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민/ 수필가 ‘나’와 ‘저’는 같은 1인칭 대명사다. ‘위원장’과 ‘위원장님’도 같은 상대방을 호칭하는 2인칭 대명사다. 그런데 이것은 같으면서 많이 다르다. 대표적인 호학군주이면서 독서광이었던 정조는 읽은 책의 원문을 초록(抄錄)할 때 “발췌한 부분과 자신의 입론이 뒤섞이지 않도록 명심해야한다”고 했다. 국정원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의 원문 중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한 ‘나’를 ‘저’로 발췌한 것은 발언의 정수를 교묘히 왜곡(자신들은 오타라고 함)하여 자신들의 의도와 뒤섞어 놓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이 디테일한 관심을 갖지 않기를 기대하여 속이려 들었으니 참으로 나쁘고 미운 공무원들이다. 우근민 지사는 지난 1일 취임 3주년 기자회견에서 최근 한국메니페스토실천본부의 광역자치단체장 공약사항 이행평가에서 A등급(우수)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평가에 따르면 민선5기 우근민 제주도정의 공약사항 200개 중 98.5%인 197개가 정상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불과 닷새 후 도내 2개 언론사
▲ 이성준/ 시인, 논설위원 그분과 처음 만난 것은 열여덟 살 때였다. 우연찮게 친구 순정이네 집에 놀러갔는데 그분이 나를 무척이나 반기셨다. 순정이나 친구들 말로는 ‘생전 없던 일’이라 했다. 그리고 우리가 헤어질 때쯤 친구들 몰래 나를 부르시더니 다짜고짜 말씀하셨다. “우리 순정이 어떵(어떻게) 해보라!” 영문을 몰라 멍한 눈으로 쳐다보는 나에게 그분은 아들을 부탁하셨다. 공부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만 하는데 아버지로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고. 그렇다고 머리 다 큰 놈 두드려 팰 수도 없고, 또 그렇게 하면 반항만 할 것 같아 부탁하는 것이니 순정이와 사귀면서 공부 좀 같이 하라고 부탁하셨다. 얼떨떨했다. 순정이와는 별로 친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분을 처음 뵙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그분은 나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누구보다 열심히 산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 순정이와 어울려 공부만 열심히 하겠다면 모든 지원을 다 하겠다고 하셨다. 아예 여름방학 동안 순정이와 함께 과수원에 가서 같이 공부를 하라는 구체적인 방안까지 내놓으셨다. 어머니마저 여의고 집도 절도
▲ 고운호/ 전 제주경제포럼 공동대표 예속적 하도급 동물원에 갇힌 제주 사회 “지난 몇 주간 제주특별자치도 우근민 지사 만큼 전국적인 조명을 받았던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작 제주의 지식층과 언론의 소리는 잘 들리지 않습니다.” 서울에 거주하는 한 제주 도민의 말이다. 윤창중 성추행 의혹 사건은 과거 벌건 대낮 제주도 지사실에서 발생한 성범죄 사건을, 고위 공직자가 성범죄를 벌여 파문을 일으킨 대표적 사례로 오버랩시키면서 세간의 이목을 제주에 집중시켰다. 언론을 비롯한 SNS에서의 정치인들을 조롱하고 경멸하는 풍자와 보도가 이어지면서 뜨거운 감자로 재점화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전 경찰대 교수 표창원 박사의 “과거 성추행으로 한창 문제된 사람. 어떻게 아직도 도지사하고 있는지...”라는 트윗이 불을 지피는데 한 몫했다. 이어 터진 ‘4·3 폭도’, ‘간첩기자’ 등 우근민 지사의 돌출 발언은 또 다른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간첩기자’ 발언과 관련해 우 지사는 언론사 기자로부터 명예훼손과 모욕 혐의로 피소됐다.
제주 시골에서의 아침 모험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야아! 제임스, 일어나” 목소리가 들렸다. 이불을 조금 걷어내고 벽에 있는 시계를 한쪽 눈으로 쳐다봤다. 오전 6시였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었다. “네. 잠시만요” 대답했다. ‘아마도 5분쯤 더 자고 일어나도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금새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제임스. 진짜 가자” 같이 들렸다. “알았어요, 일어날 거예요.”라며 바로 일어났다. 왜냐하면 장모님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성산 근처 고사리들도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제주도에 살기 시작하면서 ‘고사리꺾기’는 내 삶의 새로운 일상이 됐다. 한국 사람을 만날 때 마다, 특히 육지사람을 만나면 대부분 고사리꺾기 경험에 대해 물어본다. 고사리꺾기 경험이 없으면 진짜 제주도민이 아닌 것 같다. 제주도에 살면서 이러한 체험은 한 번씩은 꼭 필요하다. 영국에는 이러한 문화가 없다. (영국에 있는) 부모님께 전화하고 이(고사리꺾기) 얘기를 하면 이해 못하고 신기해한다. 나도
▲ 이성준/ 시인, 논설위원 “이 책 한 번 읽어봐라.” 곰씨(서상도 형)가 점심을 먹고 공장에서 쉬고 있는 나를 제도실(製圖室)로 불러 던져준 책은 '안병욱 수상록'이었다. 1978년 겨울의 끝자락, 열일곱 살의 나는 그렇게 안병욱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나는 부산시 북구 사상동에 있는 (주)진전사에서 공돌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애초 약속과는 달리, 어른들의 배반으로 나는 그곳에 버려져 있었다. 부끄러운 가족사를 들추고 싶지 않아 더 이상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내가 버려져 있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부모도 없는 열일곱 살의 나를 버리는 일은 피우던 담배꽁초를 길가에 버리는 일보다도 쉬웠을 것이다. 양심의 가책은 잠깐이지만 냄새 나고 처치곤란의 담배꽁초를 처치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우선이었을 테니까. 그러나 버림받았다는 생각만 키우며 방황하는 내 곁에는 다행히 곰씨가 있었다. 행동이 굼뜰 뿐만 아니라 곰처럼 생겼다 하여 내가 붙인 ‘곰씨’란 별명처럼 느릿느릿, 꾸역꾸역, 그러나 누구보다 알차게 사는 건실한 사람이었다. 낮에는 그곳에서 설계일을 하고, 밤에는 경남공전에서 공부하는 모범 청년이었다. 그가 나의
▲ 백승주/C&C국토개발행정연구소장 행정조직 문화의 특징 중 하나에 상황주의란 표현이 있다. 주로 권한 있는 리더의 결단이 그가 처한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임의적이고 상대적인 기준을 적용하여 행하는 행정행태를 지칭할 경우 사용된다. 이런 상황주의 논리가 리더의 정책결정이나 여타 의사결정과정에서 주로 먹혀들게 되어 리더가 이 상황을 즐겨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적법 타당한 의사결정을 기대할 수 있는 법치보다는 사람 또는 관계중심의 인치가 우선하게 되어 특혜 또는 편법이 조장되는 우려를 낳게 된다. 게다가 권력을 손에 쥔 리더가 권한행사 법규를 보편적으로 적용하려 하기보다는 자신의 자의적 판단을 우선 존중하여 적용하게 된다. 행정의 제일의 목표인 객관적ㆍ합리적 공익실현이라는 공동선 추구가 망가지게 되는 것이다. 최근 제주도지사의 행태가 상황주의적인 관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제주포럼 개최에 즈음하여 열린 지역 언론과의 오찬간담회 자리에서 도지사의 언사가 문제가 되었다. 지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제주포럼 개최 당일 도지사가 자청하여 기자들을 상대로 누구도 발설하기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난제(難題)들을 스스럼없이 발설함으로써 화(禍)를 자초한 것
▲ 권혁성 논설위원 엊그제는 미국의 현충일(Memorial Day)이었다. 미국의 남북전쟁(The Civil War)에서 전사한 남북 병사들의 묘지를 단장하던 ‘Decoration Day’에서 유래돼 지금은 모든 전몰 병사들을 기리는 국가 공휴일로 확대 되었다. 건국 이후 250년이 채 안되는 짧은 역사 동안 독립 전쟁에서 부터 크고 작은 전쟁을 치르고 있는 나라인지라 벌써 100만 명이 넘는 전사자들을 해마다 기리는 날이다. 매년 5월의 마지막 월요일로 지정되어 날짜가 조금씩 바뀌는데 이유는 역시 미국답게 3일간의 연휴를 즐기기 위함이다. 계절적으로는 9월 초의 노동절까지 3개월간 이어지는 긴 여름 휴가철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기도 하다. 내가 사는 캘리포니아의 얼바인 시에서도 기념행사가 열려 두 딸을 데리고 시청 앞에 마련된 행사장으로 향했다. 매일 앞을 지나치면서도 몰랐던 사실은 현충일 행사장인 빌 바버 기념공원(Bill Barber Memorial Park)이 얼바인 출신으로 한국전 당시 장진호 전투에 참가했던 미해병 1사단 소속의 Bill Barber 소령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공원이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 이성준/ 시인, 논설위원 내가 만난 아버지 중에 우는 아버지는 없었다. 한숨을 쉬기도 하고, 술에 취하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는 아버지는 봤지만 우는 아버지는 본 적이 없다. 남자는 울 수 있지만 아버지는 울 수 없는 것인지, 아버지의 눈물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딱 한 번 본 적이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이셨던 백무범 선생님의 눈물이다. 그때가 언제였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다른 선생님들 같았으면 반 아이들을 개 패듯 팼을 상황이었던 것만은 기억난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을 때리기는커녕 혼자 자책하며 우셨다. “다 내가 너희들을 잘못 키운 탓이다.” 선생님께서는 교실에 들어올 때 가지고 왔던 몽둥이를 교탁 위에 올려놓더니 이 말을 끝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60명이 넘는 반 아이들을 모아놓고 길게 한숨을 쉬시더니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천장을 바라보셨다. 그리고 우리는 봤다, 어느 순간 선생님의 두 볼에 눈물이 흐르는 것을. 누가 먼저였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바닥에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없이 선생님을 따라 울기 시작했다. 어두워져가는 교실이 눈물바
▲ 조한필/ 충청타임스 부국장 한국사를 TV드라마로 배우다가 이젠 예능으로 배우는 시대가 왔다.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지난 11일, 18일 ‘TV특강’한국사를 방송했다. 11일의 유재석ㆍ하하에 이어 18일 박명수ㆍ노홍철이 나와 아이돌 가수들을 대상으로 ‘강의’했다. 아이돌 얼굴 보는 재미 때문인지 시청률이 높았다. 18일엔 14.3%로 같은 시간대 1위였다. 강의는 우스웠지만 평가는 좋았다. 인터넷에 출연자를 칭찬하거나, 이 기회에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는 글들이 올랐다. 어떤 이는 이 프로가 대한민국 교육도 못한 일을 대신했다며 치켜세웠다. 씁쓸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한국사는 대학과 고교 교과과정에서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된 지 오래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그걸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인다며 개탄한다. 국사편찬위원회서 2006년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만들어 역사 붐을 일으켰으나 그것도 잠시다. 공무원ㆍ교원 시험과 서울대 입시, 그리고 몇 개 기업의 입사시험에서 이 시험 점수를 반영하고 있지만 그걸로 끝이다
▲ 이성준 시인/ 논설위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칭찬은 모든 존재를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 근원임을 강조한 말이다. 무게가 6~10톤에 이르고 몸길이가 7~10m에 이르는, 난폭하기로 소문난 백상아리를 사냥하는 바다생태계의 최대의 폭군인 범고래. 그도 조련사의 지속적인 칭찬을 받게 되면 변화하고,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수중 쇼를 한단다. 이처럼 칭찬은 상대를 기쁘게 하고, 그 기쁨은 다시 베타 엔돌핀이나 도파민 등의 호르몬을 분비시켜 모든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힘을 준다고 한다. 매슬로우(Maslow)도 ‘욕구 5단계설’에서, 인간이 생존과 안전의 문제가 해결된 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칭찬과 인정은 구분되어야 할 것 같다. 칭찬은 즉각적인 반응일 수 있다. 상대방이 빼어난 점, 잘한 것을 추어주거나 높이 평가하는 반응이다. 그런데 요즘 칭찬이 너무 흔하다. 자그마한 일에도 칭찬을 남발하다 보니 칭찬이 난무한다. 그런 경향은 젊은 사람일수록 더하는 것 같다. 물론 칭찬을 나쁘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칭찬을 통해 상
▲ 백승주/ C&C 국토개발행정연구소장 제주도가 최근 ‘공공시설물의 합리적 운영 및 관리 방안 연구’용역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직영 공공시설물의 운영적자가 해마다 누증돼 어려운 지방재정에 발목을 잡고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직영 공공시설물 정상운영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란다. 제주도 직영공공시설물의 수가 해를 거듭할수록 본의 아니게 증가하는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예컨대 2010년에는 직영 공공시설물의 수가 140개이었으나 지난해는 여기에 물경 174개소가 더 추가돼 현재 314개에 이르고 있다. 연간 운영비 규모도 연 491억 원에서 555억 원으로 크게 불어남으로써 연간 운영 적자규모가 2011년 현재 351억 원으로 파악되고 있다. 설령 공공시설물 등을 추가하지 않고 현재수준에 멈출지라도 그 적자규모가 2017년 이후 615억 원 이상으로 갑절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앞으로 공공시설물 유지관리에 따른 재정 부담이 가뜩이나 어려운 제주지방재정을 압박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 제주개발행정 전국적 지방재정위기상황을 남의 일로 본다. 이런 상황임에도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해서인지 제
▲ 이성준/ 논설위원 아버지란 존재를 접해본 경험이 없기에, 내게 아버지의 길이란 애초부터 없었다. 삶이란 원래 스스로 알아가는 과정이요, 없는 길을 찾아가는 고행의 길이면서 구도의 길이라지만 아버지의 길은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과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아버지의 길을 혼자 고민해 보지만 뚜렷한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친구들이나 동료들에게 묻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자존심 때문이 아니다. 다 아는 아버지의 길을 나만 모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부끄러움과 자괴심, 아버지 없이 자란 티를 내는 것 같아 차마 묻지 못한다. 아버지, 이럴 땐 어떻게 했어요? 아버지에게 묻고 싶고, 기대고 싶고, 위로받고 싶지만 내게는 아버지가 없으니 그럴 수가 없다. 아버지가 있다고 해서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질문을 한다고 해도 아버지가 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된다. 집 뒤에 있는 산처럼 말없이 앉은 채 지켜보고, 지켜준다. 가끔은 화를 내며 소리치기도 하고, 내리치기도 하지만 말없이 앉아 있는 게 보통이다. 그런 아버지를 갖지 못한 사람은 외롭다. 애초부터 빼앗겨 버린 것에 대한 갈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