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해병대의 모토는 ‘Semper Fidelis’다. 모든 개인은 조직에 ‘항상 충성하라’는 말이다. 충성 앞에 ‘항상’이라는 말이 붙으면 불온하다. 조직이 무슨 짓을 하든 무조건 충성하라는 말이 된다. 영화 ‘어 퓨 굿맨(A Few Good Men)’에서 산티아고 일병은 ‘항상 충성하라’는 해병대 모토를 위반해 공공의 적이 된다. ‘항상 충성하라’의 숨은 뜻은 ‘그렇지 않다면 사형선고’일지 모른다. ▲ 우리 사회의 많은 조직도 암묵적으로 '항상 충성하기'를 강요하고, 누군가 거부하면 바로 '코드 레드'를 내린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어 퓨 굿맨’은 미국의 ‘귀신 잡는 해병대’에서 벌어진 불행한 사건을 다룬다. 해병대가 귀신까지 잡았다 하면 그 결과에 찬사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귀신을 때려잡기 위해 인간이길 포기하고 귀신이 돼야 하는 과정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우리나라 해병대의
▲ 따끔한 지적을 새겨듣겠다는 마음가짐이 없다면 누군가를 만나는 건 중요하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필요한 건 있는 그대로의 민심을 듣는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대통령 앞에서 청년은 울었고, 경제계 원로들은 쓴소리를 했다. 지난 1일 문재인 대통령과 시민사회단체 대표 간담회에서 엄창환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대표가 “정권이 바뀌었는데 청년정책은 달라진 게 없다”며 울먹였다. 그의 눈물은 이 땅의 청년들이 마주한 팍팍한 현실 그 자체였다. 뉴스를 통해 이를 지켜본 많은 기성세대들이 미안함과 안쓰러움을 느꼈다. 이틀 뒤 3일 청와대에 초청된 손님들은 경제계 원로였다. 총리나 경제부총리, 중앙은행 총재, 청와대 경제수석이나 장관을 역임한 인사들이다. 상당수는 정부가 밀어붙이는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도 시행의 부작용을 지적하면서 소득주도 성장정책에 대한 보완을 요청했다. 민간 투자 활성화를 통해 혁신성장에 더 힘을 실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문 대통령이 진보ㆍ보수 편 가르지 않고 시민단체 대표와 경제계 원로들을 만나 대화한 것은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시민단체 대표 간담회는 진보 진영 단체뿐만
▲ 대한항공 사태로 도래한 '주주행동주의 시대'는 투명성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그룹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대표직을 내려놓게 됐다.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연임에 필요한 찬성표를 얻지 못한 것이다. 대기업 대표, 그것도 오너 일가가 자발적 판단이 아닌 기관투자가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개입하는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로 사실상 경영권을 잃는 첫 사례다. 조 회장은 최대주주로서 영향력은 행사할 수 있겠지만, 이사회 참석 등 공식 경영활동에 제약을 받게 됐다. 조 회장의 이사직 박탈에는 국민연금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대한항공의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열어 격론 끝에 조 회장의 연임 반대를 결정했다. 기업가치 훼손 및 주주권익 침해의 이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부와 시민단체의 평가대로 대한항공 사태는 기업가치를 훼손한 대주주 전횡에 경종을 울렸다. 조양호 회장 가족은 ‘땅콩 회항’ ‘갑질 폭행’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조 회장 본인도 납품업체로부터 중개수수료를 받는 등 270억원대 횡령ㆍ배임 등 혐의로 기소됐
영화 ‘어 퓨 굿맨(A Few Good Man)’은 미군의 해외 주둔지 중 하나인 쿠바의 관타나모 해군기지에서 발생한 어느 일병의 ‘의문사’를 다룬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으로 추정되는 1960년대 관타나모 해군기지는 우리나라로 치면 휴전선과 같은 곳이다. 안보 목적상 밝힐 수 없는 비밀도 많고, 군기도 ‘빡센 곳’이다. ▲ '개인적인 이유'로 총기 사열의 일사불란한 아름다움을 깬 산티아고 일병은 '공공의 적'이 된다. [일러스트=케티이미지뱅크] 로브 라이너(Rob Reiner) 감독의 1992년작 ‘어 퓨 굿맨’은 굳이 장르를 분류하자면 ‘법정 드라마’라 하겠다. 우리에게 익숙한 일반법정이 아니라 ‘군대’라는 폐쇄된 사회에서의 법정 이야기라는 점이 특이하다. 영화의 시점(時點)은 명확히 나오지 않지만, 거리에 돌아다니는 자동차들의 모습으로 추정하건대 아마도 1960년대쯤 되는 듯하다. 건물이나 복장은 쉽게 변하지는 않지만 매년 ‘부분 변경’이
영화 ‘라쇼몽’은 여성 관객들이 불편해할 영화다. 일본의 어느 숲속에서 벌어진 ‘강도’와 ‘강간’을 모티브로 한 대단히 ‘동물적’인 이 영화는 강도짓이야 그렇다 해도 강간을 다루는 방식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라쇼몽의 원작자도 남성이고, 감독도 역시 남성이어서인지 강간의 문제를 다루는 시각 역시 철저히 남성적이다. ▲ 여성은 남성의 욕정을 불러일으키지 않게 자기검열 해야한다는 헤이안 시대식 주장은 오늘까지 생명력을 유지한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빚어낸 영화 ‘라쇼몽’의 배경은 11세기 일본 ‘헤이안 시대’이고, 영화가 개봉된 시점은 1950년이다. 그러나 강간의 문제가 다뤄지는 방식은 영화의 배경인 1000년도와 영화가 제작된 1950년도를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또한 ‘미투운동’으로 소란스러운 2019년 오늘날과 비교해도 또한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라쇼몽이 보여주는 여성문제 특히 강간의 문제에 있어서는 11세기와 21세기
▲ 정부 정책의 성과에 대한 평가는 시장에서 이뤄진다. 경제팀이 성과를 운운하면서 자화자찬할 일이 아니다. [사진=연합뉴스] 작금의 한국 경제상황에 대한 정부 진단은 ‘다행스럽다’로 요약된다. 2월 취업자가 1년 전보다 26만명 늘어난 것으로 통계가 나오자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이렇게 말하며 반색했다. 늘어난 취업자가 대부분 세금으로 만든 노인들의 단기 알바(40만명)이고, 나라경제의 허리인 3040세대 일자리(-24만명)가 산업의 핵심인 제조업에서 크게 감소한 것은 괘념하지 않았다. 그런 부총리로부터 경제현안 보고를 받으면서 문재인 대통령도 낙관적 평가를 되풀이했다. 올 들어 경제가 여러 측면에서 개선된 모습을 보여 다행스럽다고 했다. 국가 경제가 견실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과 경제팀의 이런 경제현실 인식과 발언은 국내외 전문기관들이 한국의 경제지표와 기업들에 대한 경고음을 잇달아 울리는 것과 동떨어져 있어 우려를 더한다. 투자ㆍ생산ㆍ고용 등 핵심지표가 부진하고 수출까지 넉달째 감소하는 데도 정부 홀로 낙관론을 펴고 있는 형국이다. 1월 산업활동을 놓고도 기획재정부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
한 노파가 여자 시체의 머리칼을 뽑아 가발을 만들어 판다. 죽은 여자는 뱀을 말려 어포로 속여 팔던 여자다. 직장을 잃은 한 남자는 머리칼을 뽑던 노파의 옷을 벗겨 달아난다. 문루에 버려진 갓난아기를 데려가는 남자를 보며 사람들은 그가 아기를 삶아먹기 위해 가져간다고 의심한다. 환란의 헤이안 시대 라쇼몽에서 벌어진 참상이다. ▲ 상황논리란 욕감과 게으름, 그리고 무능에 대한 '비겁한 변명'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끊이지 않는 전란과 기근, 그리고 역병까지 마치 ‘재앙 3종세트’와 같은 혼동 속 헤이안 시대(약 800~1200년), 서울의 남대문에 해당할 법한 수도 헤이안쿄(平安京, 현재의 교토)의 대문 ‘라쇼몽’의 무너져가는 문루에서 벌어지는 ‘삽화’들이 시대의 참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가히 토마스 홉스(Thomas Hobbs)가 말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All against all)’의 극적인 장면들이다. 17세기 영국의 법학자이자 사상가였던 토마스 홉스는 인간의 본성을 지극히 이기적이
▲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2기 경제팀은 정책 목표를 분명하게 세우고, 결단력 있게 추진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직職을 걸고' 일해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경제팀이 안 보인다. 정부의 경제정책도 먹혀들지 않는다. 투자ㆍ생산ㆍ고용 등 주요 경제지표가 극심한 부진에 빠진 데다 한국 경제를 먹여 살리는 수출마저 넉달째 감소세인데도 경제팀도, 정책도 중심을 잡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3년차를 맞아 성과를 보여주기는커녕 정책 혼선과 잡음으로 시장의 신뢰를 잃고 있다. 문재인 정부 2기 경제팀의 컨트롤타워인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19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다. 경제정책을 총괄하고 부처 이견을 조정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텐데 기획재정부 스스로 세제ㆍ예산ㆍ정책 등 3대 핵심 기능에서 우왕좌왕하며 불확실성을 더한다. 대표적 사례가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 논란이다. 올해로 도입 20년째인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는 지하경제 양성화의 일등공신이자 봉급생활자의 합리적 절세 수단이다. 그 존폐나 공제한도 축소는 중산층과 서민층의 세금이 왔다갔다 하는 중대 사안이다. 폭발성이 큰 문제를 경제부총리가 납세자의 날 기
일본 헤이안 시대, 전염병과 대기근이 닥친 수도 교토에는 굶고 병들어 죽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산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을 처리하다 못해 아무 데나 버리게 되고 도시 외곽문인 라쇼몽의 다락은 시체 유기 명소가 된다. ‘비단결 같은 삶’을 갈구하는 ‘라쇼몽羅生門’이라는 이름이 역설적이다 못해 소름 끼치는 장면이다. ▲ 모두 진정한 반성은 보이지 않고 오직 처벌을 조금이라도 덜 받기 위한 자기 합리화의 이유만 무성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영화 ‘라쇼몽’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두 단편소설 「라쇼몽羅生門」과 「덤불 속藪の中」이 원작이다. ‘덤불 속’이 사실상 영화 스토리의 중심이다. 반면 같은 제목의 소설 라쇼몽은 영화의 스토리와 큰 연관은 없다. 그러나 라쇼몽은 덤불 숲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이해하는 데 있어 그 배경 역할을 한다. 라쇼몽은 일본 헤이안 시대의 수도였던 교토의 외곽문이다. 수년간의 대기근, 화재, 그리고 전염병 등으로 죽은 사람들이 넘쳐나자 라쇼몽의 다락은 시체를 유기하는 장소가 돼 버린다. 영화 속 라쇼몽에는 다락의
▲ 미세먼지는 과거 정권 탓도, 현 정권 탓도 아니다. 역대 정권 모두의 책임이다. 사회와 가정도 나서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3월은 미세먼지랑 함께 왔다. 최악의 미세먼지는 봄과 새 학기를 맞는 설렘과 숨 쉴 자유를 앗아갔다. 미세먼지는 국민의 심신 건강을 저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제까지 질식시킨다. 잿빛 공포에 사람들이 외출을 자제하자 외식ㆍ관광 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고용ㆍ투자에 이어 수출까지 부진한 상황에서 지난해 경제성장을 지탱했던 소비도 위축되는 상황이다. 미세먼지는 장기적으로 기업의 생산활동도 저해한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제품은 미세먼지에 노출되면 불량률이 높아진다. 항공산업에선 비행기 결항이나 기체 세척비용 증가 피해가 예상된다. 자동차ㆍ조선업의 경우 미세먼지가 심한 날엔 도장작업을 못한다. 일각에선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감염 사태에 버금가는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한다. 메르스 사태 당시에도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움직이거나 외부 활동을 자제하자 내수와 관광산업 등에 영향을 미쳐 성장률을 갉아먹었다. 문제는 미세먼지로 인한 대기오염이 올 한해로 끝나지 않을 만성 위협이라는 점이다. 매해 상
▲ 기대했던 하노이발 봄바람은 불지 않았다. 정부가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향후 대응책을 면밀히 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사진=연합뉴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됐다는 소식에 2월 28일 주식시장이 출렁였다. 특히 남북 경제협력 관련주들이 급락했다. 코스피지수는 40포인트 하락했다. 중국 제조업 경기가 부진한 것과 맞물려 아시아 주요국 증시도 영향을 받았다. 예상하지 못한 충격적인 결과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2차 정상회담은 두 정상의 공동 합의문 없이 불발됐다. 북한의 구체적 비핵화 일정과 미국의 상응 조치를 담을 것으로 예상됐던 하노이 선언도 무산됐다. 합의 실패의 이유는 북한이 취할 비핵화 조치와 제재완화 등 미국의 상응 조치 간 조합에 대한 이견으로 전해진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 대가로 전면적 제재완화를 요구했다. 미국은 영변 핵시설 해체 외 더 많은 비핵화 조치를 요구했다. 실무회담에서 합의문을 조율하지 못한 채 두 정상이 만나 큰 틀의 합의를 꾀하는 톱 다운(Top-down) 방식에서도 접점을 찾지 못했다. 향후 실무협상이 재개돼도 입장차 좁히기가 쉽지 않을 수 있는 배경이다.
▲ 고용참사와 빈부격차가 심화하는 지금 한국 경제와 정치에 공히 필요한 것은 활력과 혁신이다. [사진=연합뉴스] 경제 상황이 갈수록 악화하는데도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약칭 소주성) 정책을 고집하면서 국민의 시름을 더하고 있다. 새해 초 설렘과 기대를 갖게 하는 ‘새해 효과’ 나 ‘1월 효과’는커녕 아직 2월인데도 벌써 몇달이 지난 것 같은 피로를 느끼게 한다. 1월 실업자(122만명)가 1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혹독한 고용한파가 몰아닥쳤다. 취약계층 소득을 끌어올려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소주성’ 정책 의도와 거꾸로 지난해 4분기 하위 20% 빈곤층 소득은 17.7% 감소했다. 그 결과, 소득하위 20%와 상위 20%의 월평균소득 격차(5분위 배율)가 5.47배로 2003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크게 벌어졌다. 소득 양극화를 심화시킨 핵심 요인은 일자리였다. 늘어난 상용 근로자는 그나마 소득상위 가구가 주로 차지했고, 소득하위 가구는 줄어든 임시직에서도 밀려났다.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과 근로시간 단축 등 핵심 소주성 정책이 임시·일용직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