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9 (월)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부모인문학(2) ... 희망을 말한다

 

1. 희망

 

어른이 다 됐네.

 

부쩍 큰 키로 어른처럼 자란 딸의 뒷모습을 오랜만에 보고 있다. 하지만 어른이 된 딸에게서 갓 태어난 아기를 본다. 딸이 뒤돌아본다. 손을 흔들어 보인다. ‘시험 잘 보고 올 테니 엄마 걱정 마!’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렇게 시험장 교실로 사라진 딸이지만 엄마 마음 안엔 갓난아기로 운동장을 가로질러 아장아장 걷고 있다. ‘희망’이란 꽃말을 지닌 앙증맞은 프리뮬러 화분들을 색깔별로, 모양별로 병원 회복실 창가에 나란히 진열해놓고 엄마와 딸을 기다리던 아빠도 운동장에 서 있다.

 

희망

 

딸 마중의 시작이었다. 자식맞이는 부모에게 지상 최고의 선물이었다.
“아들이 아니라서 실망했어?”

 

위풍당당행진곡을 불룩한 배 가까이 들이대고 틀어줬던 아빠에게 엄마가 묻는다.
“이 험한 세상에 살려면 딸이 더 당당해야 해!”

 

희망 없이 태어난 아이가 세상에 하나라도 있을까. 부부의 불행이 존재한다하더라도 아이의 탄생은 아이에게는 축복이며 행복이어야 한다.

 

‘태어난 것은 취소할 수 없다.’

 

이래서일까. 결혼을 하지 않거나,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들이 많다고 한다. 취소할 필요가 없을 것이기에? 지레 겁먹은 부부는 부모가 될 자격이 없다.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이 얼마가 든다며 신문이 보도한다. 암담하다. 그러나 우울한 것은 축복과 희망을 돈으로 환산해서 계산하려 드는 현실과 이를 저울질하며 낳기거부를 조장하는 사회풍토다. 그리고 아이를 숫자로 그리고 저울질로 계산하며 이를 따르는 자들이다.

 

‘이 아이가 내 아이라니...’

 

입으로는 표현을 다할 수 없어 가슴으로 더 느껴야하는 이 경이로움을 가슴이 저릿하다고 한다.

 

경이로움

 

사랑의 결실이자 열매인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그저 경이롭지 않은가. 놀랍지 않은가. ‘저 아이가 우리 아이라니...’ 발가락 하나로라도 자기와 닮은꼴을 찾으려는 아빠의 마음 역시 경이로움의 다른 표현이다. 자식이기 때문이다.

 

‘완벽한 아름다움을 쫒는 우리의 욕망은 반짝거리는 광채만을 볼 뿐이다.’ 플라톤의 이 말을 뒤집어 새겨듣지 못하고 눈으로만 겉보기한다면 교육비용 운운 계산을 앞세우게 될 것이다.
‘완벽한 아름다움을 쫒는 우리의 욕망은 반짝거리는 광채에 속아 그 길을 잃는다.’

 

욕심 그리고 과욕

 

‘내 딸은 달라’는 ‘내 딸은 달라야 해’였다. 반듯하게 키웠다는 남들 말에 엄마는 우쭐했다. “남들은 다 좋게 얘기하지.” 오히려 어린 딸이 더 어른스러웠지만 칭찬으로 포장되면서 딸마저 엄마를 닮아갔다.
‘나는 남과 달라’는 ‘나는 남과 달라야 해’가 되었다. 삶의 기준이 타인이 돼버린 엄마는 딸마저 타인의식의 비교인간으로 바꾸고 있었다.

 

“애 좀 그만 볶아대지 그래.”

 

아빠의 조언은 엄마에겐 가족애에 대한 불성실로 보인다.

 

“애가 좋아서 하잖아.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당신은...”

 

빠져~~. 아빠는 딸의 교육에서 배제된다. 공부 잘 하는 딸은 가족의 중심이 되었고 이럴수록 아빠는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고 있었다. 우등생 딸은 학교에서도 중심이 되었다.

 

“밥맛이야. 선생님들, 교장까지도 제 말만 들어줘. 젤 보면 밥맛까지 떨어지려한다니까.”

 

전교 1등을 청소당번에서 열외시켜주자 반 학생들이 투덜거리지만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다. ‘너희들도 저만큼만 해봐. 그럼 청소가 아니라 지옥에서도 빼줄 테니.’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핀잔을 들을 게 뻔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가 노예라면 그대는 벗이 되지 못한다. 그대가 폭군이라면 그대는 벗을 갖지 못한다.’(니체)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폭군이 된 딸은 친구가 없다. 진정한 충고나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 오는 친구가 있을 리 없다. 경쟁관계에서 엇비슷한 부류의 친구만을 그녀의 조건은 허락할 뿐이다. 이 긴장으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물론 들어갈 수 있는 대학은 많았다. 그러나 목표는 오로지 한 대학일 뿐. 재수를 결정해야 하는 날, 집안은 초상난 집 같았다. 대화는커녕 그들만의 희망은 절망이 되었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으니 절망은 불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 또한 내 탓이 아니라 남 탓에서 기인한다.

 

“너보다 못한 애도 들어간 걸 보면 우리 딸이 이번엔 재수가 없었다.”

 

‘너, 도대체, 그동안 공부는 한 거니? 창피해서 얼굴 들고 다닐 수가 있나?’ 했던 엄마가 여칠 후 그나마 누그러트리고 한 말이었다. 딸의 어깨를 감싸 안았으나 딸이 “다 필요 없어.” 하며 엄마의 포옹을 물리친다. 10여 년 동안 가족, 딸에게서 물러서 있어야만 했던 아빠가 딸의 방문을 참으로 오랜만에 연다. 딸은 침대에 엎어져 꼼짝 않고 돌아보지도 않는다. 가정에서의 무능자 아빠는 딸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쓴다.

 

 

사랑하는 딸에게,
‘자신이 확고하게 여기는 목표를 위해 힘쓰는 것, 자신의 몸이 닳고 닳아 쓰레기통에 던져질 때까지 철저히 자신을 불사르는 것, 이것이야말로 삶의 진정한 기쁨이다.’

 

딸도 잘 아는 버나드 쇼란 극작가가 한 말이란다. 똑똑한 내 딸이니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내 딸이 확고하게 여긴 목표가 네가 원하는 대학이라면 아빠는 이 편지를 더 쓸 필요가 없겠지? 우리 딸이 정말 열심히 애쓴 것을 엄마 아빠가 더 잘 알고 있으니 아빠가 이런 편지를 쓸 수 있단다. 그래, 합격했다고 하자. 이것이 내 딸의 진정한 기쁨이 될 수 있을까? 일시적 기쁨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삶의 진정한 기쁨이 될 수 있을지 한 번쯤 생각해보렴.

 

아빠는 공부에만 전념하는 내 사랑하는 딸을 볼 때마다 안쓰러웠고 가여웠단다. 물론 공부 잘 하는 내 딸이 대견하기도 했지. 하지만 내 딸과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 적이 언제였는지 아니? 내 딸 공부시간 빼앗는 것 같아 네 곁에 다가가지 못했다만 아빠는 그런 중에도 너랑 대화를 많이 하고 싶었단다.

 

내 딸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엄마와 아빠 얼굴 다음으로 내 딸이 본 게 뭔지 아니? 꽃이란다. 꽃말이란 거 알지? ‘희망’이란 꽃말을 갖고 있는 프리뮬러라는 꽃이었단다. 내 딸과 얘기는 나누지 못하고 있었어도 네 방엔 늘 프리뮬러를 창가에 놓아두었는데... 내 딸에 대한 아빠의 희망을 헬렌 켈러가 한 말로 대신 해보려한다.

 

‘진정한 행복은 자기만족을 통해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가치 있는 목적을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달성되는 것이다.’

 

이제 내 딸도 다 커서 이 말의 의미를 잘 알 것이라고 본다. 내 딸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가치 있는 목적을 위해서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아빠는 내 딸을 확고하게 믿는다.

 

그리고 아빠가 내 딸과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게 뭔지 아니? 하루 종일 내 딸하고 쇼핑하고 맛난 것 사먹고 그리고 왕창 수다 떠는 것! 너의 귀한 시간 중에 하루만이라도 아빠에게 내줄 수 있겠니?

 

여전히 자랑스러운 내 딸을 이 아빠는 무지 사랑한다. 힘내자, 우리 딸아.

옆방에서 아빠가

 

편지를 받은 이후, 딸은 아빠의 꿈을 실현시켜드렸다.

 

“엄마의 날은 1년 365일이고 아빠의 날은 오늘 하루만이니 오늘은 내 딸 완전히 내 차지다.”

 

하루지만 엄마가 가족에서 배제된 날, 아빠랑 종일 수다 떨고 먹고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온 딸은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 미안해. 엄마 소원도 못 들어주는 못난 딸이 되고 말았네.”

 

딸은 웃고 있었고 엄마는 그때까지도 딸이 그래도 너무나 미웠다.

 

“데리고 다니면서 아빠가 널 또... 나도 이젠 모르겠다.”

 

이젠 엄마가 드러누웠다. 아빠가 엄마 곁에 누워 말을 건넨다.

 

“당신 생각나지? 우리 딸이 태어나던 날 말야. 우리 어떻게 키우자고 했지?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만 하면 되지, 했던 것 같은데. 우린 이 꿈을 이루고 있다는 걸, 당신 아니? 우리 딸, 굉장히 건강하더라. 잘 먹고 잘 떠들고, 무지 착하기까지 하던데? 나를 안으면서 내 귀에 대고 뭐라 했는지 아니? 엄마가 자기보다 더 많이 괴로울 테니까 다음엔 엄마랑 데이트 많이 하래. 이제 우리 딸, 어디에 내놔도 혼자 다 잘 할 거야. 당신도 이제부턴 나랑 데이트하며 좀 쉬고. 그동안 당신도 많이 애썼어.”

 

그 뒤 1년이 지났고 딸을 수험장에 다시 보내놓은 엄마는 딸의 한 해를 되돌아본다. 유난히 가족 간의 대화가 많았던 한 해였다. 조급했지만 차츰 그 마음은 수그러들었다. 대화시간이 공부시간을 줄이는 줄 알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같은 시간이라도 사람의 시간은 시계의 시간과는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됐다. 역시 생물적인 우주의 시간과 사색할 줄 아는 인간의 시간은 달랐다.

 

필요와 집중

 

욕심이나 욕구로서의 필요는 집착으로 이어지지만 소망하고 희망하는 꿈으로서의 필요는 집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집중은 시간의 밀도를 높인다. 효율을 극대화시키면서도 여유가 생긴다. 여유는 집착을 여과시킬 시간으로도 활용된다. 하면 여유도 집중의 하나다.

 

‘긴장과 집중을 혼동하지 마라. 집중은 중심을 향해 차분하게 나아간다.’(스피노자)

 

<어른 먼저>

 

어린이집 선생님; “기엽아, 선생님하고 여기서 같이 살까?
기엽; “좋지요. 그런데 왜요?”
선생님; “어느 것도 먹으려고 하질 않잖니. 그 버릇, 선생님이 고쳐주려구.”
기엽; “어떻게 사람을 고쳐요? 로봇도 아닌데.”
기엽이는 나름 설명까지 덧붙이며 또 묻는다.
기엽; “배를 갈라서 고쳐야 하는데 어떻게.”
 

 

선생은 여섯 살 아이, 기엽이를 말로는 당해낼 수 없었다. 그럴듯한 이유가 들어있어 기발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순발력이 이렇게 빠를 수가...’ 놀랍다. 아이들은 참으로 놀랍다. 이래서 아이들은 누구나 천재다. 그러나 말대답한다고, 버릇없다고 머리를 쥐어박는 게 우리 어른들이다. 쥐어박는 순간 뇌세포는 물론 아이의 천재성 하나가 사라지고 만다.

 

칭찬은 억지로 만들어서 주는 게 아니라 있는 것을 제대로 받아주는 것이다.

 

선생은 로봇을 대신해서 인형을 기엽이에게 건네며,
“인형은 먹지 않아도 인형이지만 사람이 먹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기엽이가 이번엔 생각에 잠긴 듯 이내 말로 받아치지 않는다. 하지만 곧,
“배가 고파요. 배가 고프면 놀지 못해요. 인형은 먹지 않으니까 놀지 못하나 봐요. 언제나 누워만 있잖아요.”

 

기엽은 타협이란 방식으로 제안한다. 물론 타협이란 단어조차 모르는 아이지만 어른들이 언어로만 하는 타협과는 달리 진정한 타협을 할 줄 안다.

 

“그럼 콩알만큼만 먹을게요.”

 

먹기 시작한 아이는 맛을 알게 되고 콩알만큼이 한 수저, 그리고 한 공기로 늘어나고 있다.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었다.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현재는 지리산 주변에 보금자리를 마련, 세상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