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넷’의 주인공과 요원들은 ‘현재’를 바꾸기 위해 ‘미래’로 들어간다. 미래를 조작해 인류의 운명을 통째로 바꿔버린다. ‘과거’로 돌아가 과거를 바꿔 현재를 바꾸는 주제들은 꽤나 익숙하지만, 미래를 바꿔 현재를 바꾸는 방식은 특히나 우리들에게는 조금은 신선하기도 하다. 그런데 왠지 마음에 와닿지는 않는다. 테넷의 우리나라 흥행 성적표가 썩 훌륭하지 않았던 이유일까. ▲ 동양의 미래관이 ‘운명론적’이라면 서양은 반대로 ‘의지론적’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미래에 관한 관점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첫째,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며, ‘정해진 미래’는 우리의 희망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저 ‘오는 것(coming)’일 뿐이라는 관점이다. 지나간 과거를 바꿀 수 없듯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미래도 바꿀 수 없다. 운명론(fatalism)의 뿌리다. 둘째는 미래는 ‘오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making)&r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만들어낸 ‘시간여행’에는 이전의 시간여행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흥미로운 장면이 등장한다.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 혹은 ‘미래의 나’와 ‘현재의 나’가 충돌하고 뒤엉켜 싸우는 장면이다. 최신작 ‘테넷’에도 그런 장면이 등장한다. ▲ 나의 적은 ‘다른 시간대를 살았던 나’와 ‘다른 시간대를 살아갈 나’일지도 모른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인류의 미래를 구원하기 위해 미래로 출동했던 주인공은 현재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미래로 출동하던 자신과 맞닥뜨려 뒤엉켜 싸운다. 똑같은 주인공이지만 서로가 서로의 정체를 알 수가 없다. 현재의 주인공은 미래에서 오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 채 저지하고, 미래에서 현재로 돌아가려던 주인공 또한 자신을 막아서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각자의 임무에만 충실한 채 뒤엉켜 죽기살기로 싸운다. 나의 적은 같은 시간대를 살아가는 타인들이 아니라 다른 시
▲ 미국의 움직임에 맞춰 국내 금리가 오르면 당장 막대한 빚을 지고 있는 가계가 위험해진다. 정교한 물가관리와 세심한 금리인상 정책이 필요한 때다.[사진=뉴시스] 물가 오름세가 심상찮다. 4월 소비자물가가 2.3% 오르며 3년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4월 물가상승률 2.3%는 한국은행의 물가관리 목표(2%)를 웃도는 수치다. 인플레이션(지속적 물가상승)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인플레이션 경고음은 나라 안팎에서 울려댄다. 주식과 부동산에 이어 국제유가와 원자재, 농축산물까지 들썩이며 가격 상승폭이 커지고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미국에선 한국보다 한달 빠른 3월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로 올라섰다. 미국의 3월 물가상승률 2.6% 또한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 목표치(2%)를 넘어선 것이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당시 “물가상승은 일시적 현상”이라며 통화긴축을 일축했다. 그런데 지난 4일 직전 Fed 의장이었던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경기 과열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릴 수 있다”고 말했고, 미 증시의 나스닥지수가 급락했다. 미국에선 코로
고대사회를 지배한 변수 중 하나는 ‘무당의 한마디’였다. 중세사회에선 ‘천국의 예언’이 사람들의 삶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현대에도 미래의 예언자들이 있다. 과학자, 기술기업, 그리고 언론이다. 이들의 예언은 통찰력이나 비전이란 이름으로 대체되곤 한다. ▲ 현재가 과거를 재구성하고 새로운 과거를 창조해 내기도 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시간을 오가는 ‘타임머신’ 영화는 대개 과거로 돌아가 현재를 바꾸어버리는 상상을 담는데, ‘테넷’은 특이하게도 미래로 넘어가 현재를 바꾸는 상상을 담는다. 역사학자 E.H. 카(Carr)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정의한다. 과거에 일어난 ‘사실’은 박제처럼 영원히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역사가나 혹은 현재의 특정한 필요에 의해 현대인들의 생각과 관점으로 새로운 ‘사실’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중국의 거친 ‘동북공정(東北工程)’이 그렇고 말썽 많은 하버드대학 램지어 교수라는 사람의 일본
▲ 지금은 4‧7 서울‧부산시장 보선 참패에 자극받아 검토하는 정책을 가다듬고 보완할 때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수정 방향을 놓고 엇박자를 내고 있다.[사진=뉴시스] 1분기 한국 경제가 1.6% 성장하면서 경제 규모가 코로나19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470조8460억원으로 코로나 사태 직전인 2019년 4분기 GDP(468조8143억원)를 넘어섰다. 소비ㆍ수출ㆍ설비투자 등 주요 지표가 모두 플러스 증가율을 나타냈다. 지난해 수출이 홀로 성장을 견인한 것과 달리 올해 1분기는 경제의 양축인 내수와 수출이 함께 이끈 것이어서 더욱 긍정적이다. 하지만 낙관하기는 이르다. 코로나 재확산 우려가 여전한 데다 반도체 공급 부족, 물류비용 급상승 등 수출에 부정적 요인이 적지 않다. 최대 변수는 코로나 백신 보급이다. 주요국 경제 상황을 보면 백신 접종 속도에 따라 경제활동 재개 시점이 달라지고 경기회복 전망도 엇갈린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백신 보급률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비교분석한 결과, 백신이 경기 회복을 판가름하는 핵심 요소로 지목됐다. 국민 절반이
‘영웅’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항상 어마무시한 ‘악당’이 필요하다. 영웅과 악당의 크기는 정비례한다. 영웅과 악당은 그렇게 공존하고 어찌 보면 동업자 관계다. ‘테넷’에서도 이름 없는 영웅인 주인공의 존재는 사토르라는 최강의 악당이 있기에 더 빛나는지 모르겠다. ▲ 인간들에게 ‘열’을 제공하기 위해 지구상의 모든 것이 파괴되고 사라진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테넷’의 악당 사토르(Sator)는 수많은 ‘맨(man)자 돌림’ 히어로 영화들의 악당처럼 핵폭발로 지구와 인류를 끝장내려고 한다. 이유는 단순한 가학성이나 권력욕이 아니라 조금은 심오하다. 그래서 사토르를 단순히 또 하나의 황당한 악당으로 취급하기는 어렵다. 사토르는 인류를 몰살시켜야 하는 명분을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엔트로피(entropy)’라는 머리 아픈 열역학 이론에서 찾는다. 열에너지로 전환된 모든 것은 본래 상태로 환원될 수 없다. 열역학은 그야말로 ‘시간’처럼 불가역적(irreve
▲ 한미 백신 스와프를 위해 삼성‧LG‧SK 등 한국 기업 및 기업인들의 힘과 네트워크를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4월 21~22일 연속 700명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본격화한 3차 대유행의 여파가 가라앉기도 전에 4차 유행이 시작된 양상이다. 계속 연장되는 거리두기 조치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생계 절벽에 선 가운데 재난지원금 지급 재원이 바닥나고 있다. 진퇴양난이던 코로나 사태의 게임체인저로 등장한 것이 백신이다. 이스라엘과 영국이 백신 접종에 속도를 내면서 마스크를 벗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환자수와 사망률 등 방역에서 앞섰던 우리나라가 백신 확보와 접종에선 뒤처지며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피로감을 호소하는 국민에게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다. 정부가 확보했다고 밝힌 백신은 총 7900만명분. 하지만 도입됐거나 상반기 도입이 확정된 물량은 11.4%인 904만명분 정도다. 구호로만 11월 집단면역 형성을 외쳐선 안 된다. 제때 필요한 물량을 확보하는 등 근거를 갖고 국민을 설득해야 할 텐데 상황은 꼬이고 있다. 코로나19가 재
영화 도입부 우크라이나 오페라 하우스에서 작전을 펼치는 CIA 요원들은 혼란스럽고 긴박한 상황 속에서 피아我간의 식별을 위해 암구호를 사용한다. 한쪽이 ‘We live in a twilight world’라고 말하면 상대방은 ‘And there are no friends at dusk’라고 대답해야 ‘같은 편’임을 인증받는다. 어쩌면 이 암구호는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인버전(inversion)’이라는 영화의 소재와 영화의 결말까지 함축하고 있는 듯하다. ▲ 우리는 모두 어스름한 시간 속에 살고 있다. 세상이 점점 밝아올지 점점 어두워질지 알 수 없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영화 테넷 속 CIA 요원들이 피아 식별을 위해 사용하는 암구호를 다시 보자. 영화 자막에는 이 암구호가 ‘We live in a twilight world(세상에 어둠이 내린다)’ ‘And there are no friends at dusk(어두워지면 친구가 없다)’고 번역돼 있다. ‘개구리’ 하
▲ 세계 각국은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총력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반도체산업의 미래 비전도 내놓지 않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반도체 웨이퍼 대(對) A4 용지.’ ‘500억 달러(약 56조2500억원) 보조금 지급 대 반도체 강국 도약 지원 방안 마련.’ 12일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공급망 회복 최고경영자(CEO) 회의’와 15일 한국 청와대에서 열린 확대경제장관회의의 대조되는 모습과 양국 정부의 후속 조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오른손으로 반도체 웨이퍼를 들고 “반도체 칩, 웨이퍼와 배터리, 초고속 데이터 통신망 이런 것들이 모두 인프라”라며 “과거의 인프라를 수리할 게 아니라 오늘날의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이 21세기에도 세계를 이끌려면 반도체와 배터리 같은 첨단기술 분야에 공격적으로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양손으로 발언 내용이 적힌 종이를 들고 “반도체산업은 우리 경제의 현
영화 속 주인공들은 인류를 통째로 파멸시키려는 사토르에 맞서 인류의 종말을 막아야 한다. 요즘 영화에 등장하는 악당들은 대단히 통이 커서 지구 종말쯤은 기본이고 더 나아가 아예 우주까지 통째로 날려버리려 한다.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어마어마한 악당에 맞서야 하는 영웅들도 더 바빠지고 부담도 커져 버렸다. ▲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을 일어나지 않도록 한 ‘영웅’들의 이름은 묻히고 기록되지 않는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영화 ‘테넷’에서 인류 몰살을 꿈꾸는 악당 ‘사토르’가 워낙 천재적이고 그 조직도 방대하다 보니 악당을 막아야 하는 영웅과 조직도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누가 동지이고 누가 적인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언제 어디서 악당에게 노출되고 덫에 걸릴지 모른다. 그들은 서로가 동지임을 확인하는 약속된 암호를 주고받는다. 그래서인지 인류 구원의 엄청난 사명을 짊어진 주인공은 이름조차 없다. 이름이 없지는 않겠지만 이름조차 밝히지 않는다. 소련의 음모로부터 자본주의 세계를 지키는 첨병 ‘007 제임스 본드&r
▲ 여권은 총선에서 압승을 몰아준 민심이 왜 바뀌었는지 살펴봐야 하다. 성찰을 바탕으로 부작용이 노출된 정책의 기조를 전환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는 일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사진=뉴시스] 민심의 회초리는 매서웠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파란색으로 물들었던 서울 지도가 4ㆍ7 보궐선거에선 온통 붉은색으로 변했다.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8일 서울시장 취임)가 40대를 제외한 나머지 연령대에서 앞섰다. 특히 20대 남성은 72.5%가 오세훈 후보를 지지했다. 20대 이하 여성과 40대 남성만이 오세훈 후보보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더 많은 표를 던졌다. 민심이 폭발했다. 외형상 국민의힘이 압승했지만, 엄정하게 보면 민주당의 참패다. 국민의힘이 잘해서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무능과 오만, 위선으로 스스로 무너졌다. 민주당은 조직력을 총동원하고 ‘생태탕’ ‘엘시티’ 등 네거티브 공세로 국면 전환을 꾀했지만 끝내 참패했다. 민심 이반의 근원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4년 내내 이어진 집값 폭등이다. 25차례의 부동산대책에도 치솟은 집값은 빈부격차를 심화시켰
▲ 선거용으로 급조하는 부동산 대책으론 집값 안정도, 투기 근절도 어렵다. 정부와 여당은 선거를 의식하지 않고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놔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3월 29일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한 고강도 대책을 쏟아냈다. 투기 비리 공직자는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투기수익은 전액 몰수하기로 했다. 모든 공직자의 재산등록 의무화를 추진하는 한편 2년 미만 단기 보유 토지와 비사업용 토지에 양도소득세를 더욱 무겁게 매기기로 했다.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성난 부동산 민심이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로 들끓자 당정청(黨政靑)이 반부패 정책협의회를 열어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다. 회의에 앞서 지난해 7월 임대차 3법 시행 이틀 전에 서울 강남 아파트 전세보증금을 대폭 올린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전격 경질되기도 했다. 사회의 건강성을 해치는 부동산 투기에 무관용 원칙으로 대처하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특히 공직자가 지위를 이용해 취득한 정보로 투기에 나서는 행위를 철저히 차단하고, 적발될 경우 엄벌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다. 하지만 의욕이 넘쳐 실효성이 적은 일에 국민세금과 행정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