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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명의 제육볶음(10)...제주도와 육지가 버무려져 더 맛깔스런 볶음

여행과 삶은 매우 다릅니다. 이상과 현실로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호 유대하며 보완하지만 뒤엉켜 얽혀서 이도저도 아니면 오히려 서로를 해치게 됩니다. 이상에도 미치지 못하며 현실에도 적응하지 못한~~~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what?은 how?보다는 삶을 더 구체화시킵니다. 하지만 why? how? what? 어떠한 질문이나 의문도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세겠지요. 삶의 자세가 우왕좌왕하게 되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고 맙니다. 이러면서 또 한 수 배워가는 게 삶이라지만 그래도 시간이나 열정의 낭비는 줄이는 게 좋겠지요. 여행과 삶을 구별치 못하고 제주도를 무작정 오려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방송을 타 꽤나 유명해진 부부가 제주도에 와서 살고 있더군요. 빵빵한 대학을 부부 모두 우등으로 졸업하고 교수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시골, 그것도 깡촌에서 완전 재래식-좋게 말하면 유기농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방송에서 그대로 보여줬나 봅니다. 명문대 교수가? 어떻게 저런 일을? 닷새째 계속된 그들의 다큐멘터리는 사대적 성향이 짙은 우리 시청자들을 자극하여 시청률도 매우 높았던가 봅니다. 그러나 방송 이후, 그들의 삶이 노출된 이후 그들의 삶을 따라 하고자 추종하는 이들로 이 부부는 힘들었고 결국 제주도로 건너와야 했답니다. 남편은 그가 도시에서 하던 일을 제주도 와서도 이어가고 있고 아내는 시내에서 카페를 꾸려가고 있다고 합니다. 방송에서 보여준 그들의 삶은 어떤 이유에서든 간에 결국은 거짓이 되고 만 것이지요.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고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가 흔들리면 살아야 할 장소는 물론이려니와 하는 일 등 모든 생활방편들도 따라 혼란에 빠지고 맙니다. 방송 탓을 하지만, 방송 출연 역시 매우 똑똑하다는 그들의 선택이었으니 어찌 남만 탓할 일일까요. 여기서 얘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러한 현혹-방송에서 보여준 남들의 삶-에 휩쓸리는 일을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5년 전쯤 내게도 그와 같은 TV프로그램에 출연해달라는 PD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강원도 시골에 처박혀 글만 쓰며 살고 있는, 경제적으로 무능한 나였기에,

 

“이 백수를 닷새 동안이나 무얼 보여줄 수나 있을까요? 서울 가면 소주나 한 잔 하시지요. 감사하고 미안합니다.”

 

하고 끊었는데 또 연락이 왔습니다. 이번엔 방송작가입니다. 주식투자해서 거의 모든 재산을 탕진했는데 이것도 방송에 넣어주신다면 응하겠다고 하니 그 후 연락이 더 없습니다. 언론의 생태를 좀 아는 나는 이렇게 방송출연을 기피했던 것이지요. 삶도 기획물이 되어버리는 방송을 종종 보게 되는데, 시청률에 연연하기 때문입니다. 시청률을 높이려니 자극성이 필요합니다. ‘어, 대단하네’ 이런 솔깃한 대목들이 자주 등장하는 소위 선정성을 시청률이 유혹하고 유도하거든요. 실제보다도 과장된다면 이것도 선정적이 되고 거짓이 될 수 있습니다. 그 거짓은 거짓말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영향을 준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다 믿으려 하는 게 순수한 시청자들이니까요. 이러니 또 그렇게 만들려고 하고요. 삶과 드라마는 분명 다름에도 불구하고 같은 것으로 착각하곤 합니다. 3박4일의 제주도 여행이 드라마 같다면, 제주도에로의 이주는 삶입니다. 드라마를 보고 웃고 우는 일은 오락이지만, 삶에서 웃고 우는 일은 생존입니다. 생존을 현혹으로 착각해서는 안 되겠지요.

 

40대 후반의 H씨는 제주도로 옮겨오기 전 꽤 긴 시간(약 2년 정도) 여행 삼아 제주도를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오면 올수록 더 맘에 드는 제주도, 결국 살아야겠다 싶어 그 동안 알고 지낸 제주도민과 더욱 친교하며 살 곳을 찾아 나섰습니다. 땅을 사놓고도 바로 이사하지 않았습니다, 준비기간을 또 가진 것이지요. 땅을 구입한 후 4년 뒤, 그 사이 형제들도 합류하게 되어 가족들이 함께 이주하기로 했습니다. 허름한 집에서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만 고치고 2년을 지내봤습니다. 그 후 그 사이 알게 된 현지 건축업자와 상의해서 새 집을 짓는데 무조건 맡기지 않고 직접 참여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비용도 적게 들였고 더 튼튼하게 지었고 마음에 더 들게도 지었습니다. 용도에 적합한 ‘나의 예쁜 집’을 지을 수가 있었던 거지요. 미국에서도 10년을 살아본 H씨는,

 

“살던 미국이 이곳보다 더 공기도 좋고 한적했지만, 쓸쓸했어요. 소통에 어려움은 없었지만 그래도 외국이잖아요. 아이들도 다 커서 학교 따라 뿔뿔이 흩어지니 더 그랬지요. 제주도는 미국 같이 공기 좋고 구경할 것 많아 좋기도 하지만 한 가지 더, 전혀 불편하지 않아 좋습니다. 젊었을 때 하고 싶었던 그림도 그리고 틈틈이 밭에 나가 저농약 감귤농사도 지으며 조금 돈벌이도 하며 사니 또 재미있습니다.”

 

제주도가 살면 살수록 좋아지는 곳이 된다는 그녀는 오랜 경험이 재산이었고, ‘절대 서두르지 말자’함도 미국에서의 경험에서 배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어느 정도 돈이란 게 있었기에 기다릴 수 있었으며 서두름을 자제할만한 재력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H씨와는 달리,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급히 제주도로 넘어와서 피해를 본 경우입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꽤나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동산업자들을 조심해야겠지만 무엇보다도 모두 ‘서두름’이 가장 화근이 되었습니다. 이 또한 현혹입니다. 서울 등 대도시보다는 훨씬 싼 집값 등이 ‘서두름’을 부추깁니다. 와서 보니 더 비싸게 주고 샀다느니, 시세보다 더 많이 주고 세를 들었다느니 후회하게 되는데, 이를 ‘입도세’라고 우스갯소리로 한곤 합니다. 제주도라는 섬에 들어오면서 낸(절대 내지 않아도 될) 세금이라는 거지요.

 

나의 경우, 전세보증금을 되받기 위해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또 다른 텃세를 체험해야 했습니다. 재판관인 젊은 판사도, 조정관으로 나온 병원장이나 대학 부총장도 한 통속으로 집주인을 일방적이고도 노골적으로 편을 듭니다. 30대 초반의 판사를 향해,

 

‘재판장님이 지금 하신 말씀을 법전문가로서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조정관이 아닌 판사인 양 법이 어쩌구 저쩌구 법상식을 전혀 벗어난 말로 직권남용을 서슴없이 해대는 소위 이 지역 유지라는 적어도 법엔 무식한 60대 병원장에게는,

 

‘조정하러 거기 앉아 계신 거 아닙니까? 근데 지금 하시는 것을 보면 누구 한 쪽 편들러 나온 이권개입자, 앞잡이 똘마니 같습니다.’

 

또 다른 조정관인 대학 부총장께서는 상황을 보아하니 안타깝고 억울하겠다, 홧병나겠다 면서 나를 두둔해주려는 건지 더 성나게 하려고 나온 건지, 역시 조정관으로서의 제 역을 못하고 방관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마음에서만 우물거렸을 뿐 한 마디도 못했습니다. 화가 잔뜩 나 있던 내 가슴에선 다른 게 들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자의 본성이랄까, ‘너희들 다 옷 벗겨버리고 말 거야. 특히 너 어린 판사 이 놈!’ 이것도 자만이며 큰 착오인 것이지요. 입도세를 떠올렸습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여생에 몰입하자고 해서 온 제주도가 아닌가? 그런데 재판까지 받아가면서... 서두르며 너무 사람을 믿었던 나를 탓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다른 제주도민의 도움을 받아 더 살기 편하고 아늑한, 더욱이 집세도 싼 집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어찌 됐든 이 때는 제주도의 이런 텃세로 인해 제주도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던 때였습니다. 후회하는 순간 낙오자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고, 더 멋지게 살아보자 해서 선택해서 온 제주도에서 스스로 낙오자는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낙오자를 피하고 극복하는 길은? 여기에 온 처음의 목적으로 다시 되돌아가보는 것이었습니다. 길게 내 얘기를 사례로 드는 이유는, 이런 비슷한 경우를 너무나 많이 보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만은 나와 같은 바보가 되지 말라 하여... 깨달았다 해도 바보는 바보니까요. ‘사람을 너무 믿지 말라’ 이 말을 해주는 내 마음이 너무나 쓰려옵니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나 같은 바보가 많다는 것을 일부 제주도민들-처음엔 이들과 상대하기 쉽습니다-은 잘 알고 있고 이를 악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여기에 법집행 관련자들까지도... 이런 일이 흔해서인지, 이걸 잘 알고 있어서인지 ‘입도세’라는 말은 제주토착인들의 입에서 자주 나오곤 합니다. 그러나 일이 저질러지고 난 뒤 그들의 우스갯소리로만 해줄 뿐 미리 이것을 알려주려는 사람은 아직 한 명도 못 만나 봤습니다. 같은 밥그릇이란 못난 동질의식인 건지... 이 때의 침묵은 동조이며 따라서 공범이 됩니다. 어엿한 제주도민이 된 나마저 침묵할 순 없습니다.

 

20대 후반에서 30대의 젊은이들도 각박한 도시를 떠나 삶의 터전으로, 그리고 일찍이 삶의 터닝 포인트로 제주도를 옮겨와 살고자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먼저 알아보는 것은 당연히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 겠지요. 대부분 살림집을 겸한 자그마한 게스트하우스나 커피점 등 카페입니다. 제주도를 즐기면서도 적당한 수입을 기대할 수 있는, 꿩 먹고 알도 먹을 수 있는 결정을 이런 것에 하고 있는 듯합니다. 잘 되는 곳도 있겠지만 내가 아는 바로는 이들 상당수가 1년 내지 2년 사이 되팔기 위해 다시 내놓는다는 사실입니다. 투자한 본전이 있으니, 그리고 처음 투자한 돈으론 다른 곳, 더욱이 살던 육지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을 잘 알고 있기에 팔아야 할 절박함에도 불구하고 그 가격은 내려가지 않고 오히려 올라만 갑니다. 또 다른 눈 먼, 성급한 육지인을 마냥 기다리는 것이지요.

 

제주도가 그저 좋아 자매들이 몰려와 카페 같은 식당을 올레길 옆에 꾸리고 있는 P씨 가족은 1년도 못 돼 가게를 내놓았습니다. 좀 알고 지내는 나에게도 그 가게를 이어 맡으라며 권유합니다. 장사가 잘 되며 구체적인 흑자 수입을 늘어놓습니다. 말만 들으면 대단한 흑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근데 왜 내놓는 거냐?”고 물으니,

 

아이교육과 아내의 건강을 그 이유로 얘기합니다. 그 뒤 거의 1년이 지나도 그곳은 임차인이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마음이 카페에서 떠나 있으니 손님은 더 줄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들과 같은 제주도 초보자들의 인수를 기대하고 있을 겁니다. 그 카페의 임차인이 몇 번 바뀌는 것을 본 이 동네의 목사님은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임대료가 터무니없이 올라가고 있는 것을 10년 사이 줄곧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새 입주자에게 차마 말해줄 수 없는 진실이라면서요. 이런 게스트하우스나 카페가 꽤 많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관심 있게 들어야 할 말은 바로 다음입니다.

 

“제주도가 좋아 왔건만 완전히 여기 카페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내가 왜 제주도에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나 당연해서 어설픈 조언이긴 하지만 귀띔 하나 들려드립니다. 제주도는 서울 등 도시와는 달리 싼 월세나 연세로 임시 거주할 곳이 있습니다. 보증금도 무척 쌉니다. 보증금이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죽어지는 세’라고 하는 것이 제주도엔 있는데, ‘없어지는 집세’라는 말로서 월세나 연세와 같습니다. 다르다면 보증금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죽어지는 세입니다. 이주를 결정하기 전 꼭, 길게는 1년이든 짧게는 3개월 정도 이 ‘죽어지는 세’로 먼저 살아보는 것입니다. 이런 후 what?을 결정해도 늦지 않으며, 더욱이 각자 나름맞춤의 적절한 답을 얻을 수가 있을 겁니다. 이런 글을 쓰면서 더 하나 안타까운 게 있습니다. 내가 제주도에 처음 온 삼년 전과 달리 현재 제주도의 집값이 상당히 올라 있다는 것이며, ‘죽어지는 세’보다도 월세나 전제 등으로 제주도도 육지를 닮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누가 이렇게 만들고 있을까요? 육지인, 바로 우리 같은 외지인들입니다. 이는 한국인들의 속성이기도 하지요. 어디 제주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겠습니까. 처음은 이익을 본 듯하지만 조금 지나면 결국 손해를 보게 되는 일은 한국인들이 모이면 생겨나는 현상인가 봅니다. 중국에서도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한국인들은 한국인들끼리 속이고 사기치고 도망간다는 말입니다. 중국인들이 하는 말입니다. 서두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의 잇속만 따져 서두르는 사람이 제주도에는 발을 들이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끝내 제주도를 흐리고 망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입발림말에 조심하라고 일러드립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이 사랑하는 제주도는 변하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단지 사람의 일만이 변덕스러울 뿐입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오동명은?=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전 제주에 정착,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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