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도의회 교육위원회 윤두호 의원 최근 창의ㆍ인성이 교육의 목적으로 인지되면서, 교육기부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높아지고 있다. 교육기부란 기업ㆍ대학ㆍ공공기관ㆍ개인 등 사회가 보유한 인적ㆍ물적 자원을 교육활동에 직접 활용할 수 있도록 비영리로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즉, 교육기부를 통해 교육에 대한 장소, 교수자, 체제 등을 확대해 체험 속에서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을 일치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교육기부를 활성화하며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한 방법으로 자원봉사와 재능기부 방식을 접목시켜 방안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누가 봉사와 의무의 차이를 물어본다면 어렵지 않게 대답을 할 수 있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봉사활동을 자신의 원해 자발적으로 하고 있는지, 아니면 의무적으로 행하고 있는지 묻는다면 원해서 봉사활동에 임한다는 경우는 매우 적다. 여기서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가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봉사활동에 대한 오개념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봉사활동에 대해 내가 누군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대상 즉,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것으로 인지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점이 간과되고 있다. 만약 일방적으
▲ 작곡가/음악평론가 김일호 헬라어에는 번역은 같아도 의미는 다른 ‘새로운’이라는 단어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네오스(neos)라는 단어의 ‘새로운’으로 이것은 숫자상으로는 새롭지만 다른 것들과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이다. 또 하나는 카이노스(kainos)의 ’새로운‘이라는 단어로 이것은 숫자상으로도 새로울 뿐 아니라 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것을 의미한다. 가령, 새로 구입한 차(car)와 같은 차는 전국에 수 백 대가 더 있다. 이 차는 새로운 차이긴 해도 이미 생산된 차들과 다를 바 없는 동질의 차로 네오스(neos)인 것이다. 그러나 카이노스(kainos)는 대량생산 된 많은 수의 차가 아니라 주문 생산한 한 대의 차(Model T car)로 숫자상으로도 한 대의 새 차이며 질적으로도 전혀 다른 완전히 새로운 차를 말한다. 성경에는 “새(neos)포도주는 새(kainos)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예수님의 새 포도주 비유가 있다. 여기에는 ’새로운‘이라는 뜻의 두 가지 헬라어 단어들이 모두 사용되는데 전자의 새(neos)포도주는 양적차원의 의미이며
▲ 제주국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권미영 제주가정위탁지원센터와 인연을 맺은 것은 올 여름 학교수업의 일부이기도 한 실습과정을 하면서다. 실습과정 속에서도 많은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나 같이 놀아주고 보듬어 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러던 중 센터에서 진행하는 ‘신나게 놀자! 아이들아, 아이들아’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드디어 아이들과 같이 어울려 놀아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행사장소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새 신을 신은 것 마냥 가볍고 경쾌했다. 행사 장소에 도착해서 위탁부모님들과 인사도 나누었다. 위탁부모님들은 한결 같이 밝은 얼굴로 웃음을 띠고 계셨는데 그 모습 자체가 나에겐 천사였다. 체육관 이곳저곳에서는 ‘하하호호’ 가족사진을 찍고, 조막만한 얼굴과 고사리 같은 손에 페이스페인팅을 그리고 있었다. 첫 경기 신발던지기 게임. “선수 나오세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로 손을 들고 뛰어가는 아이들. 어쩌면 이렇게 티 없이 맑고 예쁜지…. 아이들은 한 경기 한 경기에 열정과 끼를 숨김없이 보여주었고 작은 경품하나에도 함박웃음을 지
아내와 난 사실 사회복지 문제에 깊이 있는 지식이 없었다. 물론 먹고 살기에 급급해 살다보니 주변 이웃들을 돌아볼 기회가 적었다. 우린 어렵사리 살다 내가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나마 생계를 꾸려가게 됐고 분에 넘치는 지위와 호사를 누렸다. 그저 하늘에 고마울 따름이다. 솔직히 말하면 도지사로 부임하기 전엔 어려운 이웃들을 어떻게 돌봐야 할 지도 몰랐고, 그저 푼푼이 생기는 대로 기부나 하면 될 줄 알았지 행동으로 나서지도 못했다. 그런 우리에게 괘종시계처럼 다가온 인생사가 있다. 돌이켜보니 사회복지에 눈을 뜨게 만든 건 큰 아이와 더불어 나눴던 시간들 때문이다. 큰 아이 용인(부산지법 판사 역임. 변호사·제주대 로스쿨 교수)은 내가 고시에 합격하기 전 농사를 짓고 살 무렵 태어났다. 덜컥 생긴 아들 덕(?)에 가족을 부양해야 할 의무에 놓인 내가 고시를 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러나 큰 아이는 선천성 심장판막증이란 병명을 안고 태어났다. 선거판에서 병역비리 의혹을 받은 아이다. 하도 기침이 잦고 열이 많았지만 우리 부부는 그걸 단순 감기로 알았다. 그러다 그 시절 제주시 칠성통에 있는 이동일 내과에 가서 물어보니 “수술하지
▲ 양성철/제이누리 발행·편집인 제이누리 독자 여러분! 관심과 후원, 격려 덕에 이제 제이누리가 창간 첫돌을 맞습니다. 지난 1년을 회상하다 보니 쏜살같다는 표현은 이런데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조금 길게 얘길 드리려 합니다. 자랑이 섞일 것 같아 쑥스럽지만 보고라고 생각하고 양해바랍니다. 제주를 여는 창! 제이누리는 지난해 11월 2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8개월여에 걸친 기획과 벤치마킹, 미디어법인 설립 등의 준비과정을 거친 결과입니다. 8월30일 미디어법인 JNN(주)설립, 9월1일 사업자등록 완료, 그리고 9월16일 인터넷신문 등록이 창간에 앞선 설립과정입니다. 출범준비 체제가 갖춰지자 드디어 지난해 11월 2일 제이누리는 세상에 그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창간을 알리는 기념식장엔 50여년 외곬 인생을 보내오신 김영희 중앙일보 국제문제 대기자가 직접 참석, 축사로 거들었고 그 외 도내외 각계인사 등 1천여명이 오셔서 저희들의 앞날을 축원해주셨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창간과 동시에 제이누리는 새로운 시도에 나섭니다.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을 도내 언론사 가운데 가장 먼저 서비스하기 시작한 제이누리는 세계를 향한 비전을 선보입
▲ 이권홍 논설위원/ 제주국제대 교수 아침저녁으로 차갑다 싶은 쌀쌀함만 없다면, 요 며칠 날씨는 최고다. 청량함이야 가을의 본뜻일 터이고, 매해마다 맞이하는 것이라 새로운 감회는 그리 크지 않다지만, 얄궂은 태풍이 온 세상을 훑고 간 뒤라 그런지 유독 쓰라리다 싶을 정도로 온몸 가득 가을이란 의미를 느끼고 있다. 원래 가을이란 풍성함의 상징임엔. 그래서 옛사람들도 강호에 가을이 드니 고기마다 살져잇다. 소정小艇에 그믈 싯고 흘리 띄여 더져 두고, 이 몸이 소일消日하옴도 역군은亦君恩이샷다. (맹사성孟思誠의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 라며 여유로움을 노래했을 터이다. 임금의 은혜라 애써 ‘역군은亦君恩’을 계속 외치고 있는 게 흠이라면 흠일까. 하지만 이는 조선 사대부들의 한계이니 그리 탓할 것은 없다. 어차피 지금도 ‘성군聖君’을 기대하며 온 세상을 붉은 색으로 칠하고 싶은 세력들이 있음으로. 어쨌든 가을은 여유로움이다. 그래서 사랑도 가을 같다 하지 않았을까?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도종환의 「가을사랑」) 이렇듯 사랑도 가을 닮아 넉넉함으로 다가온다. 모든 이들의
선거에서 지고 민선 1기 도지사 퇴임식을 치른 다음날인 1998년 7월 1일. 나와 아내는 이른 새벽부터 짐을 챙겼다. 그리고 오전 8시20분 완도행 카페리에 몸을 실었다. 한 열흘간 푹 쉬다 돌아올 생각이었다. 자동차를 손수 몰아 곧바로 남해안을 내달려 김해~경주~영덕~울진~동해~강릉을 거쳐 동해안을 따라 올라갔다. 12시간이 넘게 운전한 끝에 다음날 새벽 2시에 숙소인 속초의 일성콘도에 도착했다. 오랜 시간 운전하며 많은 생각을 했다. 만감이 교차했다. 정치현실을 몰랐고, 타협하지 않는 삶을 택했던 내 방식에 대해서도 반성이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편안함이 밀려왔다. 어디에 묶이지 않은 것 같은 자유 덕인지 이상야릇한 기쁨도 마음에 자리잡았다. 마침 큰 아이 부부와 첫 손자도 속초에서 만나 오랜만에 가족애를 느낄 수도 있었다. 손자의 재롱을 보며 하루가 시작되고 저무는 나날이 행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은 내 생각대로만 돌아가 주는 게 아니었다. 그저 잊어버리려 마음을 비우고 있는 지 사흘째 되던 7월3일 며느리가 놀란 표정으로 허겁지겁 달려왔다. 온천을 다녀오고 나서 아들 녀석과 한 시간 쯤 탁구게임을 하던 때였다. 중앙일보 사회면 톱기사
▲ 이상훈 논설위원/ 한국해외원조협의회 연구위원 이 세상에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편견이 있다면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면 다른 모든 분야도 함께 윤택해진다고 믿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GDP 60불도 안 되던 세계최빈국에서 세계 10위의 경제대국까지 반세기만에 이룬 것을 보면 그런 편견을 상식으로 만드는데 한 몫을 했으리라고 생각된다. 세계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가난한 대륙 아프리카에서 살다보면 이 편견과 상식이 도대체 자기 자리를 지켜주지 않는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에게 편견인 것이 이들에게는 상식이고, 이들에게 상식인 것이 우리에겐 편견이 된다. 실로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꼭 일어난다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의 준말)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논리적 근거가 없다. 아프리카의 정치 지도자들을 보면 과거 우리나라의 박정희 대통령과 닮아도 참 많이도 닮았다. 우간다의 무세비니 대통령은 한국의 정치사를 따로 공부했는지 모르지만 장갑차를 시내 한가운데 배치하고 3선(選)개헌을 하더니만 얼마 전 그것도 모자라 다시 한번 개헌을 해 대통령선거를 무제한 녹다운제로 바꾸었다. 으레 그렇듯이 오래 롱런하시는 분들의 한결 같은 사명감으
▲ 강철수 제주시주민생활지원과장 기초생활수급자 관련 민원이 하루에도 수십 명씩 전화로 상담하거나 사무실로 찾아오고 있다. 대다수는 기초생활수급자 자격기준에 대해 문의하는 내용이다. 일부는 생계비가 너무 적다고 투정거리며 큰 목소리로 불만을 표시해 사무실을 싸늘하게 만들기도 한다. 지난 2000년 10월 1일부터 시행해온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만 13년이 되었다. 근로능력여부, 연령관계 없이 국가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최저생계비이하의 가구에 대해 필요한 급여제공과 자활을 조성하는 제도이다. 즉, 가난한 국민에게 국가가 책임을 지고 생계, 주거, 교육, 의료 등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것이다.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소득인정액과 부양의무자 기준을 동시 충족돼야 각종 급여를 받을 수가 있다. 13년이란 장고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정부의 부단한 노력으로 기준완화 등 발전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주변에는 여러 가지 법 제약으로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되지 못하는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국민들이 이외로 많은 것도 사실이다. 전 세계가 장기간 경제 불황으로 중산층의 몰락과 빈부격차로 인한 어려운 계층이 계속 증가하는 현실에서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류에 맞게 개선되어야한다고 본
제주 WCC 파빌리언, 세계와 매력적인 우리지역을 공유하다 동굴천장에 나무뿌리가 매달려 있는 어두운 동굴 사진들이 스크린에 나타났다. 이어 바위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사진들이 나타났다. 사진들은 수천 년 동안 감춰졌던 곳을 한 탐험가가 발견하는 모험 영화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듯 했다. 이 두 장면들은 제주특별자치도가 WCC에서 제주 자연보호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이 분야의 저명한 전문가들이 정리한 내용들이다.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용천동굴 100m 안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 DNA 분석을 하고 있는 김상태 교수 등은 전문가와 탐험가로 일했다. 이 동굴은 2006년 전봇대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발견됐고, 자연 보물상자와도 같았다. 김 교수는 어떻게 이 식물들의 뿌리가 동굴을 통과했으며 동굴구조에 어떤 영향을 끼칠 건지를 질문했다. 이 뿌리들은 살아있는가? 아님 죽어있는가? 이 뿌리들이 동굴을 붕괴시킬 것인가? 김 교수가 만든 DNA 바코드 시스템이 이 모든 것을 분류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이 동굴 위에 있는 땅을 사용하지 않아 식물들이 이렇게 뿌리를 내리게 됐다. 2007년에 찍은 것과 2010년 찍은 두 사진을 비교해 보면, 2007년에 찍은 사진은 거의 아무
▲ 조한필 객원논설위원/ 충청타임스 부국장 'MB 임기에 맞춰 왜색(倭色)으로 숭례문 도배.’ 한 국회의원이 지난 5일 국정감사 때 돌린 보도자료의 제목이다. 복원 막바지 공사가 한창인 숭례문의 단청(채색) 작업에서 “한가지 빼고 9가지 모두 일본산 재료를 사용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2008년 소실된 숭례문 복원은 국민적 관심사다. 복원과 관련된 모든 게 이슈화됐다. 그래서인지 주무기관인 문화재청은 지난 6월 현장설명회에서 단청은 천연안료를 사용하기로 했는데 “석간주(산화철을 함유한 붉은 흙), 호분(고운 조개 가루), 먹을 제외한 안료와 아교는 일본 수입품을 사용한다”고 미리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결국 호분과 먹까지 일본산을 사용하게 됐다. 이런 ‘왜색 단청’은 예견된 일이었다. 우리 문화재 단청은 최근 40여 년간 천연안료 대신 화학안료를 사용해 왔다. 중국제를 많이 사용하던 조선시대에 일부 안료가 국내에서 생산됐지만 근래엔 어떤 천연안료도 국내에선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수요가 없으니 만드는 사람이 없다. 왜 천연안료를 안 썼을까? 1970년
14년 전의 일이다. 강산이 뒤바뀐다는 10년도 지난 일을 떠올리고 있지만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그게 안타깝다. 그만큼의 시간을 거쳐도 아직도 그 때의 일들이 내 가슴에 또렷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아프게 만든다. 지금부터 할 얘기는 미스테리다. 지금도 의혹의 시선을 거둘 수 없고, 그 때 그 시절의 일들을 생각하면 과연 정의는 살아있는가란 자문을 하게도 만든다. 그러나 믿는다. 시간의 차이가 있었을 뿐 역사는 도도히 흘러갔다. 나 혼자만의 분노와 좌절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제주도민 사회가 과거의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는 나침반으로 여겨 준다면 여한이 없다. 1998년 4월30일. 난 경선에서 어이없이 무너졌다. 새정치국민회의 제주도지사 후보 경선에서 아무리 곱씹어봐도 ‘말도 안 되는’ 룰의 게임에서 졌다. 하지만 패배는 패배였다. 다음날은 5월1일. ‘가정의 달’의 첫날이다. 무언가를 훌훌 털고 싶었다. 가정을 돌아볼 시간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선 다음날 출근한 나에게 한 과장급 공무원이 다가와서 말했다. “선거조직 없이 출마해서 TV토론에서 도민에게 그동안 해왔던 일을 알리고 떠나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