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일경/ 일본 추쿄대 종합정책학부 교수 3년 전인 2009년. 일본에서의 정권 교체는 시민이 주역이 되는 시대가 열리는 청신호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민이 주역이라는 일본 민주당의 창당 이념은 그때 이후 빛이 바랬다. 정권 교체 이후, 3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선거도 없이 수상(총리)은 두 번 이나 교체되었고, 세 번째로 등장한 수상과 일반 시민 간의 소통은 찾아볼 수가 없다. 돌연 공약으로 내걸지도 않았던 소비세 증세에 정치생명을 걸겠다는 현 수상의 주장이 국민은 커녕 민주당 의원들에게조차 공감을 얻지 못하는 건 당연지사다. 국민들은 그저 당혹스러울 뿐이다.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말로 표현하자면 ‘멘붕’(멘탈붕괴) 상태이다. 더욱이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터진지 1년이 지나도 책임을 지는 자는 찾아볼 수 없고, 여·야를 막론하고 시민사회에서 조차도 책임을 추구하는 자세도 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 도쿄전력은 원자력 발전소를 재가동시키지 않는 한 전기세를 올리지 않을 수 없다는 협박성 주장을 당당히 펼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동조하는 정부의 주장이 뻔뻔스럽게 반복되고 있다. 국민들은 다시 당혹스럽다. 그야말로 ‘멘
때는 1990년 12월5일 새벽 5시. 전날 굳은 결의를 마음 속으로 다지고 YS의 서울 상도동 집을 찾았다. 그리고 집 앞에서 기웃거리는데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새벽에 조깅을 나간다고 듣긴 했는데 이렇게 이른 시간에 나가는가?”라며 난감해 하던 차였다. 혹이나 하는 마음에 대문 옆으로 난 쪽문이 보이길래 두드려봤다. 웬 할머니가 문을 열더니 날 빤히 쳐다봤다. “어찌 오셨수?” 후일 YS를 따라 청와대에 들어가 특유의 칼국수 솜씨를 선보인 할머니였다. 청와대로 간 뒤 언론에서 ‘밥 할머니’로 꽤 유명세도 치른 분이다. 그 분에게 간단한 소개를 하고 “대표님을 뵙고 말씀드릴 일이 있다”고 여쭙자 기다리라며 손짓을 하고 안으로 쑥 사라졌다. 그리고 5분여 뒤 집안 한 켠으로 안내를 받았다. 들어가보니 한마디로 진풍경이었다. 수십명의 기라성 같은 ‘백성’(?)들이 좁디 좁은 방 안에 주욱 줄지어 있었다. 더욱이 황당하게도 장관직에서 물러난 지 얼마 안 된 강보성 전 장관도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 분이 놀란 듯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l
▲ 제주도 복지청소년과장 변태엽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각종 정책을 시행함에 있어 우선 고려해야 할 것은 ‘투입된 재원이나 노력으로 인해 어느 정도 가시적인 정책시행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사회복지의 경우 투입되는 재원이나 노력에 비해 도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복지 체감도는 기대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불합리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복지전달체계의 복잡성과 중복성, 편중성 등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공적급여와 민간의 지원이 수급권자 중심으로 집중되면서 중복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차상위 등 취약계층에게는 자립·자활정책의 미흡과 민간지원도 제외되어 체감도가 떨어지고 있는 것도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올해 우리도 사회복지 예산은 전체 예산의 18.5%인 5,706억원 규모로 짜여 있다. 이 예산은 각 분야별로 반드시 필요한 곳에 지원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문제는 예산이 배정되는 사업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중복성 수혜자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방문 돌봄의 경우 가사간병, 노인 돌봄 등 13개 사업을 80개 기관&
▲ 제주교도소 교화위원 김철수 ‘천부인권’이란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해준 권리라는 뜻이라고 필자는 알고 있다. 하늘이 인간에게 생명을 부여해줬으니 다른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의 존엄성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행위이다. 목숨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 한명 한명은 모두 다 소중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격이 있다는 뜻이다. 죄수들의 인권도 존중되어야 한다. 최소한의 인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인도적 차원에서 수감자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 최우선으로 신변안전 및 인권보호가 되어야 한다. 인간은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누구나 죄를 범할 수 있다. 죄를 지으면 죄의 대가를 지불해야 하며 자기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작은 죄에서 큰 죄까지 인간의 삶에서 죽음으로 옮겨가는 일이 있다. 정작 무서운 것은 강도나 살인이 아니라 서로간의 미워하는 인간의 부정적 감정이다. 인간의 증오야 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며 인류가 앞으로 두려워해야할 재앙 중에 하나다. 현재 제주교도소는 40여년이 지난 건물로 노후 되어 ‘건물안전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된다. 조속히 현 교도소건물을 재평가해 공
마음의 빚을 졌다. 밝히는게 도리라고 보기에 짚고 넘어가려 한다. 낸시 애덤스(Nancy Adams). 한-미간 쇠고기 협상 타결에 그녀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990년 봄까지 이어진 한-미 협상에서 미국측 수석대표였다. 당시 칼라 힐스(Carla A. Hills)가 대표였던 미국 무역통상대표부(USTR)의 부차관보 신분이었다. 그녀는 집요했다. “한국은 OECD 반열에 이미 진입했고, 시장개방 일정표를 내놓으라는 GATT의 평결을 수용했다. 더 이상 쇠고기 시장개방을 미루면 GATT 협정의 슈퍼 301조 조항에 따라 일부 품목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와 관세부과 등 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으름장이었다. 난 이에 대해 “양국의 축우산업에 대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 공동조사단을 꾸리자”며 맞서면서 시간을 질질 끌었다. ▲ 1990년 1월 농림수산부 축산국장 시절 한미 쇠고기협상 수석대표로 미국 대표인 낸시 애덤스와 경기도 광주의 한 축산농가를 방문, 현장실태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다. ▲ 한미 쇠고기 협상단이 경기도 광주의 한 축산농가를 찾았다. 1990년 1월의 일이다. 그러다 그녀의 마음을 움직인 일
제주시내권 관광지 접근 편리 도모를 위해 운행되는 정기순환 버스 ‘시티투어버스’. 제주시는 이 사업을 지난해 10월부터 시범으로 추진하고 있다. 최근 급증하는 도보여행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여유 공영차량 4대 중 2대를 활용하고 있다. 성인 기준으로 5000원이면 하루 종일 이용할 수 있다. 코스는 제주시외버스종합터미널-제주시청-별빛누리공원-한라생태숲-사려니숲길입구-교래사거리-제주돌문화공원-절물자연휴양림-노루생태관찰원-제주4·3평화공원-봉개-국립제주박물관-국제부두-연안부두-동문시장-관덕정-서문시장-용두암-공항-제주시외버스종합터미널이다. 그 목적으로 보나, 저렴한 여행 및 관광을 위해서나 나무랄 데 없는 시책이다. 그러나 이용객은 기대치에도 못 미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오히려 운행할수록 적자만 늘어나고 있다. ▲ 제주시티투어버스 지난 24일 제주시에 따르면 3월2일부터 이달 20일까지 80여 일간 이용객은 모두 3211명이다. 주중 하루 평균 37명, 주말 47명으로 하루 평균 40명이 이용했다. 하루 10회 운행하니 버스를 한 번 운행하면 4명이 이용하는 셈이다. 이는 지난해 10월부터 11월까지 1
▲ 오동명/ 제이누리 논설위원 ‘사소한 차이의 나르시시즘’ 나라나 민족은 물론이고 지역 간 또는 집안의 가족 간에 생겨나는 작은 갈등에 대해 프로이트가 한 말입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배타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거부하거나 받아들이려하지 않는 마음닫기입니다. 이것은 자기를 더 가두게 됩니다. 이기(利己)는 이에 더욱 빠지게 함으로서 배타로 나타납니다. “여기까지 와서 뭐 그럴 필요가 있나?” 제주도에 건너온 지 1년쯤 되어가는 한 소설가는 처음과는 달리 좋은 게 좋다며 한데 아우러져 살자며 종종하던 이 말을 바꿉니다. “터놓고 살아보니 아주 형편없이 막 대해오더군!” 이웃 간 마음의 문을 닫게 됩니다. “미안합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이 말 한 마디 하면 될 것을 이조차 할 줄 모르는 사람들과 여기까지 와서 섞여 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어디나 유유상종, 끼리끼리 모이나 보네.” 이런 경우가 어찌 제주도만이겠습니까? 제주도로 이주해온 상당수 사람들이 주로 1~2년 사이에 겪는 일입니다. 이를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면 제주도는 자기 자신을 고립시키는 외로운 섬이
세상 이치를 도통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렇게 어떤 자리에 오르고자 할 땐 그리 어렵더니 느닷없이 농림수산부 안에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는 인물이 됐다. 전두환 정권 시절 난 마치 물을 만난 듯 주요보직을 꿰차기 시작했다. 농림수산부 총무과장이 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난 농업공무원교육원 교수부장이 됐다. 1983년 내 나이 만 41세에 불과하던 때다. ‘똥차’ 취급 받으며 거의 쓰레기 하치장으로 밀려나는 격이었던 내가 농림부 내에서 최연소로 국장 자리에 오른 것이다. 이걸 당시 권력의 실세였던 보안사의 두 친구 덕으로 봐야 할 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최선을 다했다. 늦은 밤 술 한잔을 걸치고 한풀이나 하던 과거의 내가 아니었다. 주어진 기회를 살려 최선을 다해, 보란 듯이 능력을 입증해 보여야 했다. ‘제주 촌놈’에게 이제 기회가 온 만큼 난 승부수를 던져야 했다. ▲ 초임 공무원 시절 아내, 큰 아들과 함께 한 모습 그 때쯤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경기도 과천시에 정부 제2청사가 들어서던 1983년 무렵이다. 농림부는 과천행이었다. 서울시내에서 출퇴근하는 건 무리였고, 공무원들의 이주를 권장해 과천시
▲ 김대용/ 제주한라대 교수 우리와 다른 문화권의 생활양식과 의식구조를 이해하는 건 사실 세계시민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적 소양이다. 이슬람 문화권은 지구상 최대의 거대한 종교 문화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으며, 서구 기독교 문화권과 대등한 세계사의 주역이다. 지구촌 인구의 4분의 1이나 되는 이슬람 세계의 이해 없는 국제화 세계화는 허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슬람 이야기] 1편에서 거론했던 바다. 이슬람 세계는 만민평등, 평화와 형제애를 지향하는 이슬람이란 종교를 신봉하는 종교 문화공동체다. 57개국이 이슬람국가이며 무슬림(Muslim: 아랍어로 이슬람 신자를 통칭한다)수는 무려 16억 인구나 된다. 이들은 특유의 응집력으로 의식주와 관혼상제의 의식을 공유한다. 흔히 지구촌 3대종교인 기독교·불교와 더불어 지구촌 최대의 종교공동체인 것이다. 우리네 생활 중에 유교의 가르침이 관습화 되어 관혼상제의 근본을 이루는 것보다 더 깊게 이슬람은 일상생활에 녹아있다. 그런 무슬림들이 생활 패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의 방법과 가치관을 규정하는 ‘이슬람’이란 종교의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는 관습화된 생활종교로서 그들이 일상
이승택 지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난 서울행 비행기를 탔다. 1974년 3월의 일이다. 사무관급 신분이던 난 농림수산부 농특사업국 기획계장이란 자리에 앉았다. 정소영 장관은 예상대로 청와대에서 2년간 경제수석으로 국가의 경제정책을 총괄지휘했던 분 다웠다. 농림수산부의 핵심을 두루 간파하고 있었고, 여러 획기적인 정책들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식량증산이 그 당시 다급한 문제인지라 정 장관은 우선 주식인 쌀 절약에 매달렸다. 혼·분식 장려운동이 벌어진 것도 그 때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장관직을 잘 수행하시던 그 분이 돌연 장관 자리에서 물러났다. 75년 12월로 기억한다. 너무나 갑작스런 일이었다. 정 정관의 퇴임으로 난 외톨이가 됐다. 난 그분을 청와대에서 모시면서, 그분의 식견과 추진력에 탄복했던 터였다. 오로지 그분만을 믿고 농림수산부 행을 결정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분이 막상 장관직을 버리고 떠나자 난 철저히 고립되기 시작했다. 서울의 공직자 사회에 제주출신은 찾아보기도 어렵고, 또 난 잘난 서울법대 출신도 아니었다. 여기에 한술 더 떠 농림수산부의 요직은 서울대 중에서도 서울농대 출신이 꿰차고 있는 현실이었다. 서울농대 출신은 흡사 '마피아'
제주도지사로 취임하면서 주마등처럼 스쳐갔던 내 옛 얘기는 고교시절로 그치지 않는다. 솔직히 1993년 지사 임명장을 받고 가는 제주행 항공기에서 난 수많은 사연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 신구범 전 제주지사의 29대 도지사 취임식 장면 다시 농림부에 가기 전 제주도청에서 근무하던 때 얘기다. 내가 초임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하던 때 도지사는 정우식 지사였다. 다혈질적인 분이었다. 당시는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이었고, 그 역시 육군 헌병대 대령 출신이다. 제주지사로 부임하기 전 서울시경찰국 국장을 역임하셨다. 그런데 성정이 워낙 거셌고, 군출신 특유의 성격 탓인지 지사 집무실에 결재를 받으러 온 간부 공무원들이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으면 정강이를 걷어차는 일이 예사였다. 차분한 성격의 이군보 기획관리실장(차후 도지사 역임)님도 지사실에 업무보고를 하러 갈 때는 나를 지사실로 들여 보냈었다. 어찌된 일인지 정우식 지사는 나에게 그리 거세게 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그때도 스포츠 머리를 하고 지냈다. 그런 나에게 기껏 하는 얘기는 “까까머리가 그래도 좀 하네”라고 하는 수준이었다. 하루는 지사실에 들어가 잔소리를 듣게 됐다. 이것 저것 보고자
▲ 권혁성 관장 간만에 안부 전해드립니다. 여기 남 캘리포니아는 봄날 같지 않게 어제 오늘 가랑비가 간간이 흩날립니다. 이러다가 또 한여름같이 더워지곤 해서 감기환자들이 많아졌습니다. 원래는 6월 부터 한 달 가량 계속 되는 June Gloom(오전에 흐리고 오후에 개는 남가주의 특이한 기후 현상)이 벌써 시작된 것 같기도 합니다. 처음 여기 와서 신기했던 것이 한국과는 다르게 비가 오는 겨울에는 풀이 새파랗게 돋아나는데 햇볕이 따가운 여름에는 잔디가 다 누렇게 말라 죽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산불도 나무와 풀이 잔뜩 마른 늦여름에 자주 일어납니다. 생성과 소멸이라는 자연의 이치가 계절과 어긋난 듯해 보이지만 캘리포니아 해안지역의 반사막 (semi-desert) 기후에 절묘하게 적응한 생명의 신비가 느껴집니다. 돌봐 주는 사람 없이 수십만 년을 저렇게 잘 살아왔을 풀과 나무를 보면서 오히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더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비춰 보게 됩니다. ▲ 미국 캘리포니아 레드우드 국립공원 어느 학회에 참가 했던 저명한 인류학자에게 누가 질문을 했습니다. "어느 특정 문명의 존재 유무를 살펴 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첫 번째 단서가 무엇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