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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 창가에서] 열린의사회 고병수 원장, 몽골-카자흐스탄 접경 바양울기로 가다

 

7월 초순의 몽골은 이제 막 여름으로 들어가는 날씨를 보여준다. 낮에는 25~30도 가량, 밤에는 10~15도이다. 한국의 가을 초입 날씨 같다고 보면 된다. 여름의 햇볕이 따갑지만, 우리나라처럼 습하지 않은 건조 기후여서 그늘에 가면 낮에도 시원하다.

 

재난 상황에서는 열린의사회라는 NGO 단체의 재난의료팀 소속으로 태풍, 지진, 전쟁터 등지로 다녔던 나는 몽골은 15년 전부터 여러 차례 진료 활동을 해오던 곳으로 친근하다. 동으로는 칭기즈칸의 고향이라는 헨티를 넘어서, 남쪽으로는 고비사막 너머 어믄고비 지역으로, 북쪽으로는 러시아와 접하면서 바이칼 호수가 가까운 홉스골이나 불칸 지역으로 다녔다. 이번에는 몽골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바양울기 아이막(Баян-Өлгий аймаг, Bayan-Ölgii Province) 지역으로 가게 되었다.

 

‘풍요로운 땅’이라는 의미를 지닌 바양울기는 몽골의 21개 아이막(주[州]) 중의 하나이지만, 몽골족이 아니라 인구의 90% 정도가 카자흐족이다. 언어도 몽골어를 사용하지 않고 튀르키예,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사람들과 같은 말을 쓰며, 당연히 대부분 무슬림이다. 카자흐(몽골에서는 ‘카작’이라고 발음한다)족이면서도 오래전 역사 속에서 몽골에 편입된 형태로 보인다.

 

1,700km를 가서 도착한 바양울기

 

 

지난해 고비사막 진료에 이어 다시 찾은 몽골은 울란바토르를 중심으로 많이 변하고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울란바토르 시내는 이미 고층 아파트가 수없이 들어서고, 길도 많이 정비되어서 다소 깨끗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아침 8시에 인천 공항을 출발해서 11시 30분쯤(한국 시간) 울란바토르 외곽에 새로 지어진 칭키스칸 국제공항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부리나케 버스에 올라탔다. 개인 짐뿐만 아니라 의약품과 장비까지 버스에 싣고 출발한다. 열린의사회 NGO에 속한 우리는 의사, 치과의사, 간호사 및 약사로 이루어진 17명 진료활동팀과 10명의 자원봉사자, 2명의 사무국 직원 총 29명이 이번 바양울기 활동에 참여했다.

 

울란바토르에서 바양울기 아이막까지는 약 1700km 거리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두 번 왕복하는 거리에 맞먹는다. 도로 사정도 안 좋아서 버스로 쉬지 않고 가면 약 40시간 걸린다. 중간에 초원 어디엔가 있는 마을의 게르(Ger) 같은 숙소에서 자게 되면 그 시간을 훌쩍 넘기게 되니 이렇든 저렇든 거의 이틀이 걸리는 셈이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여러번 해외 진료에 참여했었기 때문에 출발할 때부터 도착할 때까지 덤덤하다. 반면 처음 몽골을 찾은 봉사자들은 초원에 풀어놓은 양 떼나 말들만 봐도 재미있고, 드넓은 초원에 하나 두 개씩 지어진 게르를 보며 사진을 찍어댄다.

 

하지만 밥 먹고 이동하고, 밥 먹고 이동하기를 계속하다 보면 얼마 안 가서 풀만 봐도 지겹고, 양 떼들이나 말들이 보여도 심드렁하다. 오래 앉아 있어서 허리가 아프고 졸려서 잘 뿐이다. 신나서 깔깔대던 대학생 봉사자들은 밤이나 낮이나 아예 눈을 뜨지 않는다.

 

울란바토르에서 서쪽 끝 바양울기까지는 딱 하나의 도로만 있다. 밤 중에 잠시 도로를 벗어나서 초원에 들어서게 되면 완전히 길을 잃을 수도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나는 몽골을 다니면서 몇 번 그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제까지와는 달리 아주 먼 길을 가고 있기에 갈 때까지 긴장을 풀지 못했다. 더욱이 나는 이들 전체를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가게 하는 책임을 진 이번 팀의 단장이기 때문이기에 더욱 그랬다.

 

버스로 달리던 중 이틀째에는 알타이산맥이 이어져서 만들어지고, 4000여미터 넘는 만년설로 뒤덮이고, 골짜기에는 빙하가 있는 산들이 나타난다. 신라 때 혜초 선사가 이 설산들을 넘어 서역으로 갔다고 했던가. 그렇게 지루하기만 하던 초원길이 사라지고, 설산들도 등 뒤로 멀어질 때쯤 우리는 드디어 바양울기 아이막에 도착했다. 바양울기의 주도(主都)인 울기 시(市). 두 밤을 지내서 온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기진맥진해서 아무 데라도 쓰러져 눕고 싶은 심정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진료 준비를.....

 

아무리 지쳐도 봉사 활동을 하는 단원들은 티를 내지 않고 부지런히 약품 상자며 의료장비들을 진료 장소로 나른다. 그러는 사이에 단장인 나는 사무국 직원과 함께 우리가 묵을 숙소며 진료 장소들을 둘러보고 확인한다. 책임자나 관리자들을 만나서 인사도 하고, 내일 일찍부터 진료를 시작하는데 문제가 없도록 점검을 해야 한다.

 

이번에 우리 팀은 가정의학과 전공인 내가 소아 영역을 맡아야 했고, 그 외 내과, 일반외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치과, 한의과 선생님들이 각자 자기가 일할 곳을 찾아서 준비를 하고는 모두 숙소로 돌아갔다.

 

 

이번에 우리에게 진료 장소를 내준 곳은 주도인 바양울기 아이막의 공립병원이다. 과거 사회주의 영향을 받은 몽골도 지역마다 공립병원을 중심으로 보건소 형태의 일차의료기관들을 포진시켜 놓고 있다. 문제는 약품이나 의료장비가 아직까지는 열악하다는 점과 의료보험이 발달하지 못해서 이제야 울란바토르를 중심으로 시작하는 단계라서 주민들이 의료 서비스를 받을 때 어려운 점들이 많다.

 

이곳 병원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우리가 3일 정도 진료 활동을 하게 되는데, 현지 국회의원과 병원 관계자들이 환자들을 선별해서 오도록 미리 조치를 해서 약 2000명 정도 방문할 것 같다고 한다. 그 숫자에 우리는 바짝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인원으로 그 많은 사람들을 봐야 한다고? 장소를 둘러보고 준비를 살핀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내일부터 있을 진료 회의를 하게 된다. 다른 때보다도 긴장이 더 되고, 걱정도 많이 되는 밤이다. 간단히 회의를 마치고 근심을 안고 누웠는데, 웬걸 금세 코를 골며 잠이 들어버렸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2020년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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