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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명의 부모인문학(12) ... 책

11. 책

 

‘책은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선생님들이 받아들이기를 강요한 것과는 다른 생의 실체를 나에게 보여줬다. 책의 소리는 나에게 남과 같이 행동할 것과 자신을 개방하면서도 자신에 대해서 더 사유할 것을 요구했다.’(페터 바이스)

 

책을 무척 좋아하는 학생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책 외에는 다른 것을 하려 하지 않는 학생이었다. 밖에 나가 뛰어놀기 좋아하는 다른 유치원 학생들과 늘 떨어져 지내기에 외톨이였고 얼굴엔 웃음도 없었다. 왕따를 시키는 듯하지만 전혀 반응이 없으니 왕따를 당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오로지 두 팔로 가슴에 책을 꼭 껴안으며 입을 다물고만 있었던 아이는 몇 년 전 자동차 사고로 부모를 한순간에 모두 잃었다.

 

할머니가 계신 지방으로 데려가려던 날, 유치원의 한 선생이 이 아이를 데리러 온 아이의 이모를 만났다. 선생의 남편도 함께 있었다. 몇 년 전 딸아이를 병으로 잃은 선생은 제자를 양자로 삼고자 했다. 입양에 낯선 할머니는 거절했지만 지방으로 내려와 적응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당분간이란 조건으로 선생부부에게 손녀를 맡겼다.

 

 

대개 그림책이긴 하지만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나이 또래 아이들과는 달리 조숙해보였다. 말이 없어서였다. 그러나 잠자리에선 여느 어린이와 다르지 않았다. 더 아기 같았다. 긴 타올을 꼭 부둥켜안고 자는 아이의 눈가에서 종종 마른 눈물자국이 보였다. 그리움을 무언으로 삭히는 아이. 보고 싶음을 책으로 채우는 아이. 보듬고 싶은 마음을 타올로 안는 아이.

 

‘아이가 자신과 같은 성 또는 다른 성의 사람들과 형성하는 관계의 본질과 특성은 생 후 첫 6년 만에 일찌감치 정해진다. 이후에 본질과 특성을 계발하고 변화시켜 나가지만, 아예 없앨 수는 없다. 처음으로 아이에게 고착되는 사람은 그의 부모와 형제·자매이다.’(프로이트)

 

선생부부는 아이에게서 하늘나라에 있을 딸이 더 생각이 났다. 이러면 더 가여워지는 사내아이에게 정이 듬뿍 들 무렵, 제 자식을 남에게 오래 놔두면 떼어놓기가 더 힘들다며 할머니는 손자를 데리러 지방에서 올라왔다. 완고했기에 어떤 타협도 할 수 없었다. 이미 떼어내기 힘들만큼 정이 밴 선생부부는 말이 없는 아이에게서 고맙다는 말을 헤어질 때 처음 듣는다. 그리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아이를 본다. 손을 놓지 않으려는 아이의 손길이 떨고 있었다. 말은 없었지만 아이도 선생에게서 엄마를 느껴왔을지도 모른다. 할머니에 의해 손이 떼어지자 아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할머니 곁을 따라가고 있었다. 체념을 일찍 깨우친 아이더라도 어깨는 흔들리고 있었다.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저만치 떨어지자 할머니가 무릎을 꿇어 아이의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고 있었다. 아이는 그렇게 떠나갔다.

 

헤어진 뒤에도 아이에게 책을 자주 보내줬다. 연락이 없다가 초등학교 입학 무렵 편지를 한 통 보내왔다.
‘선생님이 보내주신 책에 기다리면 꼭 찾아온다는 글이 있어요. 어제는 엄마꿈을 꿨는데 엄마가 선생님처럼 생겼어요.’

 

엄마

 

선생은 그 후 선생님 대신에 엄마라고 불러도 된다고 했다. 초등학생이 된 아이는 이후 편지를 자주 했다.

 

‘진짜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선생님?’
‘엄마, 할머니가 아프셔서 언제나 누워 계세요. 누워있는 할머니는 내가 책을 읽어드리면 많이 웃으세요. 근데 웃다가 또 우세요. 웃을 때는 나를 보는데 울 때는 나를 안 봐요, 엄마.’
‘엄마, 할머니는 나만 보면 가엾다고 하세요. 나는 힘이 없어 누워만 계신 할머니가 더 가여워요. 할머니가 옛날처럼 힘이 세어져서 밖에도 함께 나가면 좋겠어요, 엄마.’
‘엄마, 할머니랑도 헤어지기 정말 싫어요, 엄마.’
‘엄마, 이모가 와서 내 책이 많다고 가져가려고 하셨는데 할머니가 못 가져가게 했어요. 책들은 모두 내 꺼라고 하셨어요. 할머니가 너무너무 고마워요. 내 책이 나랑 같이 있게 해줘서요, 엄마.’
‘엄마, 학교에서 글쓰기를 했는데 선생님이 잘 썼다고 칭찬해주셨어요. 글쓰기대회에 내 글을 보내시겠데요, 엄마.’
‘엄마, 엄마 말 듣고 다른 아이들하고도 이젠 잘 지내요. 나는 친구들이 좋아졌어요, 엄마. 엄마도 내 친구를 보고 싶지 않으세요?’

 

아이가 엄마를 보고 싶은 게다. 이럴 때면 선생부부는 바로 내려가 아이를 만나고 왔다. 초등학교 2학년 어린 나이에 살림까지 맡아하는 아이는 책만 가슴에 껴안고 있던 꼬마 외톨이가 아니었다. 경제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어머니를 모실 수 없다던 아이의 이모와 입양에 대해 다시 상의를 했다. 할머니를 모셔주길 바래 그러기로 하고 아이와 다시 합친 선생은 좋아하며 해맑게 웃는 새 아들을 껴안으며,

 

“이제 진짜 엄마가 됐네. 우리 아들 안아보자.”

 

은밀한 서신

 

‘책에서 울려오는 영혼의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두 손으로 더듬으며 세계를 도는 이 소리의 주인공들과 하나의 이름 없는 공동체를 구성하곤 했다. 이 책들은 은밀한 서신이며,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찾기 위해 병에 넣어서 바다에 띄운 통신문이었다. 세계의 도처, 멀고먼 도시에도, 황량한 해안에도, 그리고 밀림 속의 외딴 곳에도 영혼의 소리를 말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사자(死者)의 세계로부터 내게 이 서신을 보내기도 했다. 이들과의 공동체에 속하고 있다는 동질의식은 나에게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페터 바이스)

 

아이는 보냈던 책들과 함께 다시 돌아왔고 몇 권의 공책도 짐에 딸려왔다. 일기장이었다.
“엄마가 쓰라고 했었잖아요. 유치원 선생님이실 때요.”

 

유난히 엄마라는 말을 자주 하는 아이. 아이는 선생과 헤어져서도 일기를 쓰면서 기다렸고 일기장으로 그리움을 붙잡고 있었다. 봐서는 안 되는 일기지만 선생은 아들의 일기장을 밤새 넘겨야 했다. 일기에 들어있는 아직 읽지 못한 아이의 마음에 이끌려서다.

 

‘엄마가 보고 싶으면 선생님을 생각하자. 엄마는 못 오시지만 선생님은 가끔 오시니까.’
‘선생님이 또 책을 보내주셨다. 받은 책도 다 읽지 못 했는데 빨리 읽어야지. 선생님이 실망하시면 나를 보러 오시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기다리면 꼭 찾아온다는 말을 책에서 읽었다. 책처럼 모든 것이 되면 좋겠다. 엄마·아빠가 보고 싶고 선생님도 보고 싶다. 난 맨 보고 싶은 마음만 있다.’
‘할머니랑 동네를 걷는데 선생님이 좋냐고 물으셨다. 선생님이 엄마랑 똑 같아요 라고 대답했다.’
‘책이 있어서 정말 좋다. 책을 읽고 있으면 눈물이 안 난다. 책에는 웃기는 얘기가 많아서인가 보다.’

 

선생은 일부러 슬픈 이야기책은 보내지 않았더랬다. 엄마라고 불러도 된다고 하던 날인 듯싶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진실한 요구

 

공책 한 페이지에 엄마만 써놓은 일기엔 눈물자국이 말라 여러 군데 오그라들어 얼룩져 있다. 아마 엄마를 쓰다가, 엄마를 부르다가 공책 위에 엎어져 잠이 들었을지 모를 아이의 흔적이 남아있다. 눈물얼룩은 아이의 상처다. 그리고 아이 나름의 극복일 수 있다.

 

‘인간에게 진정한 즐거움을 주는 것들은 모두 인간 본성의 진실한 요구에 따른 것이다.’(칼 힐티)

 

아이를 견디게 해줄 수 있었던 것은 책과 일기였고 아이를 이겨내게 한 것 역시 책과 일기였다. 불행은 결핍에서가 아니라 풍족함 때문에 생겨난다고 러셀이 그랬던가. 이는 부족하기에 행복을 얻게 할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아이는 책을 통해서 위안을 받았고 책을 통해서 위로 받을 수 있었다. 엄마가 된 선생의 역할이 아이와 책, 그 중간에 있었다.

 

‘선생님이 일기를 쓰라고 했다.’

 

선생의 말 한 마디에 귀 기울여 실천한 아이의 기특함도 책을 통해서 그 정서를 물려받지 않았을까.

 

‘선물로서의 사랑은 가족의 행복을 위해 계획하고 일하고 저축하는 사랑일 것이다. 필요에 의한 사랑은 외롭고 겁먹은 아이가 엄마의 품을 찾는 사랑일 것이다. 필요에 의한 사랑은 어떤 여자에 대해 ’나는 그녀 없이는 못 산다.‘고 말하는 반면, 선물로서의 사랑은 그녀에게 행복과 위로와 보호-가능하다면 부유함까지도-를 주려 한다.’(루이스)

 

이 아이의 경우에는 책이 엄마를 대신했다고 볼 수 있다. 책은 대신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를 간접경험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관계나 상황 간의 거리를 먼저 따질 때나 쓰일 말이고 오히려 책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책은 직접경험으로도 충분히 작용하고 사람을 작동하게 만든다. 경험이 그렇듯이 변화하게 하며 발전·계발시키는 데 책만 한 게 없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신용호)
‘누군가는 떠날 수 있어도 책을 떠날 수는 없다.’(장 그르니에)

 

누워 계신 할머니에게 매일 밤 책을 읽어주던 초등학생은 교육대학을 다니는 대학생으로 성장했다. 엄마처럼 선생님이 되고 싶다던 그 꿈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중이다. 할머니는 돌아가셔서 안 계시지만, 책을 읽어드렸던 기억을 자주 떠올린다. 책은, 받기도 하며 또 남에게 주라며 소리도 내지 않고 가슴에 일러준다.

 

‘어린 시절 나는, 책읽기를 좋아했어도 학과로 정해진 공부는 너무 싫어했다. 그리고 그런 내 자신의 모습에 무척이나 당황스러워했다. 감정에 이끌려 오랫동안 회상하지 않았던 어릴 적 정경들이 하나 둘 주마등처럼 마음속에 되살아났다. 되살아난 심상의 풍경 하나하나는 이상하리만치 모두 책에 대한 기억으로 이어지고 있었다.’(서경식)

 

책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책을 만든다는 말은 제대로 맞다. 독서는 어릴 때 들여야 할 습관 중에 가장 절대적이다.

 

<부모 먼저>

 

“아빠는 저녁을 먹고 나면 바로 텔레비전을 틀어요.”
이 아빠는 주말에도 TV만 본다고 한다.

 

“우리 집에서 아빠만 텔레비전을 봐요. 특히 야구나 축구를 많이 봐요. 우리는 엄마가 못 보게 해요.”
또 다른 아이의 말에도 솔깃 귀 기울여진다.

 

“컴퓨터로 드라마랑 일박이일 보는 것 다 알아요. 우리에겐 텔레비전을 보지 말라고 해놓고... 우리가 모르는 줄 아나봐요. 우린 다 아는데.”
이 아이의 집에는 TV가 없다고 한다. 엄마를 만나 아이가 한 얘기를 그대로 들려주며,

 

“티브이를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몰래 보는 것은 아이에게 거짓을 하나 더 가르치는 겁니다. 티브이가 나쁜가요?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티브이도 좋은 교육도구가 될 수 있답니다. 그러려면 절제가 우선이지만 말입니다.”

 

자녀교육에 있어서 아빠의 역할이 거의 사라지고 있는 요즈음, 아이에게 관심을 갖게 하자는 뜻에서 비행기 등을 나무로 직접 만들어주곤 한다.
“아빠하고 비행기 날개 위에 태극기를 그린다든가 아님 색칠을 해보렴.”

 

하지만 내 의도와는 달리 아빠의 동참은 거의 없다. 망가져서 더 갖고 놀지 못한다는 한 아이의 말을 듣고 다른 아이에게도 물으니 그 아이도 같았다. 망가지면 고쳐주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 만들어주진 못하더라도. 이러고서 어찌 아빠라 할 수 있는 건지. 이런 말을 속으로만 하면서 망가진 비행기를 고쳐주겠다고 가져오라고 했다. 고쳐주면서 혼잣말처럼,
“아빠가 고쳐주면 더 좋을 텐데.”

 

아이가 아빠에게 부탁할 것을 기대하며 아이의 귀에 들리게 말해본다. 그러나 아이들 입에선,
“우리 아빠는 바빠요.”
“우리 집엔 드라이버랑 망치가 없어요.”

 

아빠의 입장을 이해하는 듯한 아이의 말에 가슴이 찡하다. 손수 만들어준 비행기 같은 놀이기구를 통해 아빠와 자녀가 함께 하는 시간을 더 갖길 바라던 계획이 어긋나면서 더 다른 계획을 포기해야 했다. 아이와 함께 해야 할 일 중에 어떤 삶을 살든 누구에게나 정말 중요한 독서를 아이와 함께 꼭 해보도록 권유하고 싶었는데.

 

시계를 볼 줄 모르니 시간개념도 없을 것 같은 아이들은, 그러나 어른들의 생각과는 전혀 달리 시간에 철저하다. 앞서 썼듯이, 감각으로 시간을 받아들인다.
“오늘은 화요일이니까 산에 가는 날이죠?”
“오늘은 수요일이니 수채화 그리는 날이다.”
“내일은 금요일, 구례 산동 먼나들이 가는 날이네. 도시락 싸는 것 내 차례예요?”

 

아이들은 안다. 그것도 아주 잘 알고 있어서 먼저 말을 꺼내며 다가온다. 기다림이 들어있는 아이들의 시간, 그래서 독서시간은 정해놓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는 막연한 시간보다는 토요일 언제 등 구체적일 필요가 있다. 자주 바꿔서도 안 되며 즉흥적인 것은 더 피해야 한다. 아이들의 기다림은 결코 추상적이지 않다. 꽤 구체적이며 집요하기까지 하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은 이런 말을 종종 하곤 한다.
“어른들은 참 이상해요.”

 

실망의 소리가 들려오는가? 실망이 커지면 불신으로 이어질 것이다. 믿지 못하는 불신을 갖는 것은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불신감을 부모가 심어준다면? 아이들이 말을 안 듣는다는 말을 어른들이 종종 한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불신을 심어준 부모에게 있다고 생각지 않는가. 아이를 탓할 게 전혀 아니다. 아이를 탓하기 전에 아이를 거울로 삼아 내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내 아이를 제대로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13편으로 이어집니다>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었다.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현재는 지리산 주변에 보금자리를 마련, 세상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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