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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명의 부모인문학(18) ...아름다운 유산

‘유년시절에 진실로 받아들였던 수많은 거짓에 나는 지금 맞닥뜨려져 있다.’(데카르트)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은 어린이를 아버지의 자긍심이라 부른다. 참으로 고귀하지만 이 말은 또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내 자식은 자긍심이 들 만하게 나보다는 나은 삶을 살게 하고 싶은 게 우리네 부모들이다.

 

돌아가시면 모시게 될 부모의 땅을 둘러보러 가는 길에 유치원 선생 부부는 딸도 동행케 한다.

 

 

유언 미리쓰기

 

“여기 와 보니 고등학교 선생님이 기억나네. 우리에게 유언을 써보라고 하셨던 선생님이셨어.”
“고등학생들에게? 아주 특이한 선생님이시네.”
“유언을 쓰는 일은 죽는 날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사는 동안을 더 성실하고 더 충실하게 해줄 거라고 하셨어. 자기 삶을 더 사랑하게 해주는 유언이 될 거라고 말씀하셨지. 그러니 죽기 전에 가진 것만으로 급박하게 쓰는 유언이 아니라 가질 것이 더 많을 그리고 어느 때보다도 더 순수한 어릴 적에 유언을 써두는 게 좋다고 하셨어.”
“그렇겠구나. 우리 딸은 뭐라 썼을까?”
“해놓은 것이 아무 것도 없어 그 땐 막막했지만, 내 유언을 쓰는데 내가 살아가야 할 꿈을, 내가 살고 싶은 꿈을 아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더라고.”
“그랬을 것 같다. 유언이 자기 삶을 더 구체화시켜주고 더 현실적이게 하면서도 그게 꿈이기도 했을 것 같은데?”
“유언이 꿈이라? 아이러니하면서도 아이러브이게 하는군. 하하하”
“아이러브?”
“자기를 더 사랑하게 될 거라고 하셨다며? 그러니깐...”
“그러네. 아빠 센스 짱! 유언 이퀄 아이러브! 아이러브보다 아이러브미가 되겠는데?”
“무엇이라고 썼나, 우리 딸! 궁금! 써둔 그 유언, 아직 갖고 있니?”
“그럼. 내용이야 훗날 바뀌겠지만 현재로는 아직 유효한 것이지. 아, 추가할 게 하나 생겼구나. 십시일반 도서관? 십일조 도서관? 건립자금 기부! 엄마·아빠, 설마 잊은 건 아니겠지?”

 

‘한평생 자신에게 진솔하며 열정적으로 산 한 여인이 여기에 쉬다.’

 

딸의 묘비명이라 했다. 유언을 쓸 즈음 마침 홉스의 글을 읽고 있었단다.

 

‘나는 어둠 속에서 내디뎌야 하는 대단히 무모한 마지막 여행을 이제 막 떠나려 한다.’

 

홉스가 한 마지막 말이란다. 죽음은 또 다른 여행이라 생각해서 삶의 형태만 바뀌는 것이라고 딸은 믿게 되었고 믿고 싶었다. 그 여행은 빈손으로 떠나는 여행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는 미련까지도 자기 것은 다 내려놓고 가야 한다. 그러니 여기서의 삶은 열정적일 수밖에 없다. 얼마가 되든, 딸은 자기의 전 재산을 다녔던 초등학교에 내놓을 거라고 했다. 읽은 책이며 쓰다 남긴 공책이나 필기도구들도 몽땅! 어쩜 옷가지들도. 필요한 사람들이 갖고 가서 쓰게 하려는 것이라며 죽으면 다 태우는 것은 자원낭비이기 때문이라고...... 딸은 교실 하나를 꿈박물관으로 만들고 싶단다. 꿈에 관련된 모든 것이 이곳에 담겨져 있길 바란다. 자기가 어려서 치던 피아노도 포함한다. 그리고 장난감과 지금도 쓰고 있는 일기장과 스케치북도.

 

“이세리 꿈박물관이 되겠네.”
“아니. 이름도 두고 가야 진짜 또 다른 여행이 될 걸? 이름까지도 이승에 놔두고 떠나야 저승의 새로운 미지여행이 가벼워질 테니까. 지난번 우리 가족이 함께 갔던 그 도서관의 이진아 님은 안타깝게도 이 세상에서의 삶을 다하지 못하고 갔잖아. 그러니 이승에 미련이 무척 남아있을 거야. 난, 미련이 남지 않는 삶을 살고 싶거든.”
“우와, 우리 딸 철학자 같다!”

 

피아니스트라는 딸의 어릴 적 꿈을 이룰 순 없게 됐지만 피아노는 평생 음악을 가까이에서 즐기게 했고 특히 힘들 때 위로가 되어주었다. 성공한 것만이 꿈이 아니라며, 품고 있는 것으로도 꿈은 유효하다고 했다.
“어떻게 꿈박물관이 있을 곳이 초등학교라고 생각했니?”
“초등학교 때가 제일 꿈이 많았지만, 한편 꿈을 접게 한 곳도 초등학교 때라서. 학교, 특히 초등학교는 공부도 가르쳐야겠지만 아이들에게 먼저 꿈을 키워줘야 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이건 내 경험이자 친구들도 역시 같더라고!”

 

아빠가 양지바른 언덕에 앉았다.
“여기 앉아보렴. 당신도! 이곳이 할머니·할아버지께서 훗날 계시게 될 곳이란다.”

 

나무를 두 그루 심겠다고 했다. 이왕이면 과실수를 심겠다고 했다. 두 그루 사이에 널찍한 큰 돌을 놓아두고 의자로 쓰려고 한다. 이 의자는 돌아가셨지만 부모님을 찾아온 가족들이 쉬었다가 갈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자식과 손주들의 쉼터인 그 의자에는, 자식을 위해 오로지 희생만 하다가 가신 두 분의 이름만 새겨둘 것이다.
“아빠가 지금 말씀하신 그 말을 새겨두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자식을 위해 오로지 희생만 하다가 가신 두 분이 여기에 쉬다.’ 어때?”
“딸방식이지만 괜찮네.”
“엄마·아빠는 뭐라고 써 드릴까?”
“그거야 우리 딸이 정하는 거지.”
“아주 아주 한참 뒤가 되겠지만 난 이렇게 쓸 것 같아. ‘딸과 얘기를 많이 나눴던 두 분이 여기에 쉬다.’ 어때, 맘에 들어?”
“<‘여기에 쉬다’ 가족묘지>가 되겠는 걸? 하하하”

 

엄마가 딸의 유언은 충분히 실현가능하겠다고 하자,
“난 이 유언을 쓰고 난 뒤 졸업 후 처음으로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 가봤어. 그리고 재수하고 있는 지금도 학교운동장에 가끔 가 있다가 오곤 해. 내가 죽은 다음에 꿈박물관은 생기겠지만, 이미 내겐 그 박물관을 세워놓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지더라고. 운동장에 앉아서 학교를 바라보다가 돌아오면 무척 힘이 솟아나거든.”

 

 

향기로운 성공

 

‘당신의 마음 안에 성공상을 세우고 그것을 스스로 바라보면서, 그 향기를 맡고, 그것을 인식하며, 꽉 붙들어 다시 당신 가슴에 간직하라.’(데일 카네기)

 

내 자신에게도, 남들에게도 성공은 향기로워야 한다. 구려서 떳떳하지 못하고, 지려서 당당하지 못하면 이것은 절대 성공이랄 수 없다. 이건 본인이 더 잘 안다. 남을 속여도 자기 자신을 자기만은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한 일은 내가 가장 잘 안다. 향기에는 크기가 없다. 꽃의 향기를 크기로 맡지 않듯이, 향기롭다면 성공은 그 규모 따위에 연연해하고 급급해하지 않는다. 이는 자기만의 만족과는 다르다. 자아도취하고도 전혀 다르다.

 

‘용기 있는 사람은 평판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을 너무나 빨리 어른으로 만들려고 한다. 지나치게 현실에만 일찍 적응하게 함으로써 이성보다도 더 소중하다는 감성을 키우는 시간을 줄이고 있다. 대중의 평판 좋은 것에만 집착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입시라는 시험으로 아이들을 옭매어 묶어버려서다. 기업가가 아닌 인간관계 전문가인 데일 카네기는 ‘창조적 습관을 몸에 붙이는 것은 일찍 시작하면 할수록 바람직하다.’고 했다. 우리는 창조적 습관보다는 답습, 답보된 습관(외우기, 주입식 교육, 무조건 따라하기 등)을 일찌감치 몸에 배게 함으로서 창조적인 삶에 담을 쌓는 단순기능형 인간으로 우리의 아이들을 만들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진정 원하는 것인가?

 

‘하나만 말씀드릴게요. 아직 어른이 되지 마세요.’

 

어린 나이 때는 감성의 발아시간이며 청소년 때는 숙성기간이다. 충분한 숙성시간을 갖지 않고 어른이 되어버린다면 사회는 더 삭막하고 이래서 더 살벌해질 수 있다. 007 영화에서 나오는 이 대사는 우리 아이들을 감성향기로 숙성시켜야 한다는 조언처럼 들려온다. 봄이 온다고, 계절이 바뀐다고 꽃부터 살 일이 아니다. 사람의 향기를 뿜어내고 이 향기를 더불어 함께 맡을 수 있는 분위기가 우리에겐 너무나 필요하고 절실하다.

 

‘영혼에 지식을 붙들어 매지 말고, 이 둘을 통합해야 한다. 영혼에 지식으로 물을 주지 말고 빛깔을 들여야 한다. 타인의 지식으로 박식해질 수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 자신의 지혜만으로도 삶은 풍요로워질 수 있다. 지식의 가장 명시적인 표지는 부단한 기쁨이다. 철학은 우리에게 사는 법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안내자이며 도우미이다.’(몽테뉴)

 

인간의 도구화

 

융거는, 어느 도구(instrument)에나 이중적인 면이 있다고 보았다. 도구는 우리에게 도움을 제공하지만, 한편 우리를 의존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도구는 우리를 교육하기도 하지만, 우리를 도구로 만들기도 한다. 같은 어원에서 비롯된 단어인 교육(instruction)에는 우리가 도구에 종속되지 않고서도 도구를 활용하도록 해줘야 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이 같은 융거의 <모래시계론>은 인간의 도구화를 경계한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도구(기계)여서는 안 될 것이다. 물려줄 유산이 아름답고 향기가 나기 위해서 사람은 사람다워야 한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의 눈에서 아름다움을 보고, 우리의 코에서 향기를 맡을 수 있을 때 꽃에게 그러하듯 아이들에게 더 한 발짝 다가가는 것. 아무리 좋은 향을 가진 꽃도 맡으려는 마음으로 다가가지 않는다면 그 향내를 맡을 수가 없다. 그러면 인간의 향기란? 맡으려고 다가가는 자세, 다가가서 맡으려는 마음이 그 향내를 느끼고 가질 수 있게 하기에 그것이 인간다움의 향기가 되지 않을까. 꽃에게 바람이나 공기가 없다면 그 향을 맡을 수가 없다. 사람에게 바람이나 공기와 같은 것은 다가감이 아닐까. 인간다움은 다가감이다. 다가가는 사람은 아름다움을 느끼고 맡고 그래서 아름다울 수 있다. 다가감의 인간다움으로 풍기는 아름다움이 인간의 향기이다.

 

아름다움

 

아빠가 매화나무 두 그루를 옮겨 심은 뒤 두 나무 사이에 딸과 아내와 함께 앉는다.
“퇴계 이황 선생님은 ‘매화는 춥더라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라고 하셨단다. 그분은 매화를 잘 보살피라고 자식들에게 유언을 남기실 정도로 매화를 좋아하셨던가봐.”

 

‘봄이면 꽃을 완상하고, 여름과 가을엔 초록에서 노랗게 익어가는 열매를 취미 삼고, 겨울이면 청매로 담근 매실주로 음미하니, 매화는 사시사철 풍류객의 더없이 가까운 벗이 돼줬다.’(오차담)

 

“다음엔 두 매화 사이에 돌의자를 갖다 놓을 거란다. 할아버지·할머니의 영혼이 쉬게 될 곳이지만 나랑 엄마랑, 그리고 우리 딸도 여기 와서 쉴 의자가 될 거야. 이 돌의자 밑에는 밀랍한 일기장을 넣어둘 거란다.”
“밀랍 일기장?”
“일기장에 초를 녹여 채워 놔두면 썩지 않을 것 같아서 생각해낸 거야. 흙 속에서 오래 오래 보관되길 바라서지. 이 일기장은 엄마랑 사전에 상의한 건데, 엄마·아빠가 함께 쓴 일기가 적혀있을 거야. 여기엔 우리 가족의 소소한 이야기가 당연히 들어있겠지? 아주 아주 먼 훗날, 우리의 자손 중 누군가 이것을 발견하고 읽어보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일기장을 여기에 넣어두기로 했단다.”
“몇 백 년 후가 될 수도 있겠네. 나의 손녀손자일 수도 있고. 재밌다. 무슨 추리게임 같은데? 엄마와 아빠도 나도 이 세상에 없을 때 누군가 우리 얘기를 꺼내 읽어본다? 우와, 너무 흥미로운 게임이 되겠어, 정말! 이거 내가 몇 백 년 더 살게 된다는 느낌이 드네. 너무 멋지다, 우리 엄마·아빠!”

 

엄마가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이러니, 거짓된 글을 남길 순 없겠지? 거짓일기를 쓸 수 없듯이, 사는 동안 순수하고 솔직하게 살라고 말하지 않을까? 바로 우리의 일기장이 말이야.”
“그렇지? 내 꿈도서관이 지금의 나를 자각시키며 자긍심 갖고 살라고 가르치는 것과 똑같네. 어 이런, 우리 가족, 텔레파시가 통했었구나. 참 신기하다.”
엄마가 딸의 가슴과 어깨를 그러안아 감싼다.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아빠.

 

‘아름’이란 단어는 뜻으로도 참 아름답다. ‘두 팔을 벌려 껴안은 둘레의 길이’의 사전적인 풀이, 그 이상의 깊음이 들어있다. 딸이 안긴 만큼 엄마의 두 팔이 알맞아서 아리따워 보인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한 아름의 포옹이 참으로 조화로워 보인다. 넘쳐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한 아름의 마음으로 딸과 아내가 어우러져 하나처럼 보인다. 한 아름의 꽃다발이듯, 한 아름의 포옹과 한 아름의 마음으로 껴안아 보듬고, 기대어 안겨 있는 모습은 보기에도 정말 아름답다. 딸의 삶이 더도 덜도 말고 한 아름, 저만큼만 살아낼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알맞게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딸을 떠올리고 있을 때 딸이 아빠를 찾는다.
“아빠는 나, 안아주지 않을 거야?”

 

이러한 아름으로 다가가는 것, 아름만큼 다가와 있는 것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유산이 될 수 있다. 이것은 남겨지는 유산이 아니라 지금 이뤄낼 수 있는 재산이다. 아이들에게 다다가기에는 무엇보다도 언행일치가 최우선이다. 많은 것을 알고만 있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없고 의미와 보람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것은 자식들에게 거짓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
우리 아이들의 가슴주머니에 희망을 챙겨주고 우리 부모의 가슴주머니에도 소망을 채워보자. 다시 새겨 들어보고 몸을 움직여보자. 

<모두 먼저>

 

‘현명한 플라톤은 말했다. 그대들이 안다고 할 때 그 말은 행동과 일치되어야 한다고.’(초서)

 

알고만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지요. 작은 것 하나라도 실천해야겠지요!

글을 마치며 그리고 독자와 간절한 사랑의 동행을 바라며

 

나는 나의 아들로부터 십일조를 받고 있습니다. 아들이 대입시험 기간 중 대전에 있는 학원의 영어강사로 알바를 한 적이 있는데 이때부터 십일조 수령은 시작됐습니다.
“다른 부모들처럼 결혼할 때 집은 못해주지만 공부하겠다면 그 뒷바라지는 다하겠다.”
이러면서 ‘대신’ 토를 달았습니다.
“아들이 앞으로 버는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은 이 아빠에게 내놔야 한다.”
거의 강제적으로 아들에게서 십일조를 받게 되었습니다. 해보니 좋았습니다. 받아보니 너무나 흐뭇했습니다. 선뜻 내놓는 아들을 보며 가슴이 저렸습니다.

 

아들은 대학생 시절, 방학 때마다 틈틈이 알바해서 번 수입의 십분의 일을 꼬박 또박 내게 바칩니다. 현재 약 300여만 원이 모였습니다. 지금(2015년)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 후 쓸 학비 등을 벌기 위해 서울의 한 영어학원에서 영어강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알바 때와는 달리 나의 십일조 수입도 훨씬 많아지고 있답니다.

 

7년 전부터 십일조 통장을 마련해놓고 사는 나는, 독자들에게도 자식으로부터 십일조를 받자고 감히 동행의 손을 내밀어 봅니다. 자식으로부터 받은 이 십일조로 의미 있고 보람된 일, 너무나 소중한 일을 함께 해보자고 또 동맹의 손을 내밀어 봅니다.

 

자식이 애써 번 돈을 받으려하는 부모들은 덥석 받기 전에 자식을 좀 더 제대로 그리고 온전히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들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은 단지 자기 자신의 보신·출세·행복만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 정신이 자식에게 전해지겠지요. 우리의 십일조 통장은 자식 바르게 키우기와 바르게 키운 자식을 당당하게 사회에 환원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십일조 통장을 하나 장만해보시는 것은 어떨지요? 그리고 자식의 땀이 어린 소중한 돈을 우리 함께 모아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을 지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베스트셀러 류의 책만 잔뜩 쌓아둔 곳이 아닌 진짜 도서관다운 도서관 말입니다. 글에서 본 딸의 꿈처럼 졸업한 초등학교 안의 ‘꿈박물관’도 좋을 것입니다.

 

우리의 아이들, 우리의 자손들은 우리보다는 한껏 웃고 맘껏 활개 칠 수 있는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손바닥 크기의 작은 십일조통장으로 이 꿈(십일조 어린이도서관이나 꿈박물관 등), 이룰 수 있다는 기분 좋은 생각을 합니다. 어떠세요? 함께 하시겠어요? 동행한다면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부모들의 삶도 전혀 달라질 것 같지 않나요? 이것은 이제까지 살아온 소비자로서의 삶이 아닌 내 삶의 프로듀서가 되는 일이 아닐까요? 동시에 우리의 자녀도 역시 그들 삶의 프로듀서가 되게 하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기분 좋은 상상을, 물론 실현 100% 가능한 신명나는 꿈을 떠올려봅니다.

 

어떠세요? 같이 해보시겠어요? 하셔야 될 것 같지 않나요? <끝>

 

그동안 부모인문학을 애독해주신 독자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었다.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현재는 지리산 주변에 보금자리를 마련, 세상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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