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늘 용기 있게 선(善)을 행할 것이며, 생명을 걸고 진실만을 말하며 약자를 보호하라.” ‘기사의 서약문’이다. 이벨린의 영주 고프리는 아들 발리앙을 체포하러 온 법 집행관들을 도륙하고 죽음이 임박하자 발리앙을 기사로 임명한다. ‘킹덤 오브 헤븐’에는 혼란 중에 두차례 ‘약식’ 기사 서임식(敍任式) 장면이 나온다. ▲ 정치인에게서 정치인이 갖춰야 할 본래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예루살렘으로 십자군 원정길에 오른 이벨린의 영주 고프리는 사생아 발리앙을 대장간에서 조우해 동행한다. 발리앙은 이미 마을에서 사제를 살해한 몸이다. 이내 군사들이 쫓아와 체포하려 든다. 법 집행관들은 명색이 그래도 작위를 받은 고프리의 체면을 고려해 꽤 정중하게 상황을 설명한 뒤 순순히 발리앙을 내어달라고 청한다. 발리앙도 자신의 살인죄를 인정한다. 그러나 고프리는 명예로운 기사답게 아들을 내어주기는커녕 부하들과 대뜸 칼을 뽑아 들고는 국가의 집행관들과 살육전을 벌인다. 집행관들은 몰살당하고 평생을 주
▲ 코로나발 복합불황은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총선 이후 정부 정책은 그간 금기시하던 것들까지 수정.보완할 필요가 있다.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발 복합불황의 그림자가 짙어지며 역성장이 예고됐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1.9%에서 -2.3%로 낮췄다. 나라밖 기관들은 더 비관적이다. 일본 노무라증권이 -6.7%, 영국 캐피털이코노믹스는 -3.0%로 전망했다. 이것이 현실화하면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5.1%) 이후 22년 만의 역성장이다. 코로나19 확산세만 잡히면 경기가 ‘V자’로 급속히 회복할 줄 알았는데 갈수록 비관론이 커지는 형국이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미국과 유럽에서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막히면서 실물경제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관론자들은 대공황이나 세계대전보다 극심한 지옥문이 열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글로벌 무역이 무너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낙관적 시나리오로도 세계 무역량이 12.9% 감소하며 경제성장률이 -2.5%로 고꾸라질 것으로 봤다. 비관적 시나리오로는 무역량이 무려 31.9
믿음(belief)은 신뢰(trust)와 비슷하지만 근본적인 인식체계가 다르다. 신뢰가 경험적이고 논리적인 것이라면, 믿음은 다분히 감정적이고 영적인 영역에서 작동한다. 신뢰는 그 신뢰에 반하는 정보들이 들어오면 약화되거나 깨지지만, 믿음은 아무리 많은 반대 정보가 있어도 쉽게 깨지지 않는다. ▲ 믿음이라는 것은 경험의 문제나 논리의 문제가 아니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1184년 프랑스의 대장장이 발리앙(올랜도 블룸)은 예기치 못했던 아내의 자살로 망연자실하고 세상에 미련도 없다.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자살한 영혼은 영원히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진다는 기독교적 ‘믿음’이었다. 믿음이라는 것은 경험의 문제이거나 논리의 문제가 아니다. 자살한 사람이 지옥 불구덩이에 떨어진 것을 목격한 적도 없고, 증언을 들은 바도 없다. 그렇다고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마음속에 자리 잡은 믿음은 떨쳐버릴 수 없이 강고하다. 자살한 아내가 지옥의 불구덩이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받을 것을 두려워하던 발리앙은 어느날 마을을 지나 예루살렘으로 진군하던 십자군 한 무리와 마주한다. 십자
▲ 재난지원금 총액이 결정되면 피해가 큰 업종에 선별 지원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다. 실직 위험이 없는 공무원과 공기업 종사자에게까지 현금을 나눠주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 70%가 대상인 긴급재난지원금이란 현금(성) 지급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처음이다. 그만큼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피해가 심각하고, 다수 국민의 삶이 곤궁에 처해 있다는 방증이다. 긴급재난지원금은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소득 하위 70%’로 발표된 지급 기준과 소요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의 문제다. 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계획을 발표한 것은 3월 30일 제3차 비상경제회의. 그러나 ‘소득 하위 70%’ 지급 기준을 놓고 정부 내 의견조차 정리되지 않아 혼선을 빚었다. 한두 푼도 아니고 9조1000억원의 국민 세금을 쓰는 일인데, 꼼꼼히 따져보지 않고 급조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웠다. 나흘 뒤, 4월 3일 범정부 태스크포스(TF)가 지급대상 선정 기준을 발표했다. 건강보험료 부담액을 기준으로 삼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는 고액 자산가는 배제하겠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흔히 말하는 ‘제작비에 구애받지 않는’ 거장 중 한사람이다. 스콧 감독의 ‘킹덤 오브 헤븐(2005년)’은 어마어마한 인원과 물자를 마음껏 동원해 제작한 대서사 드라마다. 철저한 고증을 거쳐 12세기 십자군과 이슬람군을 재현한 대규모 전투 장면은 가히 압도적이다. 장면 하나하나에 ‘돈 냄새’가 진동한다. ▲ 예루살렘은 특정한 신의 왕국이 아니라 모두의 '하늘(Heaven)의 왕국'이다. 막대한 제작비가 든 작품이지만, 전쟁영화가 대부분 그렇듯 보기에 불편하고 어이없는 감정은 어쩔 수가 없다. “왜 저렇게 죽고 죽여야 하나? 꼭 저래야만 하나?” 영화는 200년(1096~1290년) 가까이 7차례에 걸쳐 마치 대역병처럼 유럽과 서아시아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십자군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그중에서도 1187년 3차 십자군 전쟁 중의 가장 처절했던 ‘하틴(Hattin) 전투’를 보여준다.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3만명의 이슬람군과 유럽에서 원정 온 2만명의
▲ 실업대란과 소비침체가 지표뿐만 아니라 눈으로도 확인되고 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와 취약계층 근로자를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긴요하다.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감염이 장기화ㆍ세계화하면서 경제 충격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셧다운으로 사람과 상품의 이동이 줄거나 끊기면서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타격을 받고 있다. 그 여파로 실업대란이 현실화했다. 휴업 등으로 일손을 놓은 ‘일시 휴직자’가 급증했다. 2월 일시 휴직자는 61만8000명. 지난해 같은 달보다 14만2000명(29.8%) 늘었다. 돌아갈 일자리가 있다는 이유로 아직은 취업자로 분류되지만, 휴직이 장기화하면 실업자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이미 일자리를 잃은 실업급여 신청자도 크게 늘었다. 3월 들어 19일까지 새로 실업급여를 신청한 사람은 10만3000명.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6%(3만3578명) 급증했다. 휴업ㆍ휴직에도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에 주어지는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한 사업체가 올 들어 3월 20일까지 1만7800여곳. 이 또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1배에 이르는 폭증세다. 코로나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소규모
▲ 코로나19 피해는 전국적 현상이다. 지자체별 취약계층 지원을 중앙정부가 방임하면 지자체간 불필요한 경쟁과 도덕적 해이를 야기할 수 있다. [사진=뉴시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ㆍPandemic) 리스크가 전방위로 퍼지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국가의 기본 책무인 방역 활동부터 경제ㆍ정치외교ㆍ사회ㆍ문화ㆍ스포츠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외국인 입국을 차단했다. 지구촌을 연결하는 교통수단이 멈춰 섰다. 집단 감염 공포는 경제활동과 민생을 짓누른다.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근로자들이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장사가 안 되는 자영업자와 일거리가 없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끼니를 걱정할 판이다.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두달을 넘어선 한국은 두가지 국가적 재난과의 전쟁에 직면했다. 하나는 감염병 확산을 막아 국민 생명을 지키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에 한꺼번에 몰아닥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것이다. 정부가 19일 대통령 주재로 비상경제회의를 열어 50조원 규모 비상금융조치를 내놓았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에게 긴급경영자금을 빌려주고, 대출원금 및 이자상환을 유예해주는
동면에서 깨어난 프레스턴과 오로라는 호화 우주선에서 모든 것을 독점적으로 즐기는 ‘자유인’의 삶을 누린다. 안락한 잠자리, 최첨단 의료시설, 약품, 식량 등 아발론호는 생존을 위한 모든 게 갖춰져 있다. 노동의 수고도 필요 없고,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것도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런 자유인의 삶이 행복했을까. ▲ 진정한 자유는 '~을 할 수 있는' '적극적인 자유'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5000명의 대규모 우주 이주자들을 120년간 동면 상태로 조정해 태우고 떠난 아발론호에서 프레스턴은 기계 오작동으로 30년 만에 깨어난다. 오로라는 외로움을 못 견딘 프레스턴의 조작으로 역시 자의와는 상관없이 31년 만에 ‘깨어남’을 당한다. 프레스턴과 오로라는 마치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처럼 짝을 이뤄 아무도 없는 거대한 우주선 안에서 여생을 마친다. 물론 목적지였던 ‘홈스테드 II’라는 행성에 도착해 보지 못한다. 작가였던 오로라는 예기치 않게 우주선에서 프레스턴이라는 남자와 짝을 이뤄 보내게 된 자신의 일생에 후회가 없다는
▲ 땀에 젖은 의료진 [사진=뉴시스] 오늘은 지각해 동료들 눈치가 보였다. 병원의 시간관리는 철저하다. 의료진 뿐만 아니라 지원부서 관계자들도 마찬가지다. 자원봉사자라도 동료들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되는 것이다. 오늘은 ‘코로나19’ 사망자가 나와 자원봉사를 나온지도 3주째 되는 날. 본관을 통과해 격리병동쪽으로 달려 갔으나 자동문은 이미 잠겨 있었다. 아침 9시가 지나면 격리공간은 안에서 열어야 들어갈 수 있다. 출근 직후 상황실과 각 업무부서 팀별로 서서하는 ‘구수회의’가 열리는 시간이라 격리병동 입구에는 인적이 드물다. 마침 의료진 한명이 나오는 틈에 나는 잽싸게 안으로 들어섰다. 오늘은 대구지역에 처음으로 확진자가 나온 뒤 꼭 한달째다. 필자는 올들어 아침마다 6시 뉴스를 꼭 본다. 오늘 18일, 전국 총확진자는 전날보다 93명이 늘어나 8413명으로 대구는 6144명, 경북은 1178명이다. 이중 대구지역 총사망자는 55명, 경북은 24명으로 늘었다. 매일 사망자가 나왔던 대구에 그제는 사망자가 없었다. 지난달 29일, 대구,경북 지역 확진자는 900명에 이르렀던 것이 열흘만인
▲ 코로나19 탓에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봄을 보내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는 방역에 만전을 기하는 한편 기업들이 다시 뛸 만한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봄의 전령사인 개나리가 피기 시작한 3월 둘째주 13일의 금요일, 한국 금융시장은 악몽 같은 하루를 보냈다. 주식시장은 ‘검은 금요일(블랙 프라이데이)’이었다. 주가가 급락하며 주식매매를 중단시키는 서킷브레이커와 사이드카가 함께 발동됐다. 서킷브레이커는 주가가 8% 이상 하락한 상태가 1분간 지속될 경우 시장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20분간 주식매매 거래를 중단하는 긴급조치다. 같은 날 코스피ㆍ코스닥, 두 시장에서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된 것은 한국 증시 사상 처음이다. 시장 상황이 급변할 때 프로그램 매매호가 효력을 일시 정지시키는 사이드카도 두 시장 모두 발동됐다. 이날 코스피는 장중 1700선이, 코스닥은 500선이 깨졌다. 코로나19 공포에 질린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을 집중 매도하고 있다. WHO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하고, 국제유가가 급락하자 글로벌 증시가 공포에 휩싸였다. 코로나19발 위기가 글로벌 금융위
▲ TV조선 홈페이지 화면 캡처. 온갖 기록과 진면목을 보인 TV조선 ‘미스터트롯’ 결승전이 생방송 10주만에 13일 오전 1시30분에 막을 내렸다. 그러나 방송사고로 최종 우승자를 가리지 못해 결과발표를 미루는 촌극이 빚어졌다. TV조선 ‘미스터트롯’은 전국 시청률 35.711%(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하며 지상파를 제외한 역대 전채널의 최고 시청률 기록을 갈아치웠다. 1주일간 재방송 시청자도 1580만명을 기록했다. 이날 방송사고는 갑자기 773만 1781명에 이르는 다량의 ‘시청자 문자투표’로 서버가 다운된 이유 때문이었다. 예고된 인재였다. 준결승에서 실시간 국민투표는 144만명으로 얼마든지 예상됐다. 방송시간도 새벽 1시를 넘겼다. 최종결과를 발표하지 못한채 30분이나 시간을 지연시키던 김성주 진행자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면서 “투명하고 정확한 채점을 위해 최종 결과는 19일(목)에 특별편성 방송에서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조작 가능성'을 제기하며 조속한 결과발표를 요구하는 문자폭탄을 보냈다. 문제점
우리는 모두 외로움을 느낀다. 외로움만큼 큰 고통이나 두려움은 없으며, 외로움은 또한 사람을 병들게 한다. 겁 없이 설치던 흉악범도 독방에 한달 가까이 처박아 두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고 한다. 영화 ‘패신저스’는 외로움에 관한 보고서다. 주인공 프레스턴은 없는 게 없는 초호화 우주선을 독점했지만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 채 시들시들 병들어간다. ▲ 자기중심적인 인간은 가정을 꾸려도 군중 속에 파묻혀 있어도 외롭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아발론(Avalon)’호를 타고 120년간 동면 우주여행길에 오른 프레스턴은 5000명의 승객 중에서 30년 만에 혼자 깨어난다. 아발론이라는 이름 자체가 ‘잠’과 깊은 인연이 있다. 영국의 전설 속 아서왕이 최후의 전투에서 부상당하고 피신해 잠들었다는 섬이 바로 아발론섬이다. 아서왕은 그 섬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단지 깊은 잠에 빠졌을 뿐, 영국에 또 다른 큰 변고가 생기면 잠에서 깨어나 다시 영국을 구할 것이라고 한다. 우주선이 위험에 빠지는 큰 변고가 일어나 우주선과 승객들을 구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프레스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