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재를 시작할 때 나는, “제주민요가 제주경제사 연구의 생생한 기초자료로서 가치가 높기 때문에 제주민요 사설에 녹아 있는 당시의 역사, 사회, 문화, 경제생활들을 살펴봄으로 해서 제주경제사 연구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라고 대충 짐작했다. 제주도 민요에는 제주도의 풍토, 역사, 민속, 산업, 경제, 사회, 종교, 문화 등 제주도 도민의 생산방법과 생활양식 및 사고방법이 들어있다. 따라서 사설에 나타난 당시의 생산 활동, 경제생활, 경제적 행위, 경제현상 등과 제주경제사와의 연관관계를 모색해 볼만 하다(민요와 경제학과의 융합을 ‘Benjonomics’라 한다). 이를 통해 제주민요와 제주경제사를 융합(融合)한 학제간 연구가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 알고 보니 이러한 시도는 민요 연구의 아주 일부분에 불과하며 이미 다양한 관점에서 선학(先學)들에 의해 많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민요는 서민(庶民)적이고 기능적이며 지역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 민요는 지역마다의 서민생활을 그대로 축약하며 한 지역의 특성을 그대로 구현하고 있다. 개인이나 집단은 일정한 테두리 안에서 삶을 살아가고 문화를 공유하면서 서로
저 꿩이나 잡았으면 살찐 날개 쪽은 시엄마나 드렸으면~ 힐끔 보는 눈 쪽 일랑 씨아방을 드렸으면~ 우뚜릇뚜 룻뚜우 우뚜릇뚜 룻뚜우~ 걷고 걷은 종아릴랑 시동생을 주었으면~ 쇠톱 같은 주둥일랑 시누이나 주었으면~ 우뚜릇뚜 룻뚜우 우뚜릇뚜 룻뚜우~ 길고 길은 꼬랑질랑 서방이나 드렸으면~ 썩고 썩은 가슴일랑 서룬 내나 먹었으면~ 우뚜릇뚜 룻뚜우 우뚜릇뚜 룻뚜우~ 저 꿩이나 잡았으면 저 꿩이나 잡았으면~ 혹 이 노래를 아시는 분이 계실까? 얼른 장담하건데, 들어 본 거 같다고 기억하시는 분조차 거의 없으실 게다. “우뚜릇뚜 룻뚜우 우뚜릇뚜 룻뚜우~” 라는 후렴이 있어 이런 노래도 있었나, 갸우뚱 하실 정도. 이 노래는 1970년대를 풍미한 어니언스(임창제, 이수영)의 첫 독집앨범에 수록된 곡으로 제주민요를 대중 가요화한 ‘며느리’라는 통기타곡이다. 아마 지금 50대 중반 이후 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분위기잡고 나름 애창했을 ‘작은 새’가 수록된 어니언스(양파들?)의 데뷔음반이다. “고요한 밤하늘에 작은 구름 하나가 바람결에 흐르다 머무는 그 곳에는 길을 잃은 새 한 마리~집을 찾는다.” 며느리는 시집오기 전 친정어머니 당부대로 벙어리 행세하면서 시집살이했다. 그렇
▲ 처첩(妻妾)이 함께 찍힌 20세기 초 가족사진, [사진= 네이버 이미지] 故 김영돈 교수님은 과거 제주여인들이 맷돌을 돌리거나 방아를 찧으면서 부르던 맷돌ㆍ방아노래를 자립과 근면의 노래, 팔자와 한탄의 노래, 사랑과 원한의 노래, 시집살이 노래, 집안 노래, 경세(警世)의 노래, 꿈의 노래, 신앙과 풍토의 노래 등으로 구분하였다. 그 ‘시집살이 노래’ 중에 처첩간(妻妾間)의 ‘시앗 싸움’을 다룬 노래가 있다. ‘큰 각시’는 ‘큰 각시’ 대로, ‘족은 각시’는 ‘족은 각시’ 대로 구구절절 서럽고 아픈 사연들이 가득하다. “겉보리 껍질만 먹을지언정 시앗이랑 같은 집에 살 수 있으랴. 물이 없어 나쁜 물을 먹는다 해도 같은 물을 마시기 싫다. 시앗이랑 같은 길로 다니기 싫다. 길을 다시 뺄 수 있다면 시앗이 다니는 길은 따로 빼줘라.” “갓 스물 나이에 여든 살 남편을 맞이하니 두 번 세 번 물 덜은 밥 씹어 달라 엄살이더라. 호강하려 남의 첩 들었는데 어디 간들 놀 수
▲ 영등굿. [네이버 이미지] ‘서우젯소리’는 제주도의 영등굿에서 신과 사람이 함께 어울려 흥겹게 놀며 부르던 노래다. ‘산신서우제소리’, ‘요왕서우제소리’, ‘영감서우제소리’라고도 한다. 이 노래는 무의식에서 부르는 놀이 무가(舞歌)로 신을 놀리고(?) 기원하는 ‘석살림’ 재차(祭次, 차례)에서 부른다. 원체 곡의 흥겨워 노동요 화(化) 됐거나 놀 때 춤추며 부르는 유희요로 변이(變異)되었다. 하지만 단순히 유흥 목적만이 아니라 어려운 환경을 헤쳐 나갈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하는 숨은 뜻도 있다. * 석살림=제주도 무당굿 중 신(神)들을 재미있게 놀리고 소원을 비는 재차, ‘석(席)’이란 신의 자리, 또는 굿하는 장소 등을 일컫기도 하지만 굿의 한 제차나 과정을 이르는 말이기도 함. 제주도는 예전부터 무속(巫俗)이 성행하였다. 무가(巫歌)들도 다양하다. 본래 ‘서우젯소리’는 제주도 무가의 하나이다. 이 노래는 제주도에서 영등굿 등의 굿을 할 때 석살림이나 영감놀이 등의 재차에서 불
▲ [사진=구글] 매년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연휴가 지나면 이혼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올해는 5인 이상 집합금지라는 방역지침을 철저히 지킨 탓에 설 이후 이혼신청 건수가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명절이란 사실만으로 그동안 누적된 갈등이 폭발하며 이혼을 감행(?)하는 경우가 생겨난다. 대부분의 명절 준비를 여자들이 도맡아 하는 차별적 관행 탓이다. 그렇다고 남자들이 속 편하게 들어 누워 놀고먹기만 하진 않는다. 이래저래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제주여성들이 하는 일은 집일, 밭일, 물질에 이르기까지 두루 걸쳐 있다. 여성들의 삶은 늘 노동의 연속이고 일이 있는 곳에서는 항상 일노래가 불려졌다. 여성들은 노래를 통해 노동의 고통을 잊을 뿐 아니라 현실의 괴로움과 고통을 극복해내는 지혜를 스스로 얻어냈다. 특히 여성요(謠)에는 여성의 애환을 노래하는 사설이 많다. 사설의 대부분은 여성들이 겪는 생활고, 서러움, 시댁과의 갈등, 좌절 등의 신세한탄과 저항의지, 기대, 소망들이다. 시집살이 노래는 시집간 여자의 생활주변을 읊고 있다. 현실을 한탄하거나 타협하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반발한다. 부당한 속박을 고발하고 항거하는 의지를 보여주
요번 신구간(新舊間) 때 본가에 가서 집 마당에 있는 목련나무를 가지치기 했다. 집 울타리를 벗어난 가지나 대책 없이 높게 솟은 가지들을 전지톱으로 말끔히 쳐냈다. 간 김에 낡은 가구나 쓸모가 다한 큰 물건들도 예를 갖추고 내다 버렸다. 이처럼 제주에서는 신구간에 이사만이 아니라 집 고치기, 마당 흙 파기, 울타리 돌담 고치기, 나무 자르기, 가지치기, 묘소 수축(修築) 등을 한다. 건드려서는 안 될 땅을 파거나 그런 나무를 베어서 담당 지신(地神)이 노하여 받는 재앙인 동티(動土) 때문이다. 아무 때나 이런 일을 하면 동티가 나서 그 벌로 질병에 걸리거나 심하면 죽게 된다고 생각해서이다. 그래서 행여 통티 날 일 있으면 신(神)들이 임무교대를 위해 잠시 하늘로 올라간 사이, 대한(大寒)후 5일째부터 입춘(立春) 3일전까지 해야 한다. 그게 다 미신이고,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애써 어머니를 설득(?)시키려 할 필요는 없다. 그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하면 일 년이 편안하다. ‘성주풀이’는 새로 지은 집에 가신(家神)인 성주신을 모시는 무속의례이다. 제주지역에서 행하는 성주풀이는 집이나 건물을 다 짓고 나면 적
▲ 초가마당. [사진=제주도] 제주도 초가는 크기에 따라 두 칸, 세 칸, 네 칸 집으로 구분한다. 또는 울담 안에 배치된 집의 수에 따라 ‘외커리집(一자형)’, ‘두커리집(二자형)’, ‘세커리집(ㄷ자형)’, ‘네커리집(ㅁ자형)’으로 부른다. ‘외거리집’은 ‘안거리’ 한 채와 부속채로 이루어진 집, ‘두거리집’은 ‘안, 밖거리’를 갖춘 두 채 집을 말한다. ‘안거리’와 ‘밖거리’는 마당중심의 이(二)자형으로 마주보거나, 기억자(ㄱ)형태로 배치된다. ‘집터 다지는 노래’는 집짓기 위해 터를 다지며 부르던 노래다. ‘원달구 소리’라고도 한다. 어어 원달구야 에에 원달구야 에에 원달구야 삼세 번 채랑 들러다구 천추 만년 살을 집터 은곽 ᄀᆞᇀ이(같이) 다져보자 좌청룡을 돌아보니 할로산(한라산) 일주맥에 청룡백호를 돌아보니 청룡백호가 확실쿠나(하구나)
▲ 도리깨질 [사진=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제주도 농촌가옥은 마당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마당은 농사수확은 물론 각종 가정행사가 이루어지던 생활공간이다. 다른 농촌지역에서 그렇듯이, 제주에서도 밭이나 마당에서 ‘도리깨’를 이용하여 보리나 조, 콩 등 잡곡을 타작(打作)했다. 타작은 ‘도리깨’를 사용하는 일이라 ‘도리깨질 소리’, 주로 마당에서 이루어져 ‘마당질 노래’라고 했다. 혹은 ‘도리깨’로 보리를 타작했기 때문에 ‘보리 타작소리’라고 했으며 콩이나 팥도 ‘도리깨’로 타작하기 때문에 그냥 ‘타작노래’라고 했다. 욜로(요기서) 요레(요기로) 누게나(누가) 앉고 허야도 홍아 허야도 하야 설룬(서러운) 정례 말이로구나 두드렴시민(두드리다보면) 부서나진다 ᄒᆞᆫ(한) 번 ᄄᆞ령(떼려) 열 방울 썩(씩) 두 번 두드령 백 방울 썩 부서나지라 깨어나지라 두드렴시민 굴축난다(몹시 줄어든다) 질ᄀᆞ&
▲ 제주 논농사. 맷돌노래는 보리나 조 같은 곡물을 갈기 위해 맷돌 돌리며 부르던 제분(製粉)요다. 맷돌 돌리는 일은 대부분 여자들 몫이었다. 단순하면서 지루한 작업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가사들이 전이되고 변용되어 나타난다. 제주민요 연구 선구자이신 故 김영돈 교수님은 이를 자립과 근면의 노래, 팔자와 한탄의 노래, 사랑과 원한의 노래, 시집살이 노래, 집안노래, 경세(警世)의 노래, 꿈의 노래, 신앙과 풍토의 노래로 구분하여 정리해 놓으셨다. 이번 글에서는 먹고 사는 생업(生業)과 부업(副業)에 관한 사연들을 소개한다. 읽다보면 해학과 풍자에 스르르 몰입하게 된다. 일부 지방색을 나타내는 내용에 대해서는, 그냥 ‘옛날 얘기려니’ 하고 담대히 넘기시는 게 건강에 좋을 듯하다. 교래(橋來), 송당(松堂) 큰 애기들은 가죽 감태 쓰고 피(稗) 방아 찧으러 나간다. 피는 일곱 차례 찧어야 모두 벗겨져 비로소 먹을 수 있다. 이를 ‘능그기’라 한다. 예전에는 능그기 힘들어서 피 농사를 꺼렸다. 이래저래 고생이 많았다. 반면 서목골 큰 애기들은 돼지 창자 훑으러 모두 나갔다. 돼지 부산물을 가져다
제주에서는 초가지붕을 띠로 덮고 바람에 날라 가지 않도록 바둑판모양으로 줄을 얽는다. 이 때 사용하는 줄을 ‘집줄’ 이라하며 줄 꼬는 작업 때 부르던 노래를 ‘집줄 놓는 노래’라 한다. ‘집줄 놓는 소리’는 초가집을 단단하게 엮는 띠 줄을 ‘호랭이’를 이용해 꼬면서 부르는 노래다. 줄 꼬는 작업은 날을 정해 가족 혹은 마을공동으로 치러진다. ‘줄 빈다’ 혹은 ‘줄 놓는다’라 한다. 초재(草材)가옥인 초가는 잔디, 새, 억새, 갈대, 왕골 등 초근(草根)식물을 이용하여 만든 가옥이다. 다른 지방에서는 대부분 농사부산물을 지붕재료로 사용한다. 제주도 초가는 한라산 초원지대의 자연초재(草材)인 띠(새, 茅)를 사용했다. 2년에 한 번씩 초가지붕을 새로 인다. 10월∼12월초까지. 지붕 이을 때 자(子), 오(午), 묘(卯), 유(酉) 천화일(天火日)을 피하여 지붕 인다. 만일 천화일에 지붕을 손보면 화재나 재앙이 생겨 집안이 쇠퇴한다는 속설이 있다. 초가지붕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거센 바람에 대항하며 살아온 제주사람들의 삶의 역
예전 제주에서는 마을어른이 돌아가시면 ‘골’ 별(別)로 ‘접군’이나 ‘골군’, 혹은 ‘유대군’이라 부르는 마을남자들이 합심하여 상여를 매고 장례 치렀다. ‘행상소리’는 이 때 부르는 장례의식요의 한 유형으로 장례의식 관련 내용과 인생무상(人生無常)을 풀어내고 있다. 먼저, 관(棺)이 방문을 나와 상여(喪輿)에 오르기 전 소금과 콩을 관에 뿌리며 액(厄) 막음했다. 그리고 상여 앞으로 마와 명을 두 줄로 매달아 그 집안여자들이 끌고, 뒤에 상여가 따랐다. “술집에 갈 적엔 친구도 많았지만 북망산천 갈 적엔 나 혼자로다. 인제가면 언제 오나 한번 가면 못 올 길.” 아무리 의좋은 부부도 한날한시 같이 죽음에 이르고 싶어 하지만, 그저 ‘소망’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간다간다 나는 간다 저 세상으로 나는 간다 어화넝창 어하로다 어젠 청춘 오늘은 백발 정든 자손 버리고 나는 간다 도두봉도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산 맑고 물 좋은 곳으로 나는 간다 불쌍하구나 가련도 하다 가자가자 어서 가자 오늘은 날씨도 좋고 가련도 하
▲ 영주십경의 녹담만설(鹿潭晩雪), 귤림추색(橘林秋色) 조선 말 제주도 대표 지식인 매계(梅溪) 이한우(李漢雨, 1818~1881)는 제주에서 경관이 특히 뛰어난 열 곳을 선정하여 ‘영주십경(瀛州十境)’이라 하고 시적(詩的) 향취가 풍기는 이름을 붙여 시(詩)를 지었다. 그 뒤 여러 대가들이 그 시에 차운(次韻)하여 많은 시를 남겨 현재 제주의 대표 명승지(名勝地)로 꼽히고 있다. 이한우가 선정한 영주(瀛洲) 십경(十景)은 성산일출(城山日出): 성산 해돋이, 사봉낙조(紗峯落照): 사라봉 저녁노을, 영구춘화(瀛邱春花): 영구(들렁귀)의 봄꽃, 정방하폭(正房夏瀑): 정방폭포의 여름, 귤림추색(橘林秋色): 귤림의 가을 빛, 녹담만설(鹿潭晩雪): 백록담 늦겨울 눈, 영실기암(靈室奇巖): 영실의 기이한 바위들, 산방굴사(山房窟寺): 산방산 굴 사찰, 산포조어(山浦釣魚): 산지포구 고기잡이, 고수목마(古藪牧馬): 초원에 기르는 말 등이다. 이한우는 먼저 ‘성산출일’ 다음에 ‘사봉낙조’를 놓아 하루를 말하였고, 춘하추동을 두어 한 해를 이야기하였다. ‘영구춘화&rs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