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경호 전 제주도의회 의원 글의 서두로서 조금은 뜬금 없지만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 얘기를 꺼내고자 한다. 신 전지사가 마지막 관선 도지사로 부임하여 1년 조금 못 미쳤을 때이니까 1994년 12월 초순쯤이었을 것이다. 제주의 기독교 교회와 교인들은 도지사의 처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널리 알려진 신구범 도지사가 그해 12월 10일 삼성혈(三姓穴)에서 봉행되는 탐라시조(耽羅始祖) 건시대제(乾始大祭)에 초헌관(初獻官)으로 나설 것인지 말 것인지가 큰 관심사였기 때문이었다. 기독교의 신도가 아닌 일반 도민들이야 ‘종교적 신념’과 ‘공인의 처신’ 중 도지사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하는, 어떻게 보면 호기심(?)으로 도지사의 처신에 관심을 보였지만, 교회와 신도들은 달랐다. 십계명 첫 계명인 ‘나 이외에 다른 신(神)을 섬기지 말라’는 ‘기독교 유일신 사상’에 젖어있는 기독교신도들은 가슴조이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런데 그해 12월 10일 ―. 흑관(黑冠)의 제모(制帽)를 쓰고 폐슬(蔽膝)과 중단(中單) 각대(角臺)로 장식된 제례복(祭禮服)을 입은
▲ 아이들의 시소놀이. 아이는 서기와 걷기를 통해 처음으로 균형을 몸으로 깨우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마도 시소를 통해 남과의 균형맞추기를 해보지 않을까. 시소 위에서는 경쟁이 아닌 어우러짐으로 타인을 이해하게 된다고 믿고 싶다. 물론 아이들의 잠재의식 안에서. 2. 사랑 재수를 시작하는 딸보다도 엄마의 히스테리가 더 심하다. 이 히스테리는 절망에서 비롯된다. 1년 전과 다른 엄마의 얼굴에서 딸은 웃음을 볼 수가 없다. 당연히 최고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이 웃음으로 얼굴에 피어났던 1년 전과는 달리, 좌절을 겪은 뒤의 불신감은 얼굴뿐 아니라 마음에서 웃음을 앗아갔다. 어느 날, 딸이 체해 먹은 것을 다 토해내고 말았다. 1년 전이었다면 등을 두드려주고 배를 쓰다듬어주며 유난했을 엄마는 약 한 알과 작은 약병을 딸의 손에 건네지도 않고 식탁에 내려놓는다. 엄마의 손에는 신경질이 잔뜩 붙어있다. 탁. 사물(식탁)도 그 감정을 표현한다. 아빠가 약을 받아 딸의 등을 도닥여주며, “오늘 하루 학원은 쉬어라.” 엄마가 폭발하고 만다. “당신이 당신 딸 평생 책임지고 데리고 살 거야?” 참견이 될 것 같아 묵묵히 보
스무 살 쯤에 이청준의 ‘낮은 데로 임하소서’라는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감동한 나머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그날부터 1년여 남짓 왕복 1시간 넘게 어두운 들길을 오가며 새벽예배를 보러 다녔다. 교회를 다니는 내내 단테의 ‘신곡’ 속에서 베르길리우스의 인도에 따라 신의 모습을 보려는 나름의 간절함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칼날 같은 이성의 눈을 부릅뜬 채 ‘한 번 따져보자’고 덤비는 피 끓는 청년에게 성령은 강림하질 않았다. 그런 나의 간증(?)에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하나님께 너를 맡겨라”라는 목회자의 말은 가슴에 와 닿을 리가 없었다. 부질없거나 주제 넘는 일이라고 체념한 이후에도 아예 등지면 억울할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한 주술에 걸려든 것 같기도 하여 아주 떠나지 못한 채 주변에서 서성거렸다. 부러 외면하려고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나 가장 문학적인 (우주)과학책이라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등을 어설프게 읽고는 무신론으로 나의 신념을 무장하려고도 해봤다. 아무리 그래봤자 지천명을 넘긴 후에도 이어령님의 ‘지성에서 영성으로’에 미혹되고, “하느님을 믿느냐?”는 김수환 추기경의 물음에 “애매하게 믿는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답
▲ 강경식 제주도의원 제주투자진흥지구제도는 제주국제자유도시의 핵심 산업육성과 투자유치를 위하여 내•외국인에게 법인세, 취득세, 재산세 및 각종 부담금에 대한 획기적인 세금감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로 관광호텔업을 비롯한 24개 업종에 미합중국화폐 5백만불 이상 투자시 지정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지난번 투자진흥지구 지정에서 해제된 제1호 제주동물테마파크를 비롯하여 현재까지 49개소 1951만여 평방미터에 사업비 11조5,223억의 사업이 유치되어 현재 28곳이 사업이 완료되고 나머지는 일부운영 중이거나 공사 중에 있다. 투자진흥지구제도는 국•내외 자본의 제주유치에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투자진흥지구를 지정하고 투자유치에 중심을 두다보니, 약속이행이나 관리적 측면의 제도정비가 미흡하여 제도 시행 10여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 허점과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호유원지와 동물테마파크와 같이 부지매입과 정리만 해놓고 자본금의 부족으로 장기간 공사가 중지된 경우, ㈜보광제주처럼 수익성과 현금화가 좋은 사업만을 일부 운영하면서 영업이익을 내고 사업기간을 연장하며 그 자금으로 재투자하고 사들였던 국공유지 땅까지 재매
▲ 아이들은 스스로 더 잘 논다. 어른들이 장난감, 놀잇감을 주면 오히려 아이들의 무한상상을 죽일 수가 있다. 모래로 밥을 짓고 반찬도 만들어 밥상까지 차려놓으며 자기들만의 놀이에 집중한다. 손님을 초대하기도 한다. 이런 아이들에게 대다수 어른-부모나 선생-들은 손 더러워지고 옷 지저분해진다고 못하게 한다. 1. 희망 어른이 다 됐네. 부쩍 큰 키로 어른처럼 자란 딸의 뒷모습을 오랜만에 보고 있다. 하지만 어른이 된 딸에게서 갓 태어난 아기를 본다. 딸이 뒤돌아본다. 손을 흔들어 보인다. ‘시험 잘 보고 올 테니 엄마 걱정 마!’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렇게 시험장 교실로 사라진 딸이지만 엄마 마음 안엔 갓난아기로 운동장을 가로질러 아장아장 걷고 있다. ‘희망’이란 꽃말을 지닌 앙증맞은 프리뮬러 화분들을 색깔별로, 모양별로 병원 회복실 창가에 나란히 진열해놓고 엄마와 딸을 기다리던 아빠도 운동장에 서 있다. 희망 딸 마중의 시작이었다. 자식맞이는 부모에게 지상 최고의 선물이었다. “아들이 아니라서 실망했어?” 위풍당당행진곡을 불룩한 배 가까이 들이대고 틀어줬던 아빠에게 엄마가 묻는다.
▲ 강경식 제주도의회 의원 요즘 도심지를 벗어나 머리를 식히려고 외출하다 보면 곳곳에서 기계톱의 굉음과 자른 소나무를 부지런히 실어 나르는 작업차량의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작년이나 올해나 별반 다름없는 모습들을 보며 제주도의 소나무와 산림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애국가에도 나오고, 궁궐을 지을 때 소나무를 주로 사용한다고도 하고, 얼마 전에는 우리 국민들에게 가장 친숙한 나무로 선택되기도 하였다. 똑같은 종류는 아니지만, 제주의 곰솔도 자연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역할이나 정서적인 측면에서 상당한 비중과 역할을 차지하며 제주인과 관광객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늘 우리가 들여 마시는 공기처럼 가까이 있어도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듯이 소나무도 늘 우리 가까이에 있어왔기에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여 왔다. 1905년 일본에서 최초 피해가 발견된 이후 소나무 재선충병은 1988년 올림픽에 맞추어 한국에 상륙했고 제주도에는 약 10년 전에 최초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원인은 목재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감염된 사실을 모른 채 검역을 통과하여 유입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소나무류의 AIDS라 불리는
카사 델 아구아, 이 이름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아파온다. 2013년 3월 6일, 세계적인 건축가의 유작인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가 강제 철거되었다. 철거가 시작 된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온 몸으로라도 막아보겠다는 급한 마음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현장은 처참했다. 우리가 그토록 지켜내고자 했던 카사 델 아구아는 거대한 중장비에 의해 이미 앙상한 철골을 드러내고 희뿌연 먼지바람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건축가 승효상은 제주에 직접 내려와 철거반대토론회에서“ ''반달리즘(다른 문화나 종교 예술 등에 대한 무지로 파괴하는 행위)이 제주에서 벌어지고 있다. 카사 델 아구아는 제주도의 보물만이 아닌 세계적인 보물이 될 것이다.”라고하며 “카사 델 아구아를 철거할 권한이 우리에겐 없다 ”고 강하게 말했지만 행정은 끝내 ‘규정대로’ 를 고집했다. 어떻게 그 날을 잊을 수 있겠는가? 카사 델 아구아의 철거현장은 포털사이트 검색 1순위를 차지하며 실시간으로 인터넷을 통해 전국으로, 전 세계로 전해졌다. 당장 눈앞에 이익이 오는 자본의 탐욕과 문화의 귀중함을 깨닫지 못하는 무지가 빚어진 발상이었다. 중장비의
▲ 현재 방송중인 KBS TV드라마 '징비록' “엊그제 빚은 술이 얼마나 익었느냐? 술잔을 잡거니 밀어 권하거니 실컷 기울이니, 마음에 맺힌 시름 다소나마 풀린다…손님인지 주인인지 다 잊어버려라. 창공에 뜬 학이 이 골의 신선이라. 달 아래 행여 그 신선을 만나지 않으셨는가?”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1536~1593)이 20대에 지은 성산별곡 일부다. 젊은 시절부터 풍류를 알고 술을 즐겼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최고의 로맨티스트다. TV드라마 ‘징비록’에 정철이 자주 등장한다. 주인공 유성룡(1542~1607)보다 더 눈에 들어온다. 우리가 통상 인식하고 있는 다정다감한 시인이 알고 보니 ‘표독한’ 정치인이었다. 지난 1일 방송분에선 정철이 주색잡기에 빠졌다는 상소가 올라와 선조(1552~1608,1567년 즉위)가 좌의정직을 내놓으라고 강요했다. 임진왜란 일어나기 1년 전인 1591년의 일이다. 정철의 나이 56세. ▲ 송강 정철(1536~1593) 정철이 눈치 없이 40세의 젊은 선조에게 빨리 세자를 세우라는 진언을 했다가 밉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정철은 광해군(157
▲ 아이들이 한데 모여 자기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기 위해 봉숭아꽃과 잎을 작은 절구통에 모아 찧고 있다. 긴장할 수 있기에 행복한 우리의 아이들 ‘누군가 불확실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껴안으라고 내게 말해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예측가능한 길의 바깥으로 내려서야만, 고정관념에 의문을 던져야만, 그리고 세상을 기회와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곳으로 바라보아야만 진정 멋진 일들이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 내게 말해줬더라면?’(티나 실리그) 아이가 우리의 희망입니다. 가정이든 사회든 아이로서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때입니다. 아이를 살리는 일은 가정도 사회도 살리는 일입니다. 아이의 목에 도금 가짜 금은동메달 대신 순금일 수 있을 희망의 목걸이를 걸어줘야 합니다. 아이의 가슴에 엉터리 스티커 대신 희망의 배지를 달아줘야 합니다. 우리 아이를 제대로 멋지게 키우고 싶은 마음을 가졌던, 우리 아이들 앞에서 온전하고도 멋진 부모이길 바라던, 지난날들을 떠올리며 이 글을 씁니다. 그렇게도 사랑한다면서 소홀하진 않았나? 지나쳐버렸다지만 과거라는 것은 회상하기에 언제나 현재입니다. 나의 추억은 대체로 ‘아픔’으로 떠오
▲ 강병철 논설위원 제주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문화가 점점 본래의 색을 잃어가고 있는 것을 날마다 목격한다. 해녀문화와 함께 제주 특유의 문화중의 하나인 이어도문화가 제주도민들의 기억 속에서 상실되어가고 있다. 오죽하면 제주의 노인들에게 물어봤더니 이어도에 대하여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면서 이어도문화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겠는가! 제주 노인들의 ‘기억창고’에서 이어도라는 담론이 보편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고 제주 무가(巫歌)는 물론 제주 속담사전에서도 이어도에 대한 내용이 없어 이어도가 20세기에 만들어진 산물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어도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킬 동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과거에는 맷돌이 중요한 생활도구였다. 사람들이 곡식을 맷돌에 넣고 돌리면서 맷돌노래를 불렀다. 이 맷돌 노래 중에 이어도 노래가 있다. ‘이어도문화를 찾아서’라는 제목의 유튜브 동영상에서 진성기 제주민속박물관장이 맷돌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오늘 날에는 이처럼 동영상에서나 맷돌 노래를 감상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일상생활 속에서 들었던 노래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이어도와 친숙하였고 이어도는 생활양식의
▲ 강민수 논설위원 관덕정과 제주목관아는 원도심 뿐만 아니라 제주 역사를 아우르는 중심지다. 국가에서 각각 보물과 사적으로 지정되어 보호 받고 있다. 제주를 찾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쯤 들러 볼 가치가 충분한데도 외면 받고 있다. 여기서 그 이유를 다 파헤칠 수는 없다. 다만 외국인들에게 좀 불친절한 것은 그럴듯한 영어 홈페이지 하나 없을 뿐만 아니라 브로슈어와 현장의 영어 안내문에 오류가 꽤 많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몇 가지만 추려 보겠다. 우선 관덕정 앞의 영문 안내판에는 the local officer(지방공무원) 신숙청의 지도 아래 관덕정이 세워졌다고 다소 엉뚱하게 써놓았다. 어떻게 일개 지방공무원이 호남제일정(湖南第一亭)이자 보물로 지정될 정도의 건물을 지을 수 있단 말인가? 한글에 그의 직위는 안무사(按撫使)로 되어 있는데, 왕의 ‘특사’로 지금의 제주도지사인 목사에 부임했던 것이다. 제주도는 섬이라는 특수한 여건 때문에 왕이 직접 제주목사를 임명했으며 행정적인 업무 외에 군사적인 책임도 겸하게 하여 만호, 안무사, 병마수군절제사, 방어사, 절제사 같은 총사령관의 직책을 맡겼다. 따라서 the local officer는 행
▲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영화 국제시장이 2월 들어 누적 관객 수 1300만명을 넘어섰다. 영화진흥위원회의 박스오피스 통계에 의하면 이는 역대 휴먼드라마 장르 중 흥행 1위의 기록이란다. 영화평론가들이 10점 만점에 5점을 부여한 ‘보통’ 영화가 요새 말로 대박을 친 셈이다. 그 덕택에 영화 속에서 영자 역을 한 여주인공이 어린이재단에 기부금을 낸단다. 영화 관람객 수에 비례해서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이. 참 가슴 따뜻한 이야기다. 이처럼 국제시장이 관객들로부터 ‘극찬’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관람객들의 반응에 관한 자료를 짚어보면, 전문가들이 ‘신파적 스토리’라고 비평하는 영화의 흐름이 ‘우리들의 이야기’로 소통되기 때문이란다. 6.25의 흥남철수작전으로 비쳐지는 국가의 무능함, 전쟁과 폐허에서 전개되는 가난의 뼈저림, 생존을 위해 독일의 탄광과 베트남 전선에서 사투하는 개인의 몸부림, 이산가족을 찾아서 분단의 비극을 부둥켜안는 범국민적 눈물 등이, 여전히 진행 중인 우리사회의 아픔으로 공감되어서다. 사실, 오늘도 변함없이 국가는 무력하고, 가난한 이들의 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