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잉(胤礽, ?~1724)은 강희(康熙, 1796∼1820)의 둘째 아들이다. 강희 14년(1675) 황태자에 봉해져 처음으로 정사를 맡고 중용되기 시작했다. 47년 강희는 “조상의 덕을 본받지 않는다”는 등의 죄명으로 태자를 폐위하고 수감시킨다. 수개월 후 또 태자에 복위시켰다가 51년 다시 폐위시키고 함안궁(咸安宮)에 구금한다. 옹정(擁正) 2년(1742)에 죽었다. 이밀(理密)친왕으로 추숭됐다. 윤잉은 효장문태황태후(孝莊文太皇太后)가 지정한 태자가 돼 어릴 적부터 부황 강희의 정성어린 양육을 받는다. 재능이 넘쳤다고 한다. 말 타기, 활쏘기, 언담(言談), 문학에 능해 10살이 되기도 전에 강희를 따라 순행을 나갔고 정사를 처리하는 방법을 배웠다. 강희도 위신을 세워주기 위해 태자에게 황태자 고유의 제도를 제정해 태자의 위험을 갖춘 복장, 의장(儀仗), 용품 등을 황제와 다름없이 체현토록 했다. 국가 3대 명절 중의 원단(元旦), 동지(冬至), 그리고 태자의 천추절(千秋節, 생일)에 왕공 백관들이 황제에게 조하(朝賀)한 후 태자 거처에 가서 같은 의식을 진행하도록 했다. 황제에게 ‘삼궤구고두(三$
순치(順治, 1638~1661), 이름은 푸린(Fulin, 복림福臨), 홍타이지(황태극皇太極)의 아홉째 아들로 홍타이지가 죽자 여섯 살 나이에 황제 자리에 앉았다. 1653년 도르곤이 사냥을 나섰다가 사망하자 순치제의 친정이 시작됐다. 14세의 순치제는 도르곤이 정권을 찬탈하려고 했다는 역모 혐의로 추벌(追罰)했다. 그와 동시에 제왕(諸王)의 6부 관리를 금지시키는 등 제왕의 세력 억제를 꾀했고 황제의 권한을 강화하는 정책을 취했다. 1659년 영명왕(永明王)을 운남(雲南)으로부터 미얀마로 내몰아 명나라 잔존 세력 대부분을 평정했다. 한인(漢人) 공신 오삼계(吳三桂) 등 이른바 삼번(三藩)이 난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면서 황제의 권력에 저항하는 세력들을 평정했다. 명나라의 정치체제와 지배이념을 계승하고 한인을 등용했다. 명 말기의 폐정(弊政)을 바로잡아 인심 안정에 힘 기울여 중국 지배의 기초를 닦았다. 순치제의 치세 동안 안정화된 대청제국은 강희제(康熙帝)로 넘어가 가장 안정적인 국가의 기틀이 마련됐고 전성기를 구가하게 됐다. 순치 18년(1661) 천연두로 병사했다. 다시 말해 순치 황제 아이신기오로(Aisingioro, 애신각라愛新覺羅) 푸린은 청 왕조
중국이 제주로 밀려오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다. 마치 '문명의 충돌' 기세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동북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은 깊고도 오래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안목으로 종결될 인상이 아니다. <제이누리>가 중국 다시보기에 들어간다. 중국학자들 스스로가 진술한 저서를 정리한다. 그들이 스스로 역사 속 궁금한 것에 대해 해답을 찾아보고 정리한 책들이다. 『역사의 수수께끼』『영향 중국역사의 100사건』등이다. 중국을 알기 위해선 역사기록도 중요하지만 신화와 전설, 속설 등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정사에 기록된 것만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것은 승자의 기록으로 진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 그렇기에 너무 과하다 싶은 순수 중국인 또는 중국학자들의 관점도 중요하다. 그래야 중국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문학, 문화사 전문가인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가 이 <중국, 중국인> 연재 작업을 맡았다. / 편집자 주 효장문황태후가 탐문한 결과 도르곤이 와병 중에 그의 심복에게 “만약 내가 황제가 됐고 지금 어린 황상이 황태자가 됐다면 내가 어찌 병을 얻었겠는가?”라고 했다는
중국이 제주로 밀려오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다. 마치 '문명의 충돌' 기세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동북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은 깊고도 오래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안목으로 종결될 인상이 아니다. <제이누리>가 중국 다시보기에 들어간다. 중국학자들 스스로가 진술한 저서를 정리한다. 그들이 스스로 역사 속 궁금한 것에 대해 해답을 찾아보고 정리한 책들이다. 『역사의 수수께끼』『영향 중국역사의 100사건』등이다. 중국을 알기 위해선 역사기록도 중요하지만 신화와 전설, 속설 등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정사에 기록된 것만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것은 승자의 기록으로 진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 그렇기에 너무 과하다 싶은 순수 중국인 또는 중국학자들의 관점도 중요하다. 그래야 중국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문학, 문화사 전문가인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가 이 <중국, 중국인> 연재 작업을 맡았다. / 편집자 주 효장문황후(孝莊文皇后, ?~1687), 보르지기트(Borjigit 박이제길특博尔济吉特) 씨이며 호르친(Khorchin 과이심科爾沁) 버일러(패륵貝勒)인 자이상
중국이 제주로 밀려오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다. 마치 '문명의 충돌' 기세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동북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은 깊고도 오래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안목으로 종결될 인상이 아니다. <제이누리>가 중국 다시보기에 들어간다. 중국학자들 스스로가 진술한 저서를 정리한다. 그들이 스스로 역사 속 궁금한 것에 대해 해답을 찾아보고 정리한 책들이다. 『역사의 수수께끼』『영향 중국역사의 100사건』등이다. 중국을 알기 위해선 역사기록도 중요하지만 신화와 전설, 속설 등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정사에 기록된 것만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것은 승자의 기록으로 진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 그렇기에 너무 과하다 싶은 순수 중국인 또는 중국학자들의 관점도 중요하다. 그래야 중국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문학, 문화사 전문가인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가 이 <중국, 중국인> 연재 작업을 맡았다. / 편집자 주 청(淸) 태종(太宗, 1592~1643) 홍타이지(HongTaiji, 황태극皇太極)는 누르하치의 여덟째아들이다. 어릴 적부터 남달리 총명했다고 한다. 과묵하고 쾌락을 쫓지 않았다. 책
중국이 제주로 밀려오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다. 마치 '문명의 충돌' 기세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동북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은 깊고도 오래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안목으로 종결될 인상이 아니다. <제이누리>가 중국 다시보기에 들어간다. 중국학자들 스스로가 진술한 저서를 정리한다. 그들이 스스로 역사 속 궁금한 것에 대해 해답을 찾아보고 정리한 책들이다. 『역사의 수수께끼』『영향 중국역사의 100사건』등이다. 중국을 알기 위해선 역사기록도 중요하지만 신화와 전설, 속설 등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정사에 기록된 것만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것은 승자의 기록으로 진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 그렇기에 너무 과하다 싶은 순수 중국인 또는 중국학자들의 관점도 중요하다. 그래야 중국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문학, 문화사 전문가인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가 이 <중국, 중국인> 연재 작업을 맡았다. / 편집자 주 복진(福晉)은 만주어 ‘푸진(Fujin)’의 음역으로 처, 귀부인이란 뜻이다. 청(淸)대 만주족의 친왕(親王), 군왕(郡王), 친왕세자(親王世子) 등의 정실부인을
중국이 제주로 밀려오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다. 마치 '문명의 충돌' 기세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동북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은 깊고도 오래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안목으로 종결될 인상이 아니다. <제이누리>가 중국 다시보기에 들어간다. 중국학자들 스스로가 진술한 저서를 정리한다. 그들이 스스로 역사 속 궁금한 것에 대해 해답을 찾아보고 정리한 책들이다. 『역사의 수수께끼』『영향 중국역사의 100사건』등이다. 중국을 알기 위해선 역사기록도 중요하지만 신화와 전설, 속설 등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정사에 기록된 것만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것은 승자의 기록으로 진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 그렇기에 너무 과하다 싶은 순수 중국인 또는 중국학자들의 관점도 중요하다. 그래야 중국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문학, 문화사 전문가인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가 이 <중국, 중국인> 연재 작업을 맡았다. / 편집자 주 추연Cuyen(저영褚英, 1579~1615)은 누르하치의 맏아들이다. 버일러Beile(패륵貝勒, 원래는 도로이버일러doroibeile, 다라패륵多羅貝勒)에 봉해졌고 &ls
중국이 제주로 밀려오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다. 마치 '문명의 충돌' 기세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동북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은 깊고도 오래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안목으로 종결될 인상이 아니다. <제이누리>가 중국 다시보기에 들어간다. 중국학자들 스스로가 진술한 저서를 정리한다. 그들이 스스로 역사 속 궁금한 것에 대해 해답을 찾아보고 정리한 책들이다. 『역사의 수수께끼』『영향 중국역사의 100사건』등이다. 중국을 알기 위해선 역사기록도 중요하지만 신화와 전설, 속설 등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정사에 기록된 것만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것은 승자의 기록으로 진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 그렇기에 너무 과하다 싶은 순수 중국인 또는 중국학자들의 관점도 중요하다. 그래야 중국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문학, 문화사 전문가인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가 이 <중국, 중국인> 연재 작업을 맡았다. / 편집자 주 청(淸) 태조(太祖) 누루하치((Nurhaci, 노이합적 努爾哈赤, 1559~1626), 아이신 기오로(Aisin gioro, 애신각라 愛新覺羅) 할라(씨氏)다. 건주(建州 현 요녕遼
중국이 제주로 밀려오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다. 마치 '문명의 충돌' 기세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동북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은 깊고도 오래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안목으로 종결될 인상이 아니다. <제이누리>가 중국 다시보기에 들어간다. 중국학자들 스스로가 진술한 저서를 정리한다. 그들이 스스로 역사 속 궁금한 것에 대해 해답을 찾아보고 정리한 책들이다. 『역사의 수수께끼』『영향 중국역사의 100사건』등이다. 중국을 알기 위해선 역사기록도 중요하지만 신화와 전설, 속설 등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정사에 기록된 것만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것은 승자의 기록으로 진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 그렇기에 너무 과하다 싶은 순수 중국인 또는 중국학자들의 관점도 중요하다. 그래야 중국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문학, 문화사 전문가인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가 이 <중국, 중국인> 연재 작업을 맡았다. / 편집자 주 무당산(武當山)은 호북성 균현(均縣)의 남쪽에 있는 도교(道敎)의 영산이다. 태화산(太和山), 태악(太嶽), 현악(玄嶽)으로도 부른다. 산록의 현악문에서 산정까지 35km의 &lsqu
중국이 제주로 밀려오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다. 마치 '문명의 충돌' 기세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동북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은 깊고도 오래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안목으로 종결될 인상이 아니다. <제이누리>가 중국 다시보기에 들어간다. 중국학자들 스스로가 진술한 저서를 정리한다. 그들이 스스로 역사 속 궁금한 것에 대해 해답을 찾아보고 정리한 책들이다. 『역사의 수수께끼』『영향 중국역사의 100사건』등이다. 중국을 알기 위해선 역사기록도 중요하지만 신화와 전설, 속설 등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정사에 기록된 것만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것은 승자의 기록으로 진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 그렇기에 너무 과하다 싶은 순수 중국인 또는 중국학자들의 관점도 중요하다. 그래야 중국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문학, 문화사 전문가인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가 이 <중국, 중국인> 연재 작업을 맡았다. / 편집자 주 경산(景山)은 자금성(紫禁城)의 북문인 신무문(神武門) 맞은편에 있다. 원(元)대에는 대도(大都) 성내에 있었던 작은 토산으로 청산(靑山)이라 불렀다. 명(明) 영락(永樂) 14년 궁
중국이 제주로 밀려오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다. 마치 '문명의 충돌' 기세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동북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은 깊고도 오래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안목으로 종결될 인상이 아니다. <제이누리>가 중국 다시보기에 들어간다. 중국학자들 스스로가 진술한 저서를 정리한다. 그들이 스스로 역사 속 궁금한 것에 대해 해답을 찾아보고 정리한 책들이다. 『역사의 수수께끼』『영향 중국역사의 100사건』등이다. 중국을 알기 위해선 역사기록도 중요하지만 신화와 전설, 속설 등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정사에 기록된 것만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것은 승자의 기록으로 진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 그렇기에 너무 과하다 싶은 순수 중국인 또는 중국학자들의 관점도 중요하다. 그래야 중국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문학, 문화사 전문가인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가 이 <중국, 중국인> 연재 작업을 맡았다. / 편집자 주 주자랑朱慈烺(1629-?), 숭정崇禎의 맏아들로 숭정 3년 황태자가 됐다. 이자성李自成이 북경을 함락시킨 후 행방불명 됐다. 전란 통에 죽었다고 하기도 하고 출가해 승려가
중국이 제주로 밀려오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다. 마치 '문명의 충돌' 기세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동북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은 깊고도 오래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안목으로 종결될 인상이 아니다. <제이누리>가 중국 다시보기에 들어간다. 중국학자들 스스로가 진술한 저서를 정리한다. 그들이 스스로 역사 속 궁금한 것에 대해 해답을 찾아보고 정리한 책들이다. 『역사의 수수께끼』『영향 중국역사의 100사건』등이다. 중국을 알기 위해선 역사기록도 중요하지만 신화와 전설, 속설 등을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정사에 기록된 것만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것은 승자의 기록으로 진실이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도 중요하지만 중화사상에 뿌리를 둔, 그렇기에 너무 과하다 싶은 순수 중국인 또는 중국학자들의 관점도 중요하다. 그래야 중국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문학, 문화사 전문가인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가 이 <중국, 중국인> 연재 작업을 맡았다. / 편집자 주 오삼계(吳三桂, 1612-1678), 자는 장백(長白), 무과 출신으로 군관이다. 명(明)나라 말기 요동총병(遼東總兵)을 역임했고 평서백(平西伯)에 봉해져 산해관(山海關)을 방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