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새로운 첫 연재를 시작합니다. 오동명의 ‘세밀화명상’입니다. 오랜 기간 신문기자 생활을 하며, 또 광고기획 일을 했던, 그리고 기자로서 카메라를 맸던 오동명 작가의 연재입니다. 모진 세상풍파와 맞닥뜨렸던 그가 그의 ‘자존’을 지키고자 그의 손놀림으로 다듬었던 채색과 스케치를 곁들인 명상의 담론입니다. ‘새로운 나라’를 꿈꾸게 된 2017년-. 우리가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상식의 사회’를 되새기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 편집자 주 원작은 내가 상상한 대로일까? 60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영어원서의 소설을 순식간에 내가 읽어내다니...... 이제 십 수 년 펼쳐보지 않던 퀴퀴한 영어사전을 꺼내놓고 내 상상과 소설을 비교해볼까나? 베껴 그린 그림이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그렇다. 적어도 따라 그리고 베껴 그리는 동안만큼은 어린아이가 된다. 그것도 절로저절로. 소동파의 비난이 돌려 새기니 틀린 말도 아니다. 다시 인용해본다. ‘대상의 외형을 따라 그리는 것은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이제 느긋하게 색을 골라 덧칠을 해주려고 한다. 칠
새해 새로운 첫 연재를 시작합니다. 오동명의 ‘세밀화명상’입니다. 오랜 기간 신문기자 생활을 하며, 또 광고기획 일을 했던, 그리고 기자로서 카메라를 맸던 오동명 작가의 연재입니다. 모진 세상풍파와 맞닥뜨렸던 그가 그의 ‘자존’을 지키고자 그의 손놀림으로 다듬었던 채색과 스케치를 곁들인 명상의 담론입니다. ‘새로운 나라’를 꿈꾸게 된 2017년-. 우리가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상식의 사회’를 되새기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 편집자 주 내게서 역사를 배우는 중학생과 동네서점에 들렸다. 기말고사 대비용 문제집을 사러 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사야할 책 코너로는 안 가고 엉뚱한 소설 한 권에 두 눈이 꽂힌다. 표지와 그 안의 그림들이 예뻐서였다. 이 책을 다 읽으려면? 내 실력으로 두 달은 족히 걸리겠다 싶다. 영어원서다. 더구나 600페이지에 가까운 매우 두꺼운 소설이다. 그런데도 멋진 그림들이 사라고 유혹한다. 산지 한 달을 넘기고 있지만 정좌하고(영어원서이니) 읽을 용기가 선뜻 일지 않는다. 그러나 자주 펼쳐 뒤척거려본다. 역시 그림의 색이 가벼워서 흥겹고 소재가 흔
새해 새로운 첫 연재를 시작합니다. 오동명의 ‘세밀화명상’입니다. 오랜 기간 신문기자 생활을 하며, 또 광고기획 일을 했던, 그리고 기자로서 카메라를 맸던 오동명 작가의 연재입니다. 모진 세상풍파와 맞닥뜨렸던 그가 그의 ‘자존’을 지키고자 그의 손놀림으로 다듬었던 채색과 스케치를 곁들인 명상의 담론입니다. ‘새로운 나라’를 꿈꾸게 된 2017년-. 우리가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상식의 사회’를 되새기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 편집자 주 기자라는 직업을 갖고 살 때가 있었다. 독자우선이라고 주장하는 신문사는 제 신문에 정론을 펼치겠다는 기자강령을 1면에 대문짝만하게 보도하면서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그런 신문사의 기자로 살던 때였다. 불행하게도(?) 양심이란 게 남아있던 때라, 아니 다행히도 쪽팔린다는 게 뭔지는 알고 있던 때라 데스크(부장 등 신문사 간부)에게, “현장과는 다른 기사와 사진입니다.” 하지만 일선 기자, 더욱이 일개 사진기자는 학교나 책에서 배운 정도(正道)의 언론에 대해 그저 무기력한 존재, 그냥 위에서 시키거나 사건 현장에 가기도
‘유년시절에 진실로 받아들였던 수많은 거짓에 나는 지금 맞닥뜨려져 있다.’(데카르트)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은 어린이를 아버지의 자긍심이라 부른다. 참으로 고귀하지만 이 말은 또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내 자식은 자긍심이 들 만하게 나보다는 나은 삶을 살게 하고 싶은 게 우리네 부모들이다. 돌아가시면 모시게 될 부모의 땅을 둘러보러 가는 길에 유치원 선생 부부는 딸도 동행케 한다. ▲ 아빠가 대나무를 크기에 맞춰 자르고 엮어 만든 실로폰을 아이들이 두드리며 자유롭게 연주하고 있다. 유언 미리쓰기 “여기 와 보니 고등학교 선생님이 기억나네. 우리에게 유언을 써보라고 하셨던 선생님이셨어.” “고등학생들에게? 아주 특이한 선생님이시네.” “유언을 쓰는 일은 죽는 날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사는 동안을 더 성실하고 더 충실하게 해줄 거라고 하셨어. 자기 삶을 더 사랑하게 해주는 유언이 될 거라고 말씀하셨지. 그러니 죽기 전에 가진 것만으로 급박하게 쓰는 유언이 아니라 가질 것이 더 많을 그리고 어느 때보다도 더 순수한 어릴 적에 유언을 써두는 게 좋다고 하셨어.” “
▲ 아이들은 움직이는 물체를 흘겨보는 일이 없다. 어른들보다 더 뛰어난 반응을 보인다. 우연히 발견한 움직이는 그림자, 자기 손을 움직이니 그림자도 따라 움직인다. 아이는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죽어서 슬픈 게 아니라 삶을 알 수 없어서. 왜 사라져버린 후에 깨닫게 되는 건지... 그것을 안 시기는 너무 늦고 말았다는...’(어느 미망인, 암으로 남편을 잃은 후) 삶은 손목시계를 볼 때보다는 모래시계를 볼 때 더 천천히 흘러간다는 말이 있다. 공중목욕탕의 사우나에서 우리는 이를 경험해 본 적이 있다. 베르그송은 ‘시계가 표시하는 시간은 경험한 시간인 우리 삶의 시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했다. 경험은 시계적 시간이라기보다는 경험의 시간이며 감정의 시간이다. 같은 시간을 똑같이 살아도 모든 사람이 각기 다른 시간을 사는 이유는 서로 다른 감정을 품고 살기 때문이다. ‘내겐 잊혀진 시간이야.’ 없는 과거의 시간이 되기도 하고, ‘내겐 평생 잊지 못할 시간이야.’ 현재는 물론 후에도 기억될 미래의 시간, 무한한 시간이 되기도 하는 것은 시간 속에 내재해 있던 감정으로
‘내 입으로 애국이란 말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다.’(백남준)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에게 남들이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오더란다. 당연히 한국인이라고 대답했을 뿐인데, 그는 애국자, 국위를 선양한 위대한 사람으로 대접 받게 되었다. 애국 운운 않고도 그저 자기 일에 충실하다보니 결국 애국자가 되어있었다는 말이다. 애국이나 봉사·기부를 앞세우는 사람이나 단체들이 먼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애국과 마찬가지로, 남을 위한다는 일에 남을 앞세우는 경우가 많다. 목적이 선량해 보이지 않는다. 목적을 강조하면 선의에도 불구하고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된다. ▲ 형제 또는 자매, 남매는 싸우기도 하지만 서로 배우면서 크는 일이 더 많다. 거짓봉사활동 우리나라에선 봉사활동이 점수따기의 일환행위로 변질되어 참으로 안타깝다. 중고등학교는 물론이고 대학교에서도 학점따기 봉사활동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한 신문사에 의해서 봉사활동이 우리나라에 뿌리내리게 되었는데, 순수한 봉사가 아니라 생색내기 또는 유아적 이기주의로 타락하고 말았다. 봉사활동을 사회운동의 기치로 내세운 신문사는 그 행사의 규모를 자랑하기 위해 장관 및 정치인은 물론 연예인, 운동
인내 ‘세월이란 것은 화살같이 달리니, 늙음은 곧 찾아오겠지요. 성공은 이루지 못하고 나이만 먹으니 서글픈 생각이 절로 듭니다.’(유비) 나이 50의 유비가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살다보니 허벅지살이 붙어 한탄했다는 비육지탄이다. 이 탄식을 듣고 집안의 형뻘 되는 유표가, “다 때가 있을 것일세.” 했고, 유비는 그 후 기나긴 기다림의 시기를 지나 제갈공명과 인연을 맺으며 촉한왕조를 세운다. ▲ 기다림은 몰입이며 집중이다. 준비된 기다림 ‘모든 것은 기다리는 동안 무엇이라도 하는 사람에게로 온다.’(에디슨) 막연히 기다리지만 말고 뭐라도 해야 한다고 함은 준비된 기다림이다. 기회를 잡으려고 기다리는 것은 단지 참아내는 것이 아니다. 말하지 않고 입을 다물기만 하는 침묵도 아니다. 기다림에도 움직임이 있다. 정중동의 기다림. 기다림은 침묵 같아 보이지만 내 가슴에 대고 하는 가장 강렬한 외침이다. 이래서 망설임과는 다르다. ‘만일 우리가 진실로 행복하다면 인생에 대해 생각해볼 일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불행한 단 한 가지 원인은, 조용히 앉아 있는 시간 또는 그 방법을 모르는 데에 있
가치 엄마는 아빠와 딸이 시소놀이하고 있는 장면을 좀 떨어져서 바라보고 있다. 몸무게로 따지면 딸아이보다 세 배쯤 될 아빠. 몸집 큰 아빠가 궁둥이를 앞으로 밀어 시소의 균형을 맞춘다. 이렇게 딸에게로 다가간다. 시소 밖에서 엄마는 몸무게가 아닌 부모역할의 무게로 아빠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재본다. 몸무게보다 훨씬 더 무거운 부모역할과 그 가치는 아이에게로 더 다가가게 한다. 엄마도 아빠 앞에 앉아본다. 그리고 아이에게 부모가 함께 다가가 앉아본다. 아이에게로 다가가야 시소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 그러다 건너편 아이에게로 넘어가 아빠를 아빠 건너편에서 딸과 함께 마주본다. 움직임-다가오거나 멀어짐-으로 시소의 균형이 잡힌다. 엄마·아빠의 다가감으로 가족의 균형을 잡는다. 아빠의 역할, 엄마의 역할, 부모가 합심해서 해야 할 역할이 그네에 얹어져 출렁거린다. 제 몫을 하며 사는 일은 다가가거나 물러서거나와 같이 움직임으로서 삶의 균형을 잡아가는 일이다. ▲ 놀기만 하는 것 같지만 아이들은 다 지켜본다 시소 “넌 나에게 치욕을 안겨줘서는 안 돼! 너 때문에 난 밤잠을 못자고 있단다. 나는 너에 대해서 책임을 지니고 있고 그래서 네가 무능
대화 ‘아무리 나쁜 결과로 끝난 일이라 해도 애초에 그 일을 시작한 동기는 선의였다.’(율리우스 카이사르) 모든 관계의 동기는 대화로부터 시작된다. 생각이나 상상도 자기와 관계된 일일진대 이 또한 자기와의 대화로써 시작된다. 만남은 더욱 그러하다. 부부의 인연도 대화로써 이루어지며 사랑도 대화로써 시작하여 깊어진다. 대화는 화합 또는 결합을 위해 내딛는 첫 걸음이며 최종 또는 결과로 가기 위한 출발점이다. 모든 결합과 결과는 대화로부터 비롯된다는 말이다. 대화 없이 결과 없고, 대화 없이 결합도 불가능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결혼이 내게 주었던 가장 소중한 선물은, 아주 가깝고 친밀하면서도 언제나 확실하게 내가 아닌 남이며 순종적이지만은 않은, 한 마디로 살아있는 어떤 것의 영향력을 계속 느끼게 해주었다는 점이다.’(루이스) ▲ 듣기는 아이들에게 중요하다. 듣기는 듣게 해주기부터 시작한다. 보는 것-시각-에 지나치게 노출된 세상에 듣는 것-청각-은 점점 퇴화되고 있다. 닮은꼴 인간은 대화로부터 태어난다. “당신과 같은 딸이면 좋겠다.” “자기와 닮은 아들을 낳고 싶어.” 자
11. 책 ‘책은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선생님들이 받아들이기를 강요한 것과는 다른 생의 실체를 나에게 보여줬다. 책의 소리는 나에게 남과 같이 행동할 것과 자신을 개방하면서도 자신에 대해서 더 사유할 것을 요구했다.’(페터 바이스) 책을 무척 좋아하는 학생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책 외에는 다른 것을 하려 하지 않는 학생이었다. 밖에 나가 뛰어놀기 좋아하는 다른 유치원 학생들과 늘 떨어져 지내기에 외톨이였고 얼굴엔 웃음도 없었다. 왕따를 시키는 듯하지만 전혀 반응이 없으니 왕따를 당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오로지 두 팔로 가슴에 책을 꼭 껴안으며 입을 다물고만 있었던 아이는 몇 년 전 자동차 사고로 부모를 한순간에 모두 잃었다. 할머니가 계신 지방으로 데려가려던 날, 유치원의 한 선생이 이 아이를 데리러 온 아이의 이모를 만났다. 선생의 남편도 함께 있었다. 몇 년 전 딸아이를 병으로 잃은 선생은 제자를 양자로 삼고자 했다. 입양에 낯선 할머니는 거절했지만 지방으로 내려와 적응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당분간이란 조건으로 선생부부에게 손녀를 맡겼다. ▲ 책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책을 만든다는 말은 제대로 맞다. 독서는 어릴 때
극복의 딜레마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다. 어느 책에선가는 10살까지 인생의 상당부분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이를 달리 말하면 인간은 모든 가능성을 품고 태어난다고 할 수 있겠다. 모든 사람은 수많은 가능성을 갖고 태어나지만 나이가 들면서 환경이나 자기의지부족에 따라 가능성을 줄여가며 제게 맞는 또는 제 것일 수밖에 없는 가능성에 안착해간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삶의 지향이나 방향 그리고 크기와 깊이가 달라질 수 있음을 속담이나 주장이 달리 표현하며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성공의 삶을 누구나 바란다. 그 성공의 종류도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모든 성공에 있어 공통점은, 그것은 남이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어린 아이에게 성공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성공을 스스로 찾아가기에는 너무나 이른 나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시기가 삶에서 참으로 중요하다고 한다. 어른으로서의 모양이나 소양을 이미 이 시기에 상당히 갖추게 된다고 보기 때문인데, 이래서 어린 아이의 의지보다는 부모나 선생 등 아이의 주변 인물이나 환경에 영향을 크게 받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맹모삼천도 그 하나의 예
9. 생각 ‘내가 문제를 푸는 과정을 보면 수학으로 해결하기 전에 어떤 그림 같은 것이 눈 앞에 계속 나타나서 시간이 흐를수록 정교해졌다.’(파인먼) 모순 머리도 식힐 겸 또 대학교육은 어떤가 해서 친구를 따라 대학강의를 미리보기하며 도강하고 돌아온 딸은 괴리라는 말과 이율배반이란 말을 부모 앞에서 여러 번 쓰고 있었다. “책이나 지식인의 언행불일치가 배워야 하는 우리에겐 혼동만 초래할 뿐, 한 지식인의 모순된 모습을 오늘도 보고 왔음.” ▲ 아이들에겐 모두가 처음이다. 이래서 ‘처음처럼’을 강조하고 주장하기 전에 ‘처음’을 우리 아이들에게 먼저 제대로 챙겨줘야 한다. ‘처음’이 잘못 되면 ‘처음처럼’은 더 잘못으로 이끌게 돼 악의 순환을 조장하는 사회악의 용어로 전락할 수 있다. ‘처음처럼’은, 잘못 꿴 단추라면 첫 구멍 찾기부터 제대로 해야지 그 구멍 그대로 찾아 넣기만을 고집하는 꼴이 되고 만다. 도강이긴 하지만 첫 강의의 소감을 딸은 간략히 요약했다. 소위 최고 명문대학의 3대 명강 중 하나에다 베스트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