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ins=뉴시스]깨진 자동차 유리창 1969년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의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 교수는 한 가지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상태가 비슷한 자동차 두 대를 골라 보닛을 열어 놓은 다음 골목길에 세워두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 대는 자동차의 유리를 조금 깬 채 방치했다는 것이다. 1주일이 지난 후 두 자동차의 모습은 크게 달랐다. 보닛만 열어둔 자동차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유리창을 조금 깬 버려진 자동차는 10분만에 배터리가 없어지고, 이어 바퀴도 사라졌다. 낙서와 오물투기 및 파괴가 이어졌고, 1주일 뒤에는 형체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의 고철로 변하고 말았다. 사소한 범죄를 방치하면 큰 무질서를 불러온다는 이른바 '깨진 유리창 이론‘이다. 이미 부서진 차를 부순다거나, 다른 사람들과 범죄행위를 같이 하면 죄의식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1980년대 뉴욕은 범죄도시였다. 연간 60만 건 이상의 중범죄가 발생했다. 뉴욕의 지하철은 그 중에서도 최악이었다. 역무원들조차도 부스 안에서 나오기를 꺼렸다. 뉴욕 여행자가 해서는 안될 행동 1위가 지하철 타기였다. 당시 뉴욕시 교통국장은 이 ‘깨진 유리창’이론을
▲ 제주관광공사 경쟁력강화처 고은경 1970년대 근면, 자조, 협동의 정신을 바탕으로 생활환경 개선과 소득 증대를 위해 실시한 새마을운동. 중장년층은 이 새마을운동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당시 새마을운동은 담장 바로잡기, 마을 안길 정비, 골목 청소, 생활 오물 분리수거 등이 주된 사업이었다. 농촌 근대화운동으로 시작됐다가 도시, 학교, 공장을 불문하고 전국적으로 일어났고, 경제 성장과 발전의 기초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초 농촌을 겨냥한 새마을운동의 발의와 전개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전통적 체계의 농촌을 현대적으로 변환했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받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튼튼한 관광제주 만들기’ 캠페인은 제주관광의 1천만 시대를 맞아 글로벌 경쟁력 강화 및 관광수용태세의 혁신적 변화를 견인코자 올해 시행됐다. 과거 대한한국 경제의 원동력이었던 새마을운동처럼 민간 중심의 범도민 운동으로 전개, 기존의 국제수준에 맞지 않는 관례와 행태를 자발적 참여로 개선하고자 하는데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마을운동처럼 작은 것부터 하나씩 과제를 정해 실천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등산, 올레길, 오름 트레킹 시 관광객
▲ 양성철/ 발행.편집인 우선 진실추구의 ‘정론’을 펼치고 있는 <제주의 소리>에 경의를 표한다. 팍팍한 지역사회 현실에서 꾸준히 할 말을 다하고자 애쓰는 노력이 가상하기도 하거니와 구성원들의 열정이 돋보여 솔직히 부럽기도 하다. 그저 공치사나 하려고 하는 건 아니다. 언론으로서 제 몫을 다하는 <제주의 소리>에 대해 경쟁언론으로서가 아니라 동료언론으로서,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박수를 치고 싶어서다. 사실 힘든 일을 하고 있다. 그것도 제주에서 언론이 ‘제왕적 권력’과 ‘제왕의 시장’을 상대로 맞서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스라이 잊혀질 뻔 했던 10여년 전 일들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6개월 전 칼럼에서 살짝 언급했던 내용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런지라 이 참에 아예 소상히 밝히고자 한다. 과거 중앙언론사에 재직하며 제주도청을 출입하던 기자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13년 전인 2000년 초 사건이 있었다. 그 때 역시 지금의 도지사가 지사로 재임하던 시절이다. 엉터리 환경영향평가를 기초로 지질학적 가치가 높은 산 하나를 송두리째 날려버리는 개발사업이 승인된 것이다
▲ 송창윤 동광초 학부모회 회장 안전성에 문제가 있어 동광초 학부모회(회장 송창윤)가 제기했던 학교인조잔디운동장철거문제가 12월13일 도의회 예결산위원회를 통과하여 2014년도 도 교육청 예산안에 반영되었다. 이제 안전성에 문제가 있던 인조잔디운동장이 철거 예산이 반영되면서 해결을 위한 첫 걸음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유난히도 더웠던 올 여름 초부터 시작된 동광초 학부모회의 ‘인조잔디운동장 철거 및 건강한 운동장으로 만들어 달라’는 운동이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어머니들의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부지런히 서명을 받고 많은 주민들이 참여해주어서 이뤄낸 소중한 결과이다. 이번 인조잔디운동장문제를 제기하고 헤쳐 나가면서 나는 몇 가지 교훈을 받았다. 첫째, 동광초 인조잔디운동장은 조성하고 3년째부터 충진재가 노출되는 등 문제가 발생하였다. 정책을 제안하고 담당하는 모든 분들이 몇 십 년은 아니더라도 10년은 내다보고 일을 진행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건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방자치가 4년에 한 번씩 있다 보니 그런 건지 우리 주변에는 당장 시설할 때는 보기 좋을지 모르나 몇 년이 지나면 흉물이 되거나 의미가 없어지는 시설물 등이 너무
복잡하고 허전한 마음을 접고 유럽의 정부를 방문하고 있다. 내가 소속한 대통령 위원회인 지방자치발전위원회로부터의 출장명령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지방자치와 분권을 성공시키기 위한 방안을 찾아보라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정부의 위원으로, 특히 자치경찰 도입을 위한 책임자로 줄기차게 유럽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찾아 다녔던 때가 근 10년이 다가 오니 실은 오랜만에 방문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이번 방문은 유럽이 개혁으로 얼마나 변했을까 하는 기대보다도 얼마나 효과를 보고 있을까 하는데 더 관심이 간다. 그것은 유럽이 우리보다 더욱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는 점을 그 당시나 그 후에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이누리>에서 출장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유럽의 지방자치와 지역정책에 대하여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통상 이러한 글은 괜히 여행기를 쓰면서 잘난 척하거나 훈계하는 느낌이 들어서 사양을 하였다. 그러나 각 지방자치단체를 방문하면서 많은 변화를 보면서 느낌은 공유해 볼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에 기고하게 되었다. 이러한 의미를 지닌 내용을 지면관계상 3가지만 정리하고 싶다. ▲ 벨기에 수도 브뤼셀시 청사건물. 건축소요기간이 200년
▲ 조한필/ <제이누리> 객원논설위원 숭례문이 국민을 두 번 놀라게 했다. 2008년 설 연휴의 끝머리, 불더미에 무너져 내리는 허망한 모습을 보였다. 5년 만에 이젠 부실 복원으로 단청이 뚝뚝 떨어지고 기둥이 쩍쩍 갈라진 모습으로 등장했다. 이런 숭례문이 기로에 섰다. 또 큰돈 들여 전통방식 복원에 다시 나설 것인가? 아니면 국보 1호 자리를 내놓고 평범한 복원으로 마무리 지을 건가? 최근 일부 언론에선 숭례문이 이제 국보 1호의 가치를 상실했다거나, 애초부터 국보 1호 자격이 없다는 주장이다. 문화재 ‘빅마우스’인 혜문스님은 지난 5일 전국의 지방신문에 똑같은 칼럼을 기고했다. 내용이 좋아서인지 7개 신문이 ‘숭례문 앞에서 노무현을 생각한다’ 는 본래 제목, 혹은 비슷한 제목으로 판박이 내용을 실었다. 국보 1호가 된 이유가 일제강점기와 연관성이 깊다고 했다. 1907년 조선주둔군사령관이 교통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숭례문을 철거하려고 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일본인 거류민단장이 숭례문 존치를 설득했다고 한다. ▲ 일러스트 김회룡 기자 [Joins=중앙일보]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가
▲ 강민수/ 잉글리시 멘토스 대표 “Papa. What is the era of Three Kims?” “아빠, 삼김시대가 뭐에요?” “Three men from Kim's family kept dominating the political scene of Korea. They were YS, DJ, and JP.” “YS, DJ, JP라는 세 명의 김씨가 우리나라 정치판을 쥐락펴락하던 시대가 있었지.” “How long?” “얼마나요?” “For almost half a century.” “거의 50년.” “What did they do?” “무엇을 했대요?” “JP became a prime minister twice.” “JP는 국무총리를 두 번 했지.” “And the other two?” “다른 두 사람은요?” “They became presi
▲ 백승주/ C&C국토개발행정연구소장 서귀포 행정시장이 위험천만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한 고교동문회 모임에서 내년 지방선거에서 현도지사의 당선과 자신의 임기 연장을 연관 지어 자신이 행정시장을 더 해야 동문들에게 더 많은 승진기회와 사업몰아주기가 쉬워질 것이라는 발언이다. 제주정치문화의 후진성을 보여준 이 사건은 결국 일파만파 번져나갔고, 급기야 사건발생 반나절 만에 제주자치도지사는 서귀포시장을 직위해제 조치하였다. 이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정황상 몇 가지 의문점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 서귀포시장에 대한 직위해제 처분은 타당한가? 일반적으로 직위해제는 관계법령에 따라 공무원 자신에게 당해 직무를 계속하여 수행할 수 없는 사유가 발생한 경우에 사후제재로서 공무원 신분을 유지시킨 상태에서 그 보직을 해제하여 해당직무를 맡지 못하도록 하는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는 조치를 말한다. 이에 따라 각종 공무원법령은 첫째로 특정 공무원에게 직무수행능력이 부족하거나 근무성적이 극히 불량한 경우, 둘째로 징계의결의 요구를 받은 경우, 셋째로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경우 중 어느 하나의 사유가 발생한 경우에는 임명권자는 그에 대하여 직위해제 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오늘은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서야 했다. 이번에 갈 곳이 리바카오(Libacao)라는 곳으로, 산세가 험하고 먼 곳이기 때문이다. 외진 지역이라 의료 혜택이 제일 없는 곳이고 피해도 상당히 큰 지역이어서 어쩌면 우리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곳이라고 생각되어 다른 때보다 더 물자를 꼼꼼히 챙겼다. 가는 길은 좁고 포장도 잘 안 되어 차는 계속 덜컹 거렸고, 쓰러진 전신주와 뽑히고 부러진 나무들이 가는 내내 보였다. ▲ 고병수 원장이 현지에서 진료하는 장면이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장면은 대나무나 야잣잎으로 지어진 집들이 하나도 성한 게 없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다른 지역으로 임시 거처를 옮겼거나 주변에서 움막을 지어 오늘내일 지내고 있을 것이다. 태풍 하이옌이 강력해진 이유 필리핀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그 섬들을 크게 3지역으로 나누는데, 수도 마닐라가 있는 북부는 루손(Luzon)섬 지역, 섬들이 많이 모여 있는 중부는 비자야(Visayas) 지역, 남부는 민다나오(Mindanao) 지역이라고 부른다. 이번 11월 8일 불어 닥친 태풍 하이옌은 바로 중부의 섬들을 강타하고 지나갔다. 필리핀은 1년에 20~30개의 태풍이 발생하지만,
▲ 김대희 논설위원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 10일 김태환 전 제주도지사가 차기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이 문구를 화두로 들고 나왔다. 김 전지사가 현직이던 2010년에 지방선거 불출마를 결심할 때 이 말에 위안을 삼고 결심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불교 경전인 화엄경에 나오는 말이다. “나무는 꽃를 버려야 열매를 맺는다”의 바깥짝이다. 합치면 다음과 같다. 樹木等到花 謝才能結果 江水流到舍 江才能入海(수목등도화 사재능결과, 강수류도사 강재능입해)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 무언가 버리지 않고는 새로운 것, 더 큰 것을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와 비슷한 얘기로 역시 불교 경전에 나오는 ‘뗏목의 비유’가 있다. “어떤 나그네가 긴 여행 끝에 바닷가에 이르렀다. 그가 생각하기를 ‘바다 건너 저쪽은 평화로운 땅이다. 그러나 배가 없으니 어떻게 갈까? 갈대나 나무로 뗏목을 엮어 건너가야겠군’하고 뗏목을 만들어 무사히 바다를 건너갔다. 그는 다시 생각했다. ‘이 뗏목은 내게 큰 은혜를 베풀었으니 메고
맥그린치 신부가 제주에 당도할 무렵인 1954년 제주도는 처참했다. 가관이었다. 그 때의 모습은 지금 아프리카 국가 중 가장 후진국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구 28만 명에 지역총생산량은 고작 23억. 1인당 소득은 미화 50달러다. 식량부족으로 매년 배곯이를 하는 인구가 3만~4만명에 이르렀고, 대책은 없었다. 게다가 일제 강점기를 거쳐 4·3사건의 비극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6·25 전쟁으로 약 15만 명의 피난민이 제주로 밀려와 있었다. 그런 역사 탓에 제주도민들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에 매몰돼 있었다. 소극적이었고 주춤거렸다. 맥그린치 신부가 그 시절 제주도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안됩니다. 신부님은 여기 사정을 너무 몰람수다(모릅니다)"였다. 토종돼지 대신에 개량종 돼지를 키워 소득이 2~3배 높게 나오는 일을 겪으면서도 그것만은 막무가내였다. 도무지 변화가 없었다. 모두가 "진짜 안 될 것이다"고 장담하는 분위기에서 성공시킨 면양사업을 보면서도 그랬다. ▲ 1960년대 이시돌 목장 평원에서 면양을 방목하던 장면이다. [이시돌협회 제공] 면양
지난달 8일 필리핀 중부를 강타, 셀 수 없는 사상자와 이재민을 만들어낸 태풍 하이옌. <제이누리>의 필진 고병수 원장이 현장 의료봉사를 위해 필리핀으로 투입됐다. 초기 긴급 구호팀이 들어가고 지금은 부서진 도로와 전신주 등을 고치는 일과 필요한 의료를 제공하는 등 비교적 현장여건이 순탄한 상황으로 반전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고 원장은 태풍 발생 20여일만에 힘겹게 태풍피해 지역에 의료지원단장 자격으로 6명의 의사 등 의료진 및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열린의사회의 일원들을 인솔, 현장에서 활동중이다. 중서부의 섬에서 칼리보(Kalibo) 인근의 바탄(Batan), 알타바스(Altavas), 발레떼(Balete), 리바카오(Libacao), 방(Banga) 5개 재난 지역을 돌면서 긴급 구호 및 일상 진료를 하고 있다. 필리핀 재난현장의 소식을 고 원장이 <제이누리> 통신원 역할을 맡아 전한다. / 편집자 주 ▲ 필리핀 현장에서 어린이들을 진료하는 고병수 원장 낮 12시를 넘기고 점심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래도 대기 환자가 70여명이 남았단다. 이러다가 오늘은 10분 밥 먹고 진료해야 하는 것 아닌지 걱정이다. 나야 다이어트 한다고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