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의 시간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따라서 어른들 역시 기다림으로 아이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른들의 기계적 시계시간에 아이들을 맞추지 말자. 이것이야말로 가장 진정한 눈높이사랑일 것이다. 무릎이나 꿇어 보는 맞춤키높이를 아이들의 눈높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8. 시간 ‘우리 내면에는 변화를 완강히 거부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또 우리 내면에는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변화가 삶에 긴장감을 준다는 사실을 알며, 변화를 찾아 나서게 하는 다른 무엇인가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개인이든 인류든 발전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바로 후자에 속하며, 변화하려는 우리의 내면이 우리 몸 안에서 더 힘차게 작동하게 한다.’(존 W. 가드너) 변화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피타고라스가 어렸을 때다. 그의 부모는 그에게서 아무런 능력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여러 가지를 가르쳐보았지만 보통의 다른 아이만큼도 따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부모는 포기하지 않았다. 무엇인가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피타고라스는 결국 수학에서 먼저 재능을 보이더니 철학에도 눈을 뜨기 시작했다. 누구나 뛰어난 재능 하나쯤은 가지고 태어나지만 대부분 이것을 찾아내지 못한다고 한다
▲ 뜨개질을 시키면 하지 않던 아이가 혼자 뜨개질을 하고 있는 엄마에게로 “뭐해?” 하며 다가온다. “우리 딸 필통 만들고 있지.” 곧바로 “나도 해볼래.” 이럴 때 “그럴래?” 하며 실과 바늘을 내민다. 꽤 오래 잡고 있는 딸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 딸 의외라고? 아니다. 갖고 있었다. 단지 밖으로 꺼내 놓을 타임을 맞추지 못했거나 명령 또는 교육의 이름으로 방해를 받아서 내놓지 못했을 뿐이다. 7. 관심 “어떤 밥, 무슨 반찬, 무엇을 먹든 언제나 ‘잘’은 꼭 먹어야 한다.”(어느 아빠) 관심의 크기나 깊이에 따라서 삶은 사뭇 달라진다.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모든 발전의 첫 출발지는 관심이다. 호기심도 상상도 모두 관심에서부터 시작되며 이는 과학이나 예술로 발현된다. 모든 위대함은 바로 작은 관심에서 비롯된다. 관심이 없는 사람은 주어진 일만 하는 피동적인 삶을 사는 죽은 사람과 같다. 동물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모든 시작이 그렇듯이, 모든 출발이 그렇듯이, 관심을 무엇에 두느냐, 그리고 이것에 얼마나 열중하느냐에 따라 관
6. 관계 ‘조용한 사람들은 조용한 집에서 살고, 거지들이 사는 마을은 서 있는 낮은 벽마저 움츠려 보여 위태롭고 흐느끼는 듯하다. 고관대작들의 저택은 크고 웅장해 보일지 몰라도 사람들을 차갑게 내려다보는 높은 담으로 갇혀 사는 느낌을 받는다. 즉 집이란 그 속에 거주하는 사람의 사회적 신분과 그 사람의 성향을 완벽하게 의식하게 하는 것이다.’(하싼화티, 아랍의 건축가) 집 아랍에서 집을 ‘사칸(sakan)’이라고 하는데, 평화로움과 성스러움의 뜻을 가진 ‘sakina’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성스럽고 평화스러운 곳이 집인 것이 어디 아랍뿐이랴. 한글 속의 집은 속담에 담겨져 많은 의미를 우리에게 시사한다. ‘집 태우고 바늘 줍는다.’는 속담도 그 하나다. 큰 것을 잃고 난 뒤 작은 것을 아끼려 함을 비유하는 말에서, 소중한 것의 의미로서 집을 새기게 된다. 큰 것이란 단지 재물만을 뜻하지 않을 것이다. 이보다 큰 소중함까지 포함할진대, 이 소중함은 무엇일까. 평화로움일 수 있고 사랑일 수 있고 건강일 수 있고 화목일 수 있다. 집은 이 모든 것을 그러안아주는 곳이며 마땅히
▲ 오동명/ 제이누리 논설위원 30여 년 전 첫 아들을 잃고 방황하던 부부가 찾은 곳은 제주도였습니다. 잊고자 정처 없이 세상을 떠돌다 마주친 곳이 한두 군데일 리 없지만 제주도는 부부를 그러안아줬습니다. 특히 그 때는 그저 우거진 숲으로만 알았던 곶자왈이 부부를 더욱 보듬어줬습니다. 버려진 땅 같이 잡나무로 울창한 수풀에 들어와 있으면 왠지 포근하고 왠지 안정됐습니다. 큰 호흡이 절로 쉬어지는 곶자왈에서 부부는 아들 잃은 가슴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가다듬은 뒤 미국으로 떠날 수 있었습니다. 나이 서른 후반에 다시 시작하는 삶, K씨는 서울에 있는 한 교회의 목사 주선으로 신학대학원을 다니게 됩니다. 목사가 된 K씨는 부부를 감싸준 제주도를 잊지 못하고 십여 년 만에 다시 찾아옵니다. 돌아와 보니 삶을 포기하고 부부를 안아주고 보듬어주던 곶자왈은 개발로 다 사라지고 잘 다듬어진 인공의 공원으로 바뀌어있었습니다. 전과 같지 않지만 그나마 곶자왈이 보전돼 있는 근처에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K목사 부부에게 제주도는 고마움과 감사함, 바로 은혜의 땅입니다. 이래서 목회라기보다는 제주도와의 동화이자 보은·실천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제
▲ 오동명/ 제이누리 논설위원 삶의 전환점으로 삼기 위해 환경을 바꿔봅니다. 책을 사서 보고 또는 여행을 해봅니다. 그러나 늘 이런 시도만 하고 계획만 짜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나를 포함한 이런 사람들이 ‘as well as’라는 영어를 떠오르게 합니다. ‘~와 마찬가지로 잘’ 어떤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한 사람이 변화를 꾀한 다른 여건에서도 충실함을 봅니다. 도피는 또 다른 도피만을 초래할 뿐입니다. 도피가 아니라 선택으로서의 전환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도피는 결정이 아닙니다. 따라서 자유의지가 될 수 없습니다. 선택으로 결정할 수 있으며 결정하는 순간 자유의지가 담겨집니다. 그 뒤에 성공이든 실패든 따릅니다. 도피는 성공도 실패도 애초부터 없습니다. 도피는 그저 도피의 연속으로 피해 도망가는 소인배적인 행동에 불과할 뿐입니다. 작은 것이라 해도 선택함으로써 자기에 대해, 자기 삶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실수를 하고 실패를 해도 이것마저 내 것이어야 합니다. 실패를 전가시켜서는 안 됩니다. 이래야 먼 훗날 어느 때인가는 이를 비로소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한 가정의 전업주부로만 살아온 Y씨
▲ 오동명 논설위원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 중 하나가 남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배타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서 남이란 다양성을 의미합니다. 소위 대세나 거대집단은 이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집단에는 아부·아첨하며 그들의 노예를 자청하기도 하니까요. 바로 사대이며 이에 따르는 부역행위입니다. 상대인정이 아니라 종속 또는 굴종일 뿐입니다. 대중미디어의 사회엔 유행도 이에 해당될 것입니다. 다양성의 인정이란 남의 작은 것까지도 그의 특징으로 알고 수용하려는 자세에서 시작합니다. 남을 부정하는 것은 니체가 말한 ‘작은 우월감’에서 비롯된 졸렬함이기 쉽습니다. 제주도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가 즐겨먹는 요리 중에 제육볶음이 있습니다. ‘제’는 ‘저’에서 유래되었으며 돼지의 한자어입니다. 제육볶음은 돼지고기볶음이 되겠지만 그 안엔 각종 채소류가 섞입니다. 이래서 볶음인데, 기름 많은 돼지고기의 느끼함을 채소를 더해 줄일 수 있고, 채소만으로는 부족한 영양소를 돼지고기로 보태 더 맛있고 더 영양 많은 음식으로 재창조된 음식이 제육볶음입니다. 보탬의 미감과 미학을 제육볶음에서 봅니다.
▲ 오동명/ 제이누리 논설위원 여행과 삶은 매우 다릅니다. 이상과 현실로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호 유대하며 보완하지만 뒤엉켜 얽혀서 이도저도 아니면 오히려 서로를 해치게 됩니다. 이상에도 미치지 못하며 현실에도 적응하지 못한~~~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what?은 how?보다는 삶을 더 구체화시킵니다. 하지만 why? how? what? 어떠한 질문이나 의문도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세겠지요. 삶의 자세가 우왕좌왕하게 되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고 맙니다. 이러면서 또 한 수 배워가는 게 삶이라지만 그래도 시간이나 열정의 낭비는 줄이는 게 좋겠지요. 여행과 삶을 구별치 못하고 제주도를 무작정 오려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방송을 타 꽤나 유명해진 부부가 제주도에 와서 살고 있더군요. 빵빵한 대학을 부부 모두 우등으로 졸업하고 교수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시골, 그것도 깡촌에서 완전 재래식-좋게 말하면 유기농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방송에서 그대로 보여줬나 봅니다. 명문대 교수가? 어떻게 저런 일을? 닷새째 계속된 그들의 다큐멘터리는 사대적 성향이 짙은 우리 시청자들을 자극하여 시청률도 매우 높았던가 봅니다. 그러나 방
▲ 오동명/제이누리 논설위원 제주도에 와서는 저녁을 일찍 먹습니다. 우선 무궁무진한 노을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산책을 겸해 바닷가로 가는데 시간이 늦으면 너무 깜깜해서입니다. 가로등이 없는 제주도의 밤은 유난히 깜깜합니다. 어둠이 겁을 주지만 이보다는 들개의 돌발공격으로 크게 다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 만나는 노을, 매일 저마다 다른 노을을 보고 있자면 세상을 만든 절대자는 화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마네의 인상적인 붓이 보이다가도 물감을 뿌려대는 폴락의 초현실적인 손놀림을 보기도 합니다. 바람이란 손을 가진 절대화가의 작품들을 매일 같이 만날 수 있는 제주섬은 지붕도 담도 대문도 없는 초대형 미술전시관입니다. 물론 무료입장만 가능하니 매표소가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 일찍 저녁을 먹은 뒤 기타를 들고 바닷가로 나왔습니다. 제주도가 참으로 맘에 드는 것은 바로 이런 점, 마음먹은 대로, 마음이 가주는 대로 할 수 있게 해도 되는 곳이어서 입니다. 장자의 ‘소요유’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곳이 제주도입니다. ‘소요유’는 구애받음이 없이 느긋하게 즐기는 놀이라지요? 하지만 살다보면 구애받을 일이
‘부모 형제, 친구, 일거리 등등 너의 모든 것이 다 있는 서울을 놔두고 왜 제주도까지 오게 되었니?’ 내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떠나고 싶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딱히 대답할 무엇이 떠오르지 않아 ‘섬이 그곳에 있으니까’ 하면서 트럭 같은 내 승용차를 떠올립니다. 아무 데서나 짐칸에 드러누워 밤하늘을 바라보자며 샀던 심신치유용의 자동차. 그러나 사 놓고 한 번도 그 산 목적대로 써보지 못했는데, 제주섬을 대충이지만 한 바퀴 둘러보고는 여기에 내 차가 적격이다, 싶었고 제주섬 초원에서의 밤하늘을 대낮에 상상하며 섬으로의 이주를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감상은 대체로 막연해서 실속을 챙겨주지 못 하는가 봅니다. 꼭 한번 그 목적으로 차를 몰고 나왔던 날, 엄청 불어대는 바람이 나의 소망과 희망을 한 순간에 날려버렸습니다. 눈 앞으로 제주목장이 훤히 트이는 교래리 근처에 차를 정박시키고 ‘saddle the wind’를 크게 틀어놨습니다. 어두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어둠보다 먼저 찾아와준 것은 바람. 태풍과도 같은 돌풍이었습니다. 어찌나 센지 노랫가락까지 심하게 요동을 쳐서 들어줄 수 없는 바이브레이
▲ 오동명/ 제이누리 논설위원 ‘사소한 차이의 나르시시즘’ 나라나 민족은 물론이고 지역 간 또는 집안의 가족 간에 생겨나는 작은 갈등에 대해 프로이트가 한 말입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배타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거부하거나 받아들이려하지 않는 마음닫기입니다. 이것은 자기를 더 가두게 됩니다. 이기(利己)는 이에 더욱 빠지게 함으로서 배타로 나타납니다. “여기까지 와서 뭐 그럴 필요가 있나?” 제주도에 건너온 지 1년쯤 되어가는 한 소설가는 처음과는 달리 좋은 게 좋다며 한데 아우러져 살자며 종종하던 이 말을 바꿉니다. “터놓고 살아보니 아주 형편없이 막 대해오더군!” 이웃 간 마음의 문을 닫게 됩니다. “미안합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이 말 한 마디 하면 될 것을 이조차 할 줄 모르는 사람들과 여기까지 와서 섞여 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어디나 유유상종, 끼리끼리 모이나 보네.” 이런 경우가 어찌 제주도만이겠습니까? 제주도로 이주해온 상당수 사람들이 주로 1~2년 사이에 겪는 일입니다. 이를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면 제주도는 자기 자신을 고립시키는 외로운 섬이
‘무조건’은 ‘절대’의 뜻으로 말하곤 하지만 ‘무턱대고, 덮어놓고’의 의미를 더 갖고 있다. ‘제주도, 무조건 오지마라’는 좋다, 살고 싶다, 라는 순간감정만으로 오지 말라는 말이다. ‘따져보고 오라’의 반어이다. 단, 따져보지 않고 떠나온다면 후회, 회한의 삶이 될 수도 있는 곳이 제주도이기도 하다. 따져보면 볼수록 더 쏙 맘에 차오는 곳이 바로 제주도다. 그 뒤, ‘무조건’ 제주도를 즐겨도 늦지 않다. 무언의 제주도는 당신의 순수한 가슴을 받아들이고자 그 풋풋한 두 팔을 벌리고 이 자리 그대로 있다. “자신의 고향을 달콤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심약한 초심자이리라. 또 어디를 가도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강건한 사람이다. 그러나 완벽한 사람은 온 세상을 낯선 것처럼 느끼는 사람이리라.” -성 빅토르의 휴고「디다스칼리온」중에서 ▲ 오동명/ 제이누리 논설위원 귀소본능이라고 하나요? 가까이에는 세상에 나오기 전 9개월 간 있었던 어머니의 자궁을, 멀게는 원시시대의 옛 조상들이 살았다던 동굴을 우리
▲ 오동명 논설위원 제주도로 옮겨온 기간은 3년쯤 되지만 도민이 된지는 불과 몇 달이 안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제주도에 정착 가능성을 타진했던 전야제 같은 시간을 거의 3년이나 가져야했다. 그동안 겪은 일도 많아서다. 겪은 일은 제주도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했다. 그러나 그래도 좋은 제주도를 알게 되고 나는 주민등록을 그제야 옮길 수가 있었다. 해서 이번 총선은 나에게는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도민권리행사를 치루는 첫 날밤의 경험과 같아 서울서 자주 치렀던 의례투표와는 그 기준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이방인이면서도 주체이기도 한 내가 선거를 바라보고 있어서다. 제주도에서 행해야 하는 선거에 대해, 나와 같은 도민이지만 이주민들인 주변인들은 대체로 두 종류로 나뉜다. 선거에 무척 관심을 보이는 매우 적극적인 사람들과 전혀 무관심한 사람들이다. 어중간한 사람은 보기 힘들다. 작년에 있었던 서울시장 선거에 나에게도 손길이 미쳐왔었다. 이런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제주도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 섬까지 와서, 하물며 선거를 의도적으로 기피하며 자기 삶에 천착하고 산다. 나도 후자에 속한다. 별 관심이 없는 것은 서울서 기자를 오래 해서 질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