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0조원에 이르는 세수 펑크를 막으려 외국환평형기금을 4조~6조원 헐어 쓰기로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주택도시기금에서도 2조~3조원을 가져다 쓰기로 했다. 세수가 일시적으로 부족하면 다른 데서 돌려쓸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전용하겠다는 기금의 성격이다. 외국환평형기금은 환율이 급등락하면 달러나 원화를 사고팔아 환율을 안정시키는 ‘외환 방파제’ 성격의 국가 비상금이다. 이미 지난해 같은 이유로 20조원을 전용했는데 올해 또 손대겠다는 것이다. 지난 9월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외국환평형기금 활용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는데 한달여 만에 이를 뒤집었다. 최근 원ㆍ달러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인 1400원을 위협하는 등 고공행진하고 있다. 미국의 경기가 예상보다 좋아 금리인하가 미뤄질 가능성이 높고, 최근 우리나라 수출이 부진한 영향이다. 외환위기까지 겪은 나라에서 세수가 부족하다고 이태 연속 외국환평형기금을 헐어 쓰겠다는 것은 역사의 교훈을 망각한 악수(惡手)다. 주택도시기금 전용 발상도 명분이 약하다. 주택도시기금은 아파트 청약통장 가입자들이 내는 돈으로 조성한다. 정부가 공공임대주택 공급 등에 써야 할 주거복지 재원이다. 서민
2분기 역성장(-0.2%)에 이어 3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0.1%에 머물렀다. 한국은행의 8월 수정 전망치 0.5%보다 0.4%포인트 낮다. 이런 추세라면 정부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2.6%)는커녕 한은 전망치(2.4%) 달성도 쉽지 않다. 3분기 성장 부진은 수출 감소 때문이었다. 자동차와 이차전지 등 화학제품 중심으로 0.4% 감소했다. 주력인 반도체 수출도 심상찮다. 7~8월 두자릿수였던 증가율이 9월에 거의 반토막 났다. 성장률 기여도에서 순수출(수출-수입)이 –0.8%포인트로 거의 1%포인트 갉아먹었다. 12개월 연속 증가해온 전체 수출도 10월 1∼20일 327억66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9% 감소했다. 중국경제 성장률이 예상보다 낮고, 미국ㆍ중국 간 무역 마찰이 심화하는 점은 수출전선의 암초다. 문제는 2ㆍ3분기 저성장을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없다는 점이다. 물가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노동ㆍ자본ㆍ자원 등 생산요소를 동원해 이룰 수 있는 잠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어 걱정을 더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5월 추정한 올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다. 2020~ 2021년 2.4%였던 것이 20
한국은행이 3년 2개월 만에 통화정책 방향을 바꿨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11일 기준금리를 연 3.5%에서 3.25%로 0.25%포인트 낮췄다. 미국이 지난 9월 금리를 0.5%포인트 낮추는 빅컷을 단행하는 등의 글로벌 통화정책 전환(피벗)에 한국도 늦게나마 합류할 수 있어 다행이다. 내수를 진작하기 위해선 금리 인하가 필요한데 한은은 치솟는 수도권 아파트값과 급증하는 가계부채 때문에 주저했다. 그러다가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 강화로 가계 빚 증가와 집값 급등세가 진정되는 조짐을 보이자 마침내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장기화한 고금리와 고물가 속 부진의 늪에 빠진 내수가 회복될 수 있는 여건은 조성됐다. 그렇다고 기준금리 인하만으로 금방 내수가 살아나기는 어려운 구조다. 기준금리가 인하됐으니 기업과 가계의 대출 이자 부담은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당장 가시적 효과가 나타나긴 어려워 보인다. 가계대출을 억제하라는 금융당국의 압박에 은행들이 그동안 예금금리는 내리고 대출금리는 가산금리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올려왔기 때문이다. 금리 인하가 내수 회복으로 이어지게 하려면 집값 상승을 막아야 한다.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가 둔화됐다고 하지만 오름세는 여전하다. 지난해 서울
세계는 지금 첨단 전략산업 패권전쟁 중이다. 반도체와 이차전지 산업 등에 국가가 나서 대규모 보조금을 투입한다. 동시에 법적 제도적으로 국가간 기술 이전과 교역도 규제한다.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EU) 등이 경쟁적으로 나서는 첨단산업 국가대항전에서 한국 정부는 보이지 않고 기업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주요국들이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며 반도체산업 육성에 나섰지만, 한국의 보조금은 ‘0원’이다. 미국은 자국 내 반도체 제조기업에 총 527억 달러를 지급하는 반도체과학법(칩스법)을 2022년 제정해 시행 중이다. 중국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높이기 위해 2023년부터 대표 기업 SMIC에 2억7000만 달러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일본도 연합 반도체 기업인 라피더스 설립에 63억 달러 보조금을 투입했다. 이차전지 산업도 마찬가지다. 배터리 기업이 없는 미국은 부품의 50% 이상을 북미지역에서 생산ㆍ조립한 경우 보조금을 지급(인플레이션감축법ㆍIRA)하는 방식으로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다. 중국은 전기차 배터리 업체 CATL에 지난해 8억 달러 넘게 지원했다. 일본도 도요타 등 완성차ㆍ부품 업체에 3500억엔 보조금을 투입하기로 했다. 그사이 정부
올해 국세 수입이 당초 전망치보다 약 30조원 덜 걷힐 것으로 정부가 재추계했다. 세수가 367조원을 넘을 것으로 보고 예산을 짰는데 337조원대에 그칠 것으로 예측됐다. 지난해 사상 최대인 56조4000억원의 세수 결손에 이어 2년 연속 대규모 ‘세수 펑크’가 공식화됐다. 세수 결손의 주된 요인으로 기업 실적 부진에 따른 법인세 감소가 지목됐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글로벌 교역 위축과 반도체 업황 침체로 법인세 감소폭이 예상보다 컸다”고 밝혔다. 당초 전망보다 덜 걷히는 법인세가 14조5000억원으로 전체 세수 결손의 절반을 차지한다. 부동산 거래 부진으로 양도소득세가 5조8000억원 덜 걷히고, 유류세 인하 조치를 계속 연장한 결과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도 4조1000억원 펑크 났다. 하지만 기업 실적 부진이나 자산시장 위축은 예견된 일이다. 정부가 상저하고(上低下高)의 장밋빛 전망을 고집하며 세수 추계의 기본인 경기 예측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대규모 세수 추계 오류는 최근 연례화했다. 2021년 이후 4년 연속 수십조원 오차를 냈다. 세수 오차율이 2021~2023년 3년 연속 두 자릿수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8.1%에 이른다. 2000
배추 한 포기 가격이 2만원을 넘어섰다. ‘금배추’로 불릴 정도다. 지독한 폭염과 가뭄 탓이다. 강원도 지역 고랭지 배추 작황이 부진한 영향이 컸다. 날이 너무 뜨거워서 배추 모종을 심는 족족 타죽었다. 다급해진 정부가 중국산 배추를 수입했다. 정부 차원의 배추 수입은 2010년, 2011년, 2012년, 2022년에 이어 다섯번째다. 수입 배추에는 한시적으로 할당관세(0%)를 적용했다. 대형마트 등 유통업체에 장려금을 지급해 배추의 조기 출하를 유도하고 할인판매도 지원했다. 올봄 사과 값이 한개에 1만원까지 뛰어오르며 ‘금사과’ ‘애플레이션(apple+inflation)’ 조어가 나돌 때 취했던 조치(대체 농산물 긴급 수입, 할당관세 적용, 납품단가와 유통업체 할인판매 지원 등)와 비슷하다. 추석과 추분이 지나서야 폭염의 기세가 꺾였다. 인류가 앞으로 보낼 여름 중 올해가 가장 선선했던 시기로 기록될 것이란 관측까지 나온다. 한반도라고 예외일 리 없다. 기온이 세계 평균보다 더 가파르게 오르며 지역 특산 농산물 재배지도가 크게 변화했다. 사과는 대구에서 강원도 양구로, 배는 전남 나주에서 경기도 안성까지 북상했다. 제주도 특산물이었던 귤이 전남에 이어 서울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가 18일(현지시간) 피벗(통화정책 전환)에 나섰다. 기준금리를 연 5.25∼5.50%에서 4.75∼5.0%로 0.5%포인트 낮추는 ‘빅컷’을 단행했다. 아울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이 향후 금리 수준을 전망하는 점도표에서 연말 기준금리를 4.4%로 제시함으로써 연내 금리를 더 낮출 수 있음을 예고했다. 미 연준의 금리인하는 코로나19가 급속히 번졌던 2020년 3월 이후 4년 반 만이다. 8월 물가상승률이 2.5%로 목표치(2%)를 향해 가는 반면 악화하는 고용시장을 고려한 선택이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아직 남아있지만 경기 후퇴 방어에 베팅한 것이다. 연준이 금리 0.25%포인트 인하(베이비스텝)가 아닌 빅컷을 단행한 것은 고용시장이 냉각하고 있다고 판단해서다. 연말 실업률 전망이 4.4%로 6월 전망치(4.0%)보다 상승한 반면 경제성장률 전망은 2.1%에서 2.0%로 0.1%포인트 하향 조정됐다. 유럽ㆍ영국ㆍ캐나다에 이어 미국이 통화정책 완화 기조로 전환함에 따라 글로벌 금리인하 시대가 도래했다. 특히 미국의 빅컷에 따라 정치권의 한국은행에 대한 금리인하 압박은 더욱 커질 것이다. 정부와 여당인 국민
추석 명절이 예년보다 일찍 다가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는 속담도 있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답답하고 우울한 소식들이다. 소비가 부진해 장사가 안되고, 경기가 침체해 세금이 덜 걷힌다. 가계부채가 악화하며 쌓이는데 집값은 다시 또 오른다. 게다가 어디가 갑자기 아파도 병원에서 치료받기조차 힘들다. 오랜 고물가ㆍ고금리 상황에서 실질소득이 감소했다. 가계 여윳돈이 8개 분기 연속 축소하며 평균 100만원 선에 턱걸이했다. 이런 판에 안정돼 가던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정부가 부동산시장 경착륙을 막겠다며 디딤돌ㆍ버팀목대출 등 저금리 정책 대출을 풀어 집 구매를 독려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집값과 전셋값이 다시 뛰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빚투(빚내 투자)’가 재연됐고,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대출이 급증했다. 그 결과, 불어나는 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에 내수가 위축되는 악순환이 나타났다.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로 집계되는 등 물가가 점차 안정되는 추세다. 물가상승률만 보면 기준금리 인하를 검토할 만한데 급등세인 집값 때문에 한국은행이 고민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브리핑에서 경제가 ‘블록버스터급’
정부가 올해보다 3.2% 늘어난 677조4000억원 규모 내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증가율로는 역대 최저인 올해 2.8%보다 높지만, 내년 경상성장률(실질 성장률+물가상승률) 전망치 4.5%보다 낮은 ‘긴축 예산’이다. 정부가 3년 연속 20조원대 지출 구조조정을 하고, 건전재정 기조를 이어가는 것은 긍정 평가할 만하다. 불필요한 예산을 덜어내고 취약층 보호와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집중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정부가 씀씀이를 최소화하며 허리띠를 졸라매도 국가채무는 올해 1196조원에서 내년 1277조원으로 불어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올해 47.4%에서 내년 48. 3%로 높아진다. 문제는 저출생ㆍ고령화로 재정 운용의 근간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고정비용처럼 빠져나가는 의무지출이 가파르게 늘어나 정부 계획대로 지출을 조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의무지출은 공적연금과 국채 이자, 지방교부세,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 법에 지급 의무가 명시돼 있다. 의무지출은 정부가 필요할 때 줄이거나 늘릴 수 있는 재량지출과 상반된 개념이다. 의무지출은 이미 올해 전체 재정지출에서 52.9%를 차지하며 절반을 넘어섰다. 앞으로 5년간 연평균 5.7%씩 늘어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22일 현행 연 3.50% 기준금리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2월 3.5%로 묶은 이후 13번째 동결이다. 뛰는 아파트값과 불어나는 가계부채를 염려한 조치다. 하지만 미국의 9월 기준금리 인하가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한은의 시간도 빨라지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금융통화위원 6명 중 4명이 향후 3개월 내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고 전했다. 7월 회의 때 2명이었던 금리인하 가능성 견해를 피력한 금통위원 수가 4명으로 늘었다. 이 총재는 “물가수준만 봤을 땐 기준금리 인하 여건이 조성됐다고 판단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면서도 “금융안정 측면에서 지금 들어오는 시그널을 막지 않으면 더 위험해질 수 있다”고 금리동결 이유를 밝혔다. 7월 금통위 직후 “차선을 바꾸고 적절한 시기에 방향 전환을 준비할 상황”이라고 밝혔는데 시장은 더 나빠졌다. 서울 등 수도권 아파트 값이 뛰고, 불안심리에 주택구매 수요가 늘어 가계대출이 급증했다.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잇달아 올렸는데도 효과가 없다. 서울 아파트 값은 22주 연속 상승했다. 5대 시중은행 가계대출이 8월 들어 보름 새 4조1795억원 불어났다.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 값이 심상치 않다. 강남ㆍ서초ㆍ송파구 등 강남 3구와 신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과거 최고점에 근접하던 주택 거래가 ‘마용성(마포ㆍ용산ㆍ성동구)’ ‘노도강(노원ㆍ도봉ㆍ강북구)’ 등으로 불이 옮겨 붙는 모양새다. 사람들이 현금을 쌓아둔 채 집을 사지 않는다. 주택 거래와 가계대출은 흐름을 같이한다.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은행권 가계대출이 4~7월 넉달째 증가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은 4월 4조5000억원, 5월 5조7000억원, 6월 6조2000억원에 이어 7월에도 5조6000억원 급증했다. 서울 등 수도권 아파트 시장이 꿈틀거리는 데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건설자재와 인건비가 오르며 신규 주택공급이 위축됐다. 아파트 분양가가 치솟자 신축 아파트 구매심리가 살아났다. 전세사기 여파로 빌라ㆍ다가구 등 비非아파트를 불안해하는 실거주자들이 아파트 전세 수요를 떠받쳤다. 정책 오류도 자못 컸다. 정부는 시장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엉뚱하게 싼 금리로 돈을 풀었다. 그 결과, 4~6월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의 60%는 디딤돌ㆍ버팀목 대출 등 국토교통부가 공급한 정책금융 상품이 차지했다. 디딤돌ㆍ버팀목 대출은 정부가 기금을 통해 금리차액을 보
‘글로벌 ATM(현금인출기)’ ‘미국이 기침하면 한국은 감기’ ‘떨어질 때는 폭삭, 오를 때는 찔끔’. 허약 체질의 한국 증시를 빗댄 표현이다. 미국발 경기침체 우려에 사상 최대 하락폭을 기록한 5일 ‘검은 월요일(블랙 먼데이)’ 증시가 이를 거듭 입증했다. 블랙 먼데이 전후 사흘간의 주가를 보면 일본은 폭락분의 약 70%를 회복했다. 하지만 한국은 역대 하락분을 만회하기에 힘이 부쳤다. 그나마 코스피를 반등시킨 주역은 개인투자자들이었다. 외국인과 기관의 매도 물량을 사들였지만 역부족이었다. 7월 초까지 국내 증시는 외국인이 주도했다. 상반기 외국인의 주식 순매수 규모는 22조9000억원으로 반기 기준 역대 최대였다. 시가총액 대비 외국인 보유 비중은 7월 10일 36.1%로 연중 최고를 기록했다. 그러나 지난 5일 외국인이 1조4495억원을 순매도하자 코스피는 8.87% 폭락했다. 외국인 비중이 크게 높아진 상황에서 외국인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가 증시가 흔들리는 ‘윔블던 효과’가 현실화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신흥국에서 먼저 돈을 빼내가는 속성이 있다. 그러다가 상황이 좋아지면 선진국부터 투자한다. 한국이 세계 10위권 경제강국이라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