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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인문학(3) ... 사랑

 

2. 사랑

 

재수를 시작하는 딸보다도 엄마의 히스테리가 더 심하다. 이 히스테리는 절망에서 비롯된다. 1년 전과 다른 엄마의 얼굴에서 딸은 웃음을 볼 수가 없다. 당연히 최고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이 웃음으로 얼굴에 피어났던 1년 전과는 달리, 좌절을 겪은 뒤의 불신감은 얼굴뿐 아니라 마음에서 웃음을 앗아갔다. 어느 날, 딸이 체해 먹은 것을 다 토해내고 말았다. 1년 전이었다면 등을 두드려주고 배를 쓰다듬어주며 유난했을 엄마는 약 한 알과 작은 약병을 딸의 손에 건네지도 않고 식탁에 내려놓는다. 엄마의 손에는 신경질이 잔뜩 붙어있다. 탁. 사물(식탁)도 그 감정을 표현한다. 아빠가 약을 받아 딸의 등을 도닥여주며,

 

“오늘 하루 학원은 쉬어라.”
엄마가 폭발하고 만다.

 

“당신이 당신 딸 평생 책임지고 데리고 살 거야?”
참견이 될 것 같아 묵묵히 보고만 있던 아빠는 끝내,

 

“당신,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아? 당신의 욕심이 자기 딸을 체하게 했는지 알기나 해, 지금? 이 어린 것이 엄마 눈치 보고... 이제부터 내 딸 내가 챙길 테니까 당신은 이만 쉬도록 해.”

 

“당신이? 당신이 나온 이류 대학에나 보내려고? 당신도 당신이 나온 대학, 늘 불만투성이었잖나? 그런데 딸까지?”

 

아빠는 물 한 모금을 마신 뒤 딸의 손을 잡고 침대로 데리고 가 뉘었다.
“엄마를 이해하렴. 엄마가 우리 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아빠 말 듣고 오늘은 집에서 푹 쉬도록 해라. 너무 긴장해서 체하고 토한 거야. 긴장을 풀고, 편히 잠 자거라. 쉬어야 할 땐 아무 생각 말고 쉬어야 한다.”

 

딸이 아빠 손을 잡는다.
“아빠, 지금 말고 며칠 뒤에 엄마랑 얘기하면 안 돼? 나 때문에 엄마·아빠 싸우는 것, 나 싫어!”
“염려 마. 엄마랑 이 앞 공원에 가서 데이트 잠깐 하고 올 테니까.”

 

즉흥, 임기응변이 아니어야 한다.

 

매스미디어에 휩싸여 사는 우리들은 미디어에 의해 매일매일 만들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한할 것 같은 정보를 거기서 얻고 이것을 지식으로 알며 살고, 오락이든 문화든 그들의 기획물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며 살면서 문화인으로 착각한다. 드라마나 영화의 화면이나 대사는 빠른 전환으로 시청자를 빨아들이며 홀리게 하는데, 이는 ‘생각은 우리가 해줍니다. 그저 여러분은 즐기기만 하십시오.’ 이들이 원하는 즐기기 속엔 ‘돈만 내놓으십시오. 그러면 웃음을 돌려주겠습니다.’ 이다. 상업성에 인간을 버리듯 내놓는다. 순간반응에 민첩한 즉흥적 인간으로 만들어진다. 사유하는 일은 시대역행적 행위로 간주되는 경우도 본다. “생각한다는 자체를 복잡한 것으로만 간주해버리며 이렇게 생각을 기피합니다. 단순해지는 거지요. 단순해지게 만들어지고 있고요.” 일선 선생님들이 제자들의 반응을 안타깝게 여기며 자주 하는 말이다. 미디어에 의한 채워짐의 만족은 노자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가득참은 사유를 방해하기 때문에 비워둘 필요가 있다.’

 

생각을 죽이는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 게임, 이러한 오락물에 의해 작동되는 기계로 우리가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실제로 우리의 삶에서 드라마 같은 일들은 수없이 벌어지고 있다. 개연성은 있을 수 없는 일의 다른 표현일 수 있건만, 있을 수 없는 드라마 같은 일들이 일상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바로 즉흥성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듯이 즉흥성은 싸움으로 전개되고 이러한 싸움은 후련함, 통쾌함으로 치장돼 폭력성을 감춘다. 즉흥적 행동은 다발적 폭력의 선행이 되기도 한다. 폭력으로 이어질지 모를 즉흥적 대응을 피할 필요가 우리에겐 절실하다. 절박하다. 가정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작은 것에 소홀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사랑은 어떤 형태로든 소유로써 획득하려는 충동이다.’

 

우리의 가정에서 귀담아 들어야 할 니체의 이 한 마디를 가슴에 담고 아빠는 유치원으로 나가야 한다는 엄마를 공원으로 이끈다.

 

처음, 서로를 더 깊이 알게 해주던 그네

 

오랜만에 앉아보는 그네다. 마음이 흔들릴 때 더 잡아주던 그네.

 

“당신하고 연애할 때 헤어지기 싫어서 자주 앉았다가곤 했는데, 결혼 후 처음인가?”

 

아내도 안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그것도 딸 앞에서 뱉어내고 말았다는 사실이 잘못임을 안다. 하지만,
“미안해. 내가 요즘 너무 민감해져 있었어. 당신 대학 얘기는 꺼내서는 안 되는 줄 알면서... 하지만 우리 딸까지 우리처럼 후회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고.”

 

아내는 끝내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흔들던 그네를 멈추고 아내 앞에 무릎 꿇듯 앉은 남편은 무릎 위에 다소곳이 얹은 아내의 두 손을 마주 잡는다.

 

“당신 생각나? 당신 같은 딸이 있으면 좋겠다고 한 내 말 말야. 허튼 소리로 한 말 아닌데. 바라던 그런 딸을 나는 지금 갖게 되었고, 이것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기쁜지 몰라. 당신이 배우지 못해 아쉬워했던 피아노도 우리 딸은 아주 잘 치잖아. 당신이 그랬어. 내 딸은 피아노만큼은 꼭 가르칠 거라고. 우리 딸이 당신 뜻대로 잘 자라주고 있지 않니? 언제부터 당신이 우리 딸은 어느 대학에 꼭 보내고야 말겠어, 했던가? 그게 당신의 꿈은 아닌 듯한데.”아내가 뿌리치듯 손을 뺀다.

 

“다 된 밥이었어. 백 프로 들어갈 수 있었던 대학이었다고. 화가 나고 억울하고 약도 올라.”다시 아내 손을 잡으면서,

 

“우리 딸 심정은 헤아려봤어? 그 어린 것이... 우리 함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자. 우리 딸, 우리 정말 사랑하잖니?”

 

사랑

 

‘사랑은 선택해야 할 날이 올 때 실수하지 않도록 사랑하는 이에게 분명히 밝히라고 말하는 것이다.’(소포클레스)

 

딸에 대한 엄마의 사랑은 지극하다. 그러나 지극하기에 지나칠 수 있으며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고 하지 않았던가. 비난 받을 사랑은 없다. 단지 사랑이 실수가 될 여지를 품고 있다면 비난 대신 조언을 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오감에 잘못된 일은 없다. 판단에 문제가 있다.’(괴테)

 

사랑하는 당사자들이면 더 좋다. 아빠는 분명히 말함으로서 사랑이 지속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실수하지 않도록 사랑하는 이에게’ 말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진정한 사랑이다.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어 그네에 앉아보는 일은, 자식을 그네에 태워 밀어주는 일만큼이나 소중하다. 내일 만날 약속을 받아놓고도 그 하룻밤조차 헤어지기 싫어 아내가 되기 전 애인의 집 앞에서 ‘오 분만 더’ 하며 함께 앉았던 너와 나의 자리. 아내를 보내놓고 난 뒤 한 여자를 더 간절히 품게 했던 우리의 자리. 너의 빈자리에 네가 더 채워져 있던, 비워도 우리가 채워짐으로 함께 했던 그 자리를 우리는 결혼과 더불어 영영 비워뒀고 자식을 얻고서야 다시 찾지만, 대물림의 자리이지 너와 나, 우리의 자리로는 여전히 비워져 있었다. 내리사랑이라며 사랑의 자리를 우리에서 우리의 자식으로 옮겨놓고 살고 있다. 존재함으로 남는 것이 사랑일진대, 부부사랑이 자녀사랑으로만 옮겨지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라기보다는 욕구채우기 사랑으로 흐르기 쉽다. 서로 사랑하지 않는 부부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자녀사랑은 욕심으로 기울어지기 쉽다.

 

 

회상, 결코 지나가버리지 않은 사랑

 

“그네에 앉으니 내가 지키지 못한 약속이 생각나네. 기억나니?”

 

“알아. 하지만 아파트에서만 살아왔잖아.”

 

“내 집 마당만 고집하면서 약속을 미뤘구나. 만들어주진 못해도 이렇게 나와서도 그네를 종종 태워줄 수 있었을 텐데. 당분간 우리 집 마당에 그네 만들기,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더라도 여기 자주 나와 봐야겠다. 그동안 우리도 대화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살아왔지? 우리 집엔 부부는 없고 부모만 있는 것 같다.”

 

“바빴잖아. 우리 딸, 저러다가 또...”
아내의 입을 집게손가락으로 살포시 눌러 재운다. “잠깐! 우리 여기 와선 우리 얘기만 하자. 딸과 당신을 보고 있으면 너무나 안쓰러워. 당신이 잘 키워놔서 우리 딸이 난 참 든든한 데 이런 우리 딸의 꿈이 특정한 대학교 입학이게 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어. 그 나이 때를 비교하면 우리 딸이 나보다 훨씬 공부도 잘 하고 더욱이 마음속도 더 깊던데 뭘. 대학동창 놈 아들이 정신병원에서 요양하고 있다는 얘기, 전에 했었지? 그 병원엔 그런 소위 똑똑한 아이들이 꽤 많다더라. 부모의 사랑이 너무 넘쳐나서 생기는 거래. 하지만 무엇보다도 난, 당신을 사랑해. 물론 딸도 사랑하지만. 아, 여기 나오니 당신을 집으로 들여보내놓고 매번 소주 한 병은 마시고 일어났던 때가 생각나네.”

 

“뭐라고? 바로 집으로 안 가고 술을 더 마시고 갔단 말야? 왜?”
“왜? 몰라서 물어?”
“응, 몰라 난. 말해봐, 그 이유를 이제라도!”

 

아내를 말끄러미 쳐다본다. “그래 이런 거야. 이게 바로 당신다운 거고. 그 이유를 모르신다? 내 사랑스러운 마나님께서?”

 

아내를 안는다.
“평생 이러고 싶어서였지. 내가 얼마나 품고 싶은 당신이었는데... 그쯤이었을 거야. 책에서 우연히 읽었던 힌두교 경전의 말씀, ‘욕망을 버리고 집착에서 벗어나야 평정심을 얻게 된다.’ 나는 이 말을, ‘욕망을 채우려면 우선 네 일에 빠져들라.’로 바꿔서 들었어. 내가 실용주의 맹신도잖아.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보자 했지. 공부하게 되더라. 그 뒤 내가 얻은 평정심은 당신과 결혼해서 받은 안정감이랄까? 여기 오니 문득 그 때 생각이 많이 나네. 그 말씀을 이젠 우리의 사랑하는 딸에게 적용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은데, 당신 생각은?”
“내가 집착하는 것 같이 보였어?”

 

“네 자신에게 물어봐봐. 짜증 잘 내고 화 잘 내더라. 그럴 땐 당신이라도 정말 미워죽겠던데.”

 

그네에서 돌아와 엄마는 딸의 방을 살그머니 열고 들어간다. 그리고 딸의 침대로 파고든다.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딸의 등을 엄마는 가슴으로 끌어안아 보듬는다. 또 눈물이 난다.

 

믿음

 

“그래. 엄마가 이렇게 고운 내 딸을 믿지 못하다니... 미안하다.”

 

‘나의 삶이 바뀔 때마다 나의 아버지는 오랜 친구처럼 나와 얘기해줬고, 중요한 일들로 나를 강압하는 일은 더욱 없었다. 아버지의 교육 원칙은 나에 대한 완벽한 신뢰, 그리고 친구 같은 관계였다.’(칸딘스키)

 

돌아눕더니 하는 딸의 인기척.
“엄마, 언제 왔어?”

 

너무나 평범하고 흔한 자식의 이 한 마디에도 우리 부모는 뭉클하고 때론 가슴이 미어지기도 한다.

 

<부모 먼저>

 

“나는 뭐든지 잘 외워.”

 

일곱 살 나이에 아는 것이 많아 절로 혀를 내두르게 만들던 한 여자 아이가 함께 놀던 또래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다. 하지만 다른 아이도 물러나지 않는다.

 

“나도 잘 외워. 너만 잘 하는 줄 아니?”

 

또 다른 아이도,
“나도. 잘난 척은...”

 

똑똑하고 예절도 바른 아이는 언제나 외톨이가 되고 만다. 책을 읽으며 또는 벽에 기대어 친구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혼자가 된 아이가 안쓰러워 다가가서 물었다.

 

“집에선 주로 뭐하고 노니?”
“숙제하기도 하고 일기도 쓰고 놀아요.”
“숙제? 누가 내준 숙젠데?”
“엄마도 아빠도요. 내가 똑똑하니까 숙제도 많이 내줘요. 나는 다 잘 할 수 있거든요.”
“똑똑하다고 생각하니?”
“아는 게 많으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나보고 다 똑똑하다고 해요.”

 

오카리나와 실뜨기를 가르쳤다. 이 아이는 손과 표정이 모두 굳어있었다. 경직된 표정에서 아이의 말이 들려오는 듯하다.

 

‘나는 누구보다도 더 잘 해야 돼.’

 

여덟 명 어린이들과 함께 모두 처음 시작했지만 마음이 굳어져있는 이 아이의 손은 가장 느렸고 뒤졌다. 어린이집을 마치고 초등학교로 진학할 즈음 학교를 안 보내고 홈스툴링한다는 말을 아이에게서 듣고 장문의 편지를 이 아이의 부모에게 보냈다. 어린이집에서의 일들을 소상하게 적은 편지다.

 

아이들 세계에서도 그 나이다운 사회성이 엄연히 존재한다.

 

일곱 살 아이에게서 보는 경직성에서 이미 어른의 세계가 보인다.

 

아이에게서 보는 어른의 세계란, 절대 성숙이 아니라 어린이답지 못하다는 말일 테며, 자유로운 상상을 맘껏 펼 수 있어야 할 아이의 몸과 마음을 굳게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런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남과의 관계에서 배우는 유연성과 그리고 남을 받아들이려는 수용자세이다. 그러니 내가 이 아이의 부모라면 학교를 보내겠다. 이 아이에게 지금 책으로 익히는 공부보다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굳어지고 있는 몸과 마음을 하루라도 빨리 풀어주는 일이다. 공부 잘 하고 시험만 잘 보는 윤똑똑이는 여러 바보 중의 하나와 다름없다. 단지 머리만 똑똑한 아이로 키우겠는가.

 

대충 이런 내용의 편지였다. 그러나 아이의 부모는 어린이집에 같이 보내던 동생마저도 바로 빼내는 조치로 응해왔다. 어린이집을 졸업하기 며칠 전 물었다.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니? 아니면?”

 

아이는 대답한다.
“가고 싶기도 하고 가고 싶지도 않아요.”
“응? 그래? 왜일까?”
“아이들이랑 놀고 싶기도 하지만 그러면 바보가 되잖아요.”

 

아이들과 놀면 바보가 되다니? 누가 그런 말을 하더냐 하고 물으려다가 그만 뒀다. 아직 어린 자식을 똑똑하다고 말하는 부모며 주변 사람들일 것이 분명하기에 대답이 확실한 질문을 아이에게 던지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무슨 죄가 있는가.

 

졸업 후 두고 간 오카리나를 가지러 엄마와 함께 온 이 아이는 오랜만에 만난 어린이집 동생들에게로 달려갔다. 동생들도 이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반겼다. 하지만, 엄마가 이내 집으로 돌아가자며 아이의 손을 채가듯 잡아끌었다. 헤어지며 이 아이가 선생을 치켜 바라보는 눈이 왜 그리도 슬퍼보였는지, 선생은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다. 그 슬픈 아이의 눈에서 이 말이 들리는 듯했다.

 

‘나를 구해주세요.’

 

이년 전 쯤 살던 서울의 한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을 길에서 만나 인사를 하려다 멈칫 주저해야만 했다. 그가 나를 보며 아는 척을 하는 것 같은데 그의 표정이나 행동은 그 전과 전혀 달랐다. 그는 몸을 떨고 있었고 뚫어지게 나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지만 그는 인사를 받지 않고 무언가 중얼거리며 빠른 발걸음으로 내 옆을 지나쳤다.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아들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시중은행의 지점장급 간부였다. 마라톤을 십여 차례 완주하기도 하며 몸도 튼튼한 남자였다. 그의 큰 아들은 고등학교 전교 수석을 놓치지 않았다. 서울대 의대를 목표로 하던 고3 때 정신이상증세를 보였고 고향시골로 요양을 보내야했다. 하지만 아들의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다. 서울대 의대는커녕 수능시험조차 포기해야했다. 이 과정에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온전했던 사회인인 아버지도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말았다. 그 전, 그는 마당에서 나무를 자르며 책상이나 의자를 만들고 있던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왔고 아들자랑을 늘어놓았다.

 

“최소한 연대 의대, 그러나 큰 변수가 없다면 지금으로도 서울대 의대는 가능하다.”

 

듣고 있으려니 참으로 그가 부러웠다.
‘내 아들놈은 왜 그만 못한 거야.’

 

내 아들은 그만 정도가 아니었다. 당시 내 아들은 중학교 1학년생이었고 성적은 한 학급 40명 중에서 20등 정도, 중간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이런 아들을 믿고 기다리면서 이 말만은 했다. 마침 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있던 때였다. 아들 이름-아들에게 ‘너’란 말은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아버지로부터 ‘너’란 말을 듣고 살아온 나는 ‘너’란 말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너무나도 차갑게 느껴진 단어가 나에겐 ‘너’였다.-을 부르며,

 

“목수를 하면 어떻겠냐? 대신 글을 써서 책은 낼 수 있을 정도의 목수, 어때?”

이것도 부모의 욕심이긴 하지만 어떤 직업을 갖든 자기를 표현할 줄 아는 어른으로 커주길 바라서였다. 이 때 아들이 했던 말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빠도 등수로 아들을 평가하고 있구나. 말로는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대학을 올해 졸업한 다 큰 아들에게 아직도 주문을 한 가지 꼭 하는데, 그 한 가지란 ‘겸손’이다. 중학생 때와는 달리 학벌 따위로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잘 자라준 것에 감사하면서도 그렇기에 또 욕심을 내는 것이리라. ‘자랑 말고 겸손해야한다.’

 

나의 자식에 대한 기나긴 기다림 속에 자식에 대한 신뢰를 포기한 적은 한 번도 없다. 20년을 그래왔는데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까. ‘자식에 대한 신뢰’라는 아버지로서의 욕심만은 끝까지 고수하고 싶다. 신뢰는 자랑과는 전혀 다르다. <부모인문학 3편으로 이어집니다>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었다.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현재는 지리산 주변에 보금자리를 마련, 세상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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