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세이지 감독은 ‘사일런스’ 전편에 걸쳐 고통스러운 ‘후미에踏み絵’ 장면을 배치한다. ‘예수상 밟기’다. 일본 선교에 나섰다 당국의 검색에 걸린 제수이트 교단 신부들은 물론 일본의 크리스천(기리시탄ㆍキリシタン) 모두 후미에 검증을 통과해야만 혹형과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어찌보면 대단히 단순하고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는 ‘요식 행위’를 둘러싸고 고통스러운 장면들이 연출된다. 예수상을 밟는 대신 죽음을 택하는 사람도 있고, 대수롭지 않게 지르밟고 목숨을 부지하기도 한다. 나가사키 지역 기리시탄의 리더격인 모키치는 단호하게 ‘후미에’를 거부하고 예수처럼 조수 간만차가 심한 바닷가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빠져죽는 ‘익사십자가형’을 받는다. 페레이라 신부와 로드리게스 신부도 결국 밟게 되는 예수상을 오히려 거의 독학으로 성경 말씀을 접한 일본의 일개 촌로村老 모키치가 목숨으로 지킨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다. 믿음은 배움과는 거의 무관하다. 악명 높던 ‘후미에’는 사
법정 근로시간을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2월 28일 국회를 통과했다. 국회가 관련 논의를 시작한지 5년 만에 결론냈다. 이로써 장시간 근로 관행에 제동을 걸고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 확립과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일을 덜 하는 만큼 근로자의 월급봉투는 얇아질 수 있다. 기업으로선 생산량을 유지하려면 추가로 고용해야 한다. 어떤 제도 변화든 볕과 그늘이 따른다. 근로자의 노동과 그에 대한 기업의 대가(임금)와 관련되는 것이라 더 그렇다. 공무원에만 적용돼온 법정공휴일 유급휴무 제도를 민간으로 확대하는 ‘빨간날 평등법’에 대해 노동계는 환영하지만 중소기업계는 유감을 표시한다. 이는 모든 근로자들이 공휴일에도 돈을 받고 쉴 수 있게 하자는 ‘보편적 휴식권’ 보장이다. 하지만 휴일에도 못 쉬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인력이 부족한 소기업들로선 비용 부담이 커진다며 부담스러워한다. 최대 쟁점이었던 휴일근로수당의 중복할증을 인정하지 않고 현행대로 통상임금의 150%를 유지하기로 한 데
철강업계가 단단히 화가 났다. 2월 21일 한국철강협회 정기총회에서 철강사 대표들은 정부에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미국이 36년 만에 무역확장법 232조를 들고 나와 매기겠다는 세율 53%의 관세폭탄이 현실화하면 대미(對美) 수출이 사실상 막히는데 정부는 그동안 뭘 했느냐며. 업계는 2016년 미국 상무부가 포스코 열연강판에 반덤핑관세를 부과했을 때부터 정부가 적극 대응해야 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나, 문재인 정부나 이렇다 할 대비를 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4월 수입 철강이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라고 지시했고, 그 결과가 올 초 나올 예정이었는데도 정부가 미적대며 골든타임을 놓쳤다. 트럼프 행정부의 한국에 대한 통상압박은 전방위적이다.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에 이어 설 연휴 기간에는 철강ㆍ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고관세를 예고했다. 미 무역위원회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특허침해를 조사 중인 점을 감안하면 반도체까지 비상 상황이다. 미국의 연쇄적인 통상압박에 마땅한 대응 방안을 찾지 못한 우리 정부로선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방침이지만 실익이 없다는 점
▲ 김태익 제주에너지공사 사장 지난 14일, 한동․평대 해상풍력발전지구 지정 동의안이 1년 7개월 만에 제주도의회 심의를 통과했고, 지난 20일에는 제주도의 지구지정 고시가 있었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지난해 11월 준공한 전국 최초의 해상풍력발전인 탐라해상풍력발전과 지난 2013년 말 지구로 지정된 한림해상풍력발전에 이어 3번째 해상풍력발전사업이 본격적인 여정에 들어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주도는 2012년 ‘탄소없는 섬’ 2030 계획을 통해 모든 에너지를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공급하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 중 절반을 담당하는 풍력발전에 대해서는 지난 2015년 9월 공공주도의 풍력개발 투자활성화 계획에 따라 제주에너지공사가 사업시행예정자로 지정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에너지공사는 부지를 소유한 마을과 바다를 이용하고 있는 어촌계를 대상으로 해상풍력발전지구 지정 후보지를 공모하여 2016년 1월, 한동․평대와 표선․세화2․하천, 월정․행원을 후보지로 선정하였습니다. 후보지 중에서도 한동․평대 해상풍
▲ 제사는 화려한 제물이나 격식보다 모시는 이의 정성이 중요하다.[사진=아이클릭아트] 7년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는 임종 전 몇가지 말씀을 남겼다. 당신은 가톨릭 신자이니 명절이나 제삿날 즈음해서 가까운 성당 연미사(위령미사)에 봉헌하되, 따로 제사는 지내지 말라고…. 그 대신 형제들이 모여서 밥 한끼 함께 하라고 했다. 당시에는 성당 다니라는 말을 왜 저렇게 빙빙 돌려서 말씀하실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세월이 지나서야 어머니의 깊은 뜻을 이해했다. 평생 집안의 제사(祭祀)를 도맡아 모셨던 어머니는 제사가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뤄진 노역이 아니라 웃고 떠들며 맞는 축제의 날이 되기 기원했다. 대신 어머니는 온전하고 단아한 모습으로 자식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기를 바랐던 것 같다. ‘청개구리’인 필자는 풍광 수려한 대전 현충원 국립묘지를 찾아 간소하게나마 제를 올린다. 제사는 본래 세상 떠난 조상을 추모하는 숭고한 의식이다. 그러나 제사라는 형식만 웅크린 채 남아있고 본뜻은 형해화된지 오래다. 특히 명절이 되면 ‘조상’ 모시느라 전국은 한바탕 홍역을 앓는다. 부모자식,
▲ 원희룡 제주지사 존경하는 도민 여러분,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입니다. 도란도란 행복하고 온정을 나누는 명절을 기원합니다. 고향과 가족 품을 향하는 길에 즐거움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안전하고 즐거운 명절을 위해 수고해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소방관과 경찰관, 버스와 택시 기사님, 환경미화원, 병원과 복지시설 종사자, 경제 현장에서 일하시는 근로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제주는 설음식을 이웃과 나누고, 세배하는 아름다운 풍습이 있습니다. 제주도민과 새로 정착한 도민들이 설 명절을 계기로 더욱 가까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이웃에는 찬 구들장을 녹이는 연탄 같은 온정이 필요합니다. 폭설과 한파로 시름이 깊은 농가들에게 따뜻한 시선은 피해 복구 의지를 다져줄 것입니다. 우리 도민들은 이웃을 배려하고, 나누면서 모두가 행복한 제주공동체를 만들어 왔습니다. 공존을 핵심가치로 삼는 도민 역량은 제주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역동적인 곳으로 만드는 자양분입니다. 그동안 축적된 미래를 향한 변화와 혁신의 에너지는 지속가능한 제주와 새로운 대한민국을 여는 동력이 될 것입니다. 도민 여러분이 자랑스럽습니다. 도민 여러분, 가족·친
시장은 명분이나 당위성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를 새해 벽두부터 불어닥친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최저임금의 파격적 인상은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의 대표 정책으로 추진했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내수를 증대시키는 분수효과를 일으켜 성장의 마중물 역할을 하리란 논리였다. 그러나 시장은 거꾸로 갔다. 경비원이나 미화원 등 취약계층이 혜택을 받기는커녕 있던 자리에서 밀려났다. 시간제 아르바이트가 무인주문기로 대체되며 줄어들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벌이가 시원찮은 판에 인건비 부담이 늘었다며 불평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최저임금 인상이냐’는 항변이 나왔다. 정부 여당은 현장의 하소연을 경청하기보다 시간이 지나면 문제가 해소되고 정책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자영업자들이 어려운 것은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올라서가 아니라 임대료가 높아서라고 강변했다. 상가 임대료 인상을 억제하고 카드 수수료를 낮추겠다고 했다. 국민 세금으로 민간기업 임금을 대주는 초유의 최저임금 보전용 예산(일자리안정자금 3조원)까지 마련했다. 신청이 저조하자 ‘홍보 부족’이라며 공무원들이
유례가 없던 6일간의 폭설. 폭설은 한파를 동반, 제주를 초토화시켰다.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사고와 재난.재해도 속출했다. 눈이 잦아지고 낮 기온이 영상을 회복한 9일의 제주는 모처럼 평화롭다. 안도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폭설 기간 겪었던 피해와 상처가 너무나 컸고 후유증 역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도정의 무능과 탁상행정, 그리고 안전시스템의 부재를 또다시 절감해야 했다. “재난이 올 때마다 이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오로지 도민들의 몫”이라는 분노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지난 3일부터 도청과 각 행정시에 항의.민원 전화가 빗발쳤다. 폭설이 내렸던 지난달 11일과 12일보다 빈도수가 더 많을 뿐 아니라 그 강도에서도 비교할 없수 없을 만큼 격앙돼 있었다는 후문이다. SNS상에 올라온 비난수위는 더 높았고 신랄했다. “제주도는 뇌가 없는 집단”, “눈이 그친 후 기온이 올라 눈이 녹기만을 기다리는 걸 수십 년 지켜봤다”, “지난 번에도 그렇게 혼나고서도 반성이 없다”는 등 격렬한 반응이 들끓었다. &ldq
▲ 남북한 선수들이 끌어낼 평화의 메시지 효과는 값어치를 따지기 어렵다. 평창올림픽 기간만이라도 정쟁을 피해야 하는 이유다. [사진=뉴시스] 비록 발바닥 부상으로 준결승에서 기권했지만, 메이저 테니스대회 4강에 오른 정현 선수에게서 우리는 한국인의 자긍심을 느꼈다. 세계 수준의 실력과 기록, 유창한 영어와 재치있는 언변, 상대선수를 존중하는 매너에서 기성세대와 다른 당당한 젊은 세대의 유전자(DNA)를 발견했다. 평창올림픽에서도 그에 버금가는 선수들의 활약을 볼 수 있으리라. 평창올림픽은 각종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만 뛰는 게 아니다. 대회를 원활하게 진행해야 할 올림픽조직위원회와 자원봉사단에서부터 스폰서를 맡은 기업, 대회에 참관하는 각국 정상들과 주요 인사들을 맞는 정부, 경기장을 찾아 응원하는 국민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가 동참하는 국가적 행사다. 먼저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외국 선수단과 관람객을 맞는 것은 LG전자가 배치한 로봇이다. 8개 외국어를 구사하도록 인공지능(AI) 음성인식 플랫폼을 탑재했다. 보행 로봇 ‘휴보’가 성화 봉송주자로 나선 데 이어 음료서빙 로봇이 등장하고 로봇스키대회도 열린다
전국의 지방분권 토론회에서 영국과 미국의 지방자치 방식인 홈-룰 차터(Home-rule Charter.지방자치헌장)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륙법 체계와 근본적으로 다른 영미법 체계의 도입엔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특히, 관습법과 판례법, 보통법을 위주로 발달되어 온 영미법은 조문화된 법률을 위주로 하는 우리나라와 같은 대륙법계 국가의 지방자치의 배경과 사무의 범위도 크게 다르다. 지방자치의 헌법 ; 조례는 지역법률 “홈-룰”은 아일랜드가 1800년 영국(잉글랜드)에 통합되면서 아일랜드 주민 스스로 자치를 할 수 있도록 아일랜드 정부조직법 제정을 영국(잉글랜드)에 청원하면서, 이를 “홈-룰 법안”이라고 불렀다. 영국(잉글랜드)에서는 1835년 지방자치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 설립을 원하는 주민 스스로 “차터(Charter)”를 제정하여 군주의 추인을 받아 지방정부를 설립하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이 전통은 미국의 지방자치에 이어져 홈-룰 차터(Home-rule Charter)라고 불리워지며 지방자치 헌법이라고 한다. 각 주(州)의 헌법은 지방자
▲ 영국 지도자 처칠은 히틀러의 공세가 임박하자 “우린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고 외쳤다. 우리에겐 처칠 같은 지도자가 필요하다. [사진=아이클릭아트] 영국인들은 셰익스피어나 뉴튼보다 윈스턴 처질을 더 존경한다고 한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결단과 집념으로 나라를 수호했기 때문이다. 나치 히틀러가 유럽을 휩쓸 때 영국 지도자 처칠의 고뇌와 결단을 그린 영화 ‘다크스트 아워’. 지금의 한반도를 둘러싼 위기와 비슷해서 오히려 섬뜩해진다. 독일이 유럽과의 평화약속을 깨고 침략전쟁에 나서자 위기에 몰린 영국 의회는 1940년 5월 처칠을 총리로 임명한다. 체임벌린 전임 수상, 헬리팩스 외무장관 등 ‘전시내각’은 끊임없이 처칠을 흔들고, 히틀러와의 타협을 주장한다. 말이 평화협상이지 항복하자는 얘기였다. 배우 게리 올드먼은 뚱뚱한 몸매에 손에는 시가를 놓지 않고, 알코올을 마셔대는 처칠의 모습을 실감나게 연기한다. 체임벌린과 할리팩스가 평화협상을 주장할 때 왜 처칠은 전쟁을 주장했는가. ‘뮌헨협정’의 교훈 때문이다. 1938년 9월 영국 체임벌린 총리와 프랑
1941년 독일군은 10주 이내에 모스크바를 점령한다는 계획 하에 전면 공격을 단행한다. 초기 국경지역 전투에서 독일군은 소련군 100만명을 사살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좋기만 했던 날씨가 갑자기 변하면서 며칠 동안 비가 내리더니 기온이 뚝 떨어졌다. 전쟁이 벌어진 1941년 겨울은 예년보다 빨리 찾아와 유달리 추웠다. 게다가 석 달 이내에 전쟁을 마무리하려 했던 독일군은 겨울을 날 준비를 전혀 하지 않은 상태였다. 비로 인해 진창길이 돼버리자 히틀러의 명령에 독일군은 젖 멎던 힘까지 다 내어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한다. 그러나 독일 중부집단군은 모스크바를 25km 눈앞에 두고 탈진하고 만다. ‘소련은 동장군과 진흙장군이라는 영원한 동맹군이 있다.’ 침공군에 있어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소련의 날씨와 지형이었다. 먼저 독특한 소련의 기상과 지형을 살펴보기로 한다. 볼가(Volag)강을 비롯한 4개의 큰 강이 모스크바의 천연적인 방어선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대부분 지형이 구릉과 황야지대, 늪지와 소택지 그리고 대삼림 지역으로 이루어졌다. 기계화 기동을 중시하는 독일군에게 상당히 불리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