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제주도지사가 돼 고향에 돌아온 건 사실 나에겐 꿈이었다. 어찌 보면 나같은 놈이 그리 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이기도 하다. 육군사관학교를 중퇴한 학력이지만 사실 난 고등학교도 제대로 다닌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가 재임도중 한 단체의 모임에 들러 파안대소하고 있다. 어린 시절 고향(조천읍 신촌리) 내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다른 집은 밭이라도 있고, 무언가 풀칠이라도 할 거리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 집은 밭떼기 하나 없었고, 솔직히 겨우겨우 연명하다시피 생활하는 처지였다. 아버님 일거리 따라 움직이다보니 초등학교를 6곳이나 다녔고, 그래도 다시 고향에 정착해 어찌어찌 조천중학교까진 졸업했다. 쑥스럽지만 중학시절 ‘공부 1등’ 자리는 놓쳐보지 않았다. 그러나 집안에 돈이 없다보니 고교 진학 얘기는 입에서 꺼내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중학교를 마치고 그렇게 1년을 놀았다. 그렇게 아무런 꿈도 없이 세월을 보내는 내 처지가 그렇게 원망스러워 본 적이 없다. 친구들이 멋진 교복을 입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기가 죽을 수 밖에 없었다. 솔직히 눈물 나도록 공부를 하고 싶었다. &ldqu
▲ 조한필/ 충청타임즈 부국장 이틀 후인 4월 28일은 충무공 탄신일이다. 30~40년 전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를 나온 사람들은 이 날을 큰 국경일로 알고 자랐다. 그래서 날짜를 기억한다. 당시 충청권 초등학교에서 5,6학년이 돼, 난생 처음 수학여행을 갈 때면 꼭 충남 아산의 현충사를 갔다. 그 후 성장하면서 4ㆍ28과 현충사의 주인공인 이순신 장군에 대해 더 알게 됐다. 알면 알 수록 존경스러웠다. 어려운 상황에서 일궈낸 승리와 그의 인간됨, 모든 게 놀라웠다. 20여 년 전 충무공 때문에 폄하됐다는 논리를 편 ‘원균은 억울하다’는 글을 봤을 때 어느 정도 수긍은 했으나 그렇다고 충무공에 대한 존경심은 흔들리진 않았다. 선조의 무모한 공격 명령을 따르지 않아 백의종군당한 자와 그 명령을 따라 전사한 자가 있을 뿐이었다. 이순신과 원균은 임진왜란 후 행주대첩의 권율과 함께 나란히 선무일등공신 3인에 올랐다. 충무공 탄신일엔 현충사에서 다례행사를 한다. 현충사를 성역화시켰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매년 참석했다. 18년 재임기간 14회 아산을 찾았다. 그후 노태우 태통령(4회)과 김영삼 대통령(3회)을 제외하곤 거의 오지 않았다. 이명
1967년 8월17일 사무관급으로 제주도청에 첫 출근을 하고 나서 며칠 뒤. 내가 받은 첫 지시는 밤잠을 설치도록 만들었다. 한 여름에 “월동대책 세우시오?”란 말에 난 아득했다. 솔직히 며칠간 제대로 잠을 못 잤다. “도대체 무얼 어떻게 하란 소린가?” 잠자리에서도, 사무실에 앉아서도 도무지 궁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리 저리 물어가면서 하나하나 대책이란 걸 만들어 보고했다. 하지만 결과는 뻔했다. 이군보(나중 제주도지사 역임) 실장님의 눈빛은 차가웠고, 이곳 저곳을 뜯어 고치는데 꼼꼼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그분은 나를 꼼꼼하게 가르쳤다. 아직도 난 그 분의 성실과 진지, 미래를 보는 혜안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최근에 그 분을 뵌 적이 있다. “그때 저를 그렇게 가르쳐 주신 것에 대해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드렸다. 그 분은 그저 지긋이 웃기만 했다. 나는 그렇게 제주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해 6년여의 세월을 보냈다. 그 기간 중 지역계획과장, 기획관을 역임했다. 지역계획과장 시절엔 청와대로 파견, 제주를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정소영 경제수석 밑에서 제
▲ 구자헌 변호사 매일 제주교도소를 가다시피 한다.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제각각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구속될만한 사연을 가진 사람도 있고, 교도소에 안 어울리는 사람도 있다. 많은 시간을 같이 하다보면 처음 만났을 때 느껴졌던 절박함이 옅어지면서 어느 순간 평온(적어도 그래 보이는)해진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암담함에 절절 매던 사람이 극한의 터널을 빠져나와 마주 앉은 사람에게서 조금이나마 여유가 느껴질 때 변호사는 안도하는 마음이 된다. '이제 합리적인 조언이 받아들여지겠구나'라고 느껴지고, 그러면 무리한 선택은 피해갈 수 있게 된다. '속도가 한계를 넘으면 드라이버도 동승자도 모두 위험에 빠지게 된다' 일단 구속이 되면 그 환경에 맞는 패턴을 따라가게 된다. 그러므로 패턴을 벗어나는 요구(대개 구속이 되자마자 석방 대책을 세워주길 바라는)는 열 중 여덟 아홉은 실패로 돌아간다. '세상이 그런 것 같다.' 실수와 과욕으로 제법 큰 돈을 날렸을 때, 신속히 만회할 욕심에 합리적 판단을 못하고 다시 고위험을 무릅쓰는 우를 범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으로 위로 하면서... 나는 그 때 과욕과 실수를 받아들이고 나를 최대한 낮추고 돌아봤어야 한다.
‘무조건’은 ‘절대’의 뜻으로 말하곤 하지만 ‘무턱대고, 덮어놓고’의 의미를 더 갖고 있다. ‘제주도, 무조건 오지마라’는 좋다, 살고 싶다, 라는 순간감정만으로 오지 말라는 말이다. ‘따져보고 오라’의 반어이다. 단, 따져보지 않고 떠나온다면 후회, 회한의 삶이 될 수도 있는 곳이 제주도이기도 하다. 따져보면 볼수록 더 쏙 맘에 차오는 곳이 바로 제주도다. 그 뒤, ‘무조건’ 제주도를 즐겨도 늦지 않다. 무언의 제주도는 당신의 순수한 가슴을 받아들이고자 그 풋풋한 두 팔을 벌리고 이 자리 그대로 있다. “자신의 고향을 달콤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심약한 초심자이리라. 또 어디를 가도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강건한 사람이다. 그러나 완벽한 사람은 온 세상을 낯선 것처럼 느끼는 사람이리라.” -성 빅토르의 휴고「디다스칼리온」중에서 ▲ 오동명/ 제이누리 논설위원 귀소본능이라고 하나요? 가까이에는 세상에 나오기 전 9개월 간 있었던 어머니의 자궁을, 멀게는 원시시대의 옛 조상들이 살았다던 동굴을 우리
▲ 이혜정/ 한남대 교직과 교수 “삭발 끝!” 얼마 전 문자로 보내온 중학생 아들의 핸드폰 문자메시지다. 그 전날 정기적으로 행하는 두발검사를 위해 미용실을 다녀온 아들은 더 짧아야 한다며 저녁도 거르고 미용실로 갔다. 그리곤 두 시간 만에 이렇게 뜻밖의 소식을 전해왔다. 그리고 10여분 뒤 후드 티로 머리를 가리고 들어온 아들을 보고 우리 식구 모두는 순간 할 말을 잊었다. 1970년대로 돌아간 듯, 군 입대하는 듯한 머리 모양을 보고···. 조금 전 아들의 메시지를 애교 섞인 투덜거림인 줄 알았던 나는 조금 미안한 마음에 “우리 아들, 얼굴이 잘 생겨서 짧은 머리도 잘 어울리네”란 말로 위로 아닌 위로를 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두발단속 강화에 대한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학부모 총회에서 교장선생님께 건의할 것이라는 말들과 함께 1주일 정도 학교와 가정은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의 장 속에서 대립의 각을 세우고 있었다. 드디어 학부모 총회가 열리던 날! 아이들의 열망을 가슴에 품고 비장한 심정으로 출정한 학부모 어느 누구도 새로
2012년 제주호의 항해는 어느 곳을 향하고 있을까요? 그동안 우리는 모진 풍파와 악천후를 만나서도 이겨냈고, 어떨 땐 쾌조의 순항도 거듭했습니다. 모두 우리 제주인이 합심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어느 시기에건 그 시대에 숨겨진 얘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더불어 과거를 살았고, 역사를 보았던 시대의 인물이 있습니다. 제이누리는 이제 그들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그들의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 봅니다. 그들의 인생사를 통해 미래를 향한 슬기를 얻고자 합니다. 먼 미래를 향한 제주호의 항해에 다시금 좌표를 재정립하고자 합니다.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가 보내온 글이 연재의 첫 순서입니다. 제이누리는 신 전 지사 이외에도 격동의 현장을 목도한 제주의 인물을 발굴, 연재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편집자 주 해가 떠오를 때 난 제주의 비상을 꿈꾼다. 해가 질 무렵 난 제주에 지혜의 샘이 솟고 있다고 믿는다. 성공도 있었지만 과오도 많았다.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 제주의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정작 내 자신이 그런 능력을 갖췄는가라고 자문해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제주도민들에게 너무도 죄송스런 때가 많았고, 도민의 열망
▲ 조한필/ 충청타임즈 부국장 “중앙박물관에서는 늘 검은 양복 아저씨가 다가오지. 카메라를 손에 들면, 플래시는 안됩니다~. 가방에 있던 물을 마시려 하면, 나가서 마시고 들어오세요~.“ 한 네티즌이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의 국립중앙박물관 만찬과 관련해 올린 글이다. 그는 “박물관의 새 상식 패러다임을 제공해준 김 여사께 감사한다”며 말을 비틀어 비판했다. 지난달 26일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외국 정상 부인들을 대통령 부인이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초청해 저녁 한 끼 먹은 것이 문제가 됐다. 기획전시실에서 식사를 하면서 한 쪽 벽에 백자ㆍ분청사기 등을 전시한 게 화근이었다. 한 역사학자가 곧바로 SNS를 통해 강하게 비난했다. “어떤 사람이 박물관 전시실에서 국보급 문화재들을 늘어놓고 만찬을 하겠다고 하면, 그가 누구든‘미친 사람’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한순간에 대통령 부인이 미친 사람이 돼 버렸다. ▲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수반의 부인들을 초청한 국립중앙박물관의 만찬. 국립중앙박물관이 해명에 나섰다.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프랑스 루브
▲ 이상훈/ 한국해외원조협의회 연구위원 대학에 갓 들어와 지성인이라는 단어의 무게에 눌려 제대로 이해도 가지 않는 철학책 한 두권을 들고다닌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법합니다. 저만 그렇습니까? 쉬운 말도 어렵게 하는 능력이 학자들의 능력인가 싶은 글들을 읽다가….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면 이마에는 이미 굵은 줄이 아로 새겨져 있고 책은 흘린 침으로 흥건히 젖어 있곤 했었습니다. 그 책 속에는 저를 당혹스럽게 했던 단어들이 가득했습니다만 아직도 기억나는 것 중에 하나가 ‘대자적 존재’ 라는 말입니다. 그저 돌이나 물처럼 존재할 뿐이기만 하는 ‘즉자적 존재’에 비해 주변의 사물, 즉 타자를 바라보면서 그들과 구분된 자아를 인식할 수 있는 인식능력을 갖춘 존재를 ‘대자적 존재’ 라고 합니다. 이것이 정확한 표현인지 지금도 알 수 없으나 당시에 제가 깨달은대로 기억하는대로 쓰자면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좀 더 쉽게 표현해 본다면 자기 자신을 바르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비추어 볼 거울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이 세상에는 존재하는 타자들이 바로 이 거울과 같은 존재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
▲ 양성철/ 발행.편집인 아담 쉐보르스키(Adam Przeworski)는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다. 미국 뉴욕대 정치학과 교수다. 폴란드 출신으로 이제 만 72세다. 민주주의의 본질, 민주화 이행의 조건, 민주주의와 시장의 관계 등에 관한 주요저작을 냈다. 한국정치학계에서 이론가로 꼽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스승이기도 하다. 최 교수의 미국 유학시절 박사학위 논문을 지도한 이가 바로 그다. 그는 2010년 말 아프리카의 5개 신문과 인터넷 미디어 아프로온라인(Afronline)과 인터뷰 자리를 가졌다. 코트디부아르·튀니지·이집트·리비아 등 아프리카 지역에서 민중의 정치적 열망이 번지면서 정치적 위기와 대중혁명으로 나라마다 체제가 흔들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선거’(election)와 ‘민주주의’(democracy)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현직에 재임 중인 자가 선거에서 패배할 수 있고, 패배하면 사무실을 떠나는 것이 민주주의다. 자유롭고 경쟁적인 선거가 없다면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적어도 정치적 자유를
▲ 우도면 주민자치위원장 김철수 겨울의 거센 바람을 이기고 새봄과 함께 깨어나는 야국과 노란유체 꽃과 돌담이 어우러져 파노라마를 이루는 섬 속의 섬 우도. 사람과 사람사이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꿈의 섬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맑은 공기, 우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마음에 추억과 희망을 한 아름씩 안겨줄 ‘제4회 소라축제’가 오는 13일부터 15일까지 열리게 된다. 축제는 방문객과 주민간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높여주는 화합의 장이 되어야 한다. 자연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우도의 브랜드축제가치가 상승해 지난해 100만 관광객유치 목표를 달성하고 금년도 120만 관광객 유치 및 소라축제를 위해 서울청계천광장 갤러리에서 3박4일간 소라축제 리플릿, 우도땅콩, 우도풍경 엽서, 우도풍경사진액자 30점 등을 전시 홍보했다. 도서지역의 특성을 살린 새로운 섬 관광 축제상품개발과 숨어있는 잠재력을 현실화시켜 나간다면 지역경제 활성화와 가장 풍요로운 섬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우도를 선호하는 이유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바다와 섬 해안절경 맑은 공기에 비중 있게 제시되고 있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넓히려면 지
▲ 오동명 논설위원 제주도로 옮겨온 기간은 3년쯤 되지만 도민이 된지는 불과 몇 달이 안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제주도에 정착 가능성을 타진했던 전야제 같은 시간을 거의 3년이나 가져야했다. 그동안 겪은 일도 많아서다. 겪은 일은 제주도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했다. 그러나 그래도 좋은 제주도를 알게 되고 나는 주민등록을 그제야 옮길 수가 있었다. 해서 이번 총선은 나에게는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도민권리행사를 치루는 첫 날밤의 경험과 같아 서울서 자주 치렀던 의례투표와는 그 기준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이방인이면서도 주체이기도 한 내가 선거를 바라보고 있어서다. 제주도에서 행해야 하는 선거에 대해, 나와 같은 도민이지만 이주민들인 주변인들은 대체로 두 종류로 나뉜다. 선거에 무척 관심을 보이는 매우 적극적인 사람들과 전혀 무관심한 사람들이다. 어중간한 사람은 보기 힘들다. 작년에 있었던 서울시장 선거에 나에게도 손길이 미쳐왔었다. 이런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제주도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 섬까지 와서, 하물며 선거를 의도적으로 기피하며 자기 삶에 천착하고 산다. 나도 후자에 속한다. 별 관심이 없는 것은 서울서 기자를 오래 해서 질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