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가 또 이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는 카지노 산업이지만 폐해 역시 만만찮은 게 현실-. 민선 6기 원흐룡 도정에 이르러 중국자본의 진출과 맞물려 카지노는 다시 새로운 정책의 시험무대에 섰다. 백승주 박사가 이 문제에 대한 해법찾기를 모색한다. 10여회로 나눠 싣는다. / 편집자 주 싱가포르 카지노산업 도입 여건과 환경 제주와 전혀 다르다. 최근 제주도지사가 싱가포르 카지노 산업현장을 시찰했고, 싱가포르에서의 카지노의 진면목을 안 이후 국내외 언론을 통하여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로 중국인 관광객 특수를 맞고 있는 제주지역에도 싱가포르의 그것과 같거나 유사한 2-3개의 거대 카지노시설의 필요성을 자신 있게 위민행정의 본을 다하여 발설하였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싱가포르는 고도산업사회를 지향하고 있고, 다양한 산업 영역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여 한국 못지않게 국부(國富)가 탄탄한 선진국으로서 세계자본주의 질서를 주도하고 있는 나라이다. 또한 실질적으로도 탈산업화 사회가 정착된 인구 550여만 명인 도시국가이다. 중개 무역항이자 세계적인 비즈니스 중심으로서 무역, 금융, 물류 등 서비스 산업이 전체 국가경제의 69%를 차지하
인내 ‘세월이란 것은 화살같이 달리니, 늙음은 곧 찾아오겠지요. 성공은 이루지 못하고 나이만 먹으니 서글픈 생각이 절로 듭니다.’(유비) 나이 50의 유비가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살다보니 허벅지살이 붙어 한탄했다는 비육지탄이다. 이 탄식을 듣고 집안의 형뻘 되는 유표가, “다 때가 있을 것일세.” 했고, 유비는 그 후 기나긴 기다림의 시기를 지나 제갈공명과 인연을 맺으며 촉한왕조를 세운다. ▲ 기다림은 몰입이며 집중이다. 준비된 기다림 ‘모든 것은 기다리는 동안 무엇이라도 하는 사람에게로 온다.’(에디슨) 막연히 기다리지만 말고 뭐라도 해야 한다고 함은 준비된 기다림이다. 기회를 잡으려고 기다리는 것은 단지 참아내는 것이 아니다. 말하지 않고 입을 다물기만 하는 침묵도 아니다. 기다림에도 움직임이 있다. 정중동의 기다림. 기다림은 침묵 같아 보이지만 내 가슴에 대고 하는 가장 강렬한 외침이다. 이래서 망설임과는 다르다. ‘만일 우리가 진실로 행복하다면 인생에 대해 생각해볼 일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불행한 단 한 가지 원인은, 조용히 앉아 있는 시간 또는 그 방법을 모르는 데에 있
▲ 불타는 오라리. 미군 촬영반이 제작한 4‧3 무성기록영화 ‘제주도 메이데이’에 나오는 한 장면으로 공중에서 촬영한 것이다. 제주 4·3은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 대량의 민간인 피해를 발생시킨 사건이다. 미군정 시기에 사건이 발생하여 제1공화국 시기 6·25전쟁 다음으로 많은 피해자가 생겼다. 폭동이나 반란으로 규정되었던 사건이 발생한 지 50여년이 지난 2000년 1월 12일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 공포되면서 관련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있다. 일부 제주 4·3을 연구하는 학자들과 활동가들은 미국의 책임에 대하여 거론하고 있다. 사건발생 초기에는 미군정이 남한을 통치하였으므로 어느 정도의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한 연구는 더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책임론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제주 4·3을 '제노사이드'로 칭하는 경우가 있다. 과연 제주 4·3은 제노사이드 범죄인가? 간단히 말하자면 제노사이드 범죄가 아니다. ‘제노사이드 범죄 방지와 처벌에
▲ 고정식 위원장 최근 포털사이트에 ‘제주 토지’라는 단어로 검색을 하면, ‘중국자본’, ‘자본 투기’, ‘난개발’, ‘이상과열’, ‘경매’ 등이 검색순위 상단을 차지한다. 그만큼 제주의 땅이 도민사회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필자는 제주 도민 중심의 지속가능한 토지정책 수립을 위하여, “제주형 토지정책 수립 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이하 토지특별위원회)”을 이번 7월 1차 정례회에 처리를 계획으로 지난주 발의하였다. 토지정책이 적어도 4개 상임위원회(행정자치위원회, 환경도시위원회, 문화관광스포츠위원회, 농수축경제위원회)와 연계가 되어 있어, 이들 상임위원회 위원장들과 공동으로 발의하였다. 물론 타 상임위원장들께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같이 인식한 결과이다. 필자는 토지 특별위원회 구성 발의안에 부쳐, 도민 여러분들에게 그 취지와 배경, 그리고 앞으로의 활동방향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한다. 특위의 출범 배경은 제주를 찾는 이주민과 관광객, 투자자본의 증가로,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토지수요가
지난 토요일 충남 청주시 대청호변의 청남대(靑南臺) 나들이에 나섰다. 둘러보는 2시간 반 내내 주위 풍광엔 감탄했으나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처음 왔었던 10년 전보다 눈에 띄게 볼거리가 많아졌고 시설도 크게 정비됐지만 기분은 울적했다. 순전히 개인적 이유에서였다. 1970, 80년대 정치격변기를 경험한 50대로서 그 장본인들 모습을 자주 만나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다. 충북도는 2003년 대통령 전용 휴양지인 청남대의 소유권을 넘겨받아 ‘대통령 테마파크’로 탈바꿈시키고 있었다. 역대 대통령을 회상할 수 있는 장소로 조성하고 있다. 곳곳에서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 등 9명의 재직 때 사진과 치적 안내판을 만날 수 있다. 지난달 4일 대통령마다 대형 초상화 2장씩을 전시하고, 대통령처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대통령기념관도 개관했다. 총 184만㎡(약 55만평) 야산에 83년 청남대를 만든 전두환 대통령을 비롯해 이후 5명의 대통령 이름을 붙인 산책로·등산로를 만들었다. 동상도 각각 세웠다. 이렇듯 잘 꾸민 청남대가 기분을 망치게 한 이유는 뭐일까. 청남대에
가치 엄마는 아빠와 딸이 시소놀이하고 있는 장면을 좀 떨어져서 바라보고 있다. 몸무게로 따지면 딸아이보다 세 배쯤 될 아빠. 몸집 큰 아빠가 궁둥이를 앞으로 밀어 시소의 균형을 맞춘다. 이렇게 딸에게로 다가간다. 시소 밖에서 엄마는 몸무게가 아닌 부모역할의 무게로 아빠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재본다. 몸무게보다 훨씬 더 무거운 부모역할과 그 가치는 아이에게로 더 다가가게 한다. 엄마도 아빠 앞에 앉아본다. 그리고 아이에게 부모가 함께 다가가 앉아본다. 아이에게로 다가가야 시소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 그러다 건너편 아이에게로 넘어가 아빠를 아빠 건너편에서 딸과 함께 마주본다. 움직임-다가오거나 멀어짐-으로 시소의 균형이 잡힌다. 엄마·아빠의 다가감으로 가족의 균형을 잡는다. 아빠의 역할, 엄마의 역할, 부모가 합심해서 해야 할 역할이 그네에 얹어져 출렁거린다. 제 몫을 하며 사는 일은 다가가거나 물러서거나와 같이 움직임으로서 삶의 균형을 잡아가는 일이다. ▲ 놀기만 하는 것 같지만 아이들은 다 지켜본다 시소 “넌 나에게 치욕을 안겨줘서는 안 돼! 너 때문에 난 밤잠을 못자고 있단다. 나는 너에 대해서 책임을 지니고 있고 그래서 네가 무능
카지노가 또 이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는 카지노 산업이지만 폐해 역시 만만찮은 게 현실-. 민선 6기 원흐룡 도정에 이르러 중국자본의 진출과 맞물려 카지노는 다시 새로운 정책의 시험무대에 섰다. 백승주 박사가 이 문제에 대한 해법찾기를 모색한다. 10여회로 나눠 싣는다. / 편집자 주 카지노정책추진 도민과의 소통도 배려도 없이 일방통행식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는 2014년 2월7일 홍콩 란딩그룹 등과 신화역사공원 조성사업 투자협약을 체결했고, 당초 신화역사공원조성사업 예정지 일대에 복합리조트를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미국 블룸버그통신이 홍콩 란딩그룹 회장의 말을 인용하여 제주도에 미화 22억 달러 규모의 카지노 복합리조트가 들어설 것이라고 보도했다. 구체적으로 VIP 고객을 위한 200개 테이블을 포함하여 800개 테이블 카지노사업장을 갖춘 복합리조트가 들어설 것이라고 보도 했다. 증권시보 등 중국계 언론들도 이런 보도내용을 기정사실화 시켰다. 이런 보도 후 한 달이 채 안 되어 JDC은 슬며시 홍콩란딩그릅 등이 FDI(외국인직접투자)기준 으로 미화 3억 달러를 제주지역 한 금융기관계좌에 입금 완료했다고 밝혔
국어사전은 ‘호들갑’을 “가볍고 방정맞게 야단을 피우는 말이나 행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요즘 ‘메르스’에 대처하는 그들의 양태는 가히 ‘호들갑’이라 일러 나무랄 수가 없다. 우선 그들은 가볍다. 메르스에 대하여 자신들이 내뱉는 말이나 행동이 사회에 어떤 심대한 영향을 끼칠지 조금도 진중하게 생각해 보지 않는 가벼움을 보인 것이다. 전염병에 대한 대(對)국민 메시지는 결코 가벼운 발상이나 숙성되지 않는 인식에 의하여 작성되거나 보내져서는 아니 된다. 그들이 메르스의 실체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공부하고 생각을 했더라면, 메르스가 일반 독감에 비하여 그 위험성이 결코 높지 않다는 사실, 감염경로가 다분히 제한적이라는 사실 등을 인지했을 것이다. 그들은 방정맞았다. 그들이 메르스에 대한 일부언론의 표플리즘적 기사나 일부 정치권의 선동적(?) 언급에 현혹되거나 겁먹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의료계 발표문에 대한 행간의 의미를 파악했더라면 그들은 어쨌을까? 아마도 어느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긴급기자회견을 갖지 않았을 것이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라는 분이 독일의 시민사회를 경험하신 내용을 다산포럼이라는 웹사이트를 통해 공유 포스팅하신 글의 일부를 여기 옮깁니다. ‘작년 독일에 체류하는 동안 여러 곳을 방문했고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 중 인상 깊었던 일 중의 하나는 퀠른의 ‘아시아재단 (Asienstiftung)’ 연례 발표회에 참석한 일이었다. 학계, 언론계, 사회운동 관계자들이 모여 아시아 각국의 민주화 관련 현안을 놓고 토론하는 자리였다…. 방글라데시 분과에서는 봉제공장 노동자들 1000여 명이 건물이 무너져 사망한 사건이 주제였는데, 모 기업이 독일회사였기 때문에 독일 연방정부나 의회에 압력을 넣어 피해자 보상 및 노동조건 개선을 해야 한다는 논의도 있었다…. 그런데 이 행사를 주관한 아시아 재단, 그리고 이 재단과 연례 발표회의 가장 중요한 주체인 독일의 코리아협의회 (Korea Verband)가 모두 1970,80년대 독일에서의 한국 민주화 운동을 크게 지원했던 프로이덴 버그(Prof. Dr. Günter Freudenberg) 교수가 전 재산을 기탁하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이야기를
대화 ‘아무리 나쁜 결과로 끝난 일이라 해도 애초에 그 일을 시작한 동기는 선의였다.’(율리우스 카이사르) 모든 관계의 동기는 대화로부터 시작된다. 생각이나 상상도 자기와 관계된 일일진대 이 또한 자기와의 대화로써 시작된다. 만남은 더욱 그러하다. 부부의 인연도 대화로써 이루어지며 사랑도 대화로써 시작하여 깊어진다. 대화는 화합 또는 결합을 위해 내딛는 첫 걸음이며 최종 또는 결과로 가기 위한 출발점이다. 모든 결합과 결과는 대화로부터 비롯된다는 말이다. 대화 없이 결과 없고, 대화 없이 결합도 불가능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결혼이 내게 주었던 가장 소중한 선물은, 아주 가깝고 친밀하면서도 언제나 확실하게 내가 아닌 남이며 순종적이지만은 않은, 한 마디로 살아있는 어떤 것의 영향력을 계속 느끼게 해주었다는 점이다.’(루이스) ▲ 듣기는 아이들에게 중요하다. 듣기는 듣게 해주기부터 시작한다. 보는 것-시각-에 지나치게 노출된 세상에 듣는 것-청각-은 점점 퇴화되고 있다. 닮은꼴 인간은 대화로부터 태어난다. “당신과 같은 딸이면 좋겠다.” “자기와 닮은 아들을 낳고 싶어.” 자
저는 현재 르완다의에서 PIASS 라는 대학에서 르완다, 부룬디, 콩고, 일본 학생들과 함께 개발학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배우는 것이 더 많죠. ▲ 수업듣는 학생들과 함께, 정 가운데 있는 사람이 필자. 저를 이 곳에 불러주신 분은 Dr. Kazuyuki Sasaki 라고 하는 일본사람입니다. 오랫동안 같은 NGO에서 일했고, 원래는 농업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에이티디오피아에서 8년간 일하다가 평화학(Peace study)을를 전공하고 다시 아프리카에 르완다에 돌아와서 봉사하시는 온 분입니다. 르완다에서 다시 만나 교제하는 중 개발에 대해 비슷한 생각들을이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이들도 또래여서 가족이 모두 가까이 지냅니다. 무엇보다 그는 양심적인 일본인입니다. 자녀들을 데리고 한국을 방문해 독립기념관과 제암리교회 유적지를 방문하여 일본의 잔인했던 식민통치를 철저하게 가르쳤을 뿐 아니라 르완다 한인교회에 와서 가족 모두가 한국 사람들 앞에 서서 일본이 과거 한국인들에게 가한 고통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또한, 일본 국내에서도 재일 교포들에게 차별적으로 대하고 있는 일본사회의 현실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사과했
1858년 10월 18세의 이토 히로부미(1841~1909)는 조슈번(長州藩) 하급무사로 규슈의 나가사키에 간 일이 있었다. 스승 요시다 쇼인(1830~59 )이 지인에게 소개장을 써줬다. “제 아래 있는 사람 중 가장 낮은 자입니다. 다른 이보다 재능이 떨어지며 학문도 미흡합니다. 성격은 좋지만 화려하진 못합니다.” ▲ 요시다쇼인(1830~59 ) 초상화 이토는 16세 때 요시다 쇼인의 사설학당 쇼카손주쿠(松下村塾)에 들어가 수학했다. 당시 스승으로부터 좋은 평가는 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후일 일본이 제국주의 국가로 발전하는 데 큰 힘을 보탰다. 요시다 쇼인은 쇼카손주쿠에서 조슈(야마구치현) 출신의 메이지유신 주역을 다수 배출했다. 막부 타도의 선봉 다카스기 신사쿠(1839~67), 유신 3걸로 불리는 기도 다카요시(1833~77), 군부 실력자 야마가타 아리토모(1838~1922)가 그의 제자다. 공교롭게도 모두 조슈번의 중심지 하기(萩)시에서 태어나 사무라이로 자랐다. 그곳엔 요시다 쇼인의 쇼카손주쿠가 있었다. 요시다 쇼인은 막부 말기의 급진 사상가이자 교육자다. 존왕양이(왕을 받들어 오랑캐를 물리침)를 위해 극단적인 행동도 서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