다. 그 때문에 어머니는 다시 해녀박물관 영상실의 주목을 받았다. 해녀들의 물질경험을 방문객들에게 들려주려는 프로그램의 취재대상이 된 것이다. 집으로 찾아온 취재진에게 어머니는, 어떻게 2남7녀를 낳으면서 물질을 계속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실감나게 얘기했다. “아기를 배여도 열 달 동안은 굳짝 물질을 해서. 아기가 나오민 사흘만이 다시 물에 들어가곡 허멍. 경헌디 아기가 빠져불민 배가 너무 허전해영 자꾸 허천디레 자빠지곡 히엿뜩 히엿뜩 허는 거라. 허는 수 어시 수건으로 존둥이를 졸끈 졸라매영 물질을 했주. ᄒᆞ루는 물질허는디 애깃배를 맞췅 배가 막 아파오는 거라. 촘당 버천 물에서 나완 집으로 서둘렁 내돌았주. 경헌디, 오꼬시 아기가 막 털어짐직 허는 거라 이. ‘아이고, 설운 아기야. 홑썰만 촘았당 나와도라
어머니는 여섯 살 즈음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함께 큰 오라버니 집에 얹혀서 살았다. 대여섯 살 때부터 밭고랑에 앉아서 김을 맸지만, 늘 먹을 것이 부족하였다. 밭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땅강아지처럼 밭고랑에 붙어 앉아서 하루 종일 김매는 일은, 자유가 없는 지루한 노동이었다. 이따금 친구들과 물때에 맞춰서 보말을 잡으러 가는 일이, 노는 것 마냥 그렇게도 좋았다. 당시 대포마을 여자 아이들은 웬만하면 예닐곱 살 때부터 바다에 가서 물질을 배웠다. ‘하나 둘 셋’ 하고 다 같이 들어가서 ‘누가 더 오래 물속에서 숨을 참고 견디나, 누가 먼저 돌멩이를 빨리 집어서 나오나, 누가 저 바위까지 빨리 헤엄쳐서 갔다 오나’ 하는 게 훈련이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물질을 익히게 되었고, 열 한 두 살이 되자 언니가 테왁을 만들어 주었다. 소중이를 입고, ᄌᆞᆨ은 안경을 쓰고, 머리에는 수건을 졸라맸다. 소라를 잡아서 망실이에 넣고는, ‘호오이, 호오잇’ 하고 숨비소리를 질러보았다. 드디어 해녀가 된 것이다. 대포 바다가 모두 자기 것인 양 그날은 온종일을 숨비질로 보냈다. 열일곱 살이 되자 부산 근처에 있는 미포로 초용(첫 번째 원정물질)을 떠났다.
1923년 3월 22일. 어머니의 생신이다. 막내딸 이름을 성춘(成春)이라 지으시면서, 외할아버지는 ‘봄을 이루어라, 봄이 되거라’고 기원하셨을까. 이제 내일 모레면 만 나이로 백 세가 되신다. 이웃들이 묻는다. 어머니의 장수비결이 무엇이냐고. 혹시 집안이 장수하는 가문이냐고..... 아니다. 어머니는 4남2녀의 막내인데, 형제분들 중 가장 오래 사신 경우가 80대 중반이다. 요컨대, 장수혈통은 결코 아니란 얘기다. 그럼, 무엇이 장수의 비결일까? 어머니와 함께 산 지 20년, 같은 방을 쓴 지가 10년 째다. 룸메이트로서 내가 경험하고, 관찰하고, 생각하는 어머니의 장수비결을, 10가지로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일, 2) 식사, 3) 병원, 4) 자녀, 5) 기도, 6) 바다, 7) 잠, 8) 딸, 9) 긍지, 10) 감사. 1. 바당 덕분에 바당 어서시민 어떵 살아시코 이? 어머니가 바다만 보면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다. 얼마나 바다가 고마우면 저러실까? 어머니의 애틋한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와서 내 가슴을 싸〜아 하게 적신다. ‘바다 덕분에 2남7녀를 키울 수 있었다’는 어머니의 고백 속에는, 바다를 향한 어머니의 고마움
어머니에게 지팡이가 생겼다. 끝이 휘어진 손잡이에 스폰지가 달렸다. 만지기만 해도 포근한 게 효심이 느껴진다. 지팡이를 짚고서 몇 걸음을 걸어본다. 역시 보통 지팡이보다 튼튼하다. 굵기도 하지만 키도 더 큰 게, 보기에도 더 믿음직하다. 지팡이란 ‘걸음을 도우려고 짚는 막대기’라는데, 역시 어르신 지팡이가 이 정도는 돼야지 싶다. ‘대통령이 만 백세를 맞은 노인들에게 선물한다’는 바로 그 청려장을 닮은 듯도 하다. 세상에! 소문으로만 듣던 청려장이 우리집에 오다니.... ‘어머니, 이 지팡이 누게가 가져와십디가?’라고 여쭤본다. ‘모르는 지집아이가 가졍 와서라!’. 아마도 마을회에서 일하는 여직원이 다녀갔나 보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효도지팡이'라 쓰여진 스티커에, ‘9000원’이란 가격표가 붙었다. 왠지 너무 값싸게 느껴진다. 청려장은 명아주로 만든다는데, 그 정성만 생각해도 이처럼 저렴할 리가 없지 싶다. 명아주는 밭이나 들에서 흔히 자생하는 한해살이 식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1년만에 2m 이상 자라서는 껍질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단단해진다. 말리면 보통 나무보다 가벼워서 지팡이 재료로 쓰기에 안성맞춤이 된다. 그래서 예부터 사랑받는 지팡이가 되었
지난 월요일 아침, 제이누리 발행인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카톡 메시지를 받았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이번 주 100세 일기는 현재 조회수 2만여건을 돌파하며 우리 하루 방문자 1만5천명을 만들어내는 등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는 중. 이제 열혈 독자들이 생긴 듯^^ 감사합니다” 세상에!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버거워서, 그냥 버텨내려는 통로 삼아 쓴 글. 그저 일상의 허드레를 보고하듯, 반성 삼아 적어놓은 일기같은 글에, 이토록 뜨거운 ‘격려사’라니... 누가 내 마음을 알랴 싶어서 감정을 꾹꾹 눌러 쓴 혼자만의 중얼거림에, 이렇게 반응해 주시는 뜨거운 마음들이라니.... ‘울컥’ 하니, 감정이 복받쳐 올라, 소리내어 10초 가량 울었던 듯 하다. 그러고는, 이내 믿어지지 않아서, 제이누리로 들어가 보았다. ‘올 봄에 맞는 어머니의 100세 생신 ... 장수노인의 비결은 무얼까?(6)’라는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저 ‘장수의 비결 6-긍지’라는 제목으로 글을 보냈는데, 역시 전문가는 달랐다. 이어서, ‘[어머니의 100세 일기] 어머니의 장수비결 10가지 중 한가지 ... 긍지’라는 부제가 뒤따르고 있었다. ‘장사는 아무나 하나’
1923년 3월 22일. 어머니의 생신이다. 막내딸 이름을 성춘(成春)이라 지으시면서, 외할아버지는 ‘봄을 이루어라, 봄이 되거라’고 기원하셨을까. 이제 내일 모레면 만 나이로 백 세가 되신다. 이웃들이 묻는다. 어머니의 장수비결이 무엇이냐고. 혹시 집안이 장수하는 가문이냐고..... 아니다. 어머니는 4남2녀의 막내인데, 형제분들 중 가장 오래 사신 경우가 80대 중반이다. 요컨대, 장수혈통은 결코 아니란 얘기다. 그럼, 무엇이 장수의 비결일까? 어머니와 함께 산 지 20년, 같은 방을 쓴 지가 10년 째다. 룸메이트로서 내가 경험하고, 관찰하고, 생각하는 어머니의 장수비결을, 10가지로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일, 2) 식사, 3) 병원, 4) 자녀, 5) 기도, 6) 바다, 7) 잠, 8) 딸, 9) 긍지, 10) 감사. 1. 1등은 못해도 2등은 했다 어머니는 자타가 인정하는 제주해녀다. 제주국제컨벤션센터가 자리한 중문관광단지 일대를, 대포 사람들은 ‘너배기’라 불렀다. 아마도 넓고 평평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싶다. 너배기 앞에 있는 바다를, 우리는 지삿개라 불렀다. 지금은 ‘주상절리’라 불리며, 관광지로 유명해진
1923년 3월 22일. 어머니의 생신이다. 막내딸 이름을 성춘(成春)이라 지으시면서, 외할아버지는 ‘봄을 이루어라, 봄이 되거라’고 기원하셨을까. 이제 내일 모레면 만 나이로 백 세가 되신다. 이웃들이 묻는다. 어머니의 장수비결이 무엇이냐고. 혹시 집안이 장수하는 가문이냐고..... 아니다. 어머니는 4남2녀의 막내인데, 형제분들 중 가장 오래 사신 경우가 80대 중반이다. 요컨대, 장수혈통은 결코 아니란 얘기다. 그럼, 무엇이 장수의 비결일까? 어머니와 함께 산 지 20년, 같은 방을 쓴 지가 10년 째다. 룸메이트로서 내가 경험하고, 관찰하고, 생각하는 어머니의 장수비결을, 10가지로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일, 2) 식사, 3) 병원, 4) 자녀, 5) 기도, 6) 바다, 7) 잠, 8) 딸, 9) 긍지, 10) 감사. 어머니가 만 백세 생신을 맞았다. 혹여 서울에서 무슨 소식이 오려나? 100세를 맞은 어르신에게 장수 지팡이인 ‘청려장’을 보내준다는데.... 건강과 장수를 상징하는 청려장은 명아주 풀로 만든 지팡이다. 통일신라 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는 임금이 장수 노인에게 청려장을 주는 전통이 있었다 한다. 우리 정부는
1923년 3월 22일. 어머니의 생신이다. 막내딸 이름을 성춘(成春)이라 지으시면서, 외할아버지는 ‘봄을 이루어라, 봄이 되거라’고 기원하셨을까. 이제 내일 모레면 만 나이로 백 세가 되신다. 이웃들이 묻는다. 어머니의 장수비결이 무엇이냐고. 혹시 집안이 장수하는 가문이냐고..... 아니다. 어머니는 4남2녀의 막내인데, 형제분들 중 가장 오래 사신 경우가 80대 중반이다. 요컨대, 장수혈통은 결코 아니란 얘기다. 그럼, 무엇이 장수의 비결일까? 어머니와 함께 산 지 20년, 같은 방을 쓴 지가 10년 째다. 룸메이트로서 내가 경험하고, 관찰하고, 생각하는 어머니의 장수비결을, 10가지로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일, 2) 식사, 3) 병원, 4) 자녀, 5) 기도, 6) 바다, 7) 잠, 8) 딸, 9) 긍지, 10) 감사. 지난 번 일기에서 4) 자녀, 5) 기도에 대해 언급했으니, 이번에는 6)바다를 소개하고자 한다. 사실 바다는 해녀인 어머니에겐 일, 그 자체요, 식사의 비결(바다에 가면 모든 게 맛있어지는 걸 아시는지....)이요, 병원(건강의 비결)이자, 자녀들을 키워준 은인이요, 저절로 기도가 나올 정도로 위험한
1923년 3월 22일. 어머니의 생신이다. 막내딸 이름을 성춘(成春)이라 지으시면서, 외할아버지는 ‘봄처럼 눈부시고 희망차라’고 기원하셨을까. 다섯 살에 함경환사건1)으로 아버지를 여읜 어머니는, 오는 3월이면 만 나이로 백 세가 되신다. 이웃들이 묻는다. 어머니의 장수비결이 무엇이냐고. 혹시 집안이 장수하는 가문이냐고..... 유전은, 아니다. 어머니는 4남2녀의 막내인데, 형제분들 중 가장 오래 사신 경우가 80대 중반이다. 요컨대, 장수혈통은 아니란 얘기다. 그럼, 무엇이 장수의 비결일까? 어머니와 함께 산 지 20년, 같은 방을 쓴 지가 10년 째다. 룸메이트로서 내가 경험하고, 관찰하고, 생각하는 어머니의 장수비결을, 10가지로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일, 2) 식사, 3) 병원, 4) 자녀, 5) 기도, 6) 바다, 7) 잠, 8) 딸, 9) 긍지, 10) 감사 등이다. 지난 번 일기에서 1) 일, 2) 식사, 3) 병원을 다뤘으니, 이번에는 4) 자녀, 5) 기도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4) 자녀 어머니는 10명을 낳으셔서 2남 7녀를 키워내셨다. 어머니의 아픈 손가락인 첫 번째 딸은, 생후 두 달만에 어머니
1923년 3월 22일. 우리 어머니 김성춘 여사님의 생일이다. 오는 3월이면 만 나이로 100세가 되신다. 이웃들이 묻는다. 어머니의 장수비결이 무엇이냐고. 혹시 집안이 장수하는 가문이냐고..... 유전은, 아니다. 어머니는 4남2녀의 막내인데, 형제분들 중 가장 오래 사신 경우가 80대 중반이다. 요컨대, 장수혈통은 아니란 얘기다. 그럼, 무엇이 장수의 비결일까? 어머니와 함께 산 지 20년, 같은 방을 쓴 지가 10년 째다. 내가 경험하고, 관찰하고, 생각하는 어머니의 장수비결을, 10가지로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열거하자면, 1) 일, 2) 식사, 3) 병원, 4) 자녀, 5) 기도, 6) 마음 둘 곳(바다), 7) 잠, 8) 딸, 9) 긍지, 10) 감사 등이다. 참고로, 이하의 내용은 제주장수복지연구원과 서귀포시 노인회가 업무협약을 체결한 이후, 서귀포시 노인회 산하 노인대학과 대학원에 특강을 다니면서 다루는 주제들이다. 1) 일 일은 우리집의 가훈에 다름아닌, 어머니 생애의 핵심 가치다. 어머니의 삶을 이끌어 온, 얼·혼·정신이라고나 할까. 말하자면 삶의 전부다. 100세가 되신 오늘날도, 입에 달고 하시는 말씀이, “노는 것도 혼이 싯주.
"정옥아, 나가 죽어도, 니가 '어머니' 허멍 불르민, 얼른 일어낭 가마. 아고, 경헌디, 나가 기신이 어성 빨리는 못갈거 닮다. 경허난, 홑썰 기다리라 이!!!" 이제 3월 22일이면 만 나이로 100세가 되시는 우리 어머니, 김성춘 여사님의 신신당부다. 아무렴요, 어머니! 어머니가 눈을 감아버리면, “어머니 눈 틉서, 제발 눈 한 번만 터봅서!”라고 어머니를 부르고 또 부를 터다. 우선은, 올 봄에 어머니의 100세 생신을 잘 맞이해야 하리라. 장수노인의 반열에 올라서시기를 두 손 모아 빌어본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2년 1월말 기준, 제주 인구는 66만3526명이다. 이중에서 90세는 1만6019명, 92세 9969명, 94세 5117명, 96세 2602명, 98세 1071명, 99세 648명이다. 연령별 생존확률은 70세 86%, 80세 30%, 90세 5%로, 90세가 되면 100명 중 5명만이 생존한다. 이 조사를 함께 한 국민연금공단과 건강보험공단이 제시한 바, 우리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평균 나이는 76~78세다. 사실 제주도는 ‘장수의 섬’으로 익히 알려진 곳이다. 2022년 12월 말 현재 전국적으로 100세 이상 인구는 6472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