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기(兵器)를 씻는다는 뜻의 세병관(洗兵館)은 통영 삼도수군 통제영의 핵심건물이다. [사진=연합뉴스] 최초의 착량묘는 작지만 정갈한 초가집이었습니다. 이후 고종 14년 1877년에 이순신의 10대손인 통제사 이규석이 기와집으로 고쳐 지었습니다. 이와 함께 호상제라는 건물을 지어 지방민의 자제를 교육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100여년 후인 1979년과 1980년에 건물이 추가돼 어엿한 서원 양식을 갖췄습니다. 매년 음력 11월 19일엔 이순신을 추모하는 제사를 지냅니다. 통영 = 삼도수군 통제영. 가배량주가 통영이 됐지만 정작 이순신은 근무한 적 없는 곳. 세병관(洗兵館)에 간다는 말은 통영 삼도수군 통제영에 간다는 말과 같습니다. 세병관이 통제영의 핵심 건물이었으니까요. 세병관에 가면 조선 최대ㆍ최고 해군시설의 위용을 함께 감상할 수 있습니다. 통영 삼도수군 통제영은 1895년에 폐관됐습니다. 그때부터 통제영의 흔적들이 사라지기 시작했지만, 핵심건물인 세병관은 처음 만들어진 그대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세병관은 현존하는 조선시대 목조건물 중 바닥 면적이 가장 넓은 세개의 목조건물 중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국보 제224호인
▲ 통영 충렬사는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1606년 강건됐다. 사진은 방문자 명부인 '심원록尋院錄'. [사진=뉴시스] 통영시는 통제영이 있던 도시입니다. 통영시의 일부는 한때 충무시(忠武市)였습니다. 충무시의 충무는 충무공(忠武公)에서 왔습니다. 충무 김밥의 유래도 충무시입니다. 통영 충렬사는 충무공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선조 39년 1606년, 제7대 이운룡 통제사가 왕명을 받들어 창건했습니다. 현종 4년 1663년에는 남해 충렬사와 함께 사액사당이 됐습니다. 사액사당이란 임금이 ‘현판(額)을 내린(賜)’ 사당이라는 뜻입니다. 그 후 역대 수군통제사들이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통영 충렬사에는 유물 전시관이 부속돼 있습니다. 충렬사 유물 전시관에 가면 꼭 봐야 할 것이 두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명나라 신종황제가 내린 여덟 가지의 선물인 명조팔사품(明朝八賜品) 보물 440호이고, 다른 하나는 정조대왕이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 1질을 충렬사에 내리면서 함께 하사한 어제사제문(御製賜祭文)입니다. 정조대왕은 조선 후기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개혁 군주입니다. 그런 정조대왕이 충무공 이순신
▲ 통영.충무 모두 이순신 시대에 생겨난 단어다. [사진=뉴시스] 익숙한 단어 몇 개를 떠올려 봅니다. 통영, 충무 그리고 충무김밥. 모두가 임진왜란이나 충무공 이순신과 연관된 단어입니다. 400여년 전에 만들어진 단어를 지금까지 계속 사용하고 있다니, 새삼 신기합니다. 통영이라는 지명은 ‘삼도수군 통제영(三道水軍 統制營)’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원래 이름은 ‘가배량수’였는데 통제영이 세워진 후부터 통영이라 불리게 됐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초대 삼도수군 통제사였습니다. 삼도(三島)는 충청도ㆍ경상도ㆍ전라도를 뜻하고, 삼도 수군은 충청 수영ㆍ전라 좌수영ㆍ전라 우수영ㆍ경상 좌수영ㆍ경상 우수영을 의미합니다. 전라도와 경상도에는 각각 우수영과 좌수영이 있었습니다. 충청도에는 충청 수영 하나만 있었죠. 임진왜란 전까지는 삼도의 수군이 독자적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오자, 조선 수군 전체가 단일한 명령계통 아래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이에 임진왜란 발발 이듬해인 1593년, 조선 조정은 삼도수군 통제사라는 관직을 신설하고 이순신을 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