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도내 한 주차장에 차량들이 들어서 있다. [제이누리DB] “월세에 주택청약저축에, 보험료에 ... 지출이 안그래도 빠듯한데 주차장 임대료까지 내야 합니까?" 제주시에 살고 있는 김모(28)씨는 “2년 전부터 직장생활을 하며 모아둔 돈으로 내년쯤 유지비가 덜 드는 경차를 살 예정이었다. 도내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대중교통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면서도 "하지만 지금 살고있는 원룸엔 주차장이 따로 없다. 공영주차장 임차료를 생각하면 옳은 선택인건지 의문이 들어 고민 중”이라고 토로했다. 제주시에 사는 이모(41)씨도 “단독주택 2층에 연세를 내면서 살고 있는데 차고지증명제로 차량구입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아파트 단지는 주차면이 많으니 걱정 없겠지만 나같은 사람들에게 이 제도는 차량을 사지 말라는 뜻 같다”고 말했다. 제주에서는 내년부터 차고지를 확보하지 못한 경우 차종에 상관없이 차량을 구입할 수 없다. 이미 차량을 몰고 있는 소유주라도 이사가는 곳에 주차공간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과태료 폭탄&
"됐다! 만세!" ▲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린 유네스코 제11차 인류무형유산보호 정부간위원회에서 제주해녀문화에 대한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결정이 내려지자 해녀 대표 강애심 씨와 원희룡 제주지사, 이병현 주유네스코 대한민국 대표부 대사, 문화재청 등이 환호하고 있다. 2016.12.1 [연합뉴스DB] 지난 2016년 11월 30일(현지 시각)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 간 위원회(무형유산위원회) 제11차 회의에서 제주 해녀문화(Culture of Jeju Haenyeo)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가 확정된 순간 해녀 대표로 참석한 강애심(70)씨가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오랜 세월 이어온 제주 해녀문화의 가치와 보전의 필요성을 세계인들로부터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5년의 세월이 흘렀다. 제주 해녀의 삶과 문화를 세 차례에 걸쳐 들여다본다. ◇ 숨비소리, '삶'과 '대결'의 차이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실내수영장에서 벌어진 숨 참기 대결 동영상 하나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2008년 10월 베이징 올림픽에서
▲ 제주 초등학교 교실. [연합뉴스] 지난 2010년 12월 제주어가 유네스코 소멸 위기 언어로 분류된 이후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제주도교육청은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교육이 중요하다고 보고 일선 학교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제주어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제주어 교육의 효과는 나타나고 있을까. ◇ 재미없는 제주어 교육 "제주어 재미없어요." "제주어요? 잘 모르겠어요." "배운 걸 또 하고 또 하고…. 지겨워요." 최근 제주지역 초등학생과 중학생에게 제주어 교육에 대해 질문을 하면 이 같은 반응이 돌아온다. 대부분 짧게 단답형 대답이 돌아올 뿐 긴 대답을 듣기 어려울 정도로 학생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심지어 자신이 제주어 교육을 받았는지조차 기억을 못 하는 학생도 여럿 있었다. 왜 그런 걸까. ▲ 제주어를 활용한 문양 디자인. [연합뉴스] 제주어를 가르치는 교사들로부터 그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중학교 교사인 A씨는 "제주어 교육이 체계 없이 진행되다 보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학년이 올랐는데도 똑같은 내용이 반복돼
▲ 강종열 화백이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작품 한가운데에는 민간인과 군인이 서로 손을 맞잡고 고개를 숙인 장면이 담겼다. [제이누리=박지희 기자] “오늘은 드디어 그림이 완성된 역사적인 날입니다. 캔버스 속 이들은 역사가 살아있고, 나의 작품으로 존재하는 한 더 이상 죽은 자들이 아닙니다. 진실을 말하는 전령으로 부활했습니다. 신이시여, 이제 당신이 내린 명을 완수했습니다.” ‘존엄, 여수의 해원(解冤)’ 전시장 곳곳에 적혀있는 작가노트의 일부다. 전남 여수의 한 바닷가가 배경인 그림이다. 겁에 질린 마을주민들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림 양쪽에는 집이 불타고 있고, 곳곳에는 시체들이 널려있다. 그 옆엔 확인 사살을 위해 총을 든 군인들이 어슬렁거린다. 여수지역에서 활동하는 강종열 화백(70)이 장장 3년 간 혼을 실어 그려낸 ‘여순사건’이다. 강 화백이 담고자 한 것은 여순사건의 참상이다. 공포, 슬픔, 원통함 등 산 자와 죽은 자들이 겪은 역사적 사실이다. 작품에는 여순사건 당시 상황, 시대적 배경 속에서 유가
여순사건은 제주4.3과 공통점이 많다. 두 사건 모두 제대로 된 증거 없이 무고한 사람들이 학살당했고, 과거엔 ‘무장폭동’ 및 ‘반란사건’이라는 오명으로 불렸다. 관계자의 친족들은 ‘빨갱이’라고 불려지면서 차별을 받기도 했다. 제주4.3은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지 21년 만에 전부 개정이 이뤄지고, 2014년부터는 국가추념일로도 지정되는 등 진상규명이 이뤄지고 있다. 반면 여순사건은 제16대 국회 때 잇따라 특별법이 발의됐으나 그때마다 무산됐다. 올해 겨우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갈 길이 아직도 멀다. 역사는 진실을 밝히고 끝나서는 의미가 없다. 이 진실이 영원히 기억되지 않는다면 역사의 정의는 없다. 동포인 제주도민을 죽일 수 없다고 국가에 맞선 이들과 진실을 규명하려 애쓰는 그들을 제주가 기억하고, 도와야 하는 이유다. 여순사건 73주년을 맞아 과거와 현재, 미래를 세차례로 나눠 재조명한다. [편집자 주] ▲ 동백연이 여수 하늘 높이 날고 있다. [제이누리=박지희 기자] 73주기 여순사건 합동위령
▲ 제주대 사라캠퍼스. [제주대 교대 제공] 14년 전 제주교대는 오랜 역사를 뒤로하고 대학 간판을 내렸다. 그리고 국립 제주대와 한 지붕 살림살이를 시작했다. 그러나 예상했던 물리적 한 지붕은 지금도 요원하다. 제주대와 제주교대가 통합된 지 14년, 10년 세월 이상의 세월이 흘렀지만 캠퍼스 통합 당시에 했던 약속은 공염불이다. 통합취지 자체도 퇘색해가고 있다. 현재 제주대 부설대학인 제주대 교대는 2008년 이전엔 제주대와 별개의 대학이었다. 국립대학 내 종합교원양성 체제와 전문적인 초등교원 양성목표로 통합되었으나 이 문제를 두고 찬반투표를 부치는 등 파열음을 내기도 했다. 제주대와 제주교대의 통합 추진논의는 1998년부터 이뤄져 왔다. 그러나 제주교대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는 등 반대의사를 표명하면서 결국 무산됐다. 대학통합이 다시 논의되기 시작한 시점은 2006년부터였다. 제주대와 제주대 교대는 2007년 6월 통합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같은해 11월 통합이행각서를 작성했다. 이후 2008년 3월부터 양교가 통합된 제주대로 공식 출범했다. 양교의 통합으로 다양한 성과가 있었다. 통합이행각서 이행을 위한 노력으로
▲ 송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좌),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우). 2022년 제주 선거판이 심상찮다. 내년 대선국면과 맞물려 자칫 보궐선거까지 예상되며 연쇄 핵반응 조짐이다. 도지사 선거 후보군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고,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겨냥한 주자군들의 움직임까지 포착돼 지역정가가 초긴장상태로 돌입하고 있다. 무엇보다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선 차기 제주도지사 후보군으로 여야 대선후보 캠프에 합류한 현직 의원들의 활동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지역정가에서는 송재호(제주시 갑) 의원과 오영훈(제주시 을) 의원 등 여당 소속 인사들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 대선 후보군 맞물려 지방선거판으로 번진 제주지사 후보군 ‘요동’ 이들 의원의 제주도지사 출마설은 일찌감치 흘러나왔다. 지난 4월 원희룡 전 제주지사의 2022년 지방선거 불출마 선언 때부터다.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지난 4월21일 오전 제주도의회 제394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내년 6월 치러지는 지방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식선언한 바 있다. 이를 계기로 차기주자군 다수가 물망에 올랐다. 10여명이 주자군으로 거론됐다. 우선 여당인
「제주국제공항에서 출구를 빠져나오는 사람들을 보라. 얼굴이나 머리모양, 입고 있는 옷 등으로 제주 사람을 구별할 수 있을까. 모두 엇비슷해 그 사람이 그 사람 같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서도 제주어로 말하는 사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제주어로 말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제주 사람이다. 바꿔 말하면 제주 사람이 쓰는 말이 곧 제주어다.」 ▲ 제주어 길라잡이 [제주학연구센터] 제주학연구센터에서 발간한 제주학총서 '제주어 길라잡이' 첫 장에 나오는 제주어에 대한 설명이다. 위 설명은 제주 사람과 다른 지역의 사람들을 구별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안에도 지역에 따라 문화와 언어에 차이가 나듯 서로를 더 잘 이해해보자는 취지다.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제주를, 그리고 제주 사람을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선 제주의 역사, 문화도 중요하지만, 제주어를 우선 알아볼 필요가 있다.' ◇ 예나 지금이나 제주어는 어려워 몇 해 전 제주지방경찰청에서는 이색적인 교육 풍경이 연출됐다. 교육 내용은 범인을 잡기 위한 수사 기법이나 신종 범죄 수법 등이 아니라 다름 아닌 '제주어'였다.
여순사건은 제주4.3과 공통점이 많다. 두 사건 모두 제대로 된 증거 없이 무고한 사람들이 학살당했고, 과거엔 ‘무장폭동’ 및 ‘반란사건’이라는 오명으로 불렸다. 관계자의 친족들은 ‘빨갱이’라고 불려지면서 차별을 받기도 했다. 제주4.3은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지 21년 만에 전부 개정이 이뤄지고, 2014년부터는 국가추념일로도 지정되는 등 진상규명이 이뤄지고 있다. 반면 여순사건은 제16대 국회 때 잇따라 특별법이 발의됐으나 그때마다 무산됐다. 올해 겨우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갈 길이 아직도 멀다. 역사는 진실을 밝히고 끝나서는 의미가 없다. 이 진실이 영원히 기억되지 않는다면 역사의 정의는 없다. 동포인 제주도민을 죽일 수 없다고 국가에 맞선 이들과 진실을 규명하려 애쓰는 그들을 제주가 기억하고, 도와야 하는 이유다. 여순사건 73주년을 맞아 과거와 현재, 미래를 세차례로 나눠 재조명한다. [편집자 주] ▲여수시 만흥동 '만성리 형제묘'에 추모꽃이 놓여 있다. 유족들은 부역혐의로 총살당
▲ 안동우 제주시장이 기자회견을 갖고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는 제주시 간부공무원 파면 징계 발표와 함께 사과하고 있다. [제이누리DB] #제주지법은 14일 상습 강제추행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전 제주시 국장 A(59)씨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을 열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A씨는 제주시 국장으로 일하던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자신의 사무실 등에서 부하 여직원에게 갑자기 입을 맞추고 껴안는 등 10여 차례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다른 부하직원들에게 ‘피해자가 평소 불성실했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내달라고 하는 등 2차 가해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시는 A씨를 4월 파면했다. #서귀포경찰서 소속 B경장은 지난 3월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약식 기소돼 제주지법으로부터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의 범행은 성매매 업소 여성이 “업주가 돈을 주지 않는다”고 검찰에 고소하면서 드러났다. 검찰은 해당 사건을 조사하면서 신용카드 사용내역과 고객명단을 살피던 중 현직 경찰신분이 발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B경장에겐 정직 3개월이 징계가 내려진 것
▲ 제주시가 발간한 '사진으로 보는 제주 옛모습'에 실린 제주시 산지천에서 물을 긷고 빨래를 하는 모습. 이 사진집에는 고 김홍인 선생이 촬영한 3천여 점의 사진 가운데 추려낸 200점이 실려있다. [연합뉴스] 옛 제주도심에서 나고 자란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산지천은 향수 어린 추억이 담긴 곳이다. 누군가는 산지천 인근에서 은어 낚시를 하던 추억을, 또 다른 이는 산지천 빨래터에서 빨래하고 물을 길어 집으러 나르던 고단했던 옛 삶을 떠올린다. 그뿐만일까. 조상 대대로 일궈 온 삶의 터전이자 탐라국의 중심지였다. 산지천은 제주의 역사와 문화,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채 계속해서 흐르고 있다.' ◇ 제주인의 삶의 터전 산지천 산지천은 한라산 북사면 해발 720m 지점에서 발원해 제주도심을 지나 바다로 빠져나간다. 산지천은 '산지'(山地)라는 말 그대로 '산이 있는 땅에 흐르는 내(川)'라는 뜻이다. '산저천'(山低川)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산지천 하류에 있던 '금산(禁山) 아래를 흐르는 내'라는 의미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이외에도 '산짓내'
▲ 지난 18일 오후 제주시 조천읍의 한 주택에서 10대 남학생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 현장에 폴리스라인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변을 당한 중학생 A군의 사연이 여전히 안타까움을 더하게 만들고 있다. 한 남성에게 협박을 받고 있는 그의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보호하려고 애썼던 게 그 아들이다. A군 어머니는 22일 한 언론에 “B씨가 내 아들을 먼저 죽이고 나를 죽이겠다고 지속적으로 협박했다”면서 “아들이 걱정돼 늘 조심하라고 말했다. 그때마다 아들은 자기가 제압할 수 있다며 오히려 나를 안심시켰다”고 눈물을 쏟았다. 이어 “가정폭력을 당할 때마다 아들이 나를 안심시키기 바빴다”면서 “피해자 진술을 하러 경찰서에 갈 때도 아들과 함께 갔다”고 말했다. A군은 지난 5월 가정폭력이 일어났을 때도 부서진 TV와 컴퓨터 등을 휴대폰으로 촬영하고, 부서진 유리조각까지 모아 비닐봉지에 담았다고 한다. 나중에 수사 기록용으로 제출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의젓했던 A군은 결국 자신의 집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