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혁성 논설위원 <선택의 길 중 하나> 미국에서는 가족과 함께하는 큰 두개의 명절이 있다. 바로 며칠 남지 않은 '추수 감사절(Thanksgiving)'과 크리스마스다. 송년과 신년맞이는 보통 친구들과 밖에서 즐기지만 이 두 특별한 날은 전통적으로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보낸다. 영어에서 ‘감사하다’는 'Thank'라는 말은 ‘생각하다’라는 'Think'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여러 가지로 이해할 수 있겠으나 '생각해보니 고맙다'는 말이다. 즉, 감사는 '선택'의 문제인 것 같다. 그래서 심지어 고마울 조건과 상황이 아닌 것처럼 보일 때도 우리의 의지로 감사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네 삶이 이런 선택과 해석의 연속이라면 부정적인 해석과 선택 보다는 긍정적인 해석의 관점에서 인생을 볼 일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과 조건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 것을 보는 눈을 바꿔야 할 것인데 그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신대륙에서 힘든 첫 해를 보내고 추수감사절을 지켰던 청교도들은 그저 살아 남은게 감사했던 것이다. 풍요로운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그다지 특별하게 좋은 것도 없었겠지만 그들에게는 그 빈곤마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라고 했던가? 1993년 12월 말 제주도지사로 부임하면서 주마등처럼 많은 일들이 내 뇌리를 스쳐갔다. 행정고시에 패스, 제주도청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6년여 시간과 청와대와 농림수산부에서 근무했던 시간들이다. 영광도 있었지만 제주출신이란 한계에 갇혀, 육사중퇴란 학력의 굴레로, 줄을 잡지 못해 소주잔을 기울이던 과거가 떠올랐다. 그저 능력과 일로 입증하고 싶었지만 잘 되지 않아 찬바람을 맞으며 괴로워했던 기억들이다. 물론 육사동기들의 권력(?) 덕으로 일약 승진가도를 탔던 행운도 있었다. 하지만 측근·정실·보복인사의 폐해로 누구 못지않게 고통을 겪었기에 그런 ‘리더’가 될 생각은 애당초 꿈도 꾸지 않았다. 내 고향 제주를 번듯한 ‘대한민국 초일류 땅’으로 바꾸고 싶었을 뿐이다. 4년3개월여 지사 재직시절의 인사 비화를 밝힌다. ▲ 신 전지사가 재임시절 연말 종무식장에서 직원들에게 대통령 표창을 전수하고 있다. 제주도청에서 1967년부터 73년까지 6년간 근무했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첫 공직생활을 시작한 내 친정이다. 93년 말 그 친정으
▲ 박찬식 전 제주도행정부지사 민주통합당 이해찬 대표 등 당 지도부의 18일 전격사퇴를 계기로 문재인, 안철수 대선후보는 후보등록 기간 이전(11.24)에 단일화하기로 합의하였으나 단일화 과정의 구체적인 방법이 마련되지 않아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국민들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야권의 단일화된 후보1명과 여권후보 1명의 공약을 집중 비교 해보고 자질을 검증하는 것을 바라고 있다. 그런데 단일화가 안 된 상태에서 3명의 후보를 비교하도록 하는 것은 국민에게 오히려 혼선만 주기 때문에 국민의 알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고 보아 안타깝게 생각 한다 . 그동안 안철수 후보의 끈질긴 정치혁신 요구로 민주통합당의 지도부가 총사퇴하는 등 정당이 무력화될 뿐만 아니라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정당의 자존심마저 버리고 무소속후보에게 끌려 다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는 점을 감안 할 때 야권후보 단일화는 과연 누구를 위한 단일화인지 알 수 없다. 지난 16일 ‘안철수 양보 론’으로 정면충돌 했던 두 후보가 민주통합당 지도부의 전격 사퇴로 단일화협상을 즉각 재개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나 이는 국민들이 안철수 후보의 행보와 진정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1998년 6·4지방선거에서 낙선한 후 한동안 정치수사에 시달려야 했다. 단식을 불사하며 검찰의 표적수사에 저항하며 한 여름을 보냈다. 그리고 마무리됐다.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됐다. 아내는 대학원에 진학, 사회복지학 석사과정을 이수하고자 뭍 서울로 오가는 생활을 시작했다. 책가방용 핸드백과 옷가지를 사주며 난 마치 학부모가 된 것 같은 미묘한 행복(?)감에 사로 잡혔다. 사람의 생활수준은 한번 높아지면 다시 낮추기가 어렵다고 했던가?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더 행복했다. 학교문제로 매주 서울에서 2~3일을 보내야 하는 아내는 그렇게 매주 한 차례 오전 9시40분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내가 떠나고 나면 난 집안 청소와 빨래, 쓰레기 치우기 등을 했다. 집안 살림을 독점(?)하는 느낌이었다. 사무관 시절 돈 1000원도 아끼던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승용차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아내도 어느 날 서울의 학교에 다녀와서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대중교통이 좋고 편합디다. 700원이면 지하철로 아무데나 갑니께(갑니다).” ▲ 신구범 전 지사가 재임시절 지방의회의 여성참여 확대를 위한 토론회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제13회 제주여성영화제에서 해녀의 다른 면을 보여준 한 애니메이션 제주 해녀 다큐멘터리는 이미 많이 있어서 강희진과 한아렴 감독은 다른 방법으로 접근 했다. ‘할망바다’를 제목으로 한 78살 해녀의 인터뷰를 애니메이션으로 변화시켰다.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 좋을 만한 소재가 많더라고요.” 강 감독이 말했다. “그 영상들은 해녀할머니의 한(恨)을 많이 강조해요. 우리는 해녀 할머니들을 자기 일을 가진 멋진 여성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파트너인 한 감독이 설명했다. 제13회 제주여성영화제는 9월 20일부터 9월 23일까지 설문대 여성문화센터에서 개최됐다. 여기에 ‘할망바다’는 30개의 다른 영화와 같이 참여했고 1,000여명의 관객이 영화를 봤다. 강 감독과 한 감독은 ‘할망바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해녀의 삶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가장 인정받고 싶었던 관객이 제주도민들이었는데, 운 좋게 개막작으로도 걸어줘 정말 좋은 경험이 됐다”고 강 감독은 좋아했다. 강 감독은 “한 해녀의 TV다큐멘터리에서 해녀의 모습은 굉장히
▲ 설문대여성문화센터 김영숙 “감사합니다. 설문대여성문화센터 ㅇㅇㅇ입니다.” “설문대여성문화센터에서는 어떤 교육을 받을 수 있나요?” “예. 우리 센터에서는 취․창업 관련 교육을 비롯해 전문가 양성 과정, 외국어, 정보화, 문화교육 등 다양한 교육 과정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설문대여성문화센터에서 어떤 일들(업무)을 하고 있는지 몰라 궁금해 하는 문의전화가 많이 걸려 오고 있다. 여성회관을 모태로 여성들의 능력개발과 여성문화 전승, 창조를 지향하는 여성복합문화공간으로서 설문대여성문화센터가 개관을 한지도 벌써 2년 5개월이 지나고 있다. 개관을 하면서 기존 여성회관에서 하고 있던 외국어 정보화 교육과정과 함께 전문여성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과정과 문화예술분야 교육과정을 새로이 개설했다. 또 도내 타 여성교육 관련 기관과의 차별화를 위해 과정별 심화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성폭력․성매매교육, 아동성폭력상담원교육, 비폭력대화기법 등은 도내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교육으로서 도외 전문 강사를 초빙해 운영함으로써 많은 도민들에게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는 기회를
1993년 말 고향 제주에 관선지사로 부임한 일은 개인적으로 영광이었다. 하지만 속으론 큰 부담도 있었다. 제주가 갖고 있는 구조적 한계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인당 소득이나 생산성이 전국 평균에도 못 미치는데 소비는 더 많아 건전재정이라고 보기 곤란한 제주의 가계 상황은 그렇다 치더라도 건설업에서 여행사까지 마구잡이로 난립하고 있어 심각한 위기 수준이었다. 자영업이라고 해 봐야 음식점들인데 그 시절 통계를 살펴보니 인구 100명당 식당이 하나 꼴이었다. 친·인척 등 ‘궨당’정서에 기대 그저 고만고만한 영세영업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주의 경제부흥을 이룰 방법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배분도 중요하지만 제주의 경제성장을 이뤄야 할 판인데 도지사가 갖고 있는 수단은 제한적이었다. 제주의 행정은 물론 재정운용의 사령탑 역할을 해야 할 곳이 제주도청인데 별다른 권한이 없었다. 대통령은 예산이라는 재정권이 있고, 한국은행의 금융통화기능을 통해 금융권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제주도지사는 돈을 빌려줄 능력 조차 없었다. 지역경제를 책임지는 자리인데 예산이라는 것만 가진 절름발이 수준이었다. 그 마저도 조세권이 없
▲ 박찬식 전 제주도행정부지사 지난 10월 29일 제주특별자치도 행정체제개편 도민토론회에서 최영출 충북대 교수는 1안 시장직선제(의회 미구성), 2안 기초자치단체 부활(시장직선,의회구성)이라는 용역결과를 발표했다. 최 교수는 세 번의 도민여론조사를 통해 이러한 결과를 도출했다고 했다. 민원처리의 신속성과 주민편의를 강화하고 집중된 도의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서는 1안 또는 2안으로 행정체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정체제는 전체의 숲을 무시하고 한 개의 나무만을 본 판단이라고 생각된다. 현행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의 목적과 입법취지를 간과하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제는 의회구성과 자치단체장이 공존해야만 법인격이 부여되는 데 전혀 법인격이 없는 1안을 제시한 것은 소수의 도민여론에 꿀려 다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으며 학자적인 양심을 저버리고 전 도민의 지적수준을 무시한 판단이라고 생각된다. 본 특별법은 제1조에 명시된 바와 같이 국제자유도시를 효율적으로 조성할 목적으로 제정됐다. 기초자치단체인 시군간의 재정격차를 해소하고 시군 간 균형발전을 촉진함과 동시에 사람, 상품, 자본의 국제적 이동과 기업
배고프고 괴로웠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 나이 무렵인 그 누가 그런 서러움을 겪어보지 않았을까? 그나마 감귤경제가 지탱해줬기에 우린 아이들을 성장시키고 교육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우리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으리라고 보는 건 아무래도 순진하다. 우리 미래세대가 전진하기 위해선 고동치는 심장이 있어야 하고, 슬기로운 두뇌가 필요하리라 본다. 물론 먹고 살거리는 마련해 둬야 피가 돌아 걷든지, 뛰든지 전진의 길에 들어설 수 있으리라. 1993년 말 관선 제주도지사로 내려와 보니 고향 제주도는 생각보다 초라했다. 제주도의 1년 예산규모는 기껏 5천억원 수준이었다. 재벌 정주영 1인의 자산규모만도 못한 것은 물론 그 시절 제주출신 문정인(현 연세대 정외과 교수) 교수는 “연세대 1년 예산(8천억원)만도 못하다”고 나에게 핀잔을 주기도 했다. 1인당 지역총생산(GRDP)은 전국평균에 비해 고작 90%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소비수준은 전국평균보다 높았다. 돈은 없는데 씀씀이는 헤픈 것이다. 제주 안에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경제가 아니라 제주 밖에서 끌어들인 돈으로 연명하는 경제였다. 한마디로 너무 작은 소규모 경제였고, 자생적 성장엔진을
▲ 고창후 변호사(전 서귀포시장) 상담 사례 1)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가 양도소득세문제로 찾아왔다. 72세 난 할머니는 남편 명의로 되어 있던 작은 아파트를 본인 명의로 이전했다가 3년이 되지 않아 처분했는데 양도소득세가 부과되었다. 할머니 부부는 남의 집을 얻어 살고 있는데, 할머니는 애기 돌보미 일을 하고, 남편은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있다. 아들 2명이 있지만 40세가 넘도록 객지에서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어렵게 생활하고 있어 아들들의 생활비 보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가지고 있는 돈이 얼마냐고 했더니 70세부터 가입한 5년짜리 보험이 전부이고, 앞으로 3년 동안 일을 하며 보험금을 내어야 5년 후에 만기환급금 1,000여만원을 지급받을 수 있다고 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75세까지는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집도 절도 없는 이 할머니 부부의 여생이 무척 걱정스러웠다. 상담 사례 2) 70세 된 할아버지가 파산상담을 왔다. 오래 전에 처와 이혼한 후 혼자 살고 있는 독거노인이었다. 2남 2녀의 자녀들과 오래 전부터 연락이 끊겼고, 연락이 되는 아들은 결혼해서 자기들 살기도 어려운 처지다. 가진 것이라고는 남의 땅에 지어진 30년 된 노
▲ 오동명/ 제이누리 논설위원 여행과 삶은 매우 다릅니다. 이상과 현실로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호 유대하며 보완하지만 뒤엉켜 얽혀서 이도저도 아니면 오히려 서로를 해치게 됩니다. 이상에도 미치지 못하며 현실에도 적응하지 못한~~~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what?은 how?보다는 삶을 더 구체화시킵니다. 하지만 why? how? what? 어떠한 질문이나 의문도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세겠지요. 삶의 자세가 우왕좌왕하게 되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고 맙니다. 이러면서 또 한 수 배워가는 게 삶이라지만 그래도 시간이나 열정의 낭비는 줄이는 게 좋겠지요. 여행과 삶을 구별치 못하고 제주도를 무작정 오려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방송을 타 꽤나 유명해진 부부가 제주도에 와서 살고 있더군요. 빵빵한 대학을 부부 모두 우등으로 졸업하고 교수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시골, 그것도 깡촌에서 완전 재래식-좋게 말하면 유기농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방송에서 그대로 보여줬나 봅니다. 명문대 교수가? 어떻게 저런 일을? 닷새째 계속된 그들의 다큐멘터리는 사대적 성향이 짙은 우리 시청자들을 자극하여 시청률도 매우 높았던가 봅니다. 그러나 방
▲ 조한필/ 충청타임스 부국장, 제이누리 객원논설위원 살인범이 한 달 이상 잡히지 않자 피해자 유족들이 현상금 5억원을 걸었다. 제주 올레길 피해자의 남동생은 누나를 죽인 살인범이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형에 처해지면 법원 앞에서 분신자살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울산 자매살인사건 범인에 대해선 부모와 친구들이 지난달부터 전국을 돌며 사형촉구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남편ㆍ누나ㆍ자식을 무참히 살해한 자를 용서할 수 없다.” 살인범을 못 잡는 경찰, 살인범에게 응당한 죗값을 묻지 않는 사법부를 앉아서 볼 수만 없다. 억울하게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피 끓는 분노가 느껴진다. 똑같은 심정일 순 없겠지만 깊은 공감을 느낀다. 이젠 흉악범 응징에 가족이 직접 나서는 시대다. 지난 8월 어느 날 오후 10시, 50대 부부가 용인 한 전원마을 자신의 집 앞에서 괴한 2명의 기습을 받았다. 남편은 둔기에 여러 차례 맞아 13일 만에 숨졌다. 외딴 곳이라 목격자도 없었고 비가 와서 부인은 범인을 자세히 볼 수 없었다. 수사는 오리무중이다. 가족들은 계획적 범행으로 단정 지었다. 남편은 부동산업을 하면서 최근 여러 명과 다툼을 겪었다. 협박 전화가 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