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자헌 변호사 초임검사 시절. 황 할머니 사건 이야기다. 일제시대 인텔리겐차 또는 일본 늙은 게이샤 분위기를 풍기며 한 손에 사탕 하나 쥐고 나를 찾아왔다. 이미 대전지검에서는 유명하신 분. 수십년 전부터 고소와 진정을 반복하면서 40년 전 사건을 해결해달라고 '생떼'를 쓰시던 분이다. 늘 서울에서 대전까지 기차를 타고 찾아 왔다. 목에 스카프를 두르고 달달한 사탕하나 손에 쥐던 모습이 생생하다. 세월깊은 미소로 사탕하나 건네면 아무 것도 해줄 게 없는 나로서는 불편한 웃음으로 사탕 하나 받아 입에 넣었다. 몇 번을 반복하다가 문득 '도대체 무슨 사건이길래 40년이나 지나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되어 어찌할 방법이 없는 사건에 저토록 많은 세월을 쏟으시는가, 혹시 너무나도 억울한 그 무엇이 숨어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대화를 시도했다. 황 할머니의 하소연은 '40년 전에 동네 사람들에게 땅을 빼앗겼고 이를 해결해달라고 민원을 제기했지만 번번히 기각을 당해 그 과정에서 딸 하나를 잃었다. 그래서 평생을 매달렸고 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고는 눈을 감을 수 없다. 평생에 한(恨)이다.'라는 이야기... 고민을 하다가 할머니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을
▲ 서정민 연세대 교수 다산 정약용 선생이나 추사 김정희 선생을 비롯한 많은 선비들은 섬으로 유배를 가면 도성의 정치와 떨어져 자연을 벗 삼으며 많은 명작들을 쓰곤 하였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은 하와이대학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까지 6년간 재직하며 무얼 하였나 하는 자격지심을 느낄 때가 많다. 다만 이따금 하와이에서의 경험을 한국의 친구들과 나누고 싶은 생각은 든다. 많은 사람들이 하와이를 지상낙원쯤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막상 한국사람으로 6년을 지낸 기억은 그곳을 관광지로 방문한 수많은 사람들과 무척 다르다. 이는 아마도 제주를 생활의 터전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과 신혼여행지로 찾은 사람들 간의 간극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와이의 교민사회와 접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중 하나는 기억과 이념에 관한 문제다. 어느 날 한 어르신과 식사를 하며 나누었던 대화가 기억이 난다. 느닷없이 이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빨갱이’라고 하신다. 어? 이분이 박정희의 남로당 시절을 잘 알고 계신가 했더니 그게 아니라 국부(國父)이신 이승만 박사를 배신했을 뿐만 아니라 국외로 망명에 이르게 하였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가능
우리 전통 칼에 대한 수많은 질문에 대해 속 시원히 대답을 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앞에서 얘기한 대로 절대적으로 부족한 자료의 탓이 크다. 즉 현재 남아 있는 칼의 숫자도 미미하거니와 백동수, 박제가 등이 편찬한 [무예도보통지]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체계적인 무술서나 검술 교본이 없다는 게 큰 어려움중의 하나다. 이도 동양삼국의 무예를 다 모아 정리한 책으로서의 가치는 높지만 한국 전래의 무술비급은 아니기 때문에 한국 전통 검술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로서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근래에 이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우리 칼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으나 이들 역시 편협한 국수주의적 오류에 휩쓸리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이 때문에 후세에 와서 만들어진 문학적 허구와 빈약한 사실이 혼재되어 진실로 둔갑하기도 하는 슬픈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일본도와 조선검의 차이를 칼의 휜 정도, 손잡이 매듭 문양, 검막의 문양, 칼집의 구조에 따라 달라지는 패용 방식, 칼 길이의 차이 등으로 기준을 삼아 얘기하는 정도인데 원래 문화라는 것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변화 발전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그리 대단한 차이는 아닌 것 같다. 인류 역사
▲ 이상훈 한국해외원조협의회연구위원 1995년 12월쯤으로 기억이 됩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저희 부부는 케냐의 몸바사(Mombasa) 라고 하는 항구도시에 들러 지저스 요새 (Fort Jesus)라는 포르투갈이 건설했던 성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동부 아프리카의 오랜 식민통치와 자원수탈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15년이 지난 지금도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그 곳에서 발굴된 생경한 중국의 도자기 파편들이었습니다. 도자기에 대해 이렇다 할 식견이 없는 저에게도 희고 푸른 색의 도자기 파편 위에 새겨진 동·식물의 문양들을 보니 분명 그건 지구 반대편에서 온 것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그 때는 오래 전부터 중계무역으로 아프리카를 드나들었던 아랍상인들에 의해 그 곳까지 도자기가 전해졌겠거니 어림짐작을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야 15세기 초 정화(鄭和)가 이끌었던 중국 명나라 함대가 아프리카 동부의 그 해안까지 다녀갔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세계사 교과서에 실려 있던 <기린도>라는 그림이 기억이 났습니다. 아프리카에만 서식하는 이 동물이 중국 북경에 나타났
“생각하면, 희망이란 본래 존재한다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없다. 희망은 대지 위에 난 길과 같다. 애초부터 땅 위에 길이란 없다.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히 그 곳이 길이 되기 때문이다.” 왜들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래 전에 버젓이 있던 길을 새로 난 길인 양 이름을 붙여 또 길을 낸 듯이 설쳐대질 않나, 고작 한다는 일이란 허여멀건 시멘트와 거무튀튀한 타르를 덮어 길만 넓혀 놓고 개통식 연답시고 늘 다니던 이 길 주인 동네사람 제쳐놓고 고위직 사람 모아놓고 테이프를 끊습니다. 제주도의 올레길이나 지금도 공사 한창인 새 도로가 그렇습니다. 제주도와서 보기 싫어도 봐야 하는 일은 도로 닦는 공사현장입니다. 지금도 이만하면 길은 넉넉하지 않나 싶어 오래 살아온 제주도민에게 물어봅니다. 공히 하는 말. “도나 시에서 토목공사 외에 할 게 없잖아. 육지도 마찬가지 아닌가? 연말 다가오면 멀쩡한 보도블록을 다 들어내고 새 것으로 교체한다며? 똑같지 뭐!” 간선도로는 주민생활에서나 경제적으로나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통행량이 적은 시골길까지도 확장하느라 제주도 땅과 흙이 온통 들쑤셔지고 있습니다. 분명 다른 자
▲ 구자헌 변호사 영화 '도가니'는 '도가니 열풍’이라 불릴 정도로 우리 사회에 많은 분노와 역풍을 몰고 왔다. 하지만, 필자는 영화 ‘도가니’를 보지 않았다. 아니 애써 외면했다고 해야겠다. 영화 내용이 장애아 성폭력 사건을 소재로 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편안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한 때 검찰에 몸담았던 필자에게 던지는 ‘독한 눈총’을 감내하기 힘들 것이란 본능이기도 했다. 전 국민의 분노 속에 몇가지 의미있는 법 개정 작업이 진행됐다.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방향과 사회복지법인과 시설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방안, 두가지 틀에서 논의되거나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필자는 그 중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입법안을 들여다 보았다. 우선, 이미 사실상 항거 자체가 불가능한 아동이나 청소년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과 관련해‘항거불능’을 입증하지 않아도 처벌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아동청소년보호법에 마련했다. 장애 자체가 항거불능 상태인데도 저항불능을 형사처벌의 구성요건으로 한다는 것은 잘못이라는 반성적 고려에서 입법화된 것이다. 다음으로는, 장애인에 대한 성범죄도 아동 대상
▲ 조한필 충청타임즈 부국장 종합편성채널(종편)의 개국 첫날. 모든 종편이 일제히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인터뷰를 내보냈다. 지난 1일 TV조선, jTBC, 채널A, MBN 등 어디를 돌려도 박 전 대표 모습 뿐이었다. 시청률 높이기 승부수를 공교롭게 모두 박 전 대표로 한 것인지 어느 한 곳이 그리하니 질세라 따라 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천편일률적 시도가 실망스러웠다. 박 전 대표는 사적 영역까지 밝히는 거침없는 모습을 보였다. 1967년 중학생이던 때의 비키니 차림 흑백사진이 등장했다. “당시로선 너무 과감하지 않느냐”는 사회자 질문을“몸매가 받쳐주니까 입는 거예요”라며 재치 있게 넘겼다. 박근혜 전 대표의 중학생이던 때의 비키니 차림 흑백사진 고색창연한 박 전 대표의 비키니가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사진 속 장소는 경남 진해 앞바다의 섬(저도)으로 대통령 별장이 있어 일반인은 출입이 통제되던 곳이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인 나는 가족 여름휴가는 꿈도 꾸기 힘들었다. 친구들도 매한가지였다. 수영복은 입어보지도 못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200달러가 채 되지 않아 전 국민이 가난에 허덕일 때였다. 학교
▲ 박재욱 신라대 교수 폭풍이 지나간 것처럼 보인다. 아니 어찌 보면 거대한 태풍이 휩쓸고 간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다. 지난 10·26 재·보선 얘기다. 지금껏 상상하지 못했던 너무도 큰, ‘메가트렌드’급 아젠다를 던지고 간 정치국면이다. 재론하지 않을 수 없고, 곰곰이 곱씹어보지 않을 수 없다. 역대 선거에서 재·보선은 정권의 중간평가라는 의미가 강했다. 10월 재·보선 역시 예외는 아니였다. 하지만 과거 재·보선과는 사뭇 다른 평가와 전망이 나왔다. 이제 그 현상들에 대해 새롭게 특징지워야 할 시점에 왔다. "모바일 선거혁명, 정당체계 흔들어" 우선, 과거 광우병 관련 촛불집회 등에서 맹아를 보였던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한 새로운 직접민주주의의 등장이다. 정당은 대의제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제도적 장치다. 하지만 시장 후보도 못내는 야권, 지지율 5%도 안 되던 무소속 후보에게 일방적으로 패한 여권으로 인해 정당체계가 흔들리면서, 정당정치의 위기니 뭐니 하며 소란을 떠는 밑바탕에는 모바일 선거혁명이 있었다. 대중들의 자발적이며 직접 참여
▲ 이권홍 교수 “이곳의 집들은 모두 수성 아래 자리 잡았다.” 지금 제주에는 사람이 많다. 살고 있는 사람도 제법 있지만, 오고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 내국인들이 들락거린 지는 오래 되었고, 이젠 외국인들이 몰려온다. 관광객 수만 해도 최근엔 800만명을 넘어섰을 정도로 제주도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다. 그래서 더더욱 옛날 제주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이야 마음만 먹으면 우리 아름다운 제주에 쉽게 올 수 있지만, 30여년 전만해도 그리 쉽지가 않았을 뿐만 아니라, 50년 전에는 버림받은 땅이었다. 그 이전에는 더 심했다. 조선 중기 이후에 제주인은 제주도 밖을 나서지 못하게 하는 출도 금지령이 내려져 있었고, 여성들의 출도는 원천 봉쇄됐었다. 그때 제주사람들이 부르는 ‘육지인’들의 눈에는 제주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기이한 인상만 남아있고, 특이함으로만 접근이 됐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내도(來島)하는 것도 장사치나 관리·유배인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들 중에도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추사(秋史) 김정희다. 그는 남쪽 하늘 끝 큰 바다 물가에 영산은 구불구
우리가 보통 '칼' 이라고 부르는 무기는 일반적으로 '검(劍·sword)'과 '도(刀·blade)' 로 나뉜다. 한자의 모양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검은 양날, 도는 외날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두 가지의 구분이 다소 모호해졌으나 일단 기본은 그렇다. 석기시대부터 따지자면 검의 역사가 도의 역사 보다는 더 오래됐다. 청동기 시대의 비파형 세검을 비롯해서 삼국시대의 환두대도와 같은 직검, 우리가 잘 아는 칠지도 같은 칼을 보면 이해가 쉽다. 서양에서도 그리스 시대를 거쳐 로마 시대의 검투사(gladiator)들이 쓰던 칼인 gladius, 십자군 전쟁, 중세이후의 Broad Sword 또한 양날 검이다. 검의 주된 용도가 찌르기인 것이라면 도는 베기인데 이는 칼 무게의 차이와 칼날의 날카로움의 차이로 나타난다. 양날의 '검'에서 외날 '도' 로의 전이는 고대 전장에서 입던 갑주의 변화에 대한 반응이라고 보는 설득력 있는 견해도 있다. 이와 함께 야철 및 제련술의 발달로 인한 칼의 경도 증가 또한 보다 가볍고 효율적인 도의 발전을 불러온 듯하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인검에서 보듯 검이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다. 그러면 우리 조상님네는 '
▲ 이상훈 한국해외원조협의회연구위원 아프리카의 언어를 배우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가장 많이 알려진 아프리카 말을 꼽으라면 아마 ‘하쿠나 마타타’일 겁니다. 이 말은 동부 아프리카 200개 현지부족들 간에 오랫동안 통용어로 사용되어 온 스와힐리 어에서 온 말입니다. 스와힐리 어는 자체 문자가 없어 영어 알파벳을 차용해서 ‘Hakuna Matata’로 표기합니다. Hakuna의 ‘ha’는 부정어미의 접두어이고 ‘kuna’ 는 ‘있다, 존재하다’ 즉, 영어의 ‘there is…’에 해당하는 의미이고 ‘matata’ 는 ‘문제, 골칫거리’ 정도의 뜻입니다. 영어로 굳이 옮긴다면 ‘There is no problem’ 이 되겠지요. 우리에게는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준의 단어와 다름없는 이 말이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월트디즈니사의 영화 ‘라이언 킹’ (Lion King) 덕분인 것 같습니다
조선검 1회에서 제가 사는 곳 얘기를 드렸습니다. 제 약력소개도 있었던 지라 대강 어떤 사람이라는 것도 아셨을 것으로 봅니다. 저는 한국의 검, 즉 조선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제 차 트렁크엔 낡은 도복 한 벌과 조선검 한 자루가 실려 있습니다. 바로 그 조선검! 그 얘기를 드립니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길어질듯 해서 두 번에 나누어서 쓸까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조선검(상) (내가 사는)캘리포니아에는 세계 각국의 온갖 무술이 다 들어와 있다. 미국 서부는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동부쪽 보다 먼저 동양문화가 들어왔고, 이에 맞추어 한·중·일 동양 삼국의 대표적인 무술이 따라 들어오게 된 듯 싶다. 이민자들의 나라답게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한 포용력 내지는 수용력이 강한 것이 미국의 강점이다보니 다들 이렇게 저렇게 어울려서 살아가고 있다. 세계 일주 여행을 안 하고도 모든 나라의 고유한 음식을 거의 다 맛 볼 수가 있는 데가 미국이다. Greater Los Angeles 지역에서만 쓰이는 서로 다른 언어가 100여개가 넘는다. 어느 정도까지는 다들 서로 이해하고 존중해 주면서 살아가며 또 미국 문화에 적응, 변화 돼 간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