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 칼에 대한 수많은 질문에 대해 속 시원히 대답을 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앞에서 얘기한 대로 절대적으로 부족한 자료의 탓이 크다. 즉 현재 남아 있는 칼의 숫자도 미미하거니와 백동수, 박제가 등이 편찬한 [무예도보통지]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체계적인 무술서나 검술 교본이 없다는 게 큰 어려움중의 하나다. 이도 동양삼국의 무예를 다 모아 정리한 책으로서의 가치는 높지만 한국 전래의 무술비급은 아니기 때문에 한국 전통 검술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로서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근래에 이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우리 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으나 이들 역시 편협한 국수주의적 오류에 휩쓸리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이 때문에 후세에 와서 만들어진 문학적 허구와 빈약한 사실이 혼재되어 진실로 둔갑하기도 하는 슬픈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일본도와 조선검의 차이를 칼의 휜 정도, 손잡이 매듭 문양, 검막의 문양, 칼집의 구조에 따라 달라지는 패용 방식, 칼 길이의 차이 등으로 기준을 삼아 얘기하는 정도인데 원래 문화라는 것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변화 발전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그리 대단한 차이는 아닌 것 같다. 인류 역사
▲ 이상훈 한국해외원조협의회연구위원 1995년 12월쯤으로 기억이 됩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저희 부부는 케냐의 몸바사(Mombasa) 라고 하는 항구도시에 들러 지저스 요새 (Fort Jesus)라는 포르투갈이 건설했던 성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동부 아프리카의 오랜 식민통치와 자원수탈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15년이 지난 지금도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그 곳에서 발굴된 생경한 중국의 도자기 파편들이었습니다. 도자기에 대해 이렇다 할 식견이 없는 저에게도 희고 푸른 색의 도자기 파편 위에 새겨진 동·식물의 문양들을 보니 분명 그건 지구 반대편에서 온 것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그 때는 오래 전부터 중계무역으로 아프리카를 드나들었던 아랍상인들에 의해 그 곳까지 도자기가 전해졌겠거니 어림짐작을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야 15세기 초 정화(鄭和)가 이끌었던 중국 명나라 함대가 아프리카 동부의 그 해안까지 다녀갔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세계사 교과서에 실려 있던 <기린도>라는 그림이 기억이 났습니다. 아프리카에만 서식하는 이 동물이 중국 북경에 나타났
양 성 철/ 제이누리 발행인ㆍ편집인 제주도민들은 열광했다. 국민들도 함께 기뻐했다. 마음이 조마조마했지만 경기는 끝났고 결과는 보기 좋게 ‘대표선수 제주’의 승리로 귀결됐다. 물론 그 경기장에서 제주는 예상을 깨고 처음부터 선전했다. 전 세계 400여개 팀이 이 대회에 참여했는데도 그랬다. 몇 번의 리그전에서 제주는 세계 28강까지 단숨에 올라섰고, 최종 7강에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랜드 캐년은 애초부터 최강자로 손꼽혔는데 이번 대회에선 탈락하는 수모도 겪었다. 그래서 제주로선 더 영광이었다. 이곳 저곳에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선수 제주’ 역시 기쁨으로 화답했다. 지난 11월11일이 이 대회의 사실상 최종 결정전이었다. 새벽부터 환영·축하의 성대한 이벤트도 치렀다. 그로부터 이제 한 달여가 지났다. 헌데 황당한 소식이 들린다. 그렇게 열광했는데 도무지 찜찜하지 않을 수 없다. 관중석에서 그렇게 목놓아 응원했고, 휴대폰과 집전화·인터넷 가리지 않고 생돈을 들여 가면서 응원의 메시지를 그렇게 열심히 보냈는데 꼭 사기를 당한 것 같은 기분이다. 듣자하니 세계적 이벤트로 알고 봤는데 일
“생각하면, 희망이란 본래 존재한다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없다. 희망은 대지 위에 난 길과 같다. 애초부터 땅 위에 길이란 없다.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히 그 곳이 길이 되기 때문이다.” 왜들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래 전에 버젓이 있던 길을 새로 난 길인 양 이름을 붙여 또 길을 낸 듯이 설쳐대질 않나, 고작 한다는 일이란 허여멀건 시멘트와 거무튀튀한 타르를 덮어 길만 넓혀 놓고 개통식 연답시고 늘 다니던 이 길 주인 동네사람 제쳐놓고 고위직 사람 모아놓고 테이프를 끊습니다. 제주도의 올레길이나 지금도 공사 한창인 새 도로가 그렇습니다. 제주도와서 보기 싫어도 봐야 하는 일은 도로 닦는 공사현장입니다. 지금도 이만하면 길은 넉넉하지 않나 싶어 오래 살아온 제주도민에게 물어봅니다. 공히 하는 말. “도나 시에서 토목공사 외에 할 게 없잖아. 육지도 마찬가지 아닌가? 연말 다가오면 멀쩡한 보도블록을 다 들어내고 새 것으로 교체한다며? 똑같지 뭐!” 간선도로는 주민생활에서나 경제적으로나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통행량이 적은 시골길까지도 확장하느라 제주도 땅과 흙이 온통 들쑤셔지고 있습니다. 분명 다른 자
▲ 영천동주민센터 강경록 아침 저녁으로 찬 공기에 옷매무새를 움켜지는 시민들의 모습에서 이제 겨울의 문턱을 지나 매서운 동장군의 계절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듯하다. 지난여름 사상초유의 전기사용에 따른 에너지 문제가 대두되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아마도 급격한 난방기 사용 증가로 인한 에너지 문제가 표면위로 떠오를 것이란 생각이 든다. 공직에 입문하기 전에는 평소 관심이 부족했던 에너지 절약에 대하여도 공직자의 생활을 하면서 언제부터인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개인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았다. 4년간의 공직생활을 해오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단순한 행정업무처리만이 아니라 좀 더 다양한 시각을 갖고 지역과 국가의 발전을 생각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 중 하나가 에너지 절약이다. 전 세계적으로 석유에너지 사용에 의한 탄소배출 증가에 따른 환경오염 뿐 아니라 석유,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에너지 자원의 고갈에 따른 향후 대체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우리도 머지않아 다가올 에너지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중 우리 제주에서는 스마트그리드 지역 시범운영으로 새로운 청정에너지 시대의 초석을 다져나가고 있으며 제주의 무한한 자원인 바
▲ 서귀포시 대륜동장 오태욱 신묘년 새해가 밝은 지도 엊그제 같은데 이제 365일을 향해 막바지를 달리고 있다. 다음 주자인 희망찬 임진년 새해가 바통을 기다리고 있는 연말이다. 연말이 되면 불우이웃돕기 등 여러 가지 사랑나눔행사를 하는 것을 주위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추운 날씨는 견딜 수 있어도 추운 마음은 견딜 수 없는 어려운 이웃이 많이 있는 것도 현실이다. 추운 마음을 느끼는 이웃들에게는 우리들이 따뜻한 사랑만이 그들이 마음을 녹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올 연말에는 여느때 보다 더 많은 분들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훈훈한 정을 베풀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가진 자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보잘 것 없는 것일지라도 없는 자에게는 그 보잘것 없 는 것이 삶에 큰 도움이 되고 희망을 갖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면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인가. 나눔은 충족해서 쓰다 남을 때만 실천하는 것이 아니고 부족할 때 진정으로 우러나는 따뜻한 사랑의 마음에서 실천할 때 더욱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저희 대륜동주민센터는 사랑나눔창구을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자그마한 정성이라도 사랑나눔에 동참 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사랑나눔창구로 접수해 주셨으면
▲ 서귀포시 스포츠지원과 스포츠지원담당 정문석 제목은 기억이 없지만 예전에 읽었던 책 중에 필자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늘 가슴으로 되새기는 한 토막의 글이 있다. 한 여인이 훈련하고 있는 남편을 따라 캘리포니아 사막 근처에서 살림을 시작하게 된다. 그곳 생활에 워낙 궁핍하고 힘들었던 그녀는 불평과 한탄을 담은 편지를 아버지에게 보내게 된다. "지금 남편은 캘리포니아의 모제브 사막 근처의 육군 훈련소에 배속되어 있어요. 이곳 생활은 비참하기 짝이 없어요. 선인장 그늘에서도 화씨 125도처럼 느껴지는 뜨거운 더위가 몰아닥치고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음식물은 물론이고 숨 쉬는 공기도 모래투성이지요. 여기선 도저히 살 수 없어요. 이런 곳에서 사느니 차라리 교도소가 나을 것 같아요." 이러한 편지를 받은 그녀의 아버지는 단 두 줄의 답장을 보낸다. "얘야, 교도소에서 두 사나이가 창밖을 보았단다. 한 사람은 창살을 보고 또 한 사람은 별을 보았지. 너는 지금 뭘 보고 있느냐?" 그녀는 아버지가 보낸 짤막한 그 편지의 의미를 평생 가슴에 담고 오히려 그 어려운 환경에 감사하며 삶을 슬기롭게 이겨낸다. 필자는
▲ 서귀포시 대륜동 문경나 100일. 꽉찬 느낌으로 다가오는 숫자. 곰도 사람이 된다는 그 놀라운 시간. 딱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내가 대륜동주민센터에 민원인이 아닌 신분으로 발을 내딛었을 때만 해도 햇볕은 유난히 뜨거웠다. 꼬마공무원으로서 가졌던 설렘과 긴장감 때문에 가만히만 있어도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던 때였다. 한바탕 더위와 우탕탕 씨름하였더니 짧은 가을 속에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겨울이다. 12월. 누구나 연말이 되면 한해는 돌아보고, 반성하며 다음해를 기대하고 소망하게 된다. 올해 나는 어땠을까? 돌아보면 지난해까지의 12월은 다짐의 시간들이었다. ‘할 수 있을거야’라는 믿음으로, ‘해야지’라는 의지로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시간을 버텨온 계절이었다. 이제는 ‘감사’와 ‘봉사’라는 의미를 더 많이 알게 되고 다른 해와 달리 반성과 후회보다는 성취감과 보람 그리고 기쁨으로 더욱 가득찬 한해로 기록하고 싶다. 왜냐면 나는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공무원이다. ‘公務’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직장인이지만, ‘
▲ 구자헌 변호사 영화 '도가니'는 '도가니 열풍’이라 불릴 정도로 우리 사회에 많은 분노와 역풍을 몰고 왔다. 하지만, 필자는 영화 ‘도가니’를 보지 않았다. 아니 애써 외면했다고 해야겠다. 영화 내용이 장애아 성폭력 사건을 소재로 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편안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한 때 검찰에 몸담았던 필자에게 던지는 ‘독한 눈총’을 감내하기 힘들 것이란 본능이기도 했다. 전 국민의 분노 속에 몇가지 의미있는 법 개정 작업이 진행됐다.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방향과 사회복지법인과 시설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방안, 두가지 틀에서 논의되거나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필자는 그 중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입법안을 들여다 보았다. 우선, 이미 사실상 항거 자체가 불가능한 아동이나 청소년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과 관련해‘항거불능’을 입증하지 않아도 처벌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아동청소년보호법에 마련했다. 장애 자체가 항거불능 상태인데도 저항불능을 형사처벌의 구성요건으로 한다는 것은 잘못이라는 반성적 고려에서 입법화된 것이다. 다음으로는, 장애인에 대한 성범죄도 아동 대상
▲ 제주도 작은도서관협의회 회장 장동훈 작은도서관과 함께 보낸 지 이제 5년째 접어듭니다. 도서관이 대학 입시나 취업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공부방 역할로 점점 변해가고 있는 것 같은 안타까움이 아마도 저를 이 길로 걷게 만든 출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따뜻한 도서관의 추억을 지금 아이들도 느낄 수 있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 결과 작은도서관이 벌써 15개소까지 늘어나게 됐습니다. 작은도서관은 지난 2004년 12월 제주시 삼양원당작은도서관 개관을 시작으로 차츰 작은도서관 바람이 불면서 올해까지 12곳이 개관돼 운영되고 있습니다.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서귀포시 중앙동,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는 내년 3곳이 새롭게 문을 열고 지역주민들의 문화공간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작은도서관은 지역주민들이 생활환경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주민들이 차별과 장애 없이 쉽게 책을 접하고 문학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작은도서관에서는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작은음악회를 비롯해 동화구연, 영어동화 듣기, 북 콘서트, 파자마 파티, 클래식 타임 등 다양하고 유익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작은도서관은 그동안 아이들에게는 꿈
▲ 조한필 충청타임즈 부국장 종합편성채널(종편)의 개국 첫날. 모든 종편이 일제히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인터뷰를 내보냈다. 지난 1일 TV조선, jTBC, 채널A, MBN 등 어디를 돌려도 박 전 대표 모습 뿐이었다. 시청률 높이기 승부수를 공교롭게 모두 박 전 대표로 한 것인지 어느 한 곳이 그리하니 질세라 따라 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천편일률적 시도가 실망스러웠다. 박 전 대표는 사적 영역까지 밝히는 거침없는 모습을 보였다. 1967년 중학생이던 때의 비키니 차림 흑백사진이 등장했다. “당시로선 너무 과감하지 않느냐”는 사회자 질문을“몸매가 받쳐주니까 입는 거예요”라며 재치 있게 넘겼다. 박근혜 전 대표의 중학생이던 때의 비키니 차림 흑백사진 고색창연한 박 전 대표의 비키니가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사진 속 장소는 경남 진해 앞바다의 섬(저도)으로 대통령 별장이 있어 일반인은 출입이 통제되던 곳이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인 나는 가족 여름휴가는 꿈도 꾸기 힘들었다. 친구들도 매한가지였다. 수영복은 입어보지도 못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200달러가 채 되지 않아 전 국민이 가난에 허덕일 때였다. 학교
▲ 김민수 일본(日本)이 조선(朝鮮)을 침입(侵入)한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 의주로 피난하였다가 한성(漢城)으로 환도(還都)한 조선 14대 국왕 선조가 세조의 큰 손자인 월산대군(月山大君)의 사저 경운궁(慶運宮)을 국왕의 시어소(時御所)로 쓰면서 궁(宮)이 되었고 1608년 선조가 승하한 후 15대 국왕 광조(光祖)가 이 경운궁(慶運宮)에서 즉위하면서 경운궁이라는 궁호(宮號)를 붙여주었으나 을사늑약 늑결 후 설치된 일제 통감부가 1907년 정미늑약을 불법 늑결,대한국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를 강제 퇴위시키고 덕수궁(조선시대에 상왕들의 궁에 승하시까지 한시적으로 사용한 일반 궁호)으로 격하시켰으므로 문화재청은 경운궁(慶運宮) 궁호(宮號)를 환원, 재지정해야 한다. 1623년 16대 국왕 인조가 경운궁(慶運宮)에서 즉위하였으며 1897년 2월 20일 대한국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가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이어하면서 비로소 대한제국 황궁(皇宮)다운 장대한 전각들을 갖추게 되었으며 1900년 궁장(宮墻) 공사가 완성되고 1901년 경운궁과 경희궁,경운궁과 의정부(議政府)를 연결하는 운교(雲橋)가 가설·개통되었으나 1904년 큰 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