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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신개념 웹연재소설] 옛 우표첩(18)

18 “이상도 하지.”

 

이듬해인 1949년 그리고 그 후 매년 봄, 심지도 않은 파와 무가 피어나 집마당을 가득 채웠다고 했다. 주인을 잃은, 불탄 집은 사람의 발길도 끊겨 살았었다는 전설 같은 터로만 남았다. 불과 몇 년 사이에. 그곳에 파가 자라고 무가 자랐다. 파꽃이 피었고 무꽃이 피었다.

 

“파도 무도 다 더 쓰더라.”

 

어린아이가 파로 환생했고, 어른들은 무로 환생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파꽃과 무꽃을 퍼트리며 떠도는 것이라고도 했다. 파나 무가 대를 길게 치켜세우고 있는 모양에서 한이 느껴진다고 했다. 이불 속에서 죽은 희정이의 주머니에 있던 꼬깃꼬깃한 한 장의 흑백사진 같은 것이었다. 희범이가 태어나 한 달쯤 되었을 때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희정이도 고개를 치켜세우고 엄마를, 아버지를, 그리고 동생과 오빠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들이 살아 돌아와 어제와 같이 곁에 함께 있어주기를 파대처럼 곧추세워 고대했을 것이다. 사진 속에서 웃던 사람들은 모두 지금은 없다. 유일하게 희수만 혼자 남았다. 웃음도 아픈 이유는 부재가 확인되기 때문이다. 웃음이 웃음을 삼켰다. 얼굴에서 웃음은 잃었지만 버티고 견뎌내 그럭저럭 살 수 있었던 희수는 삼십여 년 만에 삼십여 년 전의 장면들을 또 목격하고 실성을 하고 만다.

 

해방이 되어도 일제와 달라진 게 없는 나라의 진정한 광복을 외치며 삼일절날 거리로 나가려는 제자들에게 선생이었던 아버지가 ‘살아서 좀 더 기다려보자. 지금 나가면 다들 개죽음을 당하고 만다.’ 막아섰듯이, 희수도 자유민주를 열망하는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댄 살상진압대 군인들 앞으로 나가려는 제자들을 가로막았다.

 

“총은 피해보자. 너희들의 고귀한 미래를 지금 헛되이 버릴 수는 없다.”

 

 

사람의 부드러운 손으로는 막을 수 없는 총과 총검의 위세와 위악을 이미 일곱 살 어린 나이에 목격했던 희수는 희생된 가족처럼 제자들마저 또 잃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진압대 군인들이 내리 후려친 쇠방망이에 머리에서 피를 토해내는 제자들과 진압대 군인들이 웃으며 휘두르는 총검에 가슴이 떨어져나가는 제자들을 보며 거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희수도 날아온 쇠방망이를 맞고 정신을 잃었다. 깨어났지만 이제 더 이상 버티고 견뎌낼 힘이 없었다. 포기하고 피하고만 살 수는 없었다. 제자들이 총과 총검과 방망이로 죽임을 당한 거리로 나갔다.

 

“이 나라 이 땅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일본사람도 아닌 한국인이 한국인들을 이렇게 죽였다.”

 

희수는 헬레나에게,

 

“당신의 나라 미국이 없었다면 우린 어떻게든 우리 손으로 해방을 맞이할 수 있었을 것이오. 알량하고 어줍은 미국의 개입으로 한반도 이 땅은 아직도 식민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소. 소련에든 미국에든 말이오. 미국은 고마운 나라이긴 하지만 반절만 고마울 뿐이오. 그 반절은 더 큰 치욕을 안겨주었소. 이승만도, 박정희도, 전두환도 미국이 없었다면 한국정치에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인간일 뿐이오. 너희 나라에선 민주와 자유로 꽃피웠는지 모르나 한국 이 땅에서는 독재와 강제를 미국, 당신의 나라가 심었다는 말이오. 당신은 그 집행자로, 그 배후조종자로 여기 이 땅에 와 있는 것일 테고 말이오.”

 

헬레나는 수긍을 한다며 고개를 끄덕인 후 이내 고개를 저었다.

 

“너희 한국국민은 의로우나 지배층은 그렇지 못했다. 치졸하고 비열했다고 나는 본다. 한국국민은 자존심이 강하나 한국의 지배층에게서 민족의 자존심을 찾기 힘들었다. 오래된 역사는 모르겠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읽어보면서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다. 당신이 겪었다는 제주 4·3이나 광주 5·18, 더 멀리 동학 등이 그랬다. 한국국민은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각성된 민족이다. 하지만 지배층은 번번이 외세의 힘을 빌려 자국민의 자존심을 해치며 억압했다. 중국에서 일본으로, 지금은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잘은 모르지만 통일신라도 그렇지 않은가. 김춘추도, 이승만도, 박정희도, 전두환도 비굴하고 비열한 한국정치역사의 연장이라고 본다. 스스로의 힘을 갖추지 못한 게 역사 대대로 내려온 너희 나라 지배계층들이었다. 이제 한국도 바뀌었다. 민주정치가 움트기 시작했다. 5·18이 그것이라고 믿는다. 한국도 엄연히 민주적인 투표제도가 있었다. 투쟁의 시대에서 투표의 시대로 바꿔나가야 한다. 투표방식을 또 그들 임의대로 바꾸려는 현 정치세력의 음모를 너희 국민이 막아야 한다. 누가 막겠는가. 누구에게 막아달라고 하겠는가. 투표로서 한국국민의 자존심이 발현되고 민주적 성숙이 이뤄질 것이라고 나는 기대한다. 그래서 여기 광주에 와보고 싶었다. 그리고 당신을 만났다.”

 

무엇을 보았느냐고 희수가 물었다.

 

“당신과 같은 사람들을 보았다. 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았다. 포기하고 체념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을 보았다. 이해하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당신이라면 포기하고 미쳐버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은가? 너희 나라가 왜 내정간섭을 해서 그런 작자들이 득세하게 만드는가?”

 

“인정한다. 하지만 미국의 문제라기보다는 한국의 문제가 우선이다. 한국 속담에 이런 게 있던 것 같다. 싸움 거는 자보다 말리는 친구가 더 밉다던가? 확실치는 않다. 제주 4·3의 경우, 한국 대다수 국민들이 제주도를 소외시켰다. 광주 5·18 역시 마찬가지로 다수 국민들이 전라도를 소외시켰다. 일본은 지탄 받아 마땅하나, 자국의 이익에 국력을 모으는 반면 한국은 일부 정치인들의 정치적 욕심이라는 개인 욕구에 국력이 소진되어 왔다. 이 차이를 알겠는가? 정치가 국민을 이간질시키고 있다. 국민 간의 이간질을 누가 막아야겠나? 바로 너희, 한국국민들이다. 국민 이간질의 중심에 한국언론이 있다. 한국언론이 자존심도 없는 비열한 정치인의 편에 서 있다. 한국의 대표언론 역시 한국정치인들처럼 자존심도 없고 그러니 언론으로서의 소신도 없다. 당신 같은 사람을 미쳤다고 하고 제주도민과 광주인들을 폭도로 몰아세운 게 누구인가? 물론 정치인이다. 그러나 언론이 제 기능을 했다면 그런 정치인의 음모는 막을 수 있었다. 그런 정치인들이 당신의 나라 역사에 매번 등장할 순 없었다. 정치인의 하수인을 자처하는 언론이 있는 이상 한국의 정치는 결코 진보할 수 없다고 본다. 포기하지 마라. 언론을 상대로 싸워라. 언론을 국민의 편에 설 수 있게 너희 국민들이 만들어야 한다. 이건 가능하지 않겠는가.”

 

희수는 헬레나를 말끄러미 쳐다보다가 혼잣말로 ‘더욱 불가능한 일’이라고 중얼거렸다. 이어 시 하나를 읊조렸다.

 

“Lo! ’tis a gala night
Within the lonesome latter years!
An angel throng, bewinged, bedight
In veils, and drowned in tears,”

 

“애드가 앨런 포의 시, <승리의 구더기>가 아니냐?”

 

희수는 대답을 않고 계속 반추하듯 우물거렸다.

 

“Mimes, in the form of God on high,
Mutter and mumble low.
And hither and thither fly_
Mere puppets they, who come and go
......”

 

끝나도록 헬레나는 기억을 더듬어 함께 읊으며 기다렸다.

 

시를 외는 희수의 눈에서 눈물이 그렁그렁 괴었다. 절망을 흘려보내는 얼굴에서 우울증환자들이 흔히 보이는 간헐적인 미소를 보았다. 소망을 갈급해하는 미소는 짧았다. 그런 뒤에는 악을 쓰고 소리를 질러댔다. 짤막한 희망의 미소는 보지 못하고 악다구니만으로 그들을 미쳤다고 한다. 희수도 그랬다. 그것은 채우지 못할 자기한계에의 항의이며 채우고자 하는 자기극복에의 구복이었다.

 

식당에 있던 사람들이 서둘러 나가는 모습을 보고 희수가 울부짖음을 끊어내고 입 안에서 웅얼거렸다.

 

“무언극의 광대들이 천상신의 모습을 하고,

 

입 안에서 우물우물 중얼거리며 나는 듯이 뛰어다니는구나.

 

거대한 무형의 것들이 콘도르 매 같은 날개를 펴고

 

눈에 보이지 않는 비애를 털어내며 날고 있다.

 

배경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명령대로 오고가는 꼭두각시들, 광대들이여!”

 

헬레나가 희수를 안았다. 희수의 몸이 울부짖을 때처럼 떨고 있었다. 식당에서 나와 서울 종로의 피맛골 같은 충장로 뒷골목을 걸었다. 희수는 거리를 향해 다시 소리치기 시작한다.

 

“이 나라 이 땅에서 일본사람도 아닌 한국인이 한국 백성들을 죽창으로, 총검으로 죽였다.”

 

알아보는 행인이 다가와 희수를 안았다. 그 광경을 보는 헬레나의 가슴이 저려왔다. 그들은 무언극의 광대처럼 아무 말이 없었다. 미소를 잃은 비애를 보듬었다. 그도 희수와 같이 그런 방식으로, 한국인이 한국인을 죽이는 그런 그들의 방편으로 가족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희수가 집으로 가야겠다고 말했다. 헬레나가 집으로 가도 되냐고 물었다. 그저 앞으로 걸어가는 희수를 헬레나가 따랐다. 발걸음이 빨라진 희수를 쫓아가 어깨를 감쌌다. 마침 키가 얼추 맞는다.

 

“미안하다. 미국이 한국의 미래에 어줍고 주제넘게 참견하고 지배하려 했듯이 내가 너희들의 아픔을 아는 양 섣불리 재단하고 말았다.”

 

“돌아가지 않느냐?”

 

희수가 물었다.

 

“당신을 만났으니 며칠 더 여기 머물고자 한다.”

 

“아니. 미국으로 돌아갈 것이 아니냐?”

 

방으로 들어온 헬레나가 갈아입을 간편한 옷을 찾았다.

 

“체격이 비슷해 당신 옷이 맞을 것 같다.”

 

방안은 정갈했다. 방모퉁이에 이불이 반듯하게 개여 있었다. 헬레나가,

 

“이거면 될 것 같다.”

 

요와 이불을 펼쳐 깔았다.

 

“이 옷이면 된다.”

 

거친 것 하나 없이 옷을 다 벗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희수는 잠바의 단추를 목 아래 것까지 바짝 채웠다.

 

“옷을 벗을 것이다.”

 

군에서 나오겠다고 했다.

 

“곧이라도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미국으로 가기 전에 여기에서 당신과 함께 있고 싶다. 가고 싶다면 미국에 같이 가자.”

 

희수가 입은 옷차림 그대로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누워있는 헬레나의 손을 잡았다.

 

“갈 수 없다. 더는 피할 수 없다. 더 이상 피하면서 버텨야 할 힘이 내겐 없다.”

 

한 면 벽을 다 채운 세계지도가 헬레나의 눈에 들어왔다. 한반도 아래의 작은 섬이 파란 색연필로 동그라미 쳐져 있다.

 

“저곳이냐? 당신의 고향이.”

 

희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헬레나가,

 

“당신과 함께 가보고 싶다.”

 

고 하자, 희수가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짜증스럽게 뿌리치며,

 

“여행하듯 갈 곳이 아니다.” 글.그림=오동명/ 17편으로 계속>>>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전 제주에 정착,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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