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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명의 부모인문학(10) ... 생각

9. 생각

 

‘내가 문제를 푸는 과정을 보면 수학으로 해결하기 전에 어떤 그림 같은 것이 눈 앞에 계속 나타나서 시간이 흐를수록 정교해졌다.’(파인먼)

 

모순

 

머리도 식힐 겸 또 대학교육은 어떤가 해서 친구를 따라 대학강의를 미리보기하며 도강하고 돌아온 딸은 괴리라는 말과 이율배반이란 말을 부모 앞에서 여러 번 쓰고 있었다.

 

“책이나 지식인의 언행불일치가 배워야 하는 우리에겐 혼동만 초래할 뿐, 한 지식인의 모순된 모습을 오늘도 보고 왔음.”

 

 

도강이긴 하지만 첫 강의의 소감을 딸은 간략히 요약했다. 소위 최고 명문대학의 3대 명강 중 하나에다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교수의 강의는 일정한 틀에 딱 맞춰진(재미는 있었지만) 전형을 갖추어서 실망스러웠다고 한다. 그의 책도 틀에 관한 글로 일반인에게 유명해졌는데 책에서도 이러한 느낌을 똑같이 받았다고 한다. 미대생인 친구에게,
“지난 번 성적, 잘 나오지 않았을 것 같은데?”

 

기지가 넘쳐나는 매우 창의적인 딸은 친구를 성적으로 예상해보았다. 들어맞았다. 시험은 50개 문항을 주고 거기서 틀린 것을 하나씩 줄여가는 채점방식을 썼다고 했다. 모두 외워서 그대로 답을 써야 성적에 반영되었다. 창의성은 고려하지 않았고 순전히 틀에 박힌 암기위주였다.

 

“그럴 줄 알았어. 대학강의마저도 암기만을 요구하는 대학입시 같더라. 또 학생들은 어떤 이유로, 어떤 기준으로 명강으로 뽑아줬다니?”

 

점수는 객관적 평가여야 한다며 학생들의 문제제기를 줄여야 한다는 게 그 이유라고 했다. 책이나 강의 내용과 다른 모습으로 독자나 제자들을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모순도 거짓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니? 진짜 아픔이 없는 알맹이 빠진 글과 다를 게 없다. 청춘을 아플 거라는, 아파야 한다는 공상이 읽혀지던 글, 아픈 가슴이 아닌 간지러운 등만 긁어주는 얄팍한, 이것도 상술이었다. ‘당신이 언제 제대로 한 번 아파나 봤어?’ 현혹도 거짓이다.

 

‘창의적 사고에 대한 우리의 접근법은 통합적이고 모든 분야를 아우른다. 따라서 종합적 이해라는 직물을 짜기 위해서는 각 분야의 지식들이라는 실을 먼저 풀어놓지 않을 수 없다. 전문화 추세가 가속화되면서 지식은 파편화되고 있다. ... 학문 간의 교류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어 종합적 이해력은 퇴보일로에 있다. 현대사회는 지식의 풍요 속에서 오히려 암흑기를 맞고 있다.’(루트번스타인 부부)

 

루트번스타인 부부는 그들의 <생각의 탄생>에서 창조적 사고를 가로막고 있는 현재의 교육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나마 낫다는 미국이 이러하거늘 하물며...

 

위험한 길

 

‘나는 한국을 여러 번 방문할 기회가 있었고 그 때마다 무지무지하게 열심히 일하는 철저하게 훈련받은 고학력의 사람들을 보았다. 내가 받은 인상으로는 당신들은 교육분야에서 극히 위험한 길을 걷고 있다. 창의적이고 유연한 교육의 길 대신 주입식 암기교육에 극단적으로 가치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네그로폰테)

 

스티브 잡스는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 특강에서 인생의 전환점이 세 번 있었다고 했다. 첫 번째는 대학을 6개월 만에 자퇴한 일이다. 호기심과 직감을 믿고 저지른 일이지만 최고의 값진 경험으로 그는 기억했다. 두 번째는 자기가 세운 회사에서 쫓겨난 일이다. 상심이 무척 컸지만 이 때 자기 일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움트기 시작했다고 한다.

 

“성공이란 중압감 대신 찾아온 초심자의 가벼움, 불확실성이 내 인생 최고의 창의력으로 이끌어주었다. 실패 후 얻은 소중한 체험이다.”

 

이 때 사랑하는 여성을 만나게 된다. 그는 또,
“인생이 배신하더라도 믿음을 잃지 마라.”며 자기를 움직이게 한 것은 사랑이었다고 했다. 세 번째는 암 선고를 받고난 뒤의 죽음에 대해서다. 그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자신에게 묻곤 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스티브 잡스)

 

‘No’라는 대답은 변화가 필요함을 알게 했고 죽음이 때로는 삶에서 무척 유용하며 유익하다고 했다.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은 죽음’이라고 했지만 그는 자신에게 ‘가슴에 따라 살아라’라고 하며 현재에 온 힘을 쏟을 수가 있었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볼 이유가 지금 우리에게, 우리 부모에겐 충분히 많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나를 낭비하지 마라.’
‘타인의 생각의 결과물에 불과한 도그마에 빠지지 마라.’
‘타인의 견해가 여러분 내면의 목소리를 삼키지 못하게 하라.’

 

스티브 잡스는 가장 중요한 것은, ‘가슴과 영감에 따라 용기를 내는 것’이라고 했다. 생각을 마음에 담고만 있지 말고 실천하는 것이다. 그가 더 대단한 점은, 노동자인 양부모가 대학교육을 마쳐줘야 한다는 친모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경제적으로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비싼 등록금의 대학을 보내고 있을 때, 고마움과 미안함에 결정을 내린 포기(대학중퇴)였다. 이는 그가 말한 ‘가슴에 따라 살아라’를 보여준 마음가짐과 행동이었다. 생각만 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겼던 것이다. 그리고 가슴과 영감에 따라 용기를 낸 것이기도 했다. 그는 말만 번들하게 해대는, 언구럭스러운 다수 지식인이나 유명인과는 달랐다. 자기 삶을 그가 말한 대로, 생각한 대로 행동했던 실천가였다. 또 남들이 생각만 하며 기피한 위험한 길을 걸은 자기 삶의 개척자였다.

 

 

실천

 

생각은 누구나 한다. 상상은 절대 필요하지만 상상으로만은 충분하지 못하다. 생각과 상상도 실천할 때, 작더라도 행동으로 옮길 때 필요충분조건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한번 주어지는 삶, 무엇을 하든 집중하여 실천하는 일은 성공여부를 떠나서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겠는가. 한 번 사는 삶이기에, 한 번만 주어진 삶이라는 시간이기에. 내세라는 종교적 현혹은 현실기피의 다른 말일 수 있으며 지금의 실천을 방해할 뿐이다. 종교는 정치인들이 국민을 통제하기 위한 정신속박 또는 의식이완이라는 고도의 술수일 수도 있다. 그 시작이야 원대할지 모르니 그의 운용은 미천하지 않는가. 종교에 전쟁이라니... 종교정신을 가장 배반하는 말이지 않는가. 아무튼... 머물러 썩는 것은 물만이 아니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반성

 

꽤나 똑똑한 아이이며 행실도 반듯하다. 하지만 선생 앞에서만 그렇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유치원 꼬마지만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이를 영특하다고도 말하지만...

 

“우린 억울해요. 제가 우리하고만 있을 땐 우리를 얼마나 무섭게 대하며 때리는지 아세요? 그래놓고 선생님 앞에선 웃으면서 늘 칭찬을 받잖아요.”

 

그의 영특함(?)에 선생들까지도 감쪽같이 속고 말았다. 영특하다는 칭찬은 영악함을 감춰주거나 감싸주며 더 키우는 꼴이 되고 말 수도 있다. 차근차근 타이르며 반성하게 했다. 울상을 지어가며 자기 잘못을 극구 부인하던 그 아이는 반성도 속아 넘어가기 좋게 아주 그럴 듯했다.

 

“제 자신도 안 그러겠다고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친구들을 괴롭혔어요. 앞으로 선생님을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며, 친구들과 아주 사이좋게 지낼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일곱 살 꼬마답지 않게 반성이나 약속도 똑 부러져보였다. 믿게끔 했다. 그러나 이런 일은 계속 되풀이되었다. 긴 반성문을 쓰게도 해보았다. 반성문 역시 또박또박한 글씨체에, 내용도 잘 다듬어져 진심으로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아이의 엄마와 상담하는 중에 아버지가 방송기자인 것을 알게 되었다.

 

“아빠처럼 나도 기자 할 거야. 폼 나잖아!”

 

이렇게 말하는 아들 옆에서 아빠는 TV에서와는 달리 추리닝차림으로 누워 물 가지고 와라, 신문 가지고 와라, 리모컨 줘봐, 하며 엄마에게 궂은일을 다 시키고 있다고 한다. 엄마는 아빠가 힘든 일을 하니까, 묵인하며 아빠가 해달라는 대로 해준단다. 아이에게 그러듯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최상의 경우든 최악의 경우든 아이에게 부모만한 선생은 없다. 초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이중적인 행동을 고치지 못했다. 버릇이 된 것이다. 후에 엄마에게 아이의 버릇보다 먼저 아빠에 대해 물었고 엄마의 반응에 대해서도 물었다. 여전하단다. 달라진 게 없단다. 아이가 달라질 리 있을까. 부모가 바뀌지 않았는데 어째 아이만을 바꾸라고 하는가. 혼내고 반성문을 쓰게 해서 아이를 고칠 순 없다. 아이의 잘못된 버릇의 원인은 아이에게 있는 게 아니었다. 선생으로서 이 말 외에 더 해줄 말이 없었다.

 

“부모가 고쳐야 아들이 바뀔 겁니다. 이미 늦은 것 같은데 습관으로 굳어지기 전에 빨리 손 써야 합니다.”
아들보다 아빠를, 그리고 엄마 자신을 손보라고 했다.

흉내

 

눈치 빠른 어린이는 어른의 언행불일치에서 잘못된 요령, 나아가 처세를 익히고 배운다. 똑똑한 아이일수록 더 빠르다. 바로 흉내 내고 말기 때문이다. 흉내는 극히 어린이다운 것이지만 그릇된 것의 흉내를 방치해 놓으면 차츰 불감증으로 이어져 버릇으로 고착시키게 된다. 커서도 고치기 쉽지 않다. 몸이 인지해버렸기 때문이다. 알아도 고치지 못하는 게 어릴 때 들여진 잘못 된 습관이다. 가장 위험한 습관은 자기의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이 책임은 부모가 지어야 한다. 이 책임의 시작은 바로 우리 부모다.

 

생각이 그렇고 말이라는 것도 그렇다. 부모의 생각과 말이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거나 행동과 다를 때 ‘저래도 되는구나.’ 하고 순수하기 그지없는 아이들의 머리 속에 무의식적으로 각인된다. 아이들의 잠재의식은 부모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뱃속에서가 아니라 태어난 뒤에 발달한다는 전두엽은 감성을 좌우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데 생후 5년에서 7년이 지나면 전두엽의 성장은 멈춘다고 한다. 이 말은 7세 전에 한 인간의 감성이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뇌전문의나 신경전문가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3살 버릇 여든 간다는 우리의 속담은 연구·분석보다도 더 적확할 오랜 경험의 산물로서 더욱 정신 차려 새겨듣게 한다. 부모로부터 받는 것이란 잘못의 당연함, 즉 옳지 않은 것도 옳은 것인 양 배우고 익히게 된다는 아주 무서운 사실이다. 정의의 혼란은 부모에게서 나온다고 해도 이 말 역시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의 부모에 대한 믿음이 부모 무조건 따라하기, 흉내내기이기 때문이다. 어찌 아이들을 탓할 것인가. 부모를 그리도 믿고 있는 아이인 것을.

 

타인의 타성

 

‘최고를 성취한 사람의 가장 막강한 동맹군은 다른 사람들의 타성이다. 이들은, 남에게 조정 당하는 대신 성취하고자 하는 일을 스스로 지배하는 방법을 타인의 타성에서 찾기 때문이다.’(데이비드 로스코프)

 

타산지석을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첫 타인의 타성인 부모의 그것을 보면서 자란다. 잘잘못을 가리는 시비능력에서 아직 미숙아지만, 그대로 따라하는 흉내내기에선 어른보다 성숙아인 게 아이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는 이를 간과한다. 이래서 하는 말,
“너, 도대체 누굴 닮아서...”

 

누워 침 뱉는 창피한 이 말을 우리 부모들은 서슴없이 한다. 아이 탓으로 돌린다.

 

우스갯소리를 하나 해보려 한다. 우리가 흔히 듣고 했고 하던 말이다. 아빠가 딸에게 묻는다. ‘엄마·아빠 중 누가 좋아?’ ‘아빠가.’ 아빠는 좋아 죽겠다고 딸에게 뽀뽀세례를 보낸다. 아빠가 다시 묻는다. ‘얼마만큼?’ 하늘만큼 땅만큼을 기대했던 아빠는 딸의 대답을 듣고 황당해한다. ‘엄마만큼’ 며칠 뒤다. 엄마가 이젠 딸에게 묻는다. 물론 아빠 없는 자리에서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엄마가.’를 기대했던 엄마는 전혀 다른 대답을 듣고 만다. ‘엄마나 아빠나 어리다고 날 장난감 취급하는 거야?’

 

웃고 넘어갈 소리로만 들리지 않는다. 아이 수준이 어른인 부모의 머리 위에 있다. 요즘 애들, 영악하다고만 말할 것인가. 아이들을 영악하게 만드는 자는 바로 부모며 어른이다.

 

암기위주의 교육도 흉내내기와 다를 게 없다. 흉내내기는 주입식의 다른 표현이다. 생각의 중요성은 강조하면서 우린 생각의 타성을 흘겨버리고 무시한다. 흉내내기는 생각의 타성으로 만들 뿐이다. 타인의 타성을 걸러내지 않고 받아들이기 하는 것, 역시 흉내내기다. 바로 유행좇아하기다. 더욱이 생각의 타성은 실천을 방해하기에 ‘생각의 타성에서 벗어나라’는, 생각이나 상상을 많이 하라는 조언보다 더 중요하다. 창조는 모방에서 비롯된다고 하지만 여기엔 모방의 대상이 무엇이냐가 전제한다. 모방의 대상은 모범이어야 할 것이다. 어린 맹자의 행동을 보고 맹모도 깨달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아이들의 첫 우상

 

아이들의 첫 우상은 부모이며, 이것은 모든 우상이 그렇듯이 ‘무조건, 무조건이야’, 라는 엄연한 사실을 우리 부모가 얼마나 알고 있을까. 무조건 따라잡기,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동물적이어서이다. 인간을 동물화하는 말은 바로 무조건 따라하기, 생각 없이 유행따라하기이지 않은가. 무조건은 나의 생각 죽이기이다. ‘내 생각은 없어요. 나는 생각 없이 살아요.’가 아니고 무엇인가.

부모가 지식의 유혹에 가려 지혜를 보지 못하고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부모는 무엇보다도 삶에 있어 자녀들의 긍정적인 우상이 되어야 한다. 흉내도 이용하기에 따라, 부모의 행동에 따라 긍정적이고도 건강하게 이끄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어떻게 하느냐, 부모를 무조건 따라하는 아이이기에 아이는 부모의 말이나 행동에 따라 변한다. ‘무조건의 역설’이다.

 

‘결코 지식을 지혜로 잘못 보는 우를 범하지 마라. 지식은 생계를 책임질 수 있지만, 지혜는 삶을 꾸리고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더욱 소중하며 삶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지식보다 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산드라 케리)

 

<선생 먼저>

 

“목공 선생님은 착한 거 같아요.”

 

평소 말수 적고 얌전한 승연이가 뜬금없이 말을 걸어온다. 목공 선생은 아이들에게 나무로 비행기나 헬리콥터, 자동차 등을 만들어주곤 하는데, 승연이는 다른 아이들 같지 않게 선생에게 만들어달라고 조르지 않는다. 선생은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아이들의 짓궂은 행동들을 다 받아주는 선생을 승연이가 착한 사람으로 봤겠구나,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

“내가 착하다네요.”
웃으며 털어놓으니 경험 많은 어린이집 원장선생이 이런다.

 

“그렇게 들렸어요? 난 나도 만들어줘요,로 들리는데요.”
아, 그렇겠구나 하며 승연이의 행동과 말로 짚어 승연이를 되돌아본다. 그 후 쌍발비행기를 만들어줬더니 조르며 만들어 달라하던 아이들보다 더 많이 갖고 논다.
 

 

“집에서 비행기만 갖고 놀아요. 목공선생이 만들어줬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목공선생님이 가장 좋데요.”

승연이 엄마가 들려주는 말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아이들의 말을 새겨 귀담아 듣게 되었다. 꿈을 꾸듯이 사는 아이는 직유보다도 은유로서 자신을 표현할 것이기에 아이들은 꽤 괜찮은 시인이다. 단어·어휘 따위로 감정을 포장해 멋 부리거나 감상으로 치장해 멋 내지 않아서 시인보다 더 시인답다. 포장할 줄 모르고 마음으로 시를 쓰는 아이들을 어른들은 이래서 아이와 같이 가슴으로 읽어내야 한다. 눈높이만이 아니라 가슴높이를 아이에 맞춰야 한다. <11편으로 이어집니다>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었다.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현재는 지리산 주변에 보금자리를 마련, 세상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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